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은 K 리그를 거의 보지 않고 있다. 신화용 팔아넘기는 꼴 보고 화딱지 나서 팬고 이전을 선언했지만 강원이나 대구가 내 팀이라는 애착이 생기지 않아서 결국 K 리그 자체를 거의 안 보게 되는 거다. 그 와중에 그렇게 짜증내고 미워하면서도 수십 년 응원한 팀이라 결국 포항 경기를 또 보게 되는데... 지난 강원과의 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다섯 골이나 넣었다. 그 날 경기가 많지 않은 날이라 언론은 온통 포항 기사. 포항의 공격력이 살아났다며 난리던데 경기나 보고 하는 소리인지. 강원 수비가 엉망이었기 때문이지, 포항 화력이 엄청나서 다섯 골이나 터진 게 아니다.
아무튼... 스트레스도 잔뜩 쌓인 마당이니 간만에 축구장에나 가볼까? 싶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스마트 폰 앱으로 왕복 기차 표를 예매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시간 맞춰 밖으로 나갔다. 버스 타고 ×× 역에 도착. 스마트 폰으로 만화 보다보니 서울 역에 도착했다. 슬렁슬렁 걸어서 공항線 타러 갔다. 며칠 전에 마사미 님이랑 같이 왔던터라 낯익다. ㅋ 디지털 미디어 시티 역에서 6호선 갈아타고 한 정거장 가면 월드컵 경기장 역인데 달랑 역 하나니까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2번 출구로 나가서 그대로 쭉 걸어나가니 왼쪽으로 저 멀리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걸어서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터널 내 공기가 더러울테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터널에서 빠져나오니,
바로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에 먹을 거 사려고 홈플러스로 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쉰다. 젠장. -_ㅡ;;;
그냥 위로 올라가서 S석 쪽으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원정석 표만 판다고 붙어 있었다. 국가 유공자 할인 같은 거 안 되나? 아무리 찾아봐도 할인이나 무료 입장 안내가 없어서 그냥 카드로 14,000원 결제했다. 내 앞에 제법 덩치가 있는 처자 분이 혼자 들어갔는데 막걸리를 압수 당했다. 축구장에 여자 혼자 경기 보러 오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닌데 막걸리라니. ㅋㅋㅋ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디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는데 꽤나 공들여 보수한 모양이다.
원정석 부근에 화장실도 많고 매점도 가까이 있어서 참 좋았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는데 페이퍼 타월도 비치되어 있더라. 대단한데? 라 생각하며 블로그에 써야지~ 라고 마음 먹었는데 두 번째 가니까 그 사이에 다 떨어졌는지 없더라. -ㅅ-
축구 보다보면 분명 자기 맞고 나갔는데도 상대 맞았다고 어필하는 광경을 수도 없이 본다. 아주 오래 전에 나 맞고 나갔다고 손 들었다가 감독한테 쌍 욕 들어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도 그러는 모양인데... 그러는 거 보면서 적어도 학원 축구에서만큼은 정직하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광혁이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더라. 광혁이가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약간의 부상을 입혔는데 한동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보였다. 조금은 뻔뻔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끝나고 미안하다 사과할지언정 경기할 때에는 좀 뻔뻔하게 했으면 싶더라. 정작 그러는 모습을 보면 못된 녀석이고만! 해왔으면서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더라.
노동건은 딱히 장점도, 단점도 없는, 지독하게 평범한 골키퍼라 생각한다. 하드웨어가 훌륭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슈퍼 세이브가 거의 없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아주 조금만 더 뻗으면 슈퍼 세이브가 될 장면을 잇달아 만들어내고 있으니 더 아쉽다. 지난 강원과의 경기에서 문창진한테 골 먹은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하고 아쉬워할 장면이고, 이 날 실점 역시 손 맞고 들어갔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그 조금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하긴 이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항상 조금이 문제인데 정작 그 조금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지. 최근의 골키퍼는 단순히 패널티 박스 안에서 손 쓰는 특수 포지션 선수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거다. 공격 방향 정해주고 선수 위치 수정해주고 기습적인 롱 킥으로 패스하고.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안 된다. 킥도 정확하지 않아서 라인 밖으로 나가기 일수고.
룰리냐는 좋은 선수지만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문제는... 축구는 단체 경기인지라 한 사람의 좋지 않은 경기력이 전체 경기력 저하에 영향을 준다는 거다. 룰리냐가 그 대표적인 예다.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어떻게든 공격이 관여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맥이란 맥은 다 끊어놓고 경기 스피드 다 잡아먹는다. 지난 강원과의 경기에서는 몸이 좋았던 모양인지 기똥차게 발 갖다대며 골도 넣고 그러더니, 이 날은 영 엉망이었다. 맥 끊는 건 진짜... 하아~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데 바꾸지 않는 감독도 이해 불가.
포항 성적이 이 모양인 와중에 가장 많이 욕 먹는 선수는 배슬기가 아닐까 싶다. 2012년부터 포항 소속으로 뛰고 있는 이 선수는 파이팅과 대인 마크가 뛰어난 선수다. 팀 분위기가 가라 앉거나 하면 터프한 플레이로 동료들에게 기운 내라 소리 치고 팬들에게도 더 크게 소리 치라며 팔을 휘젓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타입의 선수다. 포항의 주전 수비 선수로 수 년을 뛰어왔으니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지난 시즌부터 잔 실수가 많아졌다는 거다. 올 시즌은 김광석이 일찌감치 시즌 아웃되면서 파트너를 계속 바꿔가며 경기에 나서야 했는데 그 때문인지 좋지 않은 경기력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포항 경기 끝나면 배슬기 까는 글이 엄청 많던데 안타깝다. 잘한다고 칭찬해줘야 팍팍 업 되어 뛸 선수인데.
지난 강원과의 경기에서 권완규를 센터 백으로 써서 효과 봤다고 이번에도 그렇게 내보냈던데... 최순호 감독 성향 상 올 시즌 내내 권완규는 중앙 수비를 봐야 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오버 래핑 자주 나가는 선수도 아니니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강상우는 당최 오버 래핑 안 나가서 답답했는데, 집에 와서 기사 보니 뒷 공간 노리는 상대에 대비해서 참은 거란다. 그렇게 지시했단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하지만... 강상우는 원래 윙백이 아니라 윙 자원이었다. 포항 입단 초기에는 공격하는 날개로 뛰던 선수다. 그런 선수가 윙백에서 오히려 더 잘 뛰어버려서 지금은 날개 뒤에 버티고 서 있는데... 공격 본능을 모조리 잃어버린 건지 당최 돌파도 안 되고 스루 패스도 없고. 답답하다. 포항 떠난 고무열 보는 것 같다. 고무열은 그나마 포항에서 지속적으로 밀어주는 감독 만나 그 정도 뛴 게 아닌가 싶다. 요즘 고무열 전북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나?
숏 패스가 워낙 엉망진창이라서 패스 축구의 정석이라 불리던 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질러대기 바쁘더라. 슬프다.
심동운이 설쳐대야 하는데 수비가 든든하지 못하니 그럴 수가 없었을테지. 수비 가담하느라 바쁘더라. 심동운처럼 포지션에 제한받지 말고 뛰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밀어줄 선수가 있을 경우 듬직하게 그 뒤를 받쳐주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 심동운이 돌파하다 실수해서 공을 뺏기거나 패스가 차단되어도 뒤에서 상대 역습이나 속공을 끊어줄 선수가 있다면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거다. 순간 스피드와 개인기가 탁월한 심동운이 라면 그런 믿음 속에서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럴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 그나마 무랄랴가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랄랴는 최근 너무 내려앉는다. MF가 아니라 DF 같다.
경기 끝나고 댓글 보니 온통 양동현 욕이던데... 경기 막판에 양동현은 백 패스에 백 헤딩으로 위기를 불러왔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감독 잘못이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잔뜩 지친 모습이 너무나도 빤히 눈에 보이는데 안 바꿔줬다. 그 상황에서 자신한테 자꾸 롱 볼 올라오는데 어떻게든 머리에 맞추려고 뛰는 거 보니 안스럽더라. 전방으로 길게 때려놓고 헤딩으로 세컨드 볼 따내게 하는 장면, 양동현은 잘해냈다. 과거 박성호 때와 비교하면 양동현 쪽이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지쳤을 때 바꿔줬더라면 좋았을텐데...
북패가 선제 골 넣고 나서 일찌감치 내려 앉아버리는 바람에 포항 공격이 더 활발해졌다. 문제는 멀찌감치에서는 그냥저냥 되던 패스 따위가 앞으로만 가면 길을 잃고 헤맸다는 거. 그만큼 세밀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북패 덕분에 포항이 공격한 거지 라인 그대로 유지했다면 추가 실점할 지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북패 선수들이 스스로 내려앉게 만든 것도 결국 포항의 실력 때문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공격해도 결정적인 장면 한 번 못 만들더니 완델손이 터뜨려버렸다. 온전히 개인 능력으로 수비 두 명 순식간에 벗겨내면서 골 만들어내는 거 보니 어떻게든 내년에도 같이 가야할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주랑 신광훈은 경기 끝나고 포항에 인사하러 왔다. 우리 선수들이 하프 라인 부근에서 북패 서포터들 쪽으로 인사한 뒤 포항 서포터 쪽으로 향하니까 서둘러 뛰어 와서는 꾸벅~ 인사하고 박수치며 가더라. 포항 서포터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들의 인사에 응답했다. 포항이 졌더라면 일부 개념없는 멍청이들이 욕 하거나 야유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승부였기 때문인지 그런 일은 없었다. 이명주도, 신광훈도, 포항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준 고마운 선수들이니... 다른 팀 가서도 잊지 않고 인사하고 그러는 건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명주 선수도 아쉽지만 신광훈 선수도 정말 아쉽다. 포항에서 은퇴할 때까지 뛰어주기를 바랐는데. 아무튼... 두 선수 모두 부상없이 오래오래 뛰기를 바란다.
경기 전에 라디오 방송처럼 진행도 하고 치어 걸들도 잘 활용하더니 느닷없이 봉다리 끄집어내어 흔드는 쌩쇼를 시전했다.
북패는 고유의 응원가도 있고, 브이 걸이라 부르는 치어 걸도 잘 활용하는데다 관중 호응도 나쁘지 않다. 거기에다 상대가 북패 골대 가까이에서 프리킥이라도 얻으면 미친 듯 불어대는 부부젤라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좋은 것들 많은데 왜 어설픈 롯데 흉내인지 알 수가 없다.
P.S. 북패 팬들은 작정하고 황선홍 감독님 까던데... 나도 황선홍 감독님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교체나 특정 공격수에 대한 끝없는 믿음 때문에 짜증나고 속 상할 때 많았다. 그런데... 그 다음 감독으로 최진철, 최순호 만나게 되니까 배가 처불렀었고나 싶더라. 북패 팬들은 황보관 시절 생각하면서 좀 더 믿고 기다리면 안 될까 싶다. 아니면... 최용수 다시 북패에 앉혀 놓고 황선홍 감독이랑 강철 코치는 다시 포항으로 오는 것도... -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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