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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12월 06일 일요일 흐림 (가족은 짐)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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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편의점에서 맥주 여덟 캔을 사들고 왔더랬다. 네 캔만 마시고 나머지는 퇴근한 뒤 홀짝홀짝 마실 생각이었는데... 먹다보니 술술 들어가서 여덟 캔을 다 마셔버렸다.

  • 퍼질러 자다가 깨서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뒤척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손전화 벨소리 때문에 깼을 때가 아홉 시 무렵. 010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일단 받았더니 아무 말도 안 한다. '뭐야?' 하고 끊으려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 했더니, 외삼촌이다. 엄마 동생.

  • 오늘이 엄마 생신이라면서 전화 드리란다. 싫다고 했더니 네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지만 따위로 비아냥거린다. 맘 같아서는 개소리 할 거면 끊으라고,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 외삼촌과 엄마의 말에 의하면 중학교 때 엄마는 공부를 무척 잘했었단다. 그런데 당시에는 자식들을 고루 공부시킬 수 없으니까, 외삼촌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엄마한테는 그 뒷바라지를 시켰단다. 외삼촌은 엄마 덕에 학교 잘 다녔다며 고마워하고 자기 때문에 엄마가 희생했다고 생각해서 나이 들고서도 엄청 잘 한다. 멀리 시집 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와서 혼자 사니까 더 애틋하기도 했겠지.

  • 외삼촌이 볼 때에는 싸가지 없는 조카 ㅺ가 자기 소중한 누나한테 똑바로 안 한다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볼 때에는 오지랖이다. 그 소중한 누나, 본인이 잘 모시면 되잖아?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지?

  • 엄마가 자기 돈 내놓고 가라 해서 집 얻을 때 빌린 2,000만원이랑 치과 치료비로 빌린 1,000만원 고스란히 돌려드렸다. 맘 같아서는 내가 사준 컴퓨터, 매 월 드린 용돈 20만원, 다 내놓으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추잡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아서 손전화로 계좌 이체하고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그렇게 연을 끊었다.

  •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건 엄마가 더 잘 알 게다. 그 몹쓸 고집은 온전히 엄마한테 물려 받은 거니까. 일본에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고,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의료 보험을 내가 내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몇 푼 안 되는 저 보험료조차도 안 내고 싶었지만 역시나 추잡스러워서 그냥 두는 거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남이다. 그런데 내가 생신이랍시고 전화할 리가 없지 않은가?

  • 이번 달에 서울에서 조카가 결혼한다더라. 나보고 오라던데, 역시나 갈 리가 없다. 엄마도 남이고, 외삼촌도 남이다. 당연히 조카도 남이고. 남의 결혼식에 갈 리가 만무하지. 나는 지금처럼 사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나중에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리면 그 때나 얼굴 한 번 비출 생각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힘이 된다는 사람도 많지만 내 경우는 짐이다. 필요 없다.

  • 닭 공장에서 100만원도 안 되는 돈 받으면서 일할 때, 항상 나한테 뭐라고 했다. 얼마 안 되는 돈 받으면서도 저축하면서 살고 그러는데 훨씬 더 벌면서 뭐하는 거냐는 잔소리가 메인이었다. 본인에게 드리는 용돈, 제주도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며 쓰는 돈은 땅에서 솟아나온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지. 자식보다 돈을 소중히 생각하는 분이니까, 소중한 돈과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 아침부터 기분이 언짢은데다 숙취까지 있다. 500㎖ 여덟 캔이면 4,000㎖ 밖에 안 되는데 저걸로 숙취라니. 수치스럽다. 해장한답시고 라면을 끓였다. 삼양 라면 밖에 없는데 그 달달한 국물을 생각하니 도저히 해장이 될 것 같지 않아 청양 고추 블럭도 넣고 나름 튜닝을 했지만 결국 실패. 삼양 라면은 안 사먹는 걸로 해야겠다.

  •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대충 씻고 사무실에 나가 돈 벌고 왔다. 숙소 입구에 자전거 세워두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 뒤 차 타고 짬뽕 먹으러 출발. 군만두랑 같이 주문해서 금방 먹고 돌아왔다. 원래는 마사미 님에게 전화를 드리기로 했는데 피곤하니 미뤄야겠다. 19시가 되면 컴퓨터 끄고 드러누워야겠다. 빈둥거리다가 일찌감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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