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갈색 표지판이 있더라. 갈색 표지판은 역사적인 유적지가 있음을 알리는 의미. 대충 알아보니 아~ 주 오래 전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국가의 형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혼자 살던 사람이 가족을 꾸리게 되면서 소규모 집단이 생긴다. 이들은 야생 동물이나 타 집단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게 되었겠지? 그렇게 가족 1, 가족 2, 가족 3,... 들이 연합해서 조금 더 큰 규모의 집단이 만들어진다. 가족 단위의 집단이었을 때에는 사냥을 담당하는 이가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었겠지만 여러 가족이 모이게 되니 그 안에서 또 서열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지배 계층이 생기게 되고, 규모가 점점 커져 사냥이나 채취, 농사 등의 직접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도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소수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들이 자기 자신 혹은 공동체를 위해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만들면서 고대 국가가 만들어지는 거다.
아마도 저런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나라 중 압독국 또는 압량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더랬다. 지금의 경산에 위치했던 나라라고 한다. 인근에는 같은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다른 나라들도 있었겠지. 여러 나라가 너희는 너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그냥저냥 살다가... 인근 국가를 잡아 삼키면서 규모를 키우려는 나라가 등장한다.
그러한 나라가 훗날의 신라가 되는 사로국이다. 서기 102년, 파사 이사금(은 사로국의 지도자를 부르는 말) 23년에 압독국 또는 압량국이라 불리던 나라는 사로국에 잡아 먹힌다. 하지만 완벽하게 융화하지 못했는지, 혹은 피 지배자 입장에서 차별이라도 당했는지, 146년(일성 이사금 13년)에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에 성공해서 독립이라도 했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실패해서 줄줄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지명은 고스란히 살아남아서 진덕 여왕 시기에도 압량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고 한다. 신라 방어를 위한 전초 기지로 다루어져 중요한 곳 취급을 받았다고.
얼마 전까지 농지였을 땅은 깨끗하게 정비가 된 상태. 아파트가 올라갈 예정이라고 한다.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는데, 안동 정도의 규모를 가진 도시도 소멸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사방에 아파트가 넘쳐 남에도 또 짓고, 또 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없는 사람이 넘쳐나고.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경사진 도로의 아래 쪽에서 올려다 보면 나무 밖에 안 보인다.
경사가 있는 곳에 빌라를 지어놨다. 집 안이 경사지지는 않았을테니, 지하실의 높이가 다르게 되어 있을까?
고분인데 그 위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나무의 생김을 보면 수령이 꽤 되는 나무 같은데...
오래 전에 심어진 나무라면 서낭당에 있는 나무처럼 뭔가 주술적인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발굴 조사를 하려 했더니 지역 주민들이 화를 불러 온다고 반대를 했단다. 21세기에 참.
가까이에 영남대학교가 있다 보니 이 주변은 온통 빌라. 학교에서 기숙사 짓는다고 하면 들고 일어날 사람들.
봉분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안 보이는 곳에 사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건물은 고분군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했던 곳인데 지금은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다.
아쉽긴 한데, 열어 놓으면 하늘을 나르는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어쩔 수 없지. 주변에 해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저기에 집 지어놓고 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
봉분이 있는 곳을 지나니 널찍한 평지가 나온다. 와~ 멋지고만.
포인트(?)로 심어져 있는 나무도 제법 그럴싸 하다.
역사적인 유적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개판이더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개가 판 치는 곳이다. 동네 주민들이 키우는 개를 데리고 와서 산책 시키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대형 견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입마개를 한 개는 볼 수 없었고, 주인들도 줄을 푼 채 마구 뛰어놀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큰 일을 보고 나면 당연히 치워야 할텐데 봉지와 삽 같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뭐, 나한테 안 보이게 잘 가지고 있겠지. 설마 자기가 그렇게 예뻐하는 개가 싸지른 똥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가거나 하지는 않겠지.
뭐, 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남의 집 개가 갑자기 덤벼들어 다리 언저리에서 헥헥거려도 그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지만 개를 비롯한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가지 않는 게 좋겠다.
바리케이트가 있긴 한데 전체를 둘러싸고 있지는 않다. 어느 경계선에서 자연스럽게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놀이터도 있고, 팔각 정자도 두 개나 있더라. 그 정자에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있는 건 좀 보기 안 좋았다.
보통 이런 공간은 하늘을 나르는 청소년들이 미성년자에게 허가되지 않은 기호 식품을 먹으면서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아밀레이스(나는 독일식 발음인 아밀라아제로 배웠는데 요즘 애들은 영어식 발음으로 배운다고 들었다.)로 뒤덮는 용도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동네는 대부분이 영남대에 다니는 학생들인 바, 합법적으로 흡연이 가능한, 하지만 불과 1~2년 전에는 고등학생이었던 애들이 서로 쌘 척 하며 연기를 뿜어대는 공간으로 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팔각 정자에 놓인 봉투에 가득한 쓰레기를 보면, 아마도 내 추측이 맞을 게다.
응? 나무 아래에 다른 봉분이 보인다. 제단 같은 게 있는데 고대 유물로는 안 보이는데?
누군가가 사적인 용도로 쓴 건가 싶더라. 땅 임자가 따로 있는 건가? 아니면 딱히 임자가 없는 땅에 망자를 모신 걸까?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현대를 사는 누군가의 가까운 조상으로 추정됐다.
이 쪽도 아스팔트 도로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나면서 보니 차가 엄청나게 많아서 중고차 매매상이라도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 주차 공간이 없는 빌라가 잔뜩 있는 동네니까, 공터가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고분군 입구 쪽에도 널찍한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곳 역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방치된 걸로 보이는 차도 있었고.
한 바퀴 빙~ 돌고 위 쪽에서 내려다 본 풍경.
임당동 고분은 사적 300호였는데 조영동 고분과 합치면서 사적 번호를 다시 부여해서 516호가 됐다고 한다.
여긴 빌라 같지는 않고, 누군가의 단독 주택으로 보였다. 멋진 곳에 예쁜 집을 지으셨구랴. 부럽.
흔적없이 곱게 쉬어 가라는 팻말이 박혀 있다. 고대 지배자 계층의 무덤이라 생각하기 어렵게 변했다.
남자 애 하나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한 쪽 무릅을 세운 채 똥 폼 잡고 앉아 있다 가거나, 커플이 나무 아래에서 꽁냥거리거나, 쉼터답게 활용되고 있었다. 겨울이라 잔디가 죽어 노~ 랗지만,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초록빛으로 변하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인 유적지라기 보다는 날 더울 때 바람 쐬러 가기에 좋은, 동네 공원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참 예쁜 날이었다.
○○에 살 때 낮게 나는 비행기를 자주 봤었다. 김포로 가는 항로 아래여서 고도를 낮춘 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는 그보다 더 낮게 난다. RX10 M4의 600㎜ 줌이라면 타이어의 트래드까지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진짜로! 조만간 찍어서 올린다. ㅋ)였다.
1982년에 2호분이 도굴되었고 이를 해외로 반출하려다 잡힌 놈들 때문에 고분군의 정체가 드러났단다. 그 때 야트막한 봉분들을 조사해서 사적으로 지정이 되었다네? 그런데 나무가 심어져 있는 1호분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조사하지 못했단다. 그렇게 방치해놓고 있었는데 2015년 1월부터 2월까지, 환갑 넘은 영감들 몇 놈이 작당해서 굴 파고 들어가 부장품을 훔쳐냈다. 저 7H AH 77I 들이 10월 6일에 잡힌 거다. 도굴 당했다는 기사가 2015년 4월에 한겨레를 통해 나왔는데 문화재청은 도굴 당한 거 아니라고, 1호분 옆에 난 구멍은 오래 전에 난 거라고 해명했단다. 그런데 10월에 범인들이 잡히면서 헛소리임이 밝혀진 거지. 아래는 도굴과 관련된 기사.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11858.html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242
겨울에 가도 나쁘지 않은 경치였다. 봄과 여름에 얼마나 더 예뻐질지 기대가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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