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셋째 날 일정은 오카야마에서 교토로 이동한 뒤 에이칸도에 가는 것이었다. 달랑 그것 뿐. 빡빡하게 잡지 않았다. 오카야마에서의 첫 날과 둘째 날 모두 예상한 것보다 일정이 빨리 끝났지만 이 날은 계획보다 늦어졌다. 하지만 에이칸도만 보면 되는 일정이라 서두르지 않았다.
오카야마에서 신칸센을 타고 신 오사카에 내려 기차를 갈아타고 교토까지 갔다. 1년 만의 방문이지만 낯익은 교토. 역에서 내려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지난 해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었지만 이번에는 호텔이다. 교토 타워 호텔 아넥스를 예약했는데 낡은 호텔이긴 하지만 그냥저냥 괜찮더라.
교토 역에 내려 구글 지도 켰는데... 지도 켜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역에서 엄청 가깝다. 역 바로 맞은 편에 교토 타워가 있는데 교토 타워 쪽으로 건넌 뒤 교토 역을 왼 편에 두고 걷다 보면 오른쪽 골목에 노란 건물이 나온다. 그게 호텔이다. 체크 인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는데 별 말 없이 체크 인 해줬다. 싱글 룸 예약했는데 트윈 룸 준다고 생색내더라. ㅋㅋㅋ ANA 호텔은 호텔스닷컴에서 예약할 때 조식 포함이라고 나왔는데 여기는 안 나와서 물어보려고 했더니만, 조식 쿠폰이라며 챙겨 준다. 교토 타워 입장 할인권도 챙겨 주기에 일단 받아 놓고. 방으로 올라갔다. 낡은 건물인만큼 열쇠로 문을 열어야했다.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시스템. 낡은 티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 깔끔하다. 엘리베이터도 금방 금방 도착하고.
일단 짐 던져놓고 침대에 널부러졌다. 잠시 누워 있다가... 카메라랑 필요한 것만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교토 역 인포메이션 센터 갔더니 사람이 바글바글.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는데 영어를 잘 하신다. 교토 역 인포메이션 센터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영어 스킬을 장착하고 계신다. 한글로 된 버스 노선도 달라고 해서 챙기고, 버스 1일 이용권도 500엔 내고 구입을 했다. 몇 번을 타야 하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봤다.
철도 박물관인가 열차 박물관인가 4월 29일에 개관한다고 해서 온통 그 광고였는데 버스 1일 이용권에도 그 광고더라. 교토답게 한국, 중국 사람들이 바글바글. 서양 사람들도 바글바글. 배가 고파 일단 밥부터 먹기로 하고 이세탄 백화점으로 올라갔다. 라면 가게 어슬렁거리는데 맵다는 게 있어서 먹어볼까 했더니,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게 싫어 안 기다리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가게로 갔다. 자판기로 주문하는 시스템. 교자와 라멘 세트를 시키고 맥주도 하나 주문했다. 배가 많이 고파 뭘 먹어도 맛있더라. ㅋㅋㅋ
밥 먹고 역 앞으로 가서 버스 탑승. 100번 버스는... 역시나... 미어 터진다. -ㅅ- 가까스로 낑겨 탔다. 비 와서 습한 날씨에 땀까지 나서 영 찝찝하다. 외국인 한 명이 요금 내는 걸 몰라서 우왕좌왕 하니까 중학생 애들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게 귀엽다. 키요미즈데라에서 우르르~ 내릴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에이칸도 가기 전에 반 이상이 내렸고... 에이칸도미치에서 내린 건 나 뿐.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처음 에이칸도에 갔을 때에는 철학의 길 따라 걷다 간 거였기에 큰 길로 가는 건 생소해서 지도를 몇 번 봤다. 버스 내린 곳에서 얼마 걷지 않아 에이칸도 정문에 도착.
혼자 뻥 뚫린 길 따라 신나서 걸으니 매표소에서 아주머니가 스윽~ 고개를 내밀어 쳐다 본다. ㅋ
지난 해 에이칸도에서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것이 위 사진 속 풍경을 보면서 뜨거운 녹차 마시는 것이었다. 비 오면 더 분위기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무슨 복을 받은 건지 비 오는 날 다시 찾게 되었다. 뜨거운 물 한 잔으로 몸을 좀 덮히고... 녹차를 컵에 가득 따라 마루에 앉았다. 빗발이 좀 강해져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부슬부슬로 바뀌었지만 분위기는 더 살아났다. 녹차 마시며 멍 때리고 앉아 있는데...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오른쪽 아래 냉장고 같이 생긴 게 자판기다. 자판기 옆의 싱크대에 있는 컵을 내려놓고 버튼을 누르면 물이나 녹차가 나온다. 무료다. 다 마신 후 컵은 설거지해서 다시 올려놓으면 된다. 정말 맘에 드는 시스템이었다.
비가 타고 내려오는 장면 역시 장관이었다. 비 오는 날 오기를 정말 잘했다 싶더라.
사람 인연이 참 묘하다는 게, 만나려면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건데... 느닷없이 뭔 소리냐면, 예전에 학원 다닐 때 가르쳤던 애가 있다. 교복 입고 난리 치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낼 모레 서른이란다. -ㅅ- 아무튼... 그 녀석이 태어나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간다는데 그게 우연히 나랑 겹쳤다. 여행 이틀 차에 교토 간다기에 그 때 나도 교토 있을 거 같으니 연락하랬더니, 오전에 키요미즈데라 간다고 연락이 왔다. 에이칸도 있으니까 올테면 오랬더니 진짜 찾아왔네? ㅋㅋㅋ
키요미즈데라 간다던 애들이 교토 고쇼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키요미즈데라 찾아간 모양인데... 정작 가서 엉뚱한 거 본다고 키요미즈데라 가면 당연히 보는 절벽에 세워진 난간 건물이랑 물 떨어지는 건 아예 못 봤다더라. ㅋㅋㅋ
가이드 북에서 본 걸 바탕으로 간단히 에이칸도 안내를 하고... 천천히 구경을 마친 뒤 난젠지로 향했다. 난젠지 수로 보여주고... 간략히 또 가이드 질 하고... ㅋㅋㅋ 철학의 길로 안내했다. 어둑어둑한 비 오는 날이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혼자라면 절대 안 갔을텐데 제자와 제자 친구 덕분에 요지야 까페도 가보고. -ㅅ-
요지야 까페에서 차 한 잔씩 마시고 나오는데 분명 옆에서 일본어로 얘기하던 아주머니가 "잠깐만요~" 하고 쫓아나오더니 반창고 두 개를 준다. 전 날 숙소 들어갔다가 먹을 거 사러 잠시 나갈 때 귀찮아서 양말 안 신었더니 뒤꿈치가 까졌는데... 피가 제법 난 모양이다. 양말에 스며든 피(혐오 사진은 맨 아래에... -ㅅ-)를 보고 쫓아나와 반창고를 주고 가신 것. 한국 말도 잘 하시던데...
요지야 까페에서 나오자마자 서양인이 길 물어보는데 당최 모르는 곳이어서 안내 못 해주고... 그 서양인은 친절한 일본인이었다 생각하겠지. -_ㅡ;;; 긴카쿠지는 진작에 문 닫은 지 오래라 버스 타러 갔다. 생각없이 100번 타려고 했는데... 정류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203번 버스 오니까 100번은 진작에 끝났어요~ 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훗~ 하는 것 같아 얄밉게 느껴졌다.
버스 타고 가다가 기온에 내렸다. 밥 먹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딱히 먹을만한 데가 없어서 어디 갈까 고민하는 와중에 레알 게이샤 등장!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사진 찍고... 교토 세 번째인데 진짜 게이샤는 처음 봤다. -ㅁ-
제자와 제자 친구가 기모노를 입고 있었기에 불편할 거 같으니 갈아입고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무 데서나 막 먹어도 어지간하면 맛있게 먹는 저질 입 맛이라 맛집 같은 거 전혀 검색을 안 하기 때문에... 근처에 알고 있는 식당이 있을 리 만무. 애들이 옷 반납하는 동안 급하게 네이버 검색해서 근처 식당 알아보고... 좁은 골목길에 있는 식당 가서 밥 먹었다. 소고기 돈가스... 아, 그럼 말이 안 되는고나. 우가스? 아무튼... 뭐, 그런 거였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일하고 있던데 워킹 홀리데이로 온 건가 싶어 고생한다고 말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밥 먹고 계산하고 나오느라 응원도 못해주고 왔네.
애들은 다음 날 유니버셜 스튜디오 갈 예정이라는데 어찌 가야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근처 까페에 자리 잡고 앉아 교통편 알아봐주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조잘조잘 수다 떨다가... 애들은 숙소가 오사카에 있었기 때문에 가와라마치에서 한큐線 타고 가고... 난 그 앞에서 버스 타고 교토 역까지 갔다. 편의점에서 먹을 거 사들고 호텔 가서 맥주 먹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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