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 스물네 시간 근무하는 날이었다. 말이 스물네 시간 근무지, 다들 퇴근하고 난 후에도 사무실을 지키다가 복불복으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대처하는 게 주 임무. 문제에 대처하는 것에 능숙하지 못해서 꽤 긴장이 된다. 빈둥거리다가 의자에 앉아 잠깐 자려고 했지만 한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행히 골치 아픈 일 따위는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무사히 퇴근할 수 있었다. ㅋ
배를 좀 채우고 자야겠다 싶어 컵라면에 물을 부어놨는데 그 때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응? 동거인이 온 건가? 그럴 리 없는데? 이상하다 싶어 나가봤더니, 형광등을 교체하러 온 분들이었다. 며칠 전부터 형광등을 LED로 바꾸고 있었거든.
룸 메이트 방 쪽을 교체하고 있는 동안 내 방에 있는 건 내가 뜯어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건 하는 쪽이 나으니까. 아침부터 땀을 비오듯 쏟고 있었기에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물을 꺼내드렸다. 그 사이에 라면은 우동이 되어버렸고. ㅋㅋㅋ
저 분들이 가고 나서 프린터로 뽑은 종이를 문에 붙였다. 노크하면 안 들리니까 벨 누르라고. 그리고 나서 잠을 청했는데 당최 못 자겠더라.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를 못 들을까 싶어서. 결국 컴퓨터를 켜놓은 채 멍 때리고 있었는데 바이크 소리가 난다. 응? 바이크? 밖을 보니 우체국이 맞다. 에? 바이크로 왔다고?
잠시 후 우체부 아저씨가 문을 두드린다. 분명히 노크하지 말고 벨을 눌러 달라고 했는데 또 노크한다. 다행히 소리를 들어서 문을 열었더니 어제도 벨 눌렀는데 없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어제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고 말씀 드렸다.
숙소 공사를 누가 했는지 모르겠는데, 두 개의 집 출입문 사이에 화재 경보기가 있다. 그 대각선 아래에 벨이 붙어 있는데 이게 비상 벨처럼 생겨 먹었다. 나 같아도 화재 경보기인 줄 착각하게 생겼더라. 대체 무슨 센스인지. -ㅅ-
도착한 건 서류 봉투였다. 택배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보낸 곳을 확인해보니 이와이 치과. ㅋㅋㅋ 모토조노 선생님 아니면 치과일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서류 봉투를 뜯어보니 편지가 나왔다. 편지와 자그마한 풍경이 들어있었는데, 그냥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내려다가 우체국에서 EMS용 봉투에 넣을 것을 권한 게 아닌가 싶더라.
직접 그린 라이언 그림과 한글이 있었다. 다들 귀여우시다니까. ㅋ
조립식 풍경. 제대로 소리가 날까 의심스럽게 생겼지만 의외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멋지다!
치과에서 공짜로 치료해 준 것도 아니고, 돈 낼 거 다 내면서 치료 받았는데 뭔 택배까지 보내냐고도 하더라만은. 그만큼 친절함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치과 가는 게 두려운 건 통증보다는 혼나기 싫어서였다. 대체 치아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고 항상 혼났으니까. 돈 내고 야단 맞는 기분이라 영 언짢았다. 혹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고깃덩어리의 기분을 느껴야 했다.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무성의한 작업자에 의해 수리 받는 기분. 게다가 대형 병원에 가면 의사가 아니라 간호 조무사가 치료에 개입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제대로 치료를 받는 기분이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세세하게 치료 과정을 설명해주고, 치료 전에 어떤 과정을 어떤 이유로 치료하겠다고 다 말해주고.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고. 그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학교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2주간 수업을 날려먹은 것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나중에 열흘 동안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아무 때나 가는 건 아니고, 미리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올해는 틀린 것 같고, 내년에나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회사에서 교육으로 인정을 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결국 내 휴가를 쓰고 다녀와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2주니까 최소 열흘은 휴가를 써야 한다. 교육이 끝나고 며칠 여행 다닐 것을 감안해서 15일 정도 휴가를 쓸까 싶은데, 그렇게 하면 주말 세 번을 끼고 21일을 쉴 수 있게 된다. 그 때 병원에 다시 들러 간단한 치료를 받는 건 어떨까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일본에 가면 무비자로 가는 거니까 당연히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거든. 의료 보험 없이 치료 받으면 비싸지 않을까 싶더라고. 일단 병원에 가서 인사를 하고 사정을 설명해볼까 싶은데, 빨라야 1년 이상 남은 얘기니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건 이르다.
아무튼, 단발성(?) 인연이 고마워서 선물을 보낸 건 후키야의 게스트하우스에 이어 두 번째다. 선물을 받고 모두 기뻐했다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자는 건 물 건너 갔고... 일찌감치 내려가자 싶어 대충 짐 싸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전용 할인 마트로 출발. 고모가 부탁한 달팽이 크림이랑 이것저것 산 뒤 ○○으로 출발했다.
평일 낮이라서 차는 거의 막히지 않았다. 어찌나 더운지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었는데, 조금만 밟으면 쾌애앵~ 소리를 내면서 RPM이 올라가는 통에 차한테 무척 미안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달려줬다. 스파크, 진짜 좋은 차다. 처음에는 잠깐 타고 말 차라 생각해서 그저 남의 차 같았는데, 계약한 차가 나올 기미를 안 보이다보니 조금씩 스파크에 정이 들고 있다.
○○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치킨 시켜서 맥주랑 같이 먹다가 퍼질러 잤다. 낮에 거의 못 자서 그런가 바로 잠 들었다.
다음 날. 열 시에 LG전자 서비스 센터에 예약을 걸어놨더랬다. 노트북에 어댑터를 연결해놔도 배터리가 소모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일본에서 이런 문제를 발견했다. 메일로 문의했더니 뻔한 답변을 하기에,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지 않으니까 복붙하지 말고 질문을 좀 제대로 읽고 답변해달라.'고 다시 메일을 보내야 했다. 만날 이 짓을 반복한다. 귀찮게시리. 그렇게 한 후에야 답변다운 답변이 왔지만 결국은 서비스 센터에 가지고 오라는 거였다.
'어댑터를 연결해도 배터리를 소모한다', '어댑터를 연결한 뒤 자고 일어나도 100% 충전이 안 되어 있을 때가 자주 있다' 라고 증상을 얘기했더니 테스트를 하고는 그 결과를 보여준다. 어댑터를 연결했는데 배터리 상태에 마이너스 수치가 뜬단다. 그건 전원이 연결되어 있는데도 방전이 되는 거란다. 그래서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단다. 응? 난 당연히 어댑터 쪽 문제라 생각했는데?
배터리 수명이 아직 다 되지 않았기에 교체하는 건 이르고, 가격도 13만원 이상으로 비싸니까, 일단 배터리 보호 기능을 활성화해서 80%까지만 충전되게 하고, 메인보드 바이오스를 업데이트 하겠단다. 그렇게 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USB PD를 이용해서 USB C 포트에 케이블을 연결하면 정상적으로 충전이 되고, 그렇게 쓰면 배터리 소모도 없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아마 수리 기사는 그 부분을 간과한 게 아닐까 싶다. 전용 어댑터를 연결하면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고, USB C 포트에 연결하면 괜찮다고? 충전 수단을 가리는 배터리라는 얘기인가? 궁금했지만 USB PD로는 왜 문제가 없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들, 서비스 기사를 당황스럽게 만들 뿐일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수시로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확인해서 드라이버를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메인보드 바이오스 업데이트는 어디에서 확인하는 거지? 대체 LG의 전용 업데이트 프로그램에 나오지도 않는 걸 어떻게 확인하라는 건지. 뿐만 아니라 다운튜브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프로그램도 깔아놨더라. 뭐야, 대체.
이 때 이미 어댑터 안 쓰고 USB C 포트로 충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유선 LAN을 쓰고 있지 않아서 USB C 포트가 놀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어댑터에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인데... 올 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테스트 해보고 같은 문제가 생기면 서울이나 성남 쪽 서비스 센터에 들고 가봐야겠다.
그렇게 서비스 센터에서 아무 소득없이 물러나와 고모 댁으로 돌아갔다. 고모와 함께 외출하기로 했었거든. 일단 고모가 신을 운동화부터 구입하러 출발.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밑창을 한 번 갈았는데도 다 닳아서 버릴 때가 지났다. 신발 가게에 고모와 같이 들어간 후에야 차에 손전화를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어 땀 뻘뻘 흘리며 가지러 다녀왔다. 사장 영감이 자꾸 신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되도 않는 약을 팔려고 해서 짜증이 났다. 무시하면서 고모하고만 얘기했다. 나한테 뭐라 뭐라 떠들고 있는데 내가 들은 척도 안 하고 나 할 거 하니까 말하다 말고 날 부르면서 자기 얘끼 들으라는 식으로 다시 말하더라. 떠들거나 말거나. 씹었다. 딱 싫어하는 타입이다. 자기네 제품 과장하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이는.
나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작 고모께서 다른 브랜드에서 나온 신발은 못 신는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다. 16만원 짜리인데 12만원 달라기에 카드 긁었다. 그리고 나서 바람 쐬러 가자고 해서 호미곶 해맞이 광장까지 한 번 다녀오고. 소고기 드시고 싶다 하셔서 12만원 가까이 주고 소고기 먹었다. 집에서 드시라고 따로 조금 싸오고.
나는 촌 놈이라 핏기만 가시면 먹어도 된다는 소고기는 부담스럽다. 그냥 바~ 싹 구워먹는 삼겹살이 최고다.
고모를 집에 모셔 드린 후 다시 나갔다. 다이소에 갔는데 행거가 없어서 프라이 팬만 사들고 나왔다. 홈플러스에 가니 행거가 있긴 한데, 5만원이 넘는다. 응? 이렇게까지 비쌌던가?
너무 비싸다 싶어 12,000원 짜리 이동식 행거만 사들고 왔다. 내 짐이 쌓여있는 방에 들어가 정리하기 시작. 한~ 참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 개만 살까, 두 개를 살까 망설이다가 결국 하나만 사들고 간 행거는, 결국 두 개 사는 게 맞았다. 아쉬운대로 벽과 책장 사이에 행거를 설치했는데, 여름 옷만 좀 걸었을 뿐인데도 질질 흘러내리더라. 이틀은 고사하고 하루면 무너질 것 같더라. 그래서 더 튼튼하게 설치하고, 혹시 몰라서 못으로 받쳐 놨다. 그래도 좀 불안하다. 다음에 내려가게 되면 미리 마트에서 제대로 된 행거를 사들고 가서 설치해야겠다.
방으로 돌아가 퍼질러 잔다고 누웠는데 모기가 설친다. 게다가 태블릿으로 게임한답시고 자다 깨다 해서 잠을 설쳤다.
그리고 오늘. 약국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국밥을 포장해서 돌아왔다. 고모와 밥을 먹은 후 바로 출발. 토요일 오전이니까 차도 안 막히고, 나름 편하게 잘 왔다.
목, 금, 토요일 3일 동안 재난 지원금 40만원을 다 썼다. 돈 쓰는 거, 일도 아니네. 에휴...
숙소에 오니 집이 휑~ 하다. 룸 메이트가 다음 주부터 교육을 받는데, 필요한 것들을 챙겨 일찌감치 나간 모양이다. 음... 이렇게 되면 당분간은 혼자 쓰는고만. 룸 메이트가 스트레스를 주는 타입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쪽이 편하긴 하지. ㅋ
아무튼. 잔뜩 들고온 것들을 다 정리하고, 샤워하면서 머리 한 번 밀고.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일 좀 하고. 축구하기 전에 퇴근. 편의점에 가서 맥주랑 골뱅이 사들고 와서 비빔면 하나 끓여먹고, 맥주 마시며 축구를 봤다.
밖에서 쏴아~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더니 비가 엄청나게 온다. 구름 한 점 없다가 갑자기 구름이 마구 몰려오더라니, 엄청나게 쏟아지네.
빗소리 듣는답시고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놨더니 금방 온도가 오른다. 27℃ 까지 순식간.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 창문을 닫고 다시 에어컨을 켰다. 선풍기로 충분할 정도지만 이번에는 선풍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도저히 방에 둘 곳이 없겠다 싶어서. 전기 요금 아끼지 말고 에어컨 쓰자고 생각했다.
몸이 나른~ 한 것이, 많이 피곤하다.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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