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이라고 해봐야 일본, 아이슬란드, 캄보디아가 전부지만,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 하면 일단 가이드 북을 빌려서 가보고 싶은 곳을 추리고, 인터넷을 통해 가는 방법을 알아본다. 숙소를 먼저 예약하고, 그 다음 비행기 표를 산 뒤 세부적인 일정을 정한다.
몽골은... 그게 안 된다. 현지 가이드 없이 갈 수 없기 때문에 좋든, 싫든 패키지로 가는 게 속 편하다. 물론 자유 여행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고비 사막이나 쳉헤르 온천 같은 곳은 혼자서 갈 수 없다.
그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러브 몽골 카페를 통해 일행을 모은 뒤 여행사에 돈을 주고 패키지 여행을 떠난다. 최근에는 자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행 유튜버거나 현지인 친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처음에는 자유 여행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가장 보고 싶은 것이 고비 사막에서 보는 은하수인지라 결국 러브 몽골에 가입해서 같이 갈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일정 맞추는 것도 어렵고, 대부분이 20대인지라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부산에서 제주 항공을 타고 가면 65,000원이다. 공항 이용료와 유류 할증료가 붙어도 30만 원이 안 된다. 집에서 부산까지의 교통비를 따져도 가장 싼 인천 ↔ 울란바토르 항공권보다 많이 저렴하다. 그래서 비행기 표를 지르려 했는데, 일정이 맘에 걸리는 거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건 21시 이후이고,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어간다. 게다가 돌아오는 것도 새벽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 저렴하니 각오하고 질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일단 동행이 구해지는 걸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오다위드라고, 몽골 전문 여행사인 오다투어에서 만든 앱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일행을 구할 수 있다는 거다. 나와 맞는 일정을 찾아서 동행 신청을 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두 팀에 들이댔는데 두 팀 다 마찬가지다. 둘 다 20대 여자가 주축인지라 반백 살 아저씨와 동행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테지. 이해한다.
그렇게 동행을 찾는 사이에 비행기 가격이 확~ 올라버렸다. 아무래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분위기를 감지한 항공사가 냅다 가격을 쳐 올린 게 아닌가 싶은데, 부산에서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 표도 65,000원 짜리는 다 팔린 것으로 나오고 15만 원 짜리가 가장 저렴하다고 나온다.
더 이상은 동행을 기다릴 수 없다. 인기있는 숙소 중 한 곳으로 소개된 UB GuestHouse를 보니 현지에서 원하는 여행 상품을 신청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일단 숙소부터 잡자!
해외 여행을 갈 때에는 '열 번 이용하면 한 번 무료 혜택'을 주는 호텔스닷컴을 이용하는데 UB GuestHouse는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부킹닷컴과 아고라에서는 검색이 되기에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을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자고 싶지 않아서, 2인실을 혼자 쓰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251,028원.
그리고 나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제주항공을 타고 울란바토르에서 부산까지. 65,000원이라 나오지만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실제로 낸 돈은 120달러. 원화로 결제해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달러로 긁어 버렸다. 에효...
이제 가는 편을 알아봐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산에서 새벽에 가는 건 옳지 않다. 현지에 도착하면 꼭두새벽인데, 바로 숙소로 가서 자야 하잖아.
고민을 하다가, 갈 때에는 대한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의 비행기 중 가장 싼 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녀석. 문제는, 내가 살고있는 촌동네에서 인천 공항까지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세 시간은 걸린다는 거다. 공항까지 한 방에 가는 교통 편도 없고. 아침 여덟 시 비행기를 타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시간 반 전에는 들어가야 할텐데, 세 시간 걸린다고 하면 세 시 반에 출발해야 한다. 그 시간에 다니는 버스... 가 있을 리 없지.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인천 공항에 있는 캡슐 호텔(다락휴)을 알아봤더니 예상대로 빈 방이 없다. 비싸기도 오질라게 비싸고. 그리하여 공항 근처의 모텔을 알아보니 연휴라 그런지 빈 방이 없다고 나온다. 그러다가 우연히 JUN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었는데 운서 역에서 가깝다고 한다. 역까지 데리러 오고, 태워주기도 한단다. 하루에 40,000원 밖에 안 하고. 혼자 잘 수 있고.
그리하여, 비행기 타기 전 날 하루 묵는 걸로 예약을 했다. 출근하기 전에 짐을 꾸려놓고, 퇴근하자마자 싸들고 나가서 운서 역에 도착하면 22시 쯤 되지 않을까? 맥주 한 캔 마시고 퍼질러 잔 뒤, 아침에 씻고 나가서 지하철로 공항까지 가면 될 것 같다.
자아~ 올 때 비행기 표 샀고, 현지에서 묵을 숙소도 예약했고, 인천에서 하루 신세질 곳도 예약 완료. 그러면 이제... 이제... 이제... 아! 정작 가는 비행기 표를 사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볼까 하다가, 이스라엘 때문에 표 값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사기로 했다. 그리하여 인천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 비행기 표를 357,200원 주고 샀다. 대한항공은 좌석 지정 가지고 돈 더 받는 짓은 안 해서 좋더구만.
대충 됐나? 싶을 즈음... 아차! 4일에 도착해서 9일 새벽에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정작 숙소 예약은 10일까지로 해버렸다. 부랴부랴 일정을 바꿔보려고 하니 안 된다고 나온다. 다행히 취소에 돈이 들지 않는 예약이었기에 바로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했다. 체크 아웃이 오전 열 시던데, 비행기는 9일 새벽 한 시에 타야 하니까 9일까지 방을 잡을까 하다가, 그냥 8일에 체크 아웃하고 근처를 배회(?)하다가 일찌감치 공항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놓고...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비 사막에서 별 보고 싶어서 몽골에 가는 건데, 고비 사막은 최소한 7박 8일 일정이다. 그런데 4일에 가서 9일에 오면 5박 6일이다. 테를지 정도 밖에 다녀올 수 없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돈을 더 쓰더라도 제대로 놀고 오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제주 항공에서 산 돌아오는 표를 취소했다. 다행히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아서 손해를 보지 않고 취소할 수 있었다. 다음은 돌아오는 비행기 표 예약. 대한항공에서 12일 오후에 돌아오는 걸로 예약을 했다. 288,500원.
옛날 사람답게 노트를 펼쳐놓고 대략의 계획을 짠 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데 우당탕퉁탕 엉망진창이다. 한 푼이라도 싸게 다녀오겠다는 다짐은 사라진지 오래. 벌써 까먹은 돈이 얼마냐.
인천 → 울란바토르 | 357,200원 |
인천 숙소 | 40,000원 |
울란바토르 → 인천 | 288,500원 |
몽골 숙소 | 334,704원 |
TOTAL | 1,020,404원 |
여기까지 쓴 돈이 1,020,404원. 딱 이걸로 끝나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을 거다. 숙소 비용은 현지에서 여행 상품을 결제하면서 달라질 게 분명하다.
왕복 항공권은 645,700원 들었네. 며칠 전에 제주 항공의 65,000원 짜리 비행기 표를 보고 왕복 20만 원대라고 좋아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고나. 다른 사람들이 대충 60만 원 정도 한다고 했을 때 비싸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딱 그렇게 되는고나.
부킹닷컴에서 숙소 예약 했다가, 취소하고, 또 예약했다가, 다시 취소하고, 또 예약... 지친다. 숙소 측에서는 얘는 뭐하는 놈인가 싶을 거다.
아무튼, 해결된 건 왕복 비행기 표. 인천 숙소. 몽골 숙소. 숙소에 픽업 요청을 해놨다. 그동안 동행 찾는답시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질러 놨으니 즐겁게 다녀올 일만 남았다. 고비 사막에서 별 실~ 컷 보고, 드론 날려서 인생 샷 남기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29일에 당직, 30일 쉬고, 출근해서 부지런히 돈 벌다가, 2일에 퇴근해서 짐 싸놓고, 3일에 출근, 땡~ 하고 퇴... 아, 나 네 시간 짜리 휴가 남았다. 오후에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하는 걸로 해서 집에 좀 일찍 와야겠다. 그러면 올라가는 데 여유가 좀 있겠지.
뭘 좀 체계적으로 했음 싶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질러버린다. 여행 비용으로 150만 원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200만 원은 까먹고 올 것 같다. 뭐, 잘 놀고 오면 되는 거니까.
그 어떤 협찬도 받지 않은, 고스란히 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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