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일어나서 습관처럼 스마트 폰으로 네×버에 들어갔는데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오사카 지진'이었다. 응?! 이게 뭔 소리야?
화들짝 놀라 내용을 보니 오전 여덟 시 조금 전(07:58)에 오사카에서 지진이 난 거다. 마사미 님으로부터 메시지도 와 있었다. 일본이야 지진 워낙 잦은 나라로 유명하니까 '또 지진이 난 모양이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역이 문제다. 좀처럼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오사카에서 진도 6에 가까운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다 보통의 지진은 땅이 좌우로 흔들리는데 이번 지진은 상하로 흔들렸다고 한다. 모든 건물에 내진 설계가 든든히 되어 있다는 일본이지만 땅이 좌우로 흔들리는 경우에 대비한 것이 많기 때문에 상하로 흔들릴 경우 피해가 크다고 한다. 거기에다 오사카는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일본의 모든 도시 중 가장 많은 한국인이 찾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장 며칠 뒤에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탈 예정이고, 지난 해 12월부터 준비한 유학이 코 앞에 다가와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번 지진은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사카는 가장 많은 한국인이 찾는 관광지다. 수도인 도쿄보다 더 많이 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여행과 관련된 인터넷 까페에는 같은 질문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가도 되겠느냐는 거다. 그 질문에 대한 의견도 각양각색이다. 목숨보다 중요한 게 있느냐며 취소하는 게 현명하다는 사람도 있고 걱정은 되지만 준비하는 데 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서 그냥 갈 생각이다라는 사람도 있다. 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간다는 사람을 두고 돈 몇 푼 때문에 목숨 버릴 참이냐며 한심하다 하고, 간다는 사람은 취소하는 사람에게 소심하다며, 다시 지진 안 나면 얼마나 후회하겠냐며 조롱한다.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목숨을 최우선하는 게 현명하니 사실은 취소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가기로 했다.
지난 2016년에도 여행 며칠 전에 지진이 있었다. 오이타와 구마모토에서 제법 큰 규모의 지진이 있어 피해가 컸다. 행선지인 오사카와 오카야마에서 다소 먼 거리에 위치한 도시였지만 여행 취소를 고민할 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던 과거의 제자와 친구 역시 고민을 했었다. 고민 끝에 그냥 가기로 했고... 다행히도 별 탈 없이 잘 다녀왔다.
그보다 더한 일이 있었다. 같은 2016년,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계획한 요나고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 돗토리에서 지진이 났다(http://pohangsteelers.tistory.com/1328 / http://pohangsteelers.tistory.com/1332). 돗토리와 요나고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더러 여행 일정에 돗토리 지역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숙소 창 밖으로 동해 바다가 보인다고 해서 멋진 경치를 기대하며 예약을 했는데 쓰나미로 인해 죽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할 일이 되어버린 거다.
당시의 전문가 반응은 이번 오사카 지진과 유사했다. 일주일 내에 같은 규모의 지진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진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여행지 바로 코 앞에서 지진이 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기에 굉장히 겁이 났다. 일주일 이내에 다시 지진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그 일주일이 내 여행 기간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여행을 갔고... 구라요시 시루카베도조군에 가서 여기저기 무너지고 망가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진은... 다행히도 없었다. 여행 기간 중 지진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 때 예상한 지진이 없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것이니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이 마지막 일본 행이 아니다. 얼마 후면 1년 이상을 일본에서 살려고 계획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 와중에 지진 때문에 여행을 포기한다면, 유학 역시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소모된 에너지가 더 이상 충전되지 않아 방전된 몸을 이끌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활로를 찾은 것이 유학이고 그것만 바라보며 방전된 몸을 쥐어짜고 있는 거다. 그런데 유학을 포기하게 된다면...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기에 여행도, 유학도, 예정대로 그냥 진행하려고 마음 먹었다.
물론 여행 기간에 지진이 일어나서 다치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상점을 이용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게 된다면 이 선택을 후회할 거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부디 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글 쓰고 있는 지금도 지진 경보 어플이 계속 지진을 알리고 있다. 열두 시간 전에 오사카 북부에서 진도 4.3의 지진이, 여덟 시간 전에는 3.4의 지진이, 다섯 시간 전에는 3.8의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여진이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걱정이다.
P.S.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다친다거나 무너지는 건물에 깔린다거나 하는 피해가 가장 크겠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지진으로 인한 손해는 상당하다. 당장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게 되니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대중 교통 역시 운행을 중단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여행을 강행한다고 해도 숙소에서 공포에 떨다가 여차하면 뛰쳐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계획대로 여행을 강행할 분들은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P.S. 1923년 9월 1일, 시즈오카와 야마나시 지역에서 큰 지진이 있었다. 인명 피해가 4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강한 지진이었다.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노를 외부로 돌리는 것이었다. 한국인이 지진을 틈타 폭동을 일으키려 든다는 소문을 퍼뜨린 거다. 우물에 독을 풀었네 어쩌네 하는 소문이 급속히 퍼져나갔고, 일본인 자경대는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15엔을 말해보라 시킨다. 일본어로 '쥬고엔'이 되는데 10을 뜻하는 '쥬' 발음이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인지라 대부분 '주' 또는 '츄'로 발음했던 거다. 그렇게 발음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 과정에서 발음이 안 좋은 일본인도 다수 죽었다고. 아무튼... 그렇게 자연 재해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약한 이들에게 풀었던 과거가 있는 일본이다. 문제는... 이번 오사카 지진에서도 외국인이 물건을 훔쳤다는 등의 소문이 급격히 퍼지고 있다는 거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같은 과오를 반복해서 남는 것은 후회 뿐이다. 자각 있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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