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 30분에 칼날 같은 퇴근. 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나 있다. 옷을 갈아입고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출발하자마자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느껴져 캐리어 생각이 간절했지만 동네방네 '나 어디 가요~' 티 내는 들들들들~ 소리를 생각하면, 어우~
희한한 게, 용인에서 인천 공항까지 가는 시외 버스는 『 버스타고 』 앱으로 예매해야 한다. 앱 자체에서 띄우는 QR 코드로 찍고 탈 수 있고. 그런데 인천 공항에서 용인으로 가는 시외 버스는 『 티머니 GO 』 앱을 사용해야 한다. 반드시 종이 표를 받아야 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버스타고 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앱을 깔았다.
시골인지라 타이밍이 안 맞으면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날은 운이 좋아서 5분 만에 버스가 왔다. 맨 뒤 쪽으로 가서 자리잡고 앉은 뒤 에어컨 바람으로 땀을 식혔다.
뒤로 메는 큰 가방이 하나, 앞으로 메는 고만고만한 가방이 하나, 짐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칠까봐 걱정이었는데, 버스 맨 뒷 좌석이 달랑 세 개 밖에 없었다. 창 쪽에는 나무로 된 통 같은 구조물이 차지하고 있었고. 다행히 앞에 있는 의자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가방을 두면 딱이더라.
17시 30분 버스가 있고, 17시 55분 버스가 있었다. 네일베 지도는 17시에 도착한다고 예측했으니 30분 버스가 딱인데, 항상 막히는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지라 넉넉하게 55분 버스 표를 구입했다.
멍 때리고 있으니 금방 막히는 구간을 통과해서 용인 시내에 진입했다. 시계를 보니 17시까지 꽤 남은 상황. 30분 버스를 타고도 남을 것 같다. 앱을 실행해서 예약을 변경했다. 수수료를 받지 않고 그냥 바꿔주더라(용인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버스 시간을 바꿔야 했는데, 티머니 GO ×들은 수수료랍시고 1,500원을 뜯어 갔다. (╯‵□′)╯︵┻━┻).
《 용인 버스 터미널은 공사가 진행 중이라 이런 임시 통로로 이동해야 한다 》
터미널 의자에 앉아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슬슬 버스가 와야 하지 않나 싶을 무렵 버스가 도착. 플랫폼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버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최 기미가 안 보인다. 두 시간 넘게 가야 하니까, 마른 걸레에서 물 짜내는 기분이었지만 화장실에 다녀왔다. 잠시 후 도착한 기사 님에게 2 터미널에 간다고 얘기한 뒤 트렁크에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다.
《 앱으로 봤을 때에는 빈 자리가 몇 개 안 남았었는데, 터미널에서 탄 사람은 나 뿐이었다 》
출발 시간이 되어 터미널을 빠져 나가는 버스 안에는 기사 님과 나 밖에 없었다. 이 버스가 기흥을 비롯해 용인 시내 여기저기를 다 찍고 다니면서 사람을 태우는지라 중간에 타는 사람이 많았다.
돌아오는 버스 표를 미리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좌석에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나중에 결정해도 되겠더라. 그런가보다 하고 앱을 닫았다.
한 시간 40분 걸린다는 글도 있고, 두 시간 넘게 걸린다는 글도 있었는데, 직접 이용해보니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시내 버스 수준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한 탓인가 싶었는데, 네일베 지도에서 내 차로 가는 걸로 검색을 해도 비슷하게 걸리는 것으로 나오는 걸 보니 정차가 잦은 탓은 아닌 모양이다.
적당히 어두워진 뒤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본과 대만에서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픽업하러 온 뒤로 처음 오는 거다. 외국에 가는 게 아니더라도 공항에 한 번 정도는 놀러가자고 마음 먹은 지 오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
바로 공항 철도 타는 곳으로 이동해서 운서 역으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가니 공항 때문에 먹고 사는 동네라는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일단 숙소부터 찾았다. 입구가 안 보여서 긴가민가 하다가 안으로 들어갔고, 체크 인을 한 뒤 가방만 던져놓고 바로 다시 내려갔다.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3011
네일베에서 '몽골 자유 여행'을 검색하면 위 글이 걸려드는데, 저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원래 비행기 타기 전에 묵을 숙소로 JUN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더랬다. 5월 3일이 묵기로 한 날이었고 예약은 4월 17일에 완료했다.
그런데 묵기 하루 전, 그러니까 5월 2일에, 그것도 21시가 넘어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네일베 오류로 중복 예약이 되었단다. 개별 욕실이 있는 방을 예약했는데, 욕실이 없는 방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어 만 원을 환불해주겠단다.
하... ㅽ (╯‵□′)╯︵┻━┻
하루 전에 이러는 게 말이 되나? 짜증이 확~ 올라온다. 전액 환불 받고 취소하고 싶다 했더니, 그렇게 안내하기 미안해서 만 원 환불을 언급한 거란다. 보름 전에 입금했던 4만 원을 돌려 받은 뒤 네일베에서 예약한 걸 취소했다. 그랬더니 다시 연락이 왔다. 네일베의 오류 같다면서 다시 예약이 가능한 것으로 뜨니까 오겠냐는 내용이었다. '안 갑니다.'라고 답장했다. 길에서 풍천노숙을 할 지언정 이용할 생각이 없다. 토라지면 아무리 좋고 장점 투성이라 한들 쳐다도 보지 않는 게 나라는 속 좁은 인간이다.
그렇게 4만 원 짜리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취소 당하고, 7만 원 짜리 모텔 방을 잡은 것이었다.
딱히 이유라는 건 없지만 2019년 이후로 공항 근처에서 밥 먹으면 순대 국밥, 공항 안에서 밥 먹으면 짬뽕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ㅋ
순대 국밥을 파는 가게를 찾다가 국민은행이 보이기에 ATM 기기를 이용해 30만 원을 찾았다. 몽골에서는 우리나라 돈도 몽골 돈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니, 굳이 한국 원 → 미국 달러 → 몽골 투그릭으로 바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음식점에 들어가 순대 국밥과 소주 한 병을 주문. 맞은 편에서 굉장히 조용하게 식사하는 중년 커플을 보니 일본인 같아 보여 말을 걸어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순대 국밥을 다 먹고 나서 오랜만에 노랑 통닭에 가서 치킨을 포장할까 하다가, 배가 부르니 그만두기로 했다. 맥주나 사서 간단히 한 잔 마시고 자기로 하고 편의점 쪽으로 걷고 있는데 버거킹이 눈에 들어온다. 맥주 안주로 와퍼를 먹어볼까 하다가, 역시나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와 안주를 골라 계산할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중국어를 쓰는 커플이 점원에게 중국어로 한참을 떠들어대는 통에 좀처럼 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 영어도 아니고, 한국에서 중국어로 떠들어도 의사 소통이 될 거라는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가만히 보면 1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무례하고 재수없는 애들만 골라서 해외로 내보내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작자들이 많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한국인 커플이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채 바코드 찍기에 바쁜 처자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있었다.
《 맥주 마시면서 할 게 없으니 괜히 열쇠 고리 한 번 찍어보고 》
《 『 수사반장 1958 』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
그렇게 빈둥거리며 여행 전 날의 여유를 즐겼다. 내일 아침 여덟 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니까, 여섯 시 20분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샤워한 뒤 공항에 가면 어영부영 일곱 시 쯤? 딱 되겠다라 생각했다.
해외 여행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여기에서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지시겠지? 여덟 시 10분 비행기인데 숙소에서 여섯 시 20분에 일어난다라...
그렇다.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놓치는, 대서사시의 발판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운서 역에서 5분도 안 걸리는 모텔 어느 방에서. .·´¯`(>▂<)´¯`·.
'『 여 행 』 > 『 해외여행 』 2024, 몽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몽골 자유 여행 ⑥ 칭기스 칸 마상 동상 & 테를지 거북 바위 (0) | 2024.05.19 |
---|---|
2024, 몽골 자유 여행 ⑤ 울란바토르 시내 구경 & 축구 관람 (8) | 2024.05.17 |
2024, 몽골 자유 여행 ④ 살다살다 처음으로 비행기 놓친 날 (3) | 2024.05.15 |
2024, 몽골 자유 여행 ② 미적거리다가 똥망! 아오~ ╰(‵□′)╯ (0) | 2024.04.17 |
2024, 몽골 자유 여행 ① 슬슬 준비를 해보실까나 (2) | 2024.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