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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카 회사의 콤비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차를 빌렸다. 모닝은 처음 몰아 보는데 생각보다 좋은 차였다. 편의 시설을 다 뺀 최소 옵션 차였기에 사이드 미러도 손으로 접어야 하는 등 조금은 불편했지만 작은 차를 선호하는 내게는 딱이었다. 기어 변속이 좀 둔해서 50㎞/h 이상에서 급 가속 할 경우 답답한 느낌이었지만 뭐, 여러가지로 맘에 들었다.
처음 갈 곳은 국립 제주 박물관이다. 지난 해에 들렀는데 너무 늦어서 못 보고 간 아쉬움이 큰 데다 공항 근처였기 때문이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처음 갈 곳은 국립 제주 박물관이다. 지난 해에 들렀는데 너무 늦어서 못 보고 간 아쉬움이 큰 데다 공항 근처였기 때문이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입구로 가는 길 왼 쪽에 제주 돌담이 쌓여 있다. 시멘트를 비롯한 접착 재료를 전혀 안 쓰는 재주가 놀라울 따름. 저런 야트막한 담으로 둘러 쌓인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게 소원이다. T^T
평일 낮의 박물관은 어디를 가든 고즈넉하다.
입구 왼 편에는 제주의 역사 유적이 표시된 지도가 있다.
밖에 있는 입장권 판매 부스(?)는 작은 반달 모양의 구멍이 막혀 있다. 입장권을 별도로 구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안에 들어가면 된다. 정문에서 표를 그냥 주신다. 그럼 그 표를 받아 들고 왼 쪽으로 가면 된다.
정문을 지나면 과거의 제주(아마도 조선 시대) 미니어처가 있다.
제주를 일컫는 여러 가지 말.
화산섬 제주의 특징인 지역마다 다른 흙을 전시해놨다.
고대 제주의 모습을 꾸며 놓은 미니어처. 짱꼴라 관광객 색히들이 시끄럽게 쳐떠들면서 지나가서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당최 개념이란 없는 것들.
저 작은 조각이 칼의 일부라는 걸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놀라운 일.
천장이 예뻤던 제주 박물관.
화산섬 제주에서는 철이 생산되지 않는단다. 이렇게 몰랐던 걸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박물관은.
제주 박물관에 문화재를 기능한 분들. 유홍준 교수님의 이름도 보이더라. 많게는 몇 천 점을 기증한 분들도 계시던데 정말 훌륭한 분들이다.
표해록.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까지 흘러가 개고생하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와 과거를 보지만 낙방한 선비가 쓴 글이다.
하멜 표류기. 조선에 머문 동안의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라 하니 어지간하구나 싶다. ㅋ
널리 알려진 추사(또는 완당. 호가 워낙 많다.) 김정희의 세한도다. 고미술 애호가 손창근 옹께서 소장하고 있는 원본은 2011년에 2년 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탁(2년이 지난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소장자에게 돌아갔는지, 기탁 기간이 연장되었는지. -ㅅ-)되었고 제주 박물관에 있는 건 원본이 아니다.
세한도는 권력을 잃고 제주로 유배온 자신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귀한 책을 보내온 제자 이상적에게 김정희가 감사의 마음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끈 떨어진 스승, 그 스승을 잊지 않고 예를 다하는 제자, 그 제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스승. 잘만 풀어낸다면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이 손창근 옹에게 전해진 과정이다.
유홍준 교수님의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에 따르면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준 세한도는 이상적이 죽은 후 그의 제자 김병선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그 뒤 민영휘를 거쳐 그의 아들 민규식이 후지쯔까 치까시에게 팔아 넘겼다. 서화 수집가인 손재형이 지극 정성으로 후지쯔까를 설득한 끝에 세한도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국회 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선거 자금이 부족하자 저당을 잡히고 돈을 빌려 썼다고 한다. 그 돈을 갚지 못해 미술품 수장가 손세기의 소유가 되었고 지금은 아들 손창근 옹의 소유가 됐다는 것이다(351~353쪽).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온갖 버전의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민영휘에게 넘어간 과정이나 후지쯔까가 손재형에게 팔았네, 그냥 줬네, 등... 아무튼 관심이 있다면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아, 그리고... 난 손창근 옹을 그저 부모 잘 만나 국보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얌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지고 있는 예술품을 무료로 기탁도 하고 1,000억원에 달하는 산림을 무료로 기증하는 등 엄청 좋은 분이었다. 오해해서 그저 죄송할 따름... 죄송합니다. ㅠ_ㅠ
세한도는 권력을 잃고 제주로 유배온 자신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귀한 책을 보내온 제자 이상적에게 김정희가 감사의 마음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끈 떨어진 스승, 그 스승을 잊지 않고 예를 다하는 제자, 그 제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스승. 잘만 풀어낸다면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이 손창근 옹에게 전해진 과정이다.
유홍준 교수님의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에 따르면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준 세한도는 이상적이 죽은 후 그의 제자 김병선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그 뒤 민영휘를 거쳐 그의 아들 민규식이 후지쯔까 치까시에게 팔아 넘겼다. 서화 수집가인 손재형이 지극 정성으로 후지쯔까를 설득한 끝에 세한도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국회 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선거 자금이 부족하자 저당을 잡히고 돈을 빌려 썼다고 한다. 그 돈을 갚지 못해 미술품 수장가 손세기의 소유가 되었고 지금은 아들 손창근 옹의 소유가 됐다는 것이다(351~353쪽).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온갖 버전의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민영휘에게 넘어간 과정이나 후지쯔까가 손재형에게 팔았네, 그냥 줬네, 등... 아무튼 관심이 있다면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무척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아, 그리고... 난 손창근 옹을 그저 부모 잘 만나 국보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얌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지고 있는 예술품을 무료로 기탁도 하고 1,000억원에 달하는 산림을 무료로 기증하는 등 엄청 좋은 분이었다. 오해해서 그저 죄송할 따름... 죄송합니다. ㅠ_ㅠ
김정희와 관련된 이야기는 야사를 포함해서 워낙 많다. 하나 같이 흥미진진한 것들이라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제주로 유배온 사람들. 광해군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난 근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제주 박물관은 고대사 유물 위주의 전시였기에 그닥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각 지역의 국보나 보물을 모조리 거둬들여 서울로 가지고 간 덕분에 정작 제주 현지에서 나온 국보나 보물도 볼 수 없는 게 현실. 전시실도 그닥 크지 않아 금방 밖으로 나왔다.
화창한 날씨. 느긋하게 뒷짐 지고 박물관 밖을 걸었다. '제주에서 만나는 부처의 미소'라는 별도의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안 봤다. -ㅅ-
연못이 있기에 한 바퀴 돌고 박물관 구경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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