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기는 하루 단위로 끊어서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싸돌아다닌 덕분에 글도, 사진도, 잔뜩입니다. 사진은 제목으로 사용한 이미지 두 장을 제외해도 147장이나 되네요. 여유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변찮은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비행기 표 구입부터 면세점 쇼핑, 음식점 이용이나 여행 상품 결제 등, 그 어떤 일에도 일체의 협찬이나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받은 월급을 탕진하며 여행했습니다. ㅋ
공항에서 구입한 심 카드는 mobicom의 15GB 짜리.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 돈으로 10,000원이 채 안 된다. 데이터를 얼마나 쓰는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출발 전에 대충 알아봤다. 적게 쓰면 30GB, 많이 쓰면 50GB 정도더라고. 15GB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라는 건 충분하지 않아서 고생한 이야기가 조만간 나온다는 얘기 되시겠다. (;´༎ຶД༎ຶ`)). ← 집에 있을 때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느라 소모하는 데이터가 가장 많은데, 그걸 와이파이로 하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4일에 출발해서 12일에 돌아오니까, 4일부터 심 카드를 써버리면 12일에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4일은 숙소 와이파이로 버티고, 밖에 나갔을 때에는 인터넷이 안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스마트 폰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5일 아침에 심 카드를 꺼내 사용을 시작했다.
《 마이크로 심 카드이고, 어댑터가 있어서 다양한 사이즈에 대응할 수 있다 》
심 카드 트레이를 열 수 있는 핀도 없어서, 래시 가드의 택에 붙어있던 옷핀으로 구멍을 찔러댔다. 간신히 트레이를 열어 심 카드를 바꿔 넣는 데 성공하긴 했는데, PIN 번호를 입력하라고 떠서 당황했다. 직원이 손으로 써준 94157140을 입력했더니 틀렸다면서, 앞으로 두 번 더 틀리면 잠긴다고 협박한다. 확~ 쫄린다.
정황(?) 상 94157140은 전화번호임이 분명한데, 저 번호 말고는 딱히 번호랄게 없다. 혹시나 해서 번역기를 돌려 확인해봤더니 손으로 휘갈겨 쓴 저 여덟 자리 숫자는 전화번호가 맞았다. 대체 PIN 번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 PIN 번호는, 저 물결 무늬를 동전 같은 걸로 긁으면 볼 수 있었다 》
《 대개 0000 아니면 1234라고 하더라 》
숙소 코 앞에 놀이터가 있었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 모양인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잔뜩 몰려와 재잘거리며 놀더라. 몽골에서 배구가 인기인지 배구하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얘네들도 살인 배구하면서 놀더라. ㅋㅋㅋ
숙소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환전소에서 돈을 바꿨다. 들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돈을 투그릭으로 바꾸는 게 가능했다. 2.41의 환율이 적용되어 30만 원을 바꾸니까 72만 투그릭을 받았다. 예전에는 세 배 가까이 했다는데, 지금은 2.5배가 채 안 된다. 몽골 돈은 동전이 없어서 죄다 지폐다. 짤짤이 때문에 주머니가 묵직해질 일이 없으니 편하긴 한데, 가게에서 계산할 때 조금 번거롭긴 하더라.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광장에 도착할 수 있다.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칭기즈 칸 광장이 되기도 하고, 수흐바타르 광장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느낌 상, 여기는 자주 오게 될 것 같아 대충 사진만 몇 장 찍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광장에서 박물관까지도 얼마 안 걸린다. 잠시 걷다 보니 어?! 저 멀리 도리이가 보인다. 저게 왜 있어?
《 심지어 근처에는 '요시노야'까지 있었다 》
* 요시노야: 우리나라의 김밥 천국처럼 가성비로 승부하는 덮밥 가게 체인점
《 그 옆에 분위기 좋아 보이는 카페가 보여서 냅다 들어가봤다 》
《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세트를 주문했다. 24,900 투그릭 줬다. 》
《 몽골에서는 클림트가 먹히는 건지, '키스'를 자주 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서는 굳이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데, 여행을 가면 희한하게 꾸역꾸역 챙겨 먹게 된다. 아마도 하루종일 싸돌아다녀야 하니까, 살려고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커피부터 주기에 홀짝거리다가, 씹을 거리가 나와서 부지런히 씹고 뜯으며 심 카드 문제를 해결했다. 숙소에서 심 카드를 제대로 끼워서 들고 왔는데 데이터가 안 터지더라고. 두 번이나 껐다 켰는데도 마찬가지기에, 아예 껐다가 잠시 후 켜니까 데이터가 터진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 일관되게 느리면 포기하겠는데 가끔 빨라지기도 했다. (⊙_⊙)?
국립 박물관 입장료는 20,000 투그릭. 아침 일찍 가서 그랬는지 한적했다. 몽골의 전시 시설의 특이한 점 중 하나가, 그냥 입장료가 있고 사진 촬영이 가능한 입장료가 있다는 거다.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좀 더 주고 사진 촬영이 가능한 입장권을 사야 한다.
국립 박물관은 사진 촬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진 촬영용 입장권이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지는 않았다.
내부는 꽤 낡은 분위기였고,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통 유리가 아니라 여러 장의 유리를 잇달아 설치해놓았는데 가장자리 부분이 잔뜩 깨져 있더라. 우리 돈 10,000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니까 볼 거 없으니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추천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별로였다.
《 조금만 더 걸어가면 칭기즈 칸 박물관이 보인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 여긴 입장료가 30,000 투그릭이다. 국립 박물관보다 비싸다. 》
《 저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건줄 알았는데, 왼쪽에 출입문이 따로 있었다 》
입장료가 좀 비싼 감도 있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뒤돌아 나가려는데, 내가 다시 몽골 땅을 밟을 날이 오겠냐 싶어 영 아쉬운 거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권을 사고 나면 가방을 보관하라고 안내한다. 가방을 넣고 나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데, 열쇠가 없다. 가방을 보관한 락커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나갈 때 열어 달라고 하는 방식이다.
《 내부는 국립 박물관과 차원이 달랐다. 깨끗했고, 거대했다. 》
엄~ 청나게 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몇 번을 올라가면서 봐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여기저기 가습기가 놓여져 있었고 직원도 많았다. 확실히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전시물마다 QR 코드가 붙어 있었고, 설명은 영어/몽골어/러시아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볼 수 있었다. 내부에서 무료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한글로 된 설명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좀 꼼꼼히 볼 생각이었는데, 너무 거대하니까, 전시물이 워낙 많으니까, 점점 건성으로 보게 되더라. 입장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결국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보고 나왔다. 그래도 한 시간 넘게 머물러 있었더라.
다음으로 갈 곳은 자이승 전승 기념탑. 5㎞ 떨어져 있다고 나오기에 버스를 타볼까 하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걷기로 했다.
《 길 건너에 서울의 거리가 보인다 》
《 한국의 여러 브랜드가 힘을 쓰고 있는 몽골이었다 》
《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뜬금없이 등장한 부처님 》
《 저 위에 보이는 게 자이승 전승 기념탑 되시겠다 》
《 한강 라면이 여기서 왜 나와? 》
《 네? 》
'결제'가 맞습니다만...
《 이 건물 7층을 통해 가면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훗~ 》
《 월드 스타 길가메시 마동석 》
울란바토르에는 지금도 아파트 투성인데 새로 올라가는 건물도 한, 둘이 아니었다. 넓디 넓은 대초원을 두고 화력 발전소에서 뿜어내는 매연 맡으며 아파트에 사는 삶이라니...
한참을 걸어 도착했지만, 높은 곳에 올라 아파트로 가득한 울란바토르를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적당히 사진을 찍고 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경기 버스(G 버스)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별에 별 물건들이 넘어와 있었다 》
《 남코에 돈 주고 라이센스 사서 설치하지는 않았을테지 》
몽골에서의 두 번째 날. 이 날 계획한 마지막 일정이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달리 할 것도 없었기에 건물 안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는데 딱히 내키는 게 없어서 그냥 밖으로 나갔다.
《 만두 전문점(?)이 보여 들어갈까 하다가, 》
패스트 푸드라고 쓰여 있는 가게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객이 제법 올 것 같은 위치인데, 알바로 추정되는 젊은 처자는 내 입에서 나오는 초등학교 수준의 형편없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행히 메뉴에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서 그걸 보고 주문을 했다. 목이 타서 콜라도 하나 주문을 했는데, 메뉴에 있는 펩시를 가리켰더니 코크가 나오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다.
계산을 하려는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싸서 일체의 사고가 정지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알아봤더니, 내가 달라고 한 음식은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계산이 안 된 거였다. 그걸 몽골 말로 안 된다고 했는데, 나는 개뿔도 모르고 오케이~ 오케이~ 한 거지.
다시 주문이 가능한 음식을 달라한 뒤 적당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태블릿을 꺼내어 블로그에 올릴 글의 초안을 대충 끄적거리려는 찰라, 음식이 나와버렸다. 아... 패스트 푸드였지, 참. 우리나라의 국밥 못지 않은 속도다.
《 조금 질기다 싶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럭저럭 맛있었어. 》
몽골 여행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게, 고기가 질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몽골 사람들은 풀때기는 거의 안 먹고 고기만 씹어댄다더라고. 그러니 암 걸릴 확률이 꽤 높을 것 같은데 의외로 암으로 인한 사망자의 비중이 높지 않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이 유난히 튼튼... 한 게 아니라, 암으로 인한 사망자 통계는 나이가 어느 정도 먹은 사람을 상대로 이루어지는데, 그 전에 다 죽는단다. ㄷㄷㄷ
아무튼,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고 주는대로 먹어댔는데 간이 꽤 짠 편이었다. 매운 맛은 1도 없었고 그냥 짰다. 나는 음식을 꽤 짜게 먹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느꼈으니, 평소 심심한 간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붉은 색의 고기 소스에서 소금 국 맛을 느끼게 될 게다.
고기도, 소스도, 나쁘지 않았지만 매운 맛이 아쉬워서 옆에 놓인 칠리 소스 통을 뒤집어 탁! 탁! 쳐봤지만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야? 오기가 생겨 미친 듯이 흔들고 두드려 봤지만 요지부동.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 초반이라 얼마를 썼는지 꼬박꼬박 기록했다. 아침 밥 먹는답시고 카페에서 24,900 투그릭을 썼고, 국립 박물관에서 20,000 투그릭, 칭기즈 칸 박물관에서 30,000 투그릭. 밥 먹으면서 18,500 투그릭을 냈다. 우리 돈으로 바꾸면 9,960원 + 8,000원 + 12,000원 + 7,400원 = 37,360원. 커피를 포함한 아침 식사에 박물관 두 군데, 점심 식사 비용을 포함한 거니까 나쁘지 않다. 하지만 동남 아시아의 물가처럼 우리나라보다 확~ 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야 하니까, 택시라도 탈 수 있으면 바로 올라타겠는데... 안타깝게도 울란바토르에서 택시를 보는 건 하늘의 별 보기보다 몇 만 배는 어렵다. 지붕에 택시 표시를 달고 있는 차가 거의 없다. 하지만 길가에서 손을 들고 있으면 평범한 보통의 차들이 와서 멈춰 선다. 자가용의 택시 영업이 허용되는 건지, 그렇게 냅다 타는 게 당연한 몽골이다.
여행 이틀 차에 불과했기에 무면허(?) 택시를 타는 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안전 제일 주의인지라, 택시 타는 걸 포기하고 다시 걷기를 선택했다.
《 보도블럭마저 우리나라와 닮아 있다 》
《 중국産 전기 버스가 많긴 하지만, 여전히 경기 버스(G 버스)가 활약하고 있다 》
자이승 전승 기념탑까지 걸어가던 중 저 멀리에 대 관람차가 보이기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길에도 보여서 들렸다 가기로 했다. 걷던 중 비가 쏟아져서 비를 맞으면서 걸어야 했다.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테마 파크에 들어가기만 하는 게 가능했다. 에버 랜드도, 롯데 월드도, 입장권과 자유 이용권을 따로 팔았다. 다만, 그 가격에 큰 차이가 없어서 입장권만 사느니 자유 이용권을 사는 게 압도적인 이득이었지. 에버 랜드는 몇 년 전에 갔더니 빅 3, 빅 5 같은 게 없어지고 자유 이용권만 팔고 있더라. 돈 내고 새치기를 허용하는 패스트 어쩌고 하는 걸 팔면서 저 따위로 바뀐 게 아닌가 싶더라. 롯데 월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몽골의 테마 파크는, 가난한 어른의 입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입장료가 없었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여행을 하던 날은 어린이 날인 5월 5일. 머리 털로 따지자면 관 뚜껑 닫고 누워야 할 노인에 해당하겠지만, 마음 만큼은 미성년자인지라, 어린이 날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놀이 공원에 들어갔다.
《 국가 단위의 테마 파크에서도 CU 편의점이 빛나고 있다 》
경주 월드와 비교하기도 미안한, 광주 패밀리 랜드도 이것보다 나을 것 같다 싶은, 상당히 아쉬운 수준인데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여기에서 에버 랜드니, 롯데 월드니, 우리나라의 테마 파크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즐거워하는 분위기에 동화되어 같이 즐거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 워터 파크 같아 보였는데 물이 아예 없으니 그저 휑~ 했다. 》
《 안타깝게도 '청룡 열차'는 운행하고 있지 않았다 》
《 가격은 대체로 이러하다 》
《 테마 파크의 먹거리로 김밥이 팔리고 있는 광경 》
며칠 전에 기상 관측 이래 최초로 5월에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전 지구적인 기상 이변이다. 하지만 몽골의 5월은 그런 것과 달리 그냥 일교차가 심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아침과 저녁에는 추웠고 낮에는 더웠다. 추위에 강한 내가 하는 얘기니까, 연약한 이들은 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테마 파크에서 나와 숙소 쪽으로 가다가, 도착한 날 공항에서 숙소까지 태워주신 분께서 추천한 마사지 샵을 발견했다. 구글의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가이드의 추천을 믿어 보기로 했다.
카운터에서 마사지 상품을 선택하니 위로 올라가라고 한다. 계단을 올랐더니 직원 여러 명이 서 있다가 한 명이 나서서 안내를 한다. 이끄는대로 갔더니 우리나라의 찜질방에서도 입을 것 같지 않은, 남루해 보이는 옷을 내밀며 갈아 입으라고 한다.
걸으면서 땀을 많이 흘려서 전신 마사지를 받는 게 좀 꺼려지기에 발 마사지를 선택했는데,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그게 한 뒤 어깨와 등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손아귀 힘이 굉장히 좋아서 어지간하면 끙~ 소리조차 내지 않는 나인데도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버틸 수 없었다. 문제는, 혈을 제대로 눌러 시원하게 아픈 게 아니라 힘으로 찍어 눌러 아프다는 데 있다. 그냥, 움켜쥐고 비트는 힘이 강해서 그걸로 그냥 마구 눌러댄다. 엄청난 압박이지만 시원하지 않고 아프기만 하다.
간신히 버티면서 앉아 있었는데 끙~ 끙~ 하고 소리내면 지는 거(?)라 생각해서 힘을 많이 준 탓인지, 급똥 시그널이 왔다. 쪽 팔려서 참고 또 참다가, 더 이상 참다가는 대참사를 겪게 될 거라는 괄약근의 경고를 받아들여 부랴부랴 번역기 돌린 화면을 보여주고 화장실로 향했다. 급한 불을 끄고 나서 마사지를 받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 날 워낙 많이 걸었으니 누적된 피로가 좀 풀리기를 기대했지만, 아프기만 하고 딱히 시원하지 않았다. 40년 넘게 살면서 최악의 마시지는 오사카에서 오카야마까지 걸어가다가 발견한 마사지 샵에서 받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주물럭이었는데 그 다음으로 최악이었다. 그저 아팠다. 이건 마사지가 아니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거지.
《 돌아오다가 서울의 거리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
《 저 앞의 빨간 건물이 뭔 사설 공연장이라더라. 소매치기가 많다는 구글 후기가 있었다. 》
《 이것은, 태극 무늬가 아닌가!!! 》
《 반짝반짝 빛나는 새 푸르공 세 대가 세워져 있기에 잽싸게 찍어 봤다 》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표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Ticket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딱히 절박하지 않아서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이 날이 몽골에서의 두 번째 날이었는데 일찌감치 다 헤치우면 나중에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여유를 부린 탓이 아닐까 싶다.
근처에 깔끔해보이는 펍이 보여서 거기로 향했다. 드라마를 찍는 건지, 촬영 장비를 들고 있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히 먹으려고 감자 튀김을 시켰다. 바삭하기도 하고 맛도 있었는데, 정작 맥주가 별로였다. 시원하지도 않았고 라거는 싸구려 향을 섞은 에일 맥주처럼 밍숭맹숭했다. 분위기도 좋고, 위치도 괜찮은데다 가격도 나쁘지 않은데 맥주가 맛 없어... -ㅅ-
여행을 간 곳에서 그 나라의 리그 경기를 볼 수 있으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캄보디아에 갔을 때에도 축구를 봤고. 문득 몽골에서도 가능할까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몽골에서도 자국 리그가 치러지고 있었다. 마침 울란바토르를 연고로 하는 팀의 경기가 있었다. 비도 맞았고, 낮술도 했고, 이래저래 힘들었지만 다시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니까, 들이대기로 했다.
힘이 들어 숙소에 가서 정비를 좀 하고 싶었는데... 펍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는 그 길지 않은 길에서 또 비가 내린다. 젠장...
비를 맞고 숙소에 들어가 명을 달리 한 보조 배터리를 내려 놓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는 몽골에 올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아까 낮에 갔던 놀이 공원 근처에 경기장이 있으니 또 몇 ㎞를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걸으면 살도 빠지고 기름 값도 덜 쓸텐데...
한~ 참을 걸어 축구장에 도착했다.
표 파는 곳이 보이지 않기에 눈 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여전히 매표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자그마한 방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 축구를 보러 왔는데 티켓 오피스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엄청나게 능숙한 영어로 몽골 리그는 입장권을 살 필요가 없다며 안내를 해준다.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나가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 그리 갔더니... 선수들만 이용할 수 있는 라커였다. 누구도 막지 않았고, 맘만 먹으면 선수들과 바로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화들짝 놀라 올라갔다.
정말로 입장권이 필요 없다. 동네 공원 쪽문 같은 문을 통과하자 바로 경기장이다. 관중석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똥꼬 치마를 입은 처자 두 명. 축구 선수를 애인으로 둔 이들일까?
배 나온 아저씨가 대부분이었다. 비가 와서 플라스틱 의자는 거뭇거뭇하게 젖어 있었고. 계단 쪽에 자리 잡고 섰다가, 뒤에 있는 아저씨에게 번역기를 돌려 어느 쪽이 홈 팀인지 물어봤다. … … … 모른단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지만, 홈 팀과 원정 팀의 구분이 애매하다. 그래도, 몽골에서는 탐도 치고, 큰 소리로 응원하는 아저씨도 있더라. 인조 잔디 구장이긴 했지만 트랙이 없어서 관중석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필드로 전달됐다. 어느 정도였냐면, 홈 팀을 응원하는 아저씨가 원정 팀 선수에게 뭐라 했는데 선수가 그 말을 듣고 욱! 해서 덤벼들려 할 정도였다. ㅋ
《 흰색과 파란색의 세로 줄무늬가 홈 팀, 분홍이 원정 팀이다 》
캄보디아에서 봤던 축구는 꽤 새로웠다. 골키퍼로부터 시작해서 미드필더까지 두 번 정도 패스가 이어지는데, 하프 라인을 넘자마자 드리블이 시작된다. 빌드 업이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쪼차바리다. 차 놓고 뛰는 거다. 그런데, 몽골의 축구는 또 달랐다. 홈 팀인 데렌 FC가 경기를 주도했는데, 수비 선수 두 명, 골키퍼를 포함해 세 명을 제외하고 죄다 하프 라인을 넘어가 있었다. 게다가 수비 선수가 최전방의 공격 선수에게 곧바로 찔러주는 패스가 수도 없이 이어졌다. '이렇게 간격이 넓은 데 중간에 커트 당하지 않고 패스가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고?' 싶을 정도의 플레이가 계속 됐다.
후방에서 든든하게 지키면서 미드필더 라인을 건너뛰고 바로 공격수에게 패스를 전개하는 선수가 37번을 달고 있었다. 경기 시작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그냥 딱 보니 알겠더라. 리그 수준을 넘어서는 사기캐였다. 어쩌다 한 번 진행되는 상대의 역습은 37번 선수 때문에 일찌감치 맥이 끊어졌다. 관중석에서 보면 필드 전체를 볼 수 있으니까 대략의 패스 흐름이 보인다. 하지만 필드에 서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인지라 넓게 보는 게 어렵다. 그런데 37번을 달고 뛰는 선수는 마치 관중석에서 보고 뛰는 것처럼, 상대 패스 길목을 미리 끊어냈다. 스루 패스인데 상대가 들어오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다. 불과 몇 초 전에는 빈 공간으로 보일 만큼 멀리 있었는데 말이지.
상대와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영리하게 공을 끊어내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공격의 시발점이 되더라. 일본 선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도 눈에 띄어서 관심을 가지고 저 선수 위주로 보다보니 Kim이라고 쓰여 있는 게 보이는 거다. 응?
《 저 7번 달고 있는 놈이 진짜 못 차더만 》
내가 그 자리에 뛰었음 해트트릭했다, 인마. -ㅅ-
부랴부랴 검색을 해봤더니, 우리나라 선수였다. 김휘한. 남부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TNT FC와 거제 시민 축구단을 거쳐 데렌 FC에 몸 담게 된 선수였다. 서울 TNT FC와 거제 시민 축구단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몽골 리그에서는 사기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축구는 팀 스포츠인지라, 한 명이 잘 한다고 모든 경기를 다 씹어먹을 수는 없지만 김휘한 선수는 그저 차원이 달랐다. 움직이는 것도, 퍼스트 터치도, 다른 선수들보다 훨~ 씬 나아보였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하프 라인을 넘어가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수비하면서도 모든 공격의 시작이 되는 패스가 그의 발 앞에서 시작됐다.
맘 같아서는 우리나라에서 술 쳐먹고 했던 것처럼 악 써가며 응원하고 싶은데, 외국이기도 하고, 너무 맨 정신이었다. 음료 파는 곳도 없더라. 맥주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결국 기똥찬 패스가 나오거나 엄청난 커트가 나올 때마다 혼자 뿌듯해하며 박수 치다가,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로 들어가는 김휘한 선수를 향해 "김휘한 화이팅!"하고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 힐끗 보고 들어가시더라. 좀 더 응원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득점없이 비긴 채 끝난 전반전. 경기를 온전히 다 볼 수 있었음 좋았겠지만, 너무 추웠고 피곤했다. 결국 후반전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택시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잡지 못해서 걸어갔다.
《자다 깼을 때 목마를까봐 음료를 샀다 》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 했는데,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은 입구에 무서운 누나들이 버티고 서 있어서 못 들어갔다. 쫄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가격이 꽤 있는 편인지라 메뉴를 보다가 나간 팀이 둘이나 됐다.
나는 망설이다가 피자와 맥주를 시켰다. 몽골 음식을 시켜보고 싶었지만 양이 많다기에 포기했다. 사실, 피자도 혼자 먹기에 양이 많다고 해서 고민을 좀 했지만 먹다 남기고 싸가자고 생각한 뒤 주문을 했더랬다.
도우가 얇은 씬 피자라서 혼자 먹을만 하더라. 한 조각 남기고 다 먹었다. 피자 한 판에 병 맥주 두 개를 마시니 55,400 투그릭이 나왔다. 싼 편은 아니지만 맛있었다.
비도 맞았으니 씻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피곤했기에 고양이 세수하듯 대충 씻고 말았다. 방에 들어와 자려고 하는데, 너무 덥다. 빤쓰만 입고 있는데도 더워서 잘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옆 방에서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통화하면서 떠든다. 제발 좀 닥쳐달라고 험한 말 나가느냐 마느냐의 경계에서 40분을 떠들던 AH 77I 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새벽에도 더워서 여러 번 깼다. 한 시간 정도를 자고 깬 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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