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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1년 08월 21일 토요일 비옴 (나와 다른 존재를 대하는 자세)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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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전학 간 지 얼마 안 되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애들 입에 툭하면 오르내리는 이름이 하나 있더라고. 유난히 못생긴 여자 애를 지칭한다는 걸 이내 알게 됐다. '너 ○○○ 좋아하지?' 따위로 도발하는 친구들에 휩쓸려 나 역시 그 따위 장난을 아무렇지 않게 쳤고, 복도에서 그 애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벌레를 본 것처럼 거리를 두고 파닥거리며 도망쳤더랬다. 그게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그 친구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줬는지,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지만 그 때에는 죄책감 같은 게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할 정도로 반성하고 있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지만 대가리가 굵어지면서 나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유난히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생김새가 됐든, 생각이 됐든, 흔히 틀리다고 잘못 표현하는, 나와 다른 존재를 상대하게 되면 앞, 뒤 가려보지 않고 전투 모드가 되는 거다.

살아온 날 만큼 더 산다면 장수했다는 소리 들을 나이가 되니 스스로의 한심함이 몹시 부끄럽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다름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일단 찌질이. 쟤는 절대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니까 아침, 저녁으로 인사만 할 뿐이지, 어지간해서는 말도 안 섞는다. 얼굴만 봐도 짜증나고 목소리만 들어도 울화통이 치민다. 이러면 안 된다 생각하지만 제어가 안 된다. 싫다. 그저 싫다.

차라리 저렇게 싫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낫다. 애매한 애들이 있다. 내 기준의 보통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나머지 정상으로 취급하기 어려운 애들 말이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애가 하나 있는데, 특이하다. 엄청 특이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인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술 마신다 하면 100% 주제가 된다.

뭐가 어떻게 이상한지 주절주절 떠드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냥, 여섯 살 수준의 어린 애가 성인의 몸에 들어간 것 같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다. 둘만 있을 때 조용히 가서 '난 다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그 몸에 들어간 거야?' 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귀엽다느니, 애처롭다느니, 별에 별 소리를 다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뭔가 나사 빠진 애 같다. 게다가 관종 끼가 차고 넘쳐서 남들 같으면 나서기 싫다고 손사래 칠 일에 어김없이 나선다. 누군가 그렇게 나서주니까 고마울 때도 종종 있지만 문제는 자기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도 나선다는 거다. 깜냥이 안 되서 할 수 없는 일이거나 급이 안 되서 나서면 안 되는 일에도 다 나선다. 그리고 일 저지른 뒤 문제가 되면 우물쭈물 변명하기 급급한 거다.

목요일에 말 같잖은 실수를 발견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다 싶어서 자리로 부른 뒤 따끔하게 혼을 냈다. 예전 같았으면 두루뭉술하게 돌려 말했겠지만 그렇게 하면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조금은 매섭게 몰아쳤다. 그렇게 한 소리 하고 나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여직원이 괜찮다면서 위로를 해준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게 울더란다. 하...

나 같으면 쪽 팔려서라도 눈물 참고 화장실로 뛰쳐갔을텐데, 여직원 앞에서 그냥 꺼이꺼이 운 모양이다.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인지라 어이가 없더라. 여섯 살 애가 성인 몸에 들어갔다고 했지? 위로해준 여직원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는지 그 뒤로는 틈만 나면 그 여직원 옆으로 간다. 원래 여직원들에게 유난히 들러붙는 스타일이었는데 병아리가 어미 닭 쫓듯 착 붙어 움직인다. 가관이다.

쟤는 그저 나와 다를 뿐이다, 쟤는 쟤대로 살게 놔두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려 하는데 그냥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 가끔 터지니 문제다. 게다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과 시너지 효과를 내버려서 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다른 팀으로 도망 가려고 각을 재고 있는 중이다. 일 자체는 그닥 스트레스가 없지만 무능한 ○○과 이상한 쟤 때문에 사무실에 들어가면 짜증부터 난다.

 

그러면서 인격적으로 조금도 성숙해지지 못한, 여전히 애 같은 나 자신에 대한 불쾌감이 확~ 끼쳐 와 기분이 더 언짢아진다. 성인 군자가 아니지만, 좀 더 착하게 살아도 될텐데, 왜 그러지 못하나 싶어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튼... 앞으로 최소 1~2년은 쟤를 더 봐야 하는데, 걱정이다. 소 닭 보듯 하면서 살고 있긴 한데 계속 이래도 되나 싶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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