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대표팀>유럽 빅 리그>K 리그 순으로 경기를 즐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평소 단 한 번도 K 리그를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도 대표팀 경기가 있고 난 다음 날이면 축구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곤 하니까.
하지만 난 K 리그가 가장 우선이다. 유럽 빅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포함된 대표팀 경기보다 포항 경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여자 축구 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더, 더욱 없는 편. 2017년에 현대제철을 응원해볼까(다른 이유는 없고, 당시 가장 강한 팀이었음) 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는 정도다.
여자 축구를 직접 본 건 일본에서 유학할 때, 오사카에서 오카야마까지 걸어가겠답시고 출발해서 고베에 들러 고베 아이낙스 경기를 본 게 전부다. 당시 이민아 선수가 고베에 몸 담고 있었다.
걸어서 오사카 → 오카야마 ④ 둘째 날, 고베 → 아카시: 약 24.78㎞ (합이 63.49㎞)
그 정도로 관심이 없는데, 이번에 필리핀과 평가전을 치른다기에, 마침 집에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기에, 이민아 선수도 응원할 겸 다녀오기로 했다. 무료 입장으로 풀어도 휑~ 하지 않을까 싶은데, 2/3만 원에 티켓을 팔고 있기에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대표팀 경기니까 나름 납득하고 티켓을 구입.
《 분명히 이민아 선수가 있었는데... 》
《 어?! 없어졌... 》
경기는 19시부터인데 퇴근하고 가면 차도 막히고 좀 늦을 것 같아 두 시간 일찍 퇴근하겠다고 했다. 땡~ 하면 집에 가야 하는데 퇴근 무렵에 일이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아서 마무리 짓고 나오느라 10분 정도 늦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비빔면 세 개로 배를 채우고 17시가 되어서야 출발.
경기장에 도착하니 선거 유세로 시끄럽다. 주차장이 꽤 넓었는데도 빈 자리가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군데군데 비어 있더라.
차를 세우고 안 쪽으로 들어가다보니 경기장 옆에 있는 탁구 전용 체육관이 사전 투표소로 쓰이고 있는 게 보였다. 주차장이 협소하니 대중 교통을 이용하라고 안내하면서 시골 깡촌에 경기를 잡아 놓은 꼬라지도 그렇고, 사전 투표일에 사전 투표 장소에 경기를 잡아 놓은 꼬라지도 그렇고, 참~ 훌륭한 행정이다 싶더라. 쯧.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나서 가방 검사 후 입장. 1층에 화장실이 있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유리 문은 막혀 있다. 경사가 제법 되는 계단을 올라가니 필드가 보였다.
《 일 저질러놓고 엄청난 돈 따박따박 가져가면서 애먼 사람들 잘라내는 곳에서 초청했단다. 》
《 날씨가 참 좋았는데 해가 지기 전부터 이미 추웠다. 》
《 조로록~ 늘어서 있기에 사인 볼 차주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ㅋ 》
《 16번 유니폼이 잔~ 뜩이다. 장슬기 선수의 팬인 모양. 나는 발 끝에도 못 간다. 》
《 장내 아나운서가 경기 전에 이벤트를 진행했다. 》
《 몸을 푸는 골키퍼 3인방. 아직도 김정미가 주전 골키퍼다. 》
《 지도력을 떠나서 얼굴로 일단 먹어주는 벨 감독님. 》
장내 아나운서가 특정 팬을 선택해서 문제를 내고, 그걸 맞추면 경품을 주는 식의 행사가 진행됐다. 문제의 난이도가 제법 있는 편이어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맞추기 어려운 수준이었는데, 근처에 앉아 계시던 분들은 찐팬인지 죄다 맞추시더라. 그 와중에 전광판에 문제가 뜨니까 몸을 풀던 선수들이 손가락을 들어 답을 알려줬다. ㅋㅋㅋ
《 몸을 푸는 필리핀 선수들. 》
《 저 분홍 조끼를 입은 유소년 선수들 중 누군가는 나중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
《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어필을 해야 눈에 들어 뽑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
나이 먹고 쪽 팔린 것도 있고, 맨 정신이었기 때문에 발작하기 어려웠다.
《 이 날 판정은 일본인 심판이 맡았다. 깔끔하게 잘 진행하더라. 》
《 감독님 뒤통수도 칠 수 있을 것 같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원채은 선수. 》
확실히 어려보이더라니, 아직 대학생 선수다. 소속 팀이 결정되면 그 팀을 응원해볼까 싶다. ㅋ
《 경기 전, 필드에 물을 뿌린다. 》
《 아오~ 저 ㄱㅅ... 왜 또 면상을 들이밀어... 》
뻔뻔하기 짝이 없다. 관중으로 가득 찬 남자 대표팀 경기에서는 가만히 앉아 쥐 죽은 듯 있더니, 보러 온 사람이 얼마 안 되는 여자 축구에서는 앞에 나서서 실실 쪼개며 악수질. 하아... 진짜... 진작에 그만두고 나가야 할 ××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염병...
《 경기 전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컨가람 선수와 케이시 선수. 》
《 한국 여자 축구를 위해 참 많이 고생한 지소연 선수. 듬직한 주장이다. 》
《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험 지역에서 프리킥 찬스를 줬지만, 잘 막아냈다. 》
전반전 내내 고군분투했지만 득점은 없었다. 필리핀의 역습이 있긴 했으나 우리가 주도했던 전반전. 여기저기 공 돌려가며 부지런히 틈을 찾았지만 필리핀의 수비가 워낙 좋았다. 특히 수비 라인은 자 대고 끌고 다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라인 유지하면서 우리 선수들을 막아냈다.
하프 타임이 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알고 보니 저~ 먼 쪽에 있던 관중들이 이 쪽으로 넘어온 거였다. 우리가 득점할 확률이 높으니까 가까이에서 보려고 옮겨 다니는 모양이다.
관중을 보니 축구 관계자가 가장 많은 듯 했다. 협회에 등록된 선수나 코칭 스태프는 무료였으니까. 그 외에는 가족 단위로 온 분들. 아이들이 많더라.
나처럼 제 값 주고 표 사서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들도 꽤 많았고, 표 모자라지 않았냐, 한 장 남았다는 대화가 오고 가는 것도 들었다. 역시... 내가 호구였나봉가...
《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고생한 전가을 선수의 은퇴식이 진행됐다. 》
소감을 말하다 울먹이는 걸 보니 울컥! 했다. 이 뜻깊은 행사에 똥파리 ㅅㄲ가 껴서... 아오, ㅆㅂ
《 우리나라의 골이 예상되니 필리핀 골키퍼 뒤로 자리 잡은 사람들. 》
《 반대 쪽 골문 뒤는 휑~ 하다. 》
《 쿠팡 플레이로 중계를 했다. 캐스터와 해설자. 》
《 후반전을 위해 필드로 나오는 선수들. 》
《 교체로 들어올 최유리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
《 천가람 선수와 교체해 들어간 최유리 선수가 합류하자 둥글게 모여 승리를 다짐한다. 》
《 필리핀 쪽도 교체 선수를 기다렸다가 모여서 한국 한 번 잡아보자고 욕심을 내본다. 》
《 후반에도 찬스는 우리 쪽이 많았지만 골이 터지지 않는다. 》
《 하프 필드 경기라서 김정미 선수는 춥겠더라. ㅋ 》
《 위와 같은 사진 아니냐고? 아니다. 같은 지점에서 또 프리킥을 얻었다. ㅋ 》
교체로 들어간 최유리 선수가 골키퍼와 1:1 찬스를 놓쳤다. 대표팀의 공격수라면 넣어줘야 하는 장면인데 아쉽더라. 하지만 얼마 후의 같은 찬스에서는 득점에 성공했다. 필리핀 수비 선수가 골키퍼에게 백 패스하는 장면이었는데 축 발이 꺾이면서 힘이 실리지 않아 패스가 짧았다. 최유리 선수가 잽싸게 달려들어 공을 잡은 뒤 침착하게 골. 이후 댄스 셀러브레이션이 있었는데 현장에서는 모르고 쿠팡 중계를 통해 봤다. ㅋ
쿠팡 중계가 1분 정도 늦었다. 화면 오른쪽 위에 LIVE라 떠 있었지만 지연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공이 밖으로 나가면 다른 공을 던져줘야 하는데, 그걸 담당한 속칭 '볼보이'들이 어리버리했다. 벽에 맞고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가니 안 던져줘도 되는데 굳이 공을 던져서 두 개가 굴러다니는 장면도 나왔고, 골키퍼가 공 달라는데 먼 산 쳐다 보고 있다가 늦게 주는 장면도 있었다. 골키퍼는 이 쪽 볼보이를 향해 공 달라고 하는데 다른 쪽 볼보이가 주기를 바라면서 공을 지키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유소년 선수들이 아닌가 싶은데, 자기들이 직접 차는 것과 경기를 보면서 진행에 참가하는 건 분명히 다를 거다. 다 경험이지, 뭐.
공이 벽 밖으로 나가지 않고 라인을 넘었는데 선수가 공을 달라고 하니 일단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던져 줬다. 경기는 진행이 됐고. 하지만 방금 전까지 굴러다니던 공 하나가 필드의 라인 밖에, 하지만 벽 너머에 놓여 있는 상황. 볼보이는 다급하다. 보통은 볼보이들 다니라고 벽 사이에 틈 정도는 만들어두는데 이 날의 벽은 어찌나 빡빡하게 붙여 세웠는지 틈이 없더라. 뛰어넘을지 망설이던 볼보이는 한~ 참을 망설이다가 엔드 라인 쪽의 틈으로 갔고, 경기가 진행 중인데 들어가도 되나 잠시 망설이더니 총총총총 뛰어 공을 들고 나왔다. 귀엽더라. ㅋㅋㅋ
《 문미라 선수가 교체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
필리핀 쪽에서 프리킥 찬스를 다시 얻었고, 지소연 선수가 기똥찬 감아차기로 추가 골을 만들었다. 정확하고 모서리로 날아가더라. 예전에는 여자 축구를 보면 '내가 아무리 못 차도 쟤들(?)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기 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그냥 찌발릴 거다. 개인기도 엄청 좋더만.
19번 달고 나온 고유나 선수는 소속 팀에서 공격수라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중앙 수비수로 나왔다. 다른 선수들보다 키가 껑충하게 커서 눈에 바로 들어왔다. 김민재 같아 보였는데 실제 플레이도 비슷하더라. 키가 큰데도 스피드가 있어서 금방 따라붙어 공을 뺏어내고, 공간 생기면 드리블로 치고 들어 가고. 좋은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 까지만 보고 차 막힐까봐 10분 정도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다. 쪼다 같이 운전하는 것들이 길을 막긴 했지만 차가 많아서 막히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한 골 더 넣었다는 뉴스를 봤다.
이민아 선수와 전은하 선수가 포항의 전자여고 출신이다. 이번에 볼 수 없어서 아쉽긴 한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고베 유니폼에 사인 받을 수 있었음 좋겠다.
아무튼, 지소연 선수가 조소현 선수, 심서연 선수 등 꽤 오랜 시간 대한민국 여자 축구를 이끌어 왔던 선수들이 마무리 지을 시기가 다가온다. 새 얼굴들이 더 크게 활약해서 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여자 대표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수들 모두 부상 없이 잘 뛰었음 좋겠고.
여자 축구 경기도 일정 확인해서 틈나는대로 보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정몽규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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