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편의점에서 맥주 여덟 캔을 사들고 왔더랬다. 네 캔만 마시고 나머지는 퇴근한 뒤 홀짝홀짝 마실 생각이었는데... 먹다보니 술술 들어가서 여덟 캔을 다 마셔버렸다.
퍼질러 자다가 깨서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뒤척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손전화 벨소리 때문에 깼을 때가 아홉 시 무렵. 010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일단 받았더니 아무 말도 안 한다. '뭐야?' 하고 끊으려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 했더니, 외삼촌이다. 엄마 동생.
오늘이 엄마 생신이라면서 전화 드리란다. 싫다고 했더니 네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지만 따위로 비아냥거린다. 맘 같아서는 개소리 할 거면 끊으라고,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외삼촌과 엄마의 말에 의하면 중학교 때 엄마는 공부를 무척 잘했었단다. 그런데 당시에는 자식들을 고루 공부시킬 수 없으니까, 외삼촌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엄마한테는 그 뒷바라지를 시켰단다. 외삼촌은 엄마 덕에 학교 잘 다녔다며 고마워하고 자기 때문에 엄마가 희생했다고 생각해서 나이 들고서도 엄청 잘 한다. 멀리 시집 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와서 혼자 사니까 더 애틋하기도 했겠지.
외삼촌이 볼 때에는 싸가지 없는 조카 ㅺ가 자기 소중한 누나한테 똑바로 안 한다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볼 때에는 오지랖이다. 그 소중한 누나, 본인이 잘 모시면 되잖아?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지?
엄마가 자기 돈 내놓고 가라 해서 집 얻을 때 빌린 2,000만원이랑 치과 치료비로 빌린 1,000만원 고스란히 돌려드렸다. 맘 같아서는 내가 사준 컴퓨터, 매 월 드린 용돈 20만원, 다 내놓으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추잡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 손전화로 계좌 이체하고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그렇게 연을 끊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건 엄마가 더 잘 알 게다. 그 몹쓸 고집은 온전히 엄마한테 물려 받은 거니까. 일본에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고,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의료 보험을 내가 내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몇 푼 안 되는 저 보험료조차도 안 내고 싶었지만 역시나 추잡스러워서 그냥 두는 거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남이다. 그런데 내가 생신이랍시고 전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번 달에 서울에서 조카가 결혼한다더라. 나보고 오라던데, 역시나 갈 리가 없다. 엄마도 남이고, 외삼촌도 남이다. 당연히 조카도 남이고. 남의 결혼식에 갈 리가 만무하지. 나는 지금처럼 사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나중에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리면 그 때나 얼굴 한 번 비출 생각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힘이 된다는 사람도 많지만 내 경우는 짐이다. 필요 없다.
닭 공장에서 100만원도 안 되는 돈 받으면서 일할 때, 항상 나한테 뭐라고 했다. 얼마 안 되는 돈 받으면서도 저축하면서 살고 그러는데 훨씬 더 벌면서 뭐하는 거냐는 잔소리가 메인이었다. 본인에게 드리는 용돈, 제주도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며 쓰는 돈은 땅에서 솟아나온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지. 자식보다 돈을 소중히 생각하는 분이니까, 소중한 돈과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아침부터 기분이 언짢은데다 숙취까지 있다. 500㎖ 여덟 캔이면 4,000㎖ 밖에 안 되는데 저걸로 숙취라니. 수치스럽다. 해장한답시고 라면을 끓였다. 삼양 라면 밖에 없는데 그 달달한 국물을 생각하니 도저히 해장이 될 것 같지 않아 청양 고추 블럭도 넣고 나름 튜닝을 했지만 결국 실패. 삼양 라면은 안 사먹는 걸로 해야겠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대충 씻고 사무실에 나가 돈 벌고 왔다. 숙소 입구에 자전거 세워두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 뒤 차 타고 짬뽕 먹으러 출발. 군만두랑 같이 주문해서 금방 먹고 돌아왔다. 원래는 마사미 님에게 전화를 드리기로 했는데 피곤하니 미뤄야겠다. 19시가 되면 컴퓨터 끄고 드러누워야겠다. 빈둥거리다가 일찌감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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