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하야시바라 미술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걸어 가도 된다. 다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등으로 땀이 줄줄 흐른다. 휴대용 선풍기를 가장 강하게 작동 시켰지만 뜨거운 바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걷는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걸었다(『 프로듀스 48 』에 일본인 멤버가 휴대용 선풍기를 가리키며 일본에는 이런 거 없다고 했다는데...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부채를 썼으면 썼지 휴대용 선풍기 같은 건 안 쓰더라. 여행 중에 휴대용 선풍기 들고 있는 사람 만나면 열에 열이 한국 사람 아니면 중국 사람이었다.).
첫 목적지인 하야시바라 미술관은 오카야마를 토대로 성장한 지역 기업 하야시바라 그룹의 초대 회장이 만든 미술관이다. 개인 소장품과 지역 영주였던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후손으로부터 기증 받은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다. 국보 3점, 중요 문화재 26점을 포함해서 총 10,000점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지고 있는 수장품을 독특한 테마로 구성해서 전시하는 기획전을 1년에 4~5회 개최하고 다른 미술관의 수장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은 1년에 1~2회 정도 개최한다고 오카야마 지역 공식 블로그(http://blog.okakura.or.kr)에서 소개하고 있다.
미술관을 만든 하야시바라 그룹은 뭐하는 회사인가? 일본에서는 설탕 이미지로 유명한 회사 되시겠다. 감미료와 보존료 역할을 하는 트레할로스를 일본 내에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럼 트레할로스는 뭐냐? 표고 버섯 등에서 추출되는 천연 감미료의 이름이다. 밥, 떡, 빵을 비롯하여 케이크, 어묵, 냉동 식품은 물론 음료에도 들어간다. 단순히 단 맛만 내는 게 아니라 수분 유지 시간을 늘리고 보존 기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트레할로스가 장 속의 유해 세균에게 영양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어 식중독, 장염 발병률을 높인다는 논문이 올 해 1월 네이처에 게재되었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유명 과학지에 논문 게재됐다 그러면 바로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글 쓰는 게 좀 민감하긴 한데... 그런 논란이 있는 첨가물이라는 거다. 그걸로 돈 번 회사라는 거고. 아직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는 확정된 게 없는 것으로 안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설탕 비스무리한 거 만드는 걸로 일본 내 최고의 기업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세상이 바뀌니 설탕 하나만으로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바이오 전문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사업 확장에 나선다. 그런데 바이오 전문 기업 어쩌고 해놓고 한다는 게 침팬지와 인간의 의사 소통 연구, 일본도 연구,... -ㅅ-
그렇게 사업 확장을 마구잡이로 해버려서 회사가 어려워졌는데 그 와중에 분식 회계까지 걸려서 결국 2011년 2월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고 만다. 망했다는 거다. -_ㅡ;;;
하야시바라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기업이 네 곳 있었는데 일본담배산업(JT), 화학기업 나가세, 군에이 화학공업, 그리고 CJ. 응? CJ? 제일제당? 맞다. 우리나라 기업 CJ. 애초 CJ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서 인수가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고 그랬는데 결국 나가세가 인수하게 됐다. 알 수 없는 기업의 세계. 나가세는 미술관 따위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그닥 돈도 안 되는 미술관을 처분하려 했지만 산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산다는 사람도 없는데 어쩌겠냐. 그냥 운영해야지. 하지만 입장 수익이 유지 비용 이상으로 걷히지 않아 전시물 일부를 팔아 돈 만들 예정이라 한다. 흐음...
특이하게 생긴 삼륜 자동차가 까페 앞에 세워져 있어서 사진을 찍고,
오카야마 현청 앞도 지나친다.
분위기 상으로는 여기 근처 어디인 모양인데... 일단 수국(あじさい-紫陽花)이 정말 예쁘니까 사진 좀 찍자.
거대한 돌틈에서 가지란히 자라난 이름 모를 풀때기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런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저 멀리 오카야마 성의 천수각(てんしゅかく-天守閣)이 보인다.
구글 지도 보면서 걸어갔는데 당최 보이지 않는다. 지도로 보면 바로 코 앞에 와 있는데도 전혀 안 보인다. 일단 내키는대로 걸었더니... 드디어 나왔다. 알고 보니 미술관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버린 거다. 에휴~ 날도 더운데... 정말이지, 6월에 이러면 7월과 8월에는... 하아~
드디어 도착!!! 그런데... 응?
에에? 난데(なんで-何で)?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점심 시간에 쉬는 건가? 라는 헛된 기대를 해봤지만... 안내를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다음 문 여는 날짜가 7월 7일이라니... 여행에서 돌아와 홈페이지(http://www.hayashibara-museumofart.jp) 들어가보니 6월 18일부터 7월 6일까지 휴관이다.
하아~ -ㅁ- 설마 문 닫는 기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1도 못했다. 거기에다 구글 지도는 영업 중으로 안내하고 있었거든. -_ㅡ;;;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으니 포기하는 수밖에. 바로 앞에 있는 오카야마 성으로 이동했다.
미술관 내 전시물 중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의 후손이 기증한 것들이 꽤 있으니 이케다 츠네오키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넘어가자. 오카야마 지역의 무장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오카야마와 전국 시대를 좋아하는 내게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케다 츠네오키는 1536년에 태어나 1584년에 죽은 전국시대 무장이다. 어머니가 오다 노부나가의 유모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오다를 섬겼다고 한다. 오다를 배신하고 하나쿠마 성에서 저항하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를 물리친 공로로 하나쿠마, 이타미, 아마자키를 영지로 받게 되고 그 후 이름을 쇼뉴(勝入)로 바꾼다.
혼노지의 변(아케치 미쓰히데가 배신, 오다 노부나가는 자결함)이 있은 후 5,000명의 부하를 이끌고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개명하기 전에 쓰던 성이 하시바) 쪽에 가담하여 야마자키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 그 때문에 기요스 회의(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을 결정하고자 가신들이 모여서 회의를 함)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시즈가타케에서 공을 세워 13만석 영주가 되고 이후에도 히데요시 편에서 싸움을 계속한다.
고마키 · 나카쿠테(小牧 · 長久手)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의 근거지가 되는 미카와를 치려다 역습을 받아 본인과 장남(이케다 모토스케 - 池田元助), 사위(모리 나가요시 - 森長可)가 다 죽고 차남인 이케다 테루마사(池田輝政)가 가문을 잇는다.
테루마사는 아버지, 형과 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가담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서전에서 기후 성 공략에 나서고 결전에서는 선봉을 맡아 싸워 그 공을 인정받아 53만석의 히메지 영주가 된다. 축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히메지 성도 테루마사의 작품 되시겠다(성을 새로 쌓은 건 아니고 기존 성을 개/증축).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둘쨋 딸인 도쿠히메(督姬)를 후처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장인의 총애를 받게 된다.
손자, 그러니까 이케다 테루마사의 아들이 가문을 이었을 때 오카야마, 돗토리로 전봉(기존 영지를 반납하고 새 영지를 받아 옮겨가는 것)되었다는 글이 있는데, 테루마사와 도쿠히메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전처가 낳은 아들이 있으니 차남) 타다쓰구(忠継)가 이미 다섯 살 때 비젠 · 오카야마의 30만석 가까운 영지를 하사받았다 하니 테루마사가 중풍으로 죽고 난 후 타다쓰구가 히메지를 내어놓고 돗토리를 추가로 받은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글 쓰면서 나무위키 등의 인터넷 사전을 참고했고, https://blog.naver.com/toad37/10005093934, http://valhae.kr/159 블로그 등도 참고했습니다. 직접 가서 보시면 더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P.S.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역사에 그닥 관심이 없는 게 맞고나 싶은 게... 보통의 일본 사람들보다 여러 방면에서 아는 게 많은 마사미 님도 역사 쪽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전국시대에 오카야마 지역의 무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 사람이 그런 걸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한 리액션이 왔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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