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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2년 05월 26일 목요일 맑음 (주차/풍경 소리/시간 지나면 다 부질 없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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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 출근하려는데 못 보던 차가 떠억~ 하니 옆 자리에 세워져 있다. 고동색 포터. 차주인 듯한 아저씨가 세차라도 하는 건지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누구시냐고, 여기 사시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괜한 오지랖이다 싶어 그냥 출근했다. 밤 늦게 퇴근하고 오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다. 출근하기 전에 내가 세워뒀던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었고.

내가 15시인가 16시에 출근했고 22시 넘어서 퇴근했다가 다음 날 여섯 시에 출근했으니까, 저 포터의 주인은 자기 옆 자리가 스물네 시간 이상 줄곧 비워져 있었다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이 아닌데 '하루종일 비어 있는 자리니까 그냥 막 세워도 되겠고만.'이라 생각할까봐 걱정이 됐다.

검은색 제네시스와 하늘색 비스무리한 소형 세단, 내 차가 주차면 세 개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 포터가 등장한 시점부터 소형 세단이 안 보이기 시작한다. 한 명이 이사 가고 다른 사람이 이사 온 걸까? 아무튼, 주변 시세보다 훨씬 더 주면서 지금 집에 사는 이유 중 하나로 주차가 편하다는 점도 있었는데 지붕 있는 주차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면 큰 장점이 사라지는 거다. 굳이 비싼 돈 주고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 이럴 때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가 깨끗한 건 우리나라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데 유난히 일본의 거리가 깨끗해보이는 건 길가를 점령하고 있는 차들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공용 주차장 많이 지어서 지금처럼 불법 주차로 난리인 상황이 없어지게 만든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잠들기 직전에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나한테나 듣기 좋은 소리지, 남들에게는 소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살짝 내려놨다. 누군가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 새벽에는 시끄러워서 깼다. 블라인드를 반만 걷어 올리고 잤는데 바람이 부니까 블라인드 아래쪽의 플라스틱이 창틀을 때리면서 탁~ 탁~ 소리가 불규칙하게 나는 거다. 어지간하면 그냥 자겠는데 하도 거슬려서 끝까지 올리고 잤다. 세 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다.

 

다시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네 시 반. 아직 한 시간 넘게 더 잘 수 있다. 좀 더 자야겠다 생각해서 눈을 감았지만 정신이 너무 또렷했다.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평소보다 한참 일찍 일어났기에 손전화를 보며 빈둥거리다가 씻으러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이르다.

씻으면서 문득 '아둥바둥 살아서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에 빚을 져서 아파트를 사고 30년 동안 갚아서 간신히 내 집을 만들어놨지만 학교 때문에, 또는 직장 때문에 타지에 나간 자식은 그 쪽에 자리를 잡게 되고 결국 죽고 나면 그 집은 팔려서 돈으로 바뀌게 되겠지. 3대, 4대가 계속 살아온 집 같은 건 어림도 없고, 한 세대도 못 가는 게 현실이다. 나는 물려주고 자시고 할 자식도 없으니 결국 나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냥 쓰레기가 된다. 그걸 알면서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는 거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 좀 더 내려놓고 살자고 다짐했다. 뭐, 그 때 뿐이지만.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일본편 5 』권을 읽고 있다. 고보리 엔슈가 가쓰라 이궁을 지으면서 제시한 요구 사항 세 가지가 머리 속에 남는다.

·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 것 · 재촉하지 말 것 · 비용에 제한을 두지 말 것

저게 꼭 건축 분야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뭘 하던 간에 저 세 가지를 지켜가면서 하면 보다 완벽해지지 않을까? 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책을 읽다 보면 굉장한 자괴감이 든다. 유홍준 교수님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런 점을 보는데, 나는 같은 장소에 가서 그저 와~ 오~ 하다가 온다는 게 참...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게 없는 것이겠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퇴근하고 와서 컴퓨터를 켜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게다가 컴퓨터 사양이 좋아지니 PS5가 찬밥이 됐다. 자리를 옮긴 뒤 한 번도 켜보지 않았다. 사랑은, 이렇게 변하나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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