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취  미 』/『 영  화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1. 5. 6.
반응형
스포일러가 있으니 소설이나 영화의 반전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염병할 티스토리 ××들은 글자 크기도 조절 안 되는 편집기 따위를 제공하면서 강제로 쓰게끔 만들어놨다. ㅽ

 

  • 주말마다 책 빌리러 가는 ㅇㅇ○○도서관은 최대 일곱 권까지 대출이 된다. 보통 일본 소설 다섯 권이랑 여행이나 역사 책 두 권으로 일곱 권을 채운다. 지난 주에 갔다가 유난히 제목이 눈에 띄어 빌려온 게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그런데 놀랍게도 웨이브에서 볼만한 영화가 없는지 뒤적거리다가 같은 제목의 영화 포스터를 보게 된 거다.

 

  •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린 윤여정에 묻어가고자, 윤여정 코인에 탑승하고자, 웨이브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출연작을 메인 페이지에 노출시킨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생각없이 빌려온 책인데 그 책으로 만든 영화를 보게 되니 신기하더라.

 

  • 원작 소설은 소네 케이스케(曽根圭介)의 작품이다. 내가 읽은 책은 2013년 3월 30일에 초판이 찍혀 나왔다.

 

  • 부친으로부터 망한 이발소를 물려받았지만 운영이 어려워져 결국 폐업한 뒤 사우나에서 일하는 아카마츠 켄지. 배성우가 맡아 연기했다. 소설에서는 조금 급하게 당겨 쓰면 연금도 받을 수 있는 나이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그보다 한참 젊게 설정이 됐더라. 이발소는 횟집으로, 결혼해서 도쿄에 살면서 구입한 집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딸내미는 학자금 대출이 필요한 학생으로 설정이 약간 바뀌었다. 그 외에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설정은 똑같은데 윤여정이 치매 노인으로 나온다. 전도연의 추천으로 출연했다는데 분량이 너무 적다고 농담 섞인 불만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뭔가 한 건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마저도 없어져서 초반에 오줌 지린 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될 정도니 이 작품을 윤여정 출연작이라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카메오 정도의 역할이니 말이다.

 

  • 부패 경찰인 에바토 료스케는 강태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직업은 경찰이 아니라 출입국 관리 공무원으로 바뀌었고, 성격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료스케는 양아치 + 월급 도둑 이미지가 강한데 강태영은 어수룩하고 착한 이미지인 거다.

 

  • 소설에 최영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악녀는 최연희로 나온다. 일본어로는 이응(ㅇ)이나 니은(ㄴ)을 모두 ん으로 쓰고 앞뒤에 오는 글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니까 그 때문에 차이가 생긴 건가 싶기도 하고, 일부러 조금 바꾼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일본 소설에서 한국 사람이 등장하면 열에 아홉은 뒷골목 세계에서 활약하는, 뭔가 어두운 쪽에 있는 역할이다. 한류 어쩌고 하면서 최근에는 좀 달라졌나 싶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본인이 느닷없이 사건에 휘말리거나 갑자기 평소 상상할 수 없는 범죄 같은 데 휘말리면 어김없이 한국인이 얽혀 있다는 설정이 많다. 조선족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이라며 으스대지만 우리가 볼 때에는 우리나라에 비빌 수도 없는, 한~ 참 밑에 있는 애들이라 생각하는 걸 그대로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 일본, 조선족 = 한국인, 이렇게 하면 대충 맞다고 본다. 기분 나쁘긴 한데, 어쩌겠어. 쟤네들 인식에 그런 게 있는 걸. 하지만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겪어본 적이 없다. 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들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본인이긴 하지만서도.

 

  • 그 외에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호랑이 문신과 상어 문신 정도랄까? 호랑이 쪽이 나은 것 같은데 배경을 바다로 잡으면서 상어로 바꾼 게 아닌가 싶다. 아, 그리고 결말도 제법 다르다. 역시나 소설 쪽에 더 낫다고 본다.

 

  • 담배는 원작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모두 럭키 스트라이크로 나오는데 이건 좀 억지스럽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화된 담배는 뫼비우스로 이름을 바꾼 마일드 세븐이 아닐까?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COOL은 알아도 럭키 스트라이크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작가가 담배 만큼은 원작을 고수해야 한다고 조건이라도 달았던 걸까? 소설에서 만든 담배의 이미지와 이름에 부합해야 하니까 저 담배가 아니면 안 돼! 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영화를 본 사람들이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칭찬하던데, 일단 전도연에 대해서는 그렇게 느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자꾸 같은 이미지로 소모되는 것 같아 좀 안타깝더라.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전도연 정도 나이 대의 여배우가 한국 영화에서 가져갈 수 있는 포지션이 결국 저 정도 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데 만날 깡패 영화만 만들고 있으니 매력있는 뒷 세계 여자로만 나올 수밖에.
    주인공을 맡은 정우성의 연기는 엄청 어색했다. 생각해보면 난 정우성의 연기를 보면서 연기 정말 잘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들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한다는데 정우성은 내가 다른 사람인 척 쇼하고 있다는 걸 자각한 상태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여서 엄청 어색하다. 『 #살아있다 』에서 유아인의 연기가 세상 어색할 수 없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뭔가 어색하더라. 뭐, 조선족 역할을 했던 젊은 남자 때문에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서도.

 

  •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건 역시나 박두만(원작에서는 고다) 역을 맡은 정만식이라 생각한다(여담이지만 『 살인의 추억 』에서 송강호가 맡은 형사 이름이 박두만이었다. -ㅅ-). 형사로 나온 윤제문은 소설을 각색하면서 형사의 위치가 워낙 이상해진 탓도 있긴 한데 아무튼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구찌 가방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 사우나의 이름이 유토피아라는 것은 원작과 완전히 동일하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각색이 이루어졌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설정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글 쓰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원작 소설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낫냐고 물어본다면, 역시나 소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다. 350 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내용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겠지만 딱히 영화만의 매력이랄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뭐.

 

  •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영화에 나온 뒷골목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한 시궁창임을 생각한다면 영화는 어쩌면 상당히 포장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뭐든 실사화해서 망하는 일본이라지만 남의 나라에서 판권 사가며 실사 영화로 다시 탄생시키는 걸 보면 일본 소설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요즘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 더욱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