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마다 꼬박꼬박 쉬는데 이상하게도 매 번 엄~ 청 오랜만에 쉬는 기분이다.
오늘은 계획했던 일들이 꽤 많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진관에 가 ① 여권 사진을 찍고, ②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한 뒤, ③ 영화를 보고, ④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와서, ⑤ 세차를 하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손전화를 보며 시간을 까먹다가 뒤척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고, 결국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피곤한 상태에서 아홉 시가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여덟 시 반에는 씻고 나갔어야 하는데 열 시가 될 때까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호다닥 씻고 밖으로 나갔다. 인터넷으로 사진관 근처를 찾아 봤더니 주차할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차를 놓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
사진관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찍어주신 분께서 흰 옷이라서 신청이 반려될 수 있다는 말을 하신다. 그러고보니 처음 여권을 만들었을 때에도 아이보리 색 남방을 입고 있어서 디지털 국방 무늬의 점퍼를 입고 찍어야 했다. 그런 실수를 해놓고서 이번에도 아이보리 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간 거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딱 내 얘기였다. 15,000원이나 주고 찍었는데 여권용 사진으로 쓸 수 없게 되면 너무 아까우니까, 급한대로 사진관에 있던 검은 가디건을 걸쳐 입은 채 다시 찍었다.
적당히 편집을 하신 뒤 결과물을 보여주셨다. 더럽게 못 생겼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생긴 걸로는 어디 가서 안 밀렸는데. 험하게 살아온 덕분인지 얼굴이 점점 망가져버린 것 같다. 키도 작고 대가리도 까졌는데 배까지 나오면서 얼굴도 구려지고 있으니... 총체적 난국이다. 아무튼.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쓰던 여권을 들춰 봤는데... 어?! 유효 기간이 2024년까지? 아니, 왜? 2023년이 아니고?
3월에 여권 만든 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2013년이라 믿고 있었는데 2014년이었던 모양이다. 난 2013년에 만들어서 2023년에 기간이 만료되는 걸로 알고 이번에 다시 만들려 한 거고.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다시 만들기로 했다. 언제 해외에 나갈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미리 만들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열한 시 20분 영화인데 사진관에서 이미 열한 시가 되어버렸다. 여권 신청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늦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시청으로 가지 않고 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극장에 가니 휑~ 하다. 평일 낮이니까. 그나마 시간이 있는 대학생들도 학교 다니는 시기이고. 코로나 여파도 있고.
어제 미리 예매한 표를 뽑아들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안내하는 사람도 없더라. 그리 큰 극장은 아니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달랑 두 명이 봤다. 내 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극장 전세 모드가 될 뻔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시청으로 가는데 근처에 있는 보건소 앞에 차와 사람이 말도 못하게 많다. PCR 검사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ㅇㅇ에서 여기로 옮겨왔을 때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에도 사람이 많아서 엄청 짜증스러웠다. ㅇㅊ ㅁㅈ은 가자마자 바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적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체온을 측정하고 안으로 들어가 신청서를 쓰고 재발급 접수를 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찾으러 오라고 하더라. 마침 쉬는 날이니까 찾으러 가기도 좋다.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세워둔 뒤 빌린 책을 챙겨들고 나가려는데 대출증이 안 보인다. '대충 여기 쯤 뒀는데?' 하고 찾아봤지만 어디로 숨은 건지 아예 안 보인다. 이렇게 숨어버리면 『 오징어 게임 』의 영희 로봇도 못 쏴죽이겠다. 결국 찾는 걸 포기하고 그냥 출발.
도서관에 도착해서 재발급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읽을 책을 빌리려는데 당최 맘에 드는 책이 없다. 소장하고 있는 책도 얼마 안 되는데다 상태도 좋지 않으니까 빌리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근처의 ○○ 도서관에 가서 회원 가입 후 책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원래 계획에는 세차가 있었지만 배도 너무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한 번 가봤던 셀프 주유소가 있는데 1,710원이 채 안 되더라. 다른 곳에 비해 싸다 싶어 거기에서 기름을 넣었다. 주유기를 잡고 기름을 넣으려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전에 있던 부서의 ○○○장님이었다. 잘 지내냐며 안부 인사를 건네시더니 성과 평가 A를 줬다고 하신다. 응?
보통은 근무지를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주지 않는다. 나중에, 언제, 어디서 다시 볼지 모르지만 일단 내 눈 앞에 없으니까, 그리고 잘 챙겨줘야 할 사람은 많으니까 뒤로 밀리고 밀려서 A, B, C, D 등급 중 C 정도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B 받으면 선방한 거고. 그런데 A를 주셨단다.
ㅇㅇ에서 이 쪽으로 온 게 내 의지도 아니고, 자리가 없어져서 마지 못해 움직인 거였다. ㅇㅇ에 남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장님도 남기를 바라셨지만 결국 옮기게 된 거고. 많이 미안해하셨는데 그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지 좋은 평가를 주셨더라. 나중에 소주라도 한 박스 사서 갖다 드려야겠다. 해외 여행 풀리면 일본에서 사케라도 사다드릴텐데 말이지. 아무튼, 전에 있던 곳에서 나름 잘 생활했고나 싶어 뭔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됐다.
기름 넣는 그 짧은 시간동안 또 맘이 바뀌어서 그냥 세차하러 가기로 했다. 좌회전 차선에 섰는데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신호는 제법 길었지만 결국 좌회전하지 못한 채 신호가 바뀌었다. 내가 선두였기에 손전화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슬슬 바뀔 때가 되었다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화물 트럭 한 대가 내 앞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1, 2차선에 걸쳐 삐~ 딱~ 하게 멈춰 선다. 내려간 운전석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아래로 휘휘 내젓는다. 미안하다는 뜻이겠지. 아니, 그렇게 미안하면 안 해야 되는 거 아냐?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ㅄ이냐?
욱! 해서 신호가 바뀌자마자 쌔려 밟아 그 차 앞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속도를 확~ 줄였다. 어떻게 나오는지 봤더니 비상등 켜며 천천히 오더라. 차선을 바꿔 비켜 가려는 것 같기에 다시 막아섰다. 차에서 내려 멱살 잡힐 각오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뒤에 오는 차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차와 차 사이의 거리를 보면서 달렸다.
신호에 걸렸을 때 트럭이 옆으로 빠져나가면서 마무리 됐다. 내 옆을 스쳐지나갈 때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애 써 외면하며 지나가더라. 이 동네는 운전 매너가 정말 바닥이다. 바이크가 워낙 엉망진창이라 차가 묻혔을 뿐이지, 개판인 건 오십보 백보다.
한참을 가서 유턴한 뒤 세차장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공사 차량 같은 게 서 있다. 뭔가 싶어봤더니... 바닥을 포장하고 있더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기존의 시멘트 바닥도 괜찮았는데 왜 아스팔트로 덮는 거지?
기껏 마음 먹고 갔는데 결국 세차하는 데 실패했다. 다른 곳으로 가도 되겠지만 회원 카드 만들어가며 미리 돈 써놓은 게 있는데다 차가 말도 못하게 더러운 상태까지는 아니라서 그냥 미루기로.
집으로 돌아와 물을 끓이다가 사다놓은 순두부를 넣었다. 거기에 라면만 넣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싱거울 것 같아 김치를 꺼내 확인해봤다. 찌개나 볶음밥을 만들기에는 조금 부족할 정도이긴 한데 그래도 익긴 했더라. 적당히 넣고 라면도 같이 넣었다.
처음 먹는 밥. 다행히 엄청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빈둥거리다가 일기 쓰는 중이다. 벌써 17시가 다 되어 간다. 대체 뭐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가버린 건지.
슬슬 게임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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