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여자에게 있어 상당히 접근하기 어려운 스포츠였다. 아니, 스포츠다. 학창 시절 남학생과 어울려 공 차는 괄괄한 여학생이 있으면 대개 오~ 올~ 하면서 적당히 같이 뛰어줬지만 어지간히 운동 못하는 남자 아니라면 여자한테 축구로 발리지는 않았다. 발로 하는 스포츠인데 일단 각력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까 여자들이 기를 쓰고 해도 남자들 따라 잡는 게 쉽지 않은 거다. 거기에다 쓰잘데기 없는 유교 문화 따위 때문에 '어디서 여자가!'라고 애먼 소리해대는 사람이 워낙 많아 여자가 축구로 밥 벌어먹고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나브로 공 차는 여자들이 늘더니, 급기야 대학교에 팀이 생기고 실업 팀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팀이 꾸려졌다. 세계 무대에 처음 나갔을 때에는 남자들과 똑같았다. 동네 북이었다. 사방에서 줘 터지고 왔다. 그러나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성장! 세계 최강이라는 일본, 북한, 미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치욕스러울 정도의 점수 차로 지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나라와 붙어도 호각세인 거다.
그러나... 역시 남자 축구와 마찬가지로 대표팀에 대한 반짝 관심만이 있을 뿐이다. 대표팀이 성적을 내려면 자국 리그가 흥해야 하는데 K 리그와 마찬가지로 WK 리그 역시 찬밥이다. 거기에다 엿×이 삽질하는 것도 똑같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는 축구지만 K 리그의 현실은 초라하다. 어지간한 인기 팀 아니고서는 경기 당 만 명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만든 영화가 한 달만에 백만 명 돌파하는 것과 비교하면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K 리그 경기장 한 번 안 가본 사람들이 K 리그는 수준 낮다며 보지도 않고 깎아내리고, 대표 팀 경기 보면서 한국 축구는 이래서, 저래서, 온갖 첨삭질 해대는 냥반이 정작 K 리그 본 적이 없다. K 리그가 이 정도니까 WK 리그는 말할 것도 없다.
괜찮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그 간의 경력도 나름 빵빵한 이천 대교가 해체한다는 뉴스를 봤다. 지금의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을 생각한다면 해체 고려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실업 팀은 자선 사업을 하려고 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게 최우선이고 수익이 발생하면 더욱 좋을 게다. 그런데 홍보도 별로 안 되고 수익은 커녕 만날 적자라면... 해체할 생각 하는 게 당연하겠지.
올 시즌은 포항 응원 안 한다고 굳게 다짐하게 어렵사리 지키고 있다. 강원이나 대구 응원하지만 마음이 고스란히 가지 않는다. 수십 년 이어온 팬질을 갑자기 그만둘 수 없는지라 포항 경기는 모바일 중계로라도 본다. 하지만 직접 경기장에서 소리 지르고 뛰면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 그러던 중 여자 축구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WK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팀은 모두 여덟 팀. 글 쓰는 시점 기준으로 순위 별로 적어보자면 인천 현대제철, 이천 대교, 서울시청, 화천 KSPO,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구미 스포츠 토토, 경주 한수원, 보은 상무 되시겠다. 고향 팀 응원할 생각이라면 경주 한수원 응원하는 게 그나마 비슷하기라도 할텐데 그닥 끌리지 않고... 상무는 여자 선수가 지명 당하면 강제로 부사관 입대해야 해서 축구 그만두는 선수가 나오는 바람에 논란이 있었기에 아예 제쳐뒀다. 어차피 응원할 거라면 좀 잘하는 팀 응원하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현대제철로 살포시 마음을 정하고... 유니폼 판매하는지 알아보니 전화번호만 안내되어 있다. 그래서 물어봤다.
답장에 26분 걸렸다. 답장 1~2분 안에 안 한다고 여자 친구 줘 패는 미친 것들이 사방에 넘쳐나는 요즘 세상이지만 그리 늦게 답장 온 것도 아니다. 거기다 바쁘게 업무 처리하고 있었을 수 있으니 그 정도 시간 지연은 이해할 수 있다. ① 홈 경기 때 구입 가능한지? ② 남자용으로 따로 나오는지? 두 가지를 물어봤는데 '남.여 공용입니다'라고 마침표 제외하고 일곱 음절로 답장이 왔다. 어쩐지 귀찮아하는 것 같은 인상이라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연히 유니폼 구입도 바로 포기했고. 축구 보러 가지도 않았다.
축구 팬이 유니폼 구입을 고려한다는 건 그 팀의 팬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거다. 한, 두 경기 보고 말 건데 유니폼 살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예전처럼 1~2만원에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소 5만원 넘게 줘야 하는데? 그런 팬에게 조금 친절하게 구매 방법을 알려줬다면... 나는 될 수 있는 한 월요일에 쉬려고 노력하면서 경기가 있는 월요일마다 인천 또는 원정 경기를 쫓아다니고 있었을 거다. 경기 당 관중 1,000명도 채 안 들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한 WK 리그 팀인데 나처럼 유니폼 문의만 하고 입 닦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무적으로 응대했던 걸까? 설마 그럴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팀에 대한 애정이 퐁퐁퐁 샘솟아 올라야 할 직원조차 저리 귀찮은 모습인데... 어느 팬이 좋아서 스스로 WK 리그 보려고 경기장을 찾겠냐고. 팬이 없으니 수익이나 홍보는 어림도 없을 것이고. 돈은 들어가는데 나오는 구멍은 없으니 운영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얼마 전 여자 축구 팀 해체 발표한 모 대학은 등록금 타령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욕 먹고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등록금 받아서 여자 축구 팀 운영하는 것도 힘들다고 하면 대학 문 닫는 게 맞다고 본다. 실업 팀도 어렵다고 징징거리는데 대학 팀은 오죽하겠냐.
아무튼... 축구를 좋아하는 많은 여자들이 직업으로 삼지 못하거나 외국으로 나가야 되는 상황이 잦아질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나도 대표팀 경기만 보고, 예쁘장하게 생긴 선수에 대한 관심으로 여자 축구를 대해왔기에 쓴소리 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 축구가 조금이라도 살아나려면 각 팀의 홍보 담당이나 대외 업무 담당하는 분들이 조금은 더 힘써야 할 것 같다. 어지간한 사고 안 나면 연간 500만 관중 넘어가는 게 일도 아닌 프로 야구도 온갖 이벤트 다 하고 별에 별 굿즈 만들어 팔고 난리다. 돈 안 된다고 시도조차 안 하고 있으면서 팬들이 알아서 경기장 찾아주기를 바라는 건 씹던 컴에서 설탕 솟아나기를 바라는 일일게다.
글이 중구난방인데... 요약하자면... 인천 현대제철 유니폼 사서 여자 축구 보러 다닐 생각하며 문자 보냈다가 유니폼 판매 담당하는 사람이 냉랭하게 답장해서 삐진 나머지 여자 축구고 나발이고, 하고 포기해버린 ×이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끄적거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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