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는 꽤 더웠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열이 많아서 남들이 서늘하다 느낄 정도의 기온을 딱 좋다고 느끼니까. 휴대용 선풍기 켜놓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살짝 추워서 끄고 시계 보니 세 시 반. 그리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블라인드를 건드리는 바람에 블라인드가 도로로록~ 말려올라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깨고... ㅋㅋㅋ 다시 블라인드 끌어내리고 또 잤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서 시계 보니 여섯 시 반. 늦어도 일곱 시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기에 피곤했지만 다시 안 자고 스마트 폰 만지작거리며 빈둥거렸다.
일곱 시 반에 캐리어 끌고 공용 거실로 나가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제의 호주 처자가 노~ 란색 똥꼬 치마를 입고 왔다리 갔다리. 그렇잖아도 예쁜데 한껏 꾸미니 모델이 따로 없네 그랴. 짐 정리 마친 뒤 두고 가는 것 없나 살펴보고 아래로 내려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죄다 우산 들고 있기에 바깥으로 나가보니 비가 제법 온다. 우산 없으면 안 되겠다 싶어 편의점에 가서 비닐 우산 하나 샀다. 1층 바깥 쪽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 홀짝 마시고 나서 출발. 여덟 시 반에 근처에서 마사미 님을 만나기로 했다.
이 날은 후키야 후루사토무라에 가서 구경을 하고 거기서 하루 자는 일정. 후키야는 하루에 버스가 세 번 밖에 없을 정도로 외지인지라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빗추 타카하시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고 하기에 나름 긴장하고 여행을 준비했었는데 후키야에 간다고 하니까 마사미 님이 같이 가겠다고 하신다. 마사미 님의 차를 이용한다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니까 나한테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지만... 괜히 폐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
이 날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고 하늘도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아직은 비가 오지 않는 상태. 차로 얼마 달리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 간 곳은 라이큐지(실은 이름을 잊어버려서 알 수 없는 절이라고 쓰려다 리플릿 받아온 것 같은데... 싶어 찾아보니 다행히 있었다. 방금 검색해보니 오카야마에서도 꽤나 외지인 여기를 다녀간 한국 사람이 꽤 있다. 다들 대단하네. -ㅁ-).
이끼로 가득 덮인 계단이 뭔가 운치있다. 절 옆에 주차장으로 쓰는 넓찍한 공터가 있었다.
동백 같아 보이는데 꽃이 피어 있어서 마사미 님이 절에 계신 분께 여쭤보니 원래 여름에 피는 동백이란다. 희한하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절을 찾은 사람은 나와 마사미 님 뿐이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나무로 된 마루 밟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장소였다.
일본 전통 가옥에 꼭 있는 공간. 움푹 들어간 곳의 바닥이 약간 높다. 오토코(おとこ - 男 와는 관계 없다고...)라 한다고 알려주셨다.
└ 보통은 도코노마(床の間)라고 하는 모양. 그러고보니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床에 お를 붙여 오토코가 되는 듯.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물 한 방울 없이 만든 정원. 뭔가 메마른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정갈하고 진중한 느낌도 난다.
이 곳에 앉아 마사미 님과 여러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얘기했냐고 하면 딱히 기억나지는 않는 그냥저냥 일상적인 이야기. 몇 안 되는 일본어 단어 최대한 섞어가며 말하니 마사미 님의 칭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진짜... 전생에 고래 조련사였을지도 모른다. 마사미 님의 저 칭찬은 보잘 것 없는 내 일본어 실력을 엄청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ㅋㅋㅋ
꽤나 긴 시간을 마사미 님과 이야기하며 보냈다. 나는 일본 여행 때마다 교토에 가려 하고 교토에 가면 에이칸도(永観堂)에 꼬박꼬박 간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나무 마루 위를 걷고 정원을 보며 녹차를 홀짝거리는 즐거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에이칸도는 가이드 북에서도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는데다 단풍 시즌이 아니면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참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관람객이 많아지는 바람에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곳, 라이큐지에서 처음 에이칸도를 찾았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두 시간 정도 여유롭게 빈둥거리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있으니 그럴 수 없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
주차장으로 향하는 와중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찔끔 오는 게 아니라 제법 많이 내린다.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흐린 정도만 됐음 좋겠는데...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 와중에 에어백 경고 스티커가... ㅋ 어린이 시트를 거꾸로 장착하면 안 된다는 경고인데 에어백 터지니까 애가 제대로 날라간다.
저는 차를 이용해서 갔기 때문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은 모르겠습니다. 빗추 타카하시 역에서 걸으면 15분 걸린다고 합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봐도 1.1㎞ 정도의 거리로 15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오네요.
정원을 보려면 ¥300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쉬는 날은 없고 관람 시간은 09:00~17:00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raikyu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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