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포장일기 』

2012년 03월 21일 수요일 맑음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2. 3. 21.
반응형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 은하영웅전설 』은 절대군주제의 은하제국(이하 제국)과 민주주의의 자유행성동맹(이하 동맹)이 싸움질하는 이야기다. 물론 이 정도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단순한 싸움질 이야기가 아니지만, 아무튼 굵은 가지 중 하나가 양대 진영의 싸움인 건 확실하다.

제국의 두 배 병력을 투입하고도 라인하르트라는 젊은 영웅에게 개박살난 동맹의 위정자들은 완패를 면하게끔 지휘한 양 웬리를 영웅이라 부르며 패전에 대한 책임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전투에서 지고 돌아온 함정을 모아 반 쪽 함대를 만들고 그 지휘를 양에게 맡긴다. 그리고는 이젤론 요새를 공략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젤론을 칠 수 있는 건 너 뿐이라고 비행기를 태운다.

이젤론 요새.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의 좁은 길에 위치한 은하제국의 인공 요새다. 자유행성동맹은 이 이젤론 요새를 탈환하기 위해 여섯 차례나 쳐들어가지만 그 때마다 번번히 요새 주포에 당하고 만다. 양에게 반 쪽 짜리 함대를 주고는 그 이젤론을 치라 하는 것이다.

위정자들은 양이 당연히 이젤론 공략 제안을 거절할 거라 생각한다. 거절하면 까야지~ 하는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양은 예상을 깨고 한 번 해보겠다 한다. 그리고... 절묘한 작전으로 이젤론을 뺏고 만다.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의 통로를 막고 있는 막강한 요새를 빼앗고 난 양은 전역하려 한다. 동맹이 제국을 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젤론 탈환에 흥분한 위정자들이 제국 침략을 결정하면서 양의 전역은 물 건너 가고 만다.

살면서 누군가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너 뿐이다', '너 아니면 안 된다' 따위로 비행기 태울 때가 종종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그런 칭찬(?) 받고 기뻐 날뛰는 순간 목에 칼이 들어온다.

난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예전에 더 부족하고 모자랄 때에는 저런 말 듣고는 괜스레 으쓱~ 해서 목에 힘을 잔뜩 줬다. 그리고 부추기는대로 신나서 날뛰다가 혼자 상처받고 실패했다.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한 뒤 저런 칭찬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게 됐다. 그런 사람을 경계하게 됐다.

나 아니면 안 된단다. 네가 제일 잘 하니까 네가 해야 한단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 기뻐 날뛰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저런 말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안다. 저런 말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내게 떠넘기기 위해 비행기 태우는 거다. 정말 치사하다.

전역하기 전까지 나름 열심히 일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편하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해서 조금이라도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전역하게 되면서 나 없으면 당신들 엄청 고생할 거다, 어디 엿 먹어 봐라~ 라는 생각으로 뛰쳐 나갔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갔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을지언정, 내가 없다고 일이 안 되지는 않았다. 내심 서운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는 걸 이내 깨닫게 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 넘길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부추기며 비행기 태우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 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거다. 자기 하기 싫다고 남한테 떠넘기는 것도 충분히 나쁜 짓인데, 그걸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서 뒤집어씌우다니... 정말 못 됐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