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쉬는 날이 아니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갑작스럽게 쉬는 날이 됐다. 이번 달은 내 의지와 1도 관계없이 당직도 두 번이나 바뀌고 근무도 막 바뀐다. 당최 배려라고는 모르는 사람과 입에서 나오는대로 뱉어대는 사람의 작품이라고나 할까. 좀 푹 자고 싶어서 약 먹을까 하다가... 멍~ 한 느낌이 싫어서 안 먹고 그냥 잤다. 대신 좀 늦게까지 자려고 커튼으로 창문 가리고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 따뜻~ 하게 해놓고 잤는데... 여섯 시간 조금 더 자고 깨버렸다. 다시 자려고 했지만 실패.
집에서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뭐 할까 하다가... 어디라도 다녀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맘 같아서는 등산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근처에 갈만한 산이 뭐가 있나 알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멀지도 않으니 천안 독립 기념관에 다녀오자는 생각을 했다. 언제 갔었는지 기억도 안 나니까.
월초에 국가 유공자한테 시에서 돈 준다는 우편이 왔다. 설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1년에 두 번 주는데 무려 30,000원씩! 1년에 60,000원 주는 거다. 0 빠진 거 아니다. 진짜 저렇게 준다고 왔다. 저럴 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유공자나 유족들 실태 조사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한테 몰아주는 게 낫지 않나? 아무튼... 동사무소 들려 서류 냈다. 돈 들어오면 국경없는 의사회에 기부나 해야지.
우체국 들러 고모한테 홍삼 액기스 부치고... 내비게이션에 독립기념관 찍고 출발했다. 평일이라 차는 거의 막히지 않았다. 눈 떠서 크래커 조금 먹은 게 전부라 망향 휴게소 들러 한우 국밥 시켜 먹었다. 베스킨라빈스 31 매장이 있기에 "레인보우 샤베트, 레인보우 샤베트, 레인보우 샤베트요."를 시전하려다가 가까스로 참고... 다시 출발.
금방 도착했다. 국가유공자 유족증 보여주니까 주차 요금 1,000원 할인해준다. 독립 기념관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는 대신 주차 요금을 받는다. 소형 기준으로 하루에 2,000원인데 유공자 본인은 면제고 유족은 1,000원 깎아준다. 돈 내고 영수증 받아드는데 휴가 때문에 온 군인이냐고 물어본다. 아이고, 전역한지 10년도 더 됐는데... ㅋㅋㅋ
(현역 병사들은 휴가 중에 운전하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자기들끼리 운전해서 온 군인들도 몇 명 보이더라. 원하지 않는 복무겠지만 어쨌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사지 멀쩡해가지고, 나이도 젊어서,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 세우고. 쯧. -_ㅡ;;;)
육군 병사라고 되어 있는데 공군도 되는 모양. 해군은 모르겠고. 군인-군인 커플도 꽤 보였고 군인-민간인 여자 커플도 꽤 보였다.
롯데리아도 있더라. 간만에 불고기 버거 먹을까? 하다가...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참자~ 하고 지나쳤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유홍준 교수님이 우리나라는 뭘 기념한다고만 하면 아무 이유없이 탑 같은 거 세울 궁리한다고 해서... 그 뒤로 저런 거 보면 거부감부터 든다. 뭘 상징하는지도 모르겠고.
통일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이 어찌 될까? 찬성이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4관은 올해 여름까지 폐관
버스 타고 구경하는 코스도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일단 그냥 지나친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사람들 안 나오게 사진 한 번 더 찍고
설명 읽어보니... 대체 뭘 보면 한민족의 기상과 자주와 독립, 통일과 변영 의지를 알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상징 탑을 지나고서도 꽤 걸어가야 한다
백련못이라고 이름 붙은 연못이 있던데 꽁꽁 얼어 있었다
태극기와 무궁화 조화로 만들어진 장식은 오래된 모양인지 때까 좀 끼어 있었다
에휴... 별... -_ㅡ;;;
슬슬 정문의 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태극기에 먹칠, 똥칠하는 미친 것들이 있다. 애국이니, 보수니, 되도 않는 간판 달고 말이지.
직접 가서 보기 힘든 광개토대왕릉비의 모조품을 전시해놨다. 실제 장소에는 전각을 만들어 보호한답시고 덮어놨다는데...
맨 마지막 한 줄은 빼는 게 낫지 않을까? 뒤 쪽에 따로 새기던가. 생색도 낼 때 내야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웅장하다. 한 번 더 보고 돌아나온다.
조선 총독부 청사 철거하면서 나온 자재들을 모아 서 쪽에 묻었단다. '해 지는 서 쪽'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렇고, 그냥 널부러 놓지 않고 파묻은 것도 그렇고, 분노가 느껴진다. 총독부 건물 철거와 관련해서 후세를 위해 남겨 치욕의 역사를 가르치는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제대로 잘 가르치느냐 그렇제 못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곳을 지나면 무빙 워크가 나온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타고 갔다.
중앙 박물관보다 훨씬 깔끔한 구성이다. 관람 동선이 잘 만들어져 있다.
단순히 돌멩이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 손을 같이 전시해서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는 쪽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고조선 = 단군 조선 + 위만 조선 다들 알고 있었쓰까?
북한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고구려에 대한 환상이나 그리움? 동경?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그냥 벽인 줄 알았는데 광개토대왕릉비의 각 면을 모조해놓고 설명을 덧붙여놨다. 잘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든다.
└ 길게 부르기 번거로워서 호태왕비라고 부르곤 했는데 중국에서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하니 그러지 말아야겠다.
여기서부터 카메라 만지작거려 미니어처 모드로 한 장씩 추가로 저장되게 했다. 그냥 찍으면 찍은 사진 바탕으로 카메라에서 자체적으로 효과를 입히는 거다. 그래서 후처리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더 나은 사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래 사진 중 위에 있는 게 그냥 찍은 거고 아래 있는 게 미니어처 모드인데... 이런 사진은 확실히 아래 쪽이 낫지 않나 싶다.
포항에 제철소가 생긴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익산은 진짜 관광 사업 못 하는 동네다. 오죽하면 게스트하우스 하나 없을꼬.
설명을 천천히 읽다 보면 모르는 내용을 많이 배울 수 있다.
오~ 미니어처 효과 주니까 확~ 산다. ㅋㅋㅋ
칠지도의 해석 때문에 고대 한-일 관계를 각자 유리하게 보는 문제가 생겼다. 우리보다 발전한 문명을 주변 국가로부터 받아들였다는 걸 쪽 팔리다고 생각하는 걸까? 당시 앞선 문명을 가진 중국과의 교류는 당연히 열도보다 반도가 유리했을 터인데... 우리나라도 지역 사학자가 국뽕 들이키고 맘대로 떠들어대는 게 문제지만...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그러고 있으니 문제다.
교과서 달달 외우느니, 박물관 와서 천천히 보고 공부하면 좋을텐데... 무조건 연도 외우라 그러고, 교과서의 쥐알만한 사진만 보고 이름 달달 외우라고 하니 국사라고 하면 진절머리 난다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닐까? 역사라는 건 결국 옛날 이야기인데, 역사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가르치는(이야기하는) 사람 탓이 가장 크다.
한 쪽에 앉을 수 있는 긴 벤치인데 온돌처럼 꾸며놨고, 실제로 따뜻하게 난방이 된다. 잘 꾸며놨다, 진짜.
팔만대장경. 해인사에도 분명 갔었는데 언제 갔는지 기억이... -_ㅡ;;;
서울 경복궁 일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늘에 둥둥 떠있을 수 있는 거야. 거기에 남들이 나를 못 보게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사학계에 이름을 날리... -ㅅ-
미니어처로 보는 것 뿐이지만 전쟁은 충분히 잔인하고 비참하다.
강감찬의 귀주대첩. 소손녕이 1차 침입하지만 서희의 담판으로 군을 물리게 하고 되려 강동 6주를 수복. 저런 위대한 조상이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부 ㅄ ㅅㄲㄷ은... -_ㅡ;;; 2차 침입해서 개경까지 왔다가 건지는 거 없이 그냥 돌아가고... 소배압이 10만 대군 끌고 3차 침입했다가 작살나고 돌아갔을 때 고려가 대승한 전투가 귀주 대첩. 강감찬은 연주, 위주에서 적을 물리쳤고 귀주에서는 김종현이 거란군을 박살냈는데 귀주가 큰 이름이라, 그리고 강감찬이 상원수여서 귀주 대첩으로 부르는 듯. 당시 고려가 동원한 군사가 20만 명 이상이었다고 하니 제법 강한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거북선.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을 한국에서 만든 걸로 속여 방송하면서 우주 전함 이름을 거북선으로 붙였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던걸까? -ㅅ-
임진왜란 당시 있었던 해전들을 저렇게 전시해놨다. 독립 기념관, 상당히 센스 있는 구성이다.
개그맨 박명수가 그렇게 말하고 다니던 학익진.
전통적으로 화포에 강한 우리나라.
이런 것도 참 잘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든다. 국립 중앙 박물관보다 훨씬 낫다.
사진 크기를 조절하는 바람에 잘 안 보이는데,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옮겨 적어본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 때 북평사 정문부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승전비이다. 그러나 정문부 선생의 업적은 선생을 모함한 무리에 의해 가려지고, 오히려 선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43년 후에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선생이 돌아가신 지 85년 뒤인 1708년에는 그곳에 부임했던 함경도 북평사 최창대가 글을 짓고 이명필이 글을 써서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고을 주민의 뜻을 모아 마침내 북관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이케다 마사스케 소장이 이 비석을 읽어 보고 자기네 조상들의 패전 기록임을 알게 되자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비석은 일본 왕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이러한 사실은 도쿄에서 활동하던 최서면 선생이 1978년에 옛 기록을 검토하다가 1909년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대한홍학보에 기고한 글을 일고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 비석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그 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수차례 비의 반환에 노력을 기울여 2005년 10월 20일에 비를 반환받게 되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관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동시에 남북간의 잃어버린 역사상을 회복하고 한·일 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처아산하는 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남북 협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북한에 인도되어 본래의 자리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복원되었으며, 이 비석은 원래의 비를 그대로 복원하여 206년 7월 4일 독립기념관에 새운 복제비이다.
돌려받기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짝짝짝! 애써 돌려받아 북한 줬다고 욕하는 ㅁㅊㅇ들도 있는 모양이던데, 모든 역사 자료는 원래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교통이 좋지 않을 때에는 적당히 큰 도시에 모아 한 번에 다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디든 금방 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백제의 유물은 공주, 부여, 익산에 있는 게 당연하고 신라의 유물은 경주에 있는 게 당연하다. 죄다 서울로 끌어올려 전시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독립 기념관 검색하다 보니 천안에 지었다고, 서울에 안 지었다고 나무라는 글도 있더라. 시골 촌에 지어서 접근성 안 좋다고. 부산에 사는 사람은 서울보다 천안 가는 게 훨씬 가깝지. 천안이면 교통의 요지라서 다니기 어렵지 않은데다 톨게이트 빠져나가니 직선으로 기념관까지 쭈욱 뚫려 있더만, 뭐.
나는 개인적으로 민비라고 부른다. 명성황후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유는 그 여자의 남편을 광무 황제로 부르지 않고 고종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민비를 일본이 만든 비하하는 표현이라 말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던데, 민비는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민氏 성을 가진 비(妃)를 호칭하는 거다. 저게 비하하는 호칭이면 왕의 아내라는 뜻으로 부르는 왕비도 비하의 표현이 되는 거다.
고종이라 하지 않고 광무 황제라 부르고, 조선이라 하지 않고 대한제국이라 부른다면 그 때에는 명성황후라 하는 게 맞을 거다. 황제의 아내니까 황후가 맞지. 하지만 조선, 고종이라는 표현 쓰면서 왕비만 명성황후로 부르면 그건 앞뒤가 안 맞는 거다. 학교 다닐 때 고종이라 배웠지 광무 황제라 배우지 않았고, 나 역시 고종이라 부르는 게 익숙하니 그의 아내도 민비로 부르는 거다.
드라마와 뮤지컬 때문에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되었는데, 사실은 중국에 빌붙어 저와 제 일가 부귀를 위해 더러운 짓 마다 않은 기득권의 수호자일 뿐이다. 민초들에게 있어서 결코 우러러 볼 수 없는 사람이고 존경이라고는 1그램도 아까울 사람인데 대체 왜 저리 된 건지.
전시된 인형들이 움직이고 소리도 난다. 잘 만들어놨다, 진짜.
192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했던 짓거리인데, 박근혜와 그 패거리들이 같은 짓을 했었다. 말이 안 나온다.
전쟁 물자 만든다고 밥그릇 뺏어간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기름 짠다고 종자 갖다 바치라고까지 했다니... 하아~
강제로 끌려가는 걸 그려낸 디오라마. 전쟁은... 안 된다...
한국과의 과거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후소샤 교과서. 한국의 국정 교과서도 못지 않다. 한심한 것들이 과거사 세탁한답시고, ㅆㅂ
수많은 역사 사료로 증명이 되는 일인데 왜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는 지 알 수가 없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녹둔도도 억울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땅이다.
고문 당하는 걸 재현하고 있는 인형. 움직이고 소리도 난다. 물고문 당할 때 다리 움직이는 거 보면... 소름이 돋는다.
위정자들이 나라 망쳐놓으면 민초들이 되살려놓기 다반사. 대체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천편일률적인 구성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시스템으로 지루하지 않게 잘 꾸며놨다.
발렌타인 데이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이라고, 국적도 모르는 외국 문화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과거를 떠올리자고,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선동질도 참... 1년에 한 번 젊은 애들이 초콜릿 주고 받는 게 그리도 보기 싫었던 걸까? 정작 중요한 건 사형 선고일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월 26일이나 사형이 집행된 3월 26일 아닐까?
독립군이 일본군과 전투하는 장면을 재현해놨다.
아는 이름이 몇 안 된다. 나는 이미 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서 이 분들 모두가 교과서에 나왔으면 좋겠다.
체코 군에게 무기를 샀다는 건 처음 알았다.
청와대에 고스란히 복사해서 한 부 보내줘라.
앞으로는 일본 여행 갈 때 혹시 우리 역사와 관계된 곳이 있는지 좀 더 공부하고 갈 생각이다.
민족 대표 33인. 권력에 눈이 먼 이승만이 맨 앞 가운데 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게 참...
왜 저 좋은 자리에 저 따위 개소리를 써 올려 놨을꼬?
방학 시즌이라 애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가족 동반으로 온 사람들은 그닥 많지 않았다. 대신... 포상 휴가 1일을 노리고 온 군인들이 사방에 출몰했다. 여기서 두 시간만 보내면 휴가가 하루 추가되니 군인들 입장에서는 오지 않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다들 성인인데... 너무 건성으로, 대충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1, 2관에서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지만 3관부터 슬슬 줄어드는가 싶더니 6관 가니까 거의 안 보이더라. 재미도 없는 거 억지로 보는 것도 무리긴 한데... 그래도 좀 관심을 갖고 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다들 도장 찍느라 바빠가지고. -ㅅ-
동영상도 꽤 있고 그래서 각 잡고 보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되겠다 싶더라. 나중에 비오는 평일에, 사람 진짜 없을 것 같은 날에 다시 가서 천천히 보고 올 생각이다. 4관 다시 개장하면.
요 밑↓에 하♥트 클릭, 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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