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시즌 포항의 첫 경기 상대는 대구. 통산 전적으로 보면 포항이 대구에 강한 면모를 보여 왔지만 최근 기록만 놓고 보자면 완벽한 호각세. 지난 시즌 기록만 따지면 한 경기 이기고 세 경기 졌으니 오히려 열세다.
대구는 경기를 잘 하다가 막판에 어이없는 실점으로 무너지는 일이 잦아서 그렇지 상대하기 상당히 껄끄러운 팀. 아무래도 지난 시즌 포항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대구가 이길 거라 예상한 팬들도 많으리라 본다.
“포항의 라인업이 너무 낯설다.” 최근 포항 경기를 본 적이 있는 팬이라 할지라도 아는 이름이 손에 꼽을 정도. 올림픽 대표 강현무, 포항 레전드 김광석, 줄타기 장인 김승대, 만년 유먕주 이광혁 정도가 아는 이름일 것이고 그 외의 선수는 대부분 누구지? 할 정도로 스쿼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했던 양동현 선수가 세레소로 떠났고 멱살이 아니라 머리 끄댕이 잡고 하드 캐리했던 심동운은 입대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펼쳤던 외국인 선수 3인방(무랄랴, 룰리냐, 완델손)을 모두 떠나보냈고 도움왕을 차지했던 손준호도 전북으로 보내버렸다.
선수들 이름 값만 놓고 보자면 그닥 별 볼 일 없는 팀인데 동계 훈련 기간에 유난히 포항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기에 의아하긴 했다. 팬들이 싫은 소리 써댄다고 “홈페이지에서 게시판 없애버리며 일방통행을 추구하던 팀이 기자들이랑은 소통이 잘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막상 개막이 다가오자 포항 기사는 쏙 들어갔다. 누가 봐도 압도적 1위가 유력해보이는 전북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수원이나 자판기가 전북을 잡을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의 기사. 그 와중에 황선홍 감독님 나가라고 성화인 북패 팬들.
개인적으로 최순호 감독의 능력을 그닥 높이 사지도 않거니와 조직력이나 한 발 더 뛰는 축구 같은 것도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올 시즌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상위 스플릿을 목표로 삼는다지만 “개인적으로는 하위 스플릿은 확정이고 강등 싸움에 안 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열린 뚜껑. 예상대로 포항의 축구는 개판. 이게 포항이라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대구가 수비 라인을 꽤 아래 쪽에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진 패스를 하지 못해 하프 라인 밑에서 공을 돌리는 장면이 반복됐고 그러다 뻥~ 내지르는 롱 볼 축구.” 팬들 재우기에 딱 좋은 축구였다. 간혹 나오는 돌파 이후에는 크로스라 부르기도 민망한 어쩌다 얻어 걸리면 다행인 공 띄우기가 이어졌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형편없는 경기력에 실망해서 혼자 트위터에 마구 지껄이고 있을 즈음 이광혁이 패널티 박스 안에서 반칙을 당해 패널티 킥을 이끌어냈다. 레오가말류 선수가 키커로 나섰는데 조현우 골키퍼를 멋지게 속여내며 득점 성공. 한 골 앞선 채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지만 경기력만 놓고 보면 골 안 먹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형편 없었다.
레오가말류 선수는 후반에 권완규가 길게 넣어준 볼을 가슴으로 받은 뒤 원 바운드 슛으로 마무리해서 추가 골을 넣었고. 경기 종료를 10분 정도 남겼을 무렵에는 김승대만이 할 수 있는, 정말 김승대스러운 골이 들어가면서 3 : 0 으로 승리.
스코어만 놓고 보면 무척이나 좋은 경기를 한 것 같지만 재미도 없었고 경기력도 좋다고 하기 힘든 경기였다. “볼 점유율 높이겠답시고 쓸데없이 공을 돌리다 전방으로 길게 때려넣는” 더.럽.게. 재미없는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겨서 승점 3점을 쌓긴 했지만 이런 식의 축구가 전북이나 자판기한테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2 라운드에서 만날 전남에게도 이길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
그나마 나은 것은 슈팅 다섯 개 때린 게 다 유효 슈팅이었다는 것 정도?
강현무 골키퍼는 전반전에 불안정한 볼 처리를 몇 차례 보여줬다. 한 경기라도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 같은 건 사라진 건가?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여러 차례 선방이 참 훌륭했는데 전반전의 어설픈 볼 처리는 영 불안해보였다. 좀 더 안정적으로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다.
강상우 선수는 윙으로 뛸 때부터 기복이 심하다는 인상이었는데 윙 백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안정감을 되찾아 지금은 제대로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개막전에서는 체력적인 문제인지 후반전에 상대 선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 뒷발질로 패스 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실점과 이어질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건 문제다.
김광석 선수는 여러 차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고 막판에 실점 위기를 막아내기도 했다. 역시... “김광석 없으면 안 된다.” 부디 다치지 말고 오래 오래 뛰어주기를.
하창래, 채프만 선수는 참 열심히 뛰는 것 같은데... 딱히 눈에 띄는 장면이 없었다. 실점없이 경기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데 의의를 두자.
권완규 선수는 몸이 덜 풀린 건지 크로스가 어째... 오버 래핑도 어중간하고... 뭔가 팍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져서 안타깝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정원진 선수는 경남에서도 저렇게 뛰었나? 드리블 할 타이밍이 아닌데 자꾸 드리블 하려고 들다가 공 뺏기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왔다. 그냥 사이드로 벌려 주거나 전진 패스 시도하면 될 것을 자꾸 본인 발 앞에 두고 몰고 나가려다 뺏기더라. 원래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섰기 때문에 어색한 것인지.
김승대 선수는... 뛰는 거 보니 지난 시즌 심동운 역할을 할 것 같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하드 캐리하다 힘 빠져서 털썩 쓰러져버리는 소년 가장.
이광혁 선수... 대체 몇 년을 유망주 타이틀 달고 있을 건지... 스피드를 장점으로 내세우는 선수인데 드리블로 치고 들어가다 올리는 “크로스 정확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열에 아홉에 홈런이고 나머지 하나도 얻어 걸렸네~ 싶은.
송승민 선수는 광주에서 뛰는 거 보면 진짜 잘 찬다 싶었는데 어째 포항에서는 좀 덜 뛰는 것 같기도. 그래도 계속 카메라 잡히는 거 보니 내가 어떻게든 까려고 꼬투리 잡으려다보니 덜 뛰는 걸로 보인 게 아닌가 싶다.
레오가말류. 간만에 다음 시즌에 다른 팀에 뺏기겠고나 싶은 외국인 선수가 들어왔다. 피지컬이 좋아서 상대와 몸싸움이 되는데다 공중 볼 장악 능력도 괜찮은 것 같다. 두 번째 골 넣을 때 오프사이드 트랩 깨고 들어가는 타이밍도 기똥찼고. 최순호 감독이 바란 공격수에 딱 걸맞지 않을까 싶은데 꾸준히 활약해주었으면 좋겠다.
교체로 들어온 제테르손이나 이근호는 뛴 시간이 얼마 안 되서 잘 모르겠고.
축구 얘기하면서 여러 번 지껄여댔던 게 “져도 좋으니 재미있는 축구를 하던가” 아니면 “더럽게 재미없는 축구하더라도 꾸역꾸역 승점 쌓아서 우승해라”였는데... 오늘 경기가 딱 후자였다. 재미는 오질라게 없었지만 승점은 3점을 가져왔다. 계속 이런 식으로 승점 쌓고 누가 봐도 질 것 같은 전북이나 자판기 상대로도 비기면서 승점 계속 가져와서 결국 우승한다면 경기력에 대한 얘기는 쏙 들어갈 거다. 나 역시 까대던 거 다 잊고 우승했다고 지랄 발광하겠지. 그러나 올 시즌이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시즌에도 전반기에는 우리보다 열세라 판단되던 팀에는 이겼고 우세라 판단되는 팀에는 졌다. 그러다 후반기 들어서면서 이길 팀에도 지는 바람에 결국 하위 스플릿 떨어졌고. 올 시즌도 비슷하게 가지 않을까 싶다.
잘게 썰어들어가는 패스로 상대 압박하는 걸 좋아한다. 당연히 뒤에서 길게 때려넣는 롱 볼 축구는 지독하게 싫어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비 축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최순호 감독은 후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 개막전 한 경기 보고 판단할 수 없지만 확실히 재미는 없다.
MBC SPORTS+ 중계도 어지간하다. 어차피 프로 야구 개막하면 더 이상 K 리그 중계는 안 할테지만 수준이 바닥이다. 신승대, 송종국 조합이었던가? 강상우와 강현무를 헷갈려서 강상무라 하지를 않나, 후반에는 강현무를 계속 조현우라 부르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계속 했다. 해설이라는 냥반은 패널티 킥을 계속 패널이라 불러댔고. 레오가말류 선수를 자꾸 카말류, 까말류라 부르기에 왜 이름 제대로 안 부르고 지 맘대로 줄여 부르는 거냐고 까대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레오나르도 가말류니까 가말류라 불러도 되는 모양이다.
카메라 한 대로 주구장창 롱 테이크 잡아대다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원 샷과 슬로우 모션 보여주는 MBC SPORTS+ 의 중계 수준 잘 봤다. 중계 해주는 게 어디냐. 이 땅의 K 리그 팬으로 그저 감사드려야지. 쯧.
오늘 중계에서 맘에 들었던 건 “첫째 정순주.” “둘째 정순주.” “셋째 정순주.” ...는 진담 같은 농담이고. 첫째는 진짜로 정순주. 둘째는 마이크에 씌워진 검정/빨강 껍데기. 셋째는 경기 끝났다고 “냅다 중계 종료 안 하고 황지수 선수 은퇴식 일부라도 보여준 거.”
황지수 선수는 경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눈에 띄게 보여서 무척 안타까웠는데 오늘 경기가 워낙 엉망이다 보니 황지수 선수라도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K 리그 1이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현역 생활 유지할 수 있었을텐데 끝까지 포항 유니폼만 입다 은퇴해줘서 정말 고맙다. 코치 생활 잘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내 되시는 분도 엄청 예쁘시더만.
지난 해에는 손준호가 있었다. 손준호가 그 전의 황진성이나 이명주 만큼 공격 성향의 선수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뒤에서 푹! 찔러주는 패스가 가능했기에 중앙에서 시작되는 공격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무랄랴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힘이 실린 묵직한 공을 골대 안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가 자꾸 거리를 벌려주면 중거리 한 방으로 수비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손준호도, 무랄랴도 없다. 그래서인지 중앙에서 시작되는 공격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양 측면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크로스가 정확하지 않으니 공격다운 공격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그나마 후반전 되니까 중앙에서 몇 차례 패스 시도하고 그러던데... 양쪽 측면만 노려서는 골을 만들기 어렵다. 제대로 된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있으니 뒤에서 자꾸 빵빵 공 띄워대고 싶겠지만 포항답게 패스 축구했으면 좋겠다.
뭐, 엄청 아는 것처럼 나불거리고 쓴데다 선수 하나, 하나 이름 거론하며 까댔는데... 알면 얼마나 알겠냐. 그냥 내가 응원하는 팀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우승해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댄 거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수고 많았다. 부상없이 계속 잘 뛰어주기를 바란다.
엿맹 홈페이지 들어가니 이것저것 신경을 쓴 티가 조금 난다. 잘 해 놨네. 일부 선수는 사진 대신 엑스박스가 뜨거나 과거 유니폼 입은 게 뜨는 등 아쉬운 게 있긴 한데 그래도 지난 시즌보다 뭔가 나아지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발전이 개미 삼단 뛰기 하는 폭 정도로 찔끔찔끔이라 문제지.
개막전 관중은 14,584명. 올 시즌부터 유료 관중만 집계에 포함하기로 했으니 돈 내고 들어간 관중이 저렇다. 남패 같은 경우 10,000명도 안 되는데 거기에 비하면 훨씬 나은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개막전에 20,000명 못 넘겼다는 건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약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병대 애들 아니었으면 몇 백에서 천 명 정도는 줄지 않았을까? 군인 무료 입장이라 까던데 내가 알기로는 국방부나 해당 군에서 돈 내는 걸로 알고 있다. 장병 개인이 일일이 안 내도 단체에서 내기 때문에 유료 관중에 포함해야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진짜 무료 관중은 장애인이나 유공자처럼 면제 받아 오는 사람들이겠지.
그러고보면 예전에는 무료 티켓 진짜 많이 뿌렸다. 일단 포항제철 직원들한테는 1년에 열몇 장 씩 주고 그랬다. 그런 게 점점 사라져서 지금은 포스코 직원이라고 무료 표 받고 그런 거 거의 없을 거다. 바람직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3월 3일부터 올 시즌 유니폼 살 수 있다기에 들어가봤더니 팀 굿즈 파는 곳이 라보나 어쩌고로 바뀌었다. 라보나에서 디자인 맡으면서 확실히 사고 싶은 상품이 많아지긴 했다. 일단 올 시즌 유니폼 지르고, 머플러도 지르고, 모자랑 쿠션이랑 방석도 하나씩 사고, 팔찌나 그런 것도 질러서 모셔놔야지 했는데... 포항시 패치랑 K 리그 공식 패치가 입고 예정이라 되어 구입이 불가능하다. 지금 질러봐야 제대로 된 걸 살 수 없는 거다. 좀 더 기다렸다가 질러야 할 모양이다. 대충 장바구니에 넣으니까 20만원 넘어간다. 그렇게 팀 욕하고 지랄 염병을 떨어놓고 또 이 지랄하고 있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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