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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2년 04월 25일 월요일 맑음 (한 끼의 소중함)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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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쉬워야, 없어야 소중함을 느낀다고, 고작 하루 굶었는데 밥이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다. 배 고파서 눈 뜬 건 실로 오랜만이네.

 

인연 끊고 산 지 5년 가까이 된 생물학적 모친께서는 본인이 나를 계속 키웠다면 서울대에 보냈을 거라고 장담한다.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었을 거라고 맞받아 친다. 국민학교 때야 어찌저찌 버텼겠지만 중학교에 가서 대가리가 굵어진 뒤에는 반항하던가 도망 갔을 게 분명하다. 🛵💨

방치형 양육을 표방하고 실천으로 옮긴 아버지 손에 자란 게 행운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쌀 한 톨도 남기지 말라 가르쳤지만 아버지는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 컸던지라, 아버지 빽(?)을 믿고 만날 군것질만 해댄 통에 성장기에 밥을 잘 안 먹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내 눈은 육지와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딱히 후회스럽지는 않다. 35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잘 구운 꽁치나 갈치를 얻은 밥 한 숟갈보다는 스키틀즈를 선택할 게 분명하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는 가르침 덕에 편식이 패시브 스킬로 장착되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먹기 싫은 건 먹지 않았다. 그러다 먹고 싶은 게 나오면 그동안 안 먹은 걸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냥, 미친듯 때려 넣었다. 편식에 이어 폭식 스킬을 터득했다. 😑

돌아가신 할머니는 밥을 몰아서 먹는다고 '몰이 밥'이라 불렀고, 고모께서도 '애비가 되서 자식 새끼 망치고 있다.'며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굶어죽지는 않았다. 골고루 먹으라는 잔소리가 입에 넣은 밥보다 훨~ 씬 많은데도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대신, 입이 잔뜩 짧아져서 안 먹는 음식 리스트가 엄청나게 길어졌다. 비린 건 질색인지라 생선은 어지간하면 안 먹는데 그 와중에 게, 새우, 오징어, 조개 같은 해산물에는 또 환장해서 당최 네 입맛을 알 수가 없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폭식이 생활화되다보니 위가 늘어난 모양인지 덩치에 비해 엄청나게 먹었다. 혼자 피자 한 판 다 먹는 걸 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쟤 혼자서 피자 한 판 다 먹는다.'고 했지만 덩치를 본 친구들은 믿지 않았고, 그들의 눈 앞에서 피자 한 판을 고스란히 뱃 속에 넣는 라이브 쇼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피자 값 굳었고.

3일 가까이 굶은 탓에 동네 슈퍼에 가서 라면이라도 훔쳐 와야 하나 고민하던 찰라, 친구가 사 준 라면 다섯 개 중 네 개를 한 번에 먹기도 했다. 두 개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혹시 모르니까 아낀답시고 한 개는 빼고 끓인 거였다. 2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다면 구독자 100명도 안 되는 먹방 유튜버로 아둥바둥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나이를 먹으니 기초 대사량이 떨어졌고, 몸은 점점 편한 걸 찾게 되니 덜 움직이게 되고, 당연히 살이 찐다. 소싯적에는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때문에 여자로 오해 받기도 했던 몸인데, 지금은 명치 께에 손전화를 올려놓는 게 가능할 정도로 후덕한 인격이 자리 잡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뺄 수 있다,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라 생각하고 있었고, 마음 먹어도 안 된다는 걸 인정한 건 얼마 안 됐다. 😭

 

폭식하던 버릇이 있어서 지금도 라면은 두 개가 기본이고 비빔면이나 짜장 라면은 네 개가 기본이다. 햇반도 큰 거 두 개는 까야 뭔가 먹은 것 같다. 그 와중에 코로나를 이유로 운동은 아예 안 하고. 결국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체중보다 15㎏ 넘게 쪄버렸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체중까지 빼는 건 사실 상 무리겠지만, 적어도 10㎏는 빼야 할 것 같다. 소싯적에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두 시간씩 공 차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럴만한 체력이 남아있지도 않고 이제는 하루만 공 차도 엿새는 쉬어야 되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지. 안 먹는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굶어서 빼는 건 정말 무식한 짓이라 생각했는데, 내 몸에는 이미 일주일 정도를 굶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의 지방이 자리 잡고 있다. 수년 간 함께 한 두터운 정이 있어 좀처럼 몸에서 빠져 나가지 않으려는 녀석들이지만 과감하게 헤어져야 할 것 같다.

근처 대학교 트랙을 열다섯 바퀴 정도 걷고 뛰는데 대략 8㎞ 정도 된다. 10,000 걸음 약간 넘는 수준이고. 일단 저 정도 운동으로 체력 좀 길러놓고 다른 운동을 하던가 해야겠다.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으니까 조만간 공 차고 콕 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어제 저녁을 굶은 덕분인지 자기 전과 자고 나서의 몸무게에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단 기간에 이렇게 효과를 보니 계속 굶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물에 불린 누룽지에 김자반 한 봉을 다 털어넣은 뒤 천천히 입으로 옮겼다. 줄어가는 게 눈에 보이니 속이 쓰리다. 그래도 다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배 좀 꺼지길 기다렸다가 슬렁슬렁 운동하러 가야지. 노래 들으면서 트랙 돌고, 집에 와서 씻은 뒤 일찌감치 돈 벌러 가야겠다. 그동안은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오늘부터는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하는고만. 사무실에서 대놓고 빈둥거리는 건 좀 눈치 보이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돈 쓰지 말고 살자고 매일 다짐하는데 어제 무선 이어폰 지르면서 봉인이 풀려버려서, 쓰잘데기 없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10만 원 넘게 질러버렸다. 새 마스크가 100장 넘게 있는데 또 100장을 질렀고, 넉넉하게 있는 세제도 할인한다는 이유로 질러버렸다. 남들보다 싸게 샀다며 좋아하지만 사실은 필요하지 않을 때 사버리는, 멍청한 소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많이 온단다. 내일 낮까지 오고 그친다고 하는데 오늘 저녁 근무, 내일 낮 근무, 비를 볼 수 없는 일정이다. 뭐, 여름 되면 비 볼 일이 많아지겠지. 오늘, 내일, 이틀만 버티면 모레 쉰다. 버티자!

 


 

잘 때 입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고 빤쓰 차림이 된다. 종아리와 발바닥에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있으니 종아리 보호대라도 해야 한다고, 빨아놓은 종아리 보호대를 보다가 새 제품의 비닐을 뜯는다. 아끼면 똥 된다고, 엄청 비싼 건데 쌀 때 잘 샀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정강이를 다 덮는, 엄청 긴 양말을 신는다. 운동할 때 신으려고 바닥이 두툼한 양말을 일곱 켤레 질렀다. 💰   몸에 적잖이 달라붙는, 얼마 전 같으면 입을 생각조차 안 했을 운동용 긴 바지(이것도 얼마 전에 샀다. 💰)를 입는다. 언더 셔츠를 입은 뒤 포항의 올 시즌 저지를 처음으로 입는다. 일본에서 산, 하나마나 한 마스크를 쓰고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가 선블록을 발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어폰과 마스크를 내려 놓는다. 선블록을 대충 바르고 다시 마스크와 이어폰을 걸친다.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러닝화를 신은 뒤 밖으로 나간다.

 

근처 대학교 트랙을 걷다 왔다. 항상 8㎞가 목적이었는데 오늘은 5㎞에서 멈췄다. 너무 힘들더라. 4㎞를 넘기고 오늘은 6㎞에서 그만두자고 마음 먹었지만 1㎞를 더 걷는 동안 어질어질해지면서 속이 안 좋아져서 포기했다. 몸이 좋아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건데 상할 위험을 견뎌가며 하는 건 바보 짓이다. 몸을 움직인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적당히 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는 이유로 통증을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다. 무병장수는 물 건너 갔을 테지만 덜 고생하고 죽으려면 통증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돌아오기 얼마 전, 코로나 때문에 난리였다. 동네 슈퍼와 편의점의 마스크는 이미 품절되었고 인터넷으로도 구입할 수 없었다. 간신히, 정말 어렵게 부직포 같은 재질로 된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마스크를 써도 호흡하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아무 효과가 없는, 그저 생긴 것만 마스크였던 거다. 코로나 예방 효과 따위는 1도 없는 마스크지만, 운동할 때에는 저만한 게 없다. 실외에서는 마스크 안 써도 되네 어쩌네 하는 마당이니까 저런 마스크를 써도 괜찮겠지.

마스크 때문인지 걷고 뛰어도 숨 쉬는 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땡볕이라 금방 지쳤다. 그제는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서 더운 줄 모르고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오늘은 바람 한 점 없어서 2㎞를 지날 무렵부터 지쳤다.

 

뭐, 주절주절 쓰고 있는데 결론은 날마다 8㎞ 뛰자고 다짐해놓고 5㎞에서 포기했다는 거. 날씨가 이렇게 더우니 아무래도 저녁에 운동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낮 근무 때에는 운동을 쉬고 저녁 근무인 날 오전에 운동을 했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낮 근무 마치고 와서 해 지면 운동하러 가야겠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2+1으로 산 편의점 팝콘 한 봉지의 열량이 300㎉ 이상이다. 이 땡볕에 한 시간 운동해서 태운 열량이 500㎉ 남짓인데 말이다. 하아...

 

샤워하고 나와 선풍기 바람으로 몸을 식히고 있자니 신선이 따로 없다. 맨 바닥에 누워 좀 자고 일어나 돈 벌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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