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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8. 여행 셋째날 - 제주 월드컵 경기장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1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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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에도 그랬지만 내가 제주에 간 건 축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행은 그 다음이고. ㅋ   아쿠아 플라넷 구경을 마치고 나와 내비게이션에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찍었더니 도착 예정 시간이 경기 시작 시간인 15시를 훌쩍 뛰어 넘는다. 배가 고팠지만 식당 들렀다 갈 일이 아니다 싶어 부리나케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도착 예정 시간은 계속 줄어들어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었기에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음료수를 샀다. 경기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로 ㄱㄱ

주위에서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지만 당당하게 갔다. 제주는 원정 응원석을 제외한 모든 자리를 50% 할인. 원정석만 12,000원이다.

 

 

표를 사서 원정석 쪽으로 들어가는데 뭔가 경비가 삼엄하다. 응? 북패랑 경기할 때 무슨 일 있었나? 지난 해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캔, 병 음료는 종이컵이 다 따른 뒤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원정석에는 보안 요원들 여러 명이 진을 치고 있다. 패륜 더비에서 뭔 일이 있어도 있었던 모양.

 

경기장 안에 들어가 전광판 아래에 자리 잡고 앉아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을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난 뒤 앞 쪽으로 내려 갔다. 차를 두고 갔어야 했는데 늦는 바람에 차를 가지고 갔고 그 덕분에 술을 마시지 못했다. 맨 정신에 혼자 응원하기도 뻘쭘해서 엄청 소극적으로 응원했다. ㅋ

 


비바 K 리그에서 나와 경기 시작 전에 뭔가를 찍고 있었는데 비바 K 리그에서 나왔다 하면 지는 징크스가 있는 포항인지라 서포터들이 술렁술렁~ ㅋㅋㅋ

 

 

과소 평가 받는 선수 중 최고봉이 아닐까 싶은 신화용 선수가 부지런히 몸을 푸는데 몸 푸는 것만 봐도 김다솔이 주전으로 나오겠구나 싶더라. 노병준 선수는 몸이 몹시 가벼워 보였고.

 

 

뭔 날인지 모르겠는데 흰 옷 입은 영감들이 잔뜩 나와서 경기 시작 전 시간을 엄청 잡아 먹었다. 선수들과 악수하는 것도 한나절이고 시축한답시고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 나가서 뻥~
저 날 나온 영감들 중 몇 명이나 꾸준히 K 리그 보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제주 월드컵 경기장이 좀 신기한 건... 보통 VIP석이나 기자석이 있는 곳을 본부석 쪽이라 부르는데 이 쪽의 관중이 반대 쪽 보다 더 많다는 거다. 다른 구장은 본부석 맞은 쪽이 관중 몰리는 곳인데 말이다.

 

 

본부석 맞은 편이 더 썰렁~ -ㅁ-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패를 응원하는 어린이들이 바로 옆에 와서 도발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아닌 거 같은데 다들 그렇게 부르니 그런가보다 하자)는 남패의 승리나 무승부를 예상했다. 포항 전력의 핵심인 이명주와 신광훈이 대표팀에 차출되어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포항이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논스톱으로 탁~ 탁~ 탁~ 탁~ 이어지는 패스는 없었지만 나름 간결하고 짧은 패스 이어가며 공격을 계속 했다.

 

선제 골은 포항의 몫이었다. 전반 18분, 신진호가 골문 앞 혼전 중 때린 슛이 김준수의 등에 맞고 꺽여 들어갔다. 이른 바 등 슛. ㅋㅋㅋ

 

남패가 반격에 나섰고 이내 동점골이 터졌다. 전반 26분, 뒤에서 길게 넘어온 패스가 포항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어중간 하게 떨어졌고 남패 공격수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다솔이 급하게 뛰쳐 나왔지만 공을 처리하지 못한 채 상대 공격수 앞에 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골문이 빈 사이 남패 공격수가 골대 앞으로 공을 밀어 주었고 송진형이 텅 빈 골 문에 공을 차넣어 실점. 김다솔과 김광석이 서로에게 뭐라고 푸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노병준이 다독거리며 기운을 북돋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반 39분, 황진성이 날린 슛이 골키퍼 맞고 나왔고 이걸 배천석이 다이렉트로 때려 넣으며 다리 한 점 리드. 그렇게 전반전은 끝났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코너킥 상황에서 오반석이 헤딩으로 동점 골을 넣었다. 후반 8분이었다. 그러나 남패의 기쁨도 잠시, 바로 동점골이 터져버렸다. 하프 라인에서 시작된 공격이 조찬호에게 이어졌다. 조찬호는 오른 발 드리블로 골 에어리어까지 접근한 뒤 갑자기 방향을 바꿔 상대 수비를 속인 후 왼 발로 슛, 이게 골대 모서리도 그림 같이 휘어져 들어가며 다시 포항이 리드를 잡았다. 하프 라인 쪽으로 달려가려던 조찬호 선수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방향을 돌려 서포터들을 향해 달려 왔고 앰블럼 부분을 쥐고 흔들며 서포터들과 기쁨을 함께 했다.

 

대부분이 주력 멤버가 빠진 포항의 열세를 생각했겠지만 포항은 내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다. 종료 시간이 다가오면서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을 펼쳤는데 한 점 앞 선 상황에서 5분여 남았으니 당연한 게 아니었나 싶다.

 

경기에 여유가 있거나 시즌 막판 순위가 굳어졌을 때 문창진이나 이창훈 같은 젊은 선수들을 좀 더 자주 내보내 내년을 대비했으면 좋겠다. 누구 한 명 빠진다고 해서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은 안 들지만 아무래도 황진성이 있고 없고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

 

 

 

 

 

 

새벽에 레바논과의 경기를 봤다. 신광훈 욕 많이 하던데 선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포항에서는 신광훈이 공을 잡으면 황지수나 이명주가 가까이 다가와 공을 받아준다. 신광훈은 공을 주고 오버래핑을 하고 오른 쪽 빈 공간에 황진성이나 신진호가 기똥차게 공을 밀어줘 공격이 진행된다. 그런데 어제 같은 경우 신광훈이 공을 잡아도 다가오는 선수가 전혀 없다. 가까이 있는 선수 곁에 레바논 선수가 붙어 있으니 패스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러다보니 개인기로 제치려 하거나 주력을 내세워 치고 달릴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나마 이청용과 패스가 조금 맞아 나가는가 싶었지만 경기 내내 계속 보이는 장면은 아니었다.

 

라이트 윙 백이 공을 잡았다면 수비 상황에서는 중앙 수비수가 다가와 공을 받아 줘야 하고, 공격 상황에서는 미드필더들이 내려와 공을 받아줘야 한다. 그리고 윙 백은 미드필더, 윙과 함께 전진하며 공격에 가담한다. 포항은 이게 엄청나게 잘 되고 있다. 신광훈 → 황진성 → 신광훈 → 조찬호 → 고무열로 이어지는 단 네 번의 논스톱 패스로 골이 난 적도 있다. 수비하던 신광훈이 황진성에게 패스, 황진성이 다이렉트로 리턴, 신광훈이 조찬호에게, 조찬호가 드리블, 고무열에게 패스, 골. 그런데 대표팀에서는 이게 안 된다. 윙 백이 공을 잡아도 접근하는 선수가 없으니 말이다.

 

전술과 시스템의 문제를 가지고 선수 한 명을 죽일 듯 갈궈대는 건 문제이지 않을까? 물론 대표팀에 뽑혀 나갈 정도의 선수라면 소속 팀과 다른 전술과 시스템을 쓰면 거기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윙 백은 특히나 자주 바뀌었기에 그럴 수 없는 포지션이다.

 

어찌 됐든, 어제 경기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대표팀과 포항이 붙으면 포항이 이길 것 같다는 거였다.

 

쉽게 이기리라 예상한 팀을 상대로 가까스로 비겼기에 실망하는 팬들이 많지만 믿고 응원해야지 어쩌겠는가?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며 물어 죽일 듯 짖어댄 것들 때문에 조광래 감독이 짤린 건데 이제 와서 조광래 짜르는 게 아니었다고 짖는 미친 개도 있더라.

 

아무튼... 해외파 선수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A 대표팀은 K 리거가 근간이다. K 리그를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A 대표팀 성적은 당연히 나온다. 아는 만큼 보이나니, 애정을 갖고 응원하며 지켜보자.

 

포항 스틸러스 화이팅,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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