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를 이 동네로 옮겨올 때에는 부지런히 근처를 돌아다니자고 마음 먹었더랬다. 어느 순간부터 윗 동네 위주로 여행을 다녔기에 남쪽 여행 다니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극성이고 집에서 혼자 놀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버려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오늘은 그 험난한 여러 제약을 이겨내고 밖에 나갔다. 오늘 다녀온 곳은 소싸움 or 한재 미나리와 함께 먹는 소고기로 유명한 청도. 그 청도에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는 읍성 되시겠다.
오전에는 비가 내렸고 정오가 되기 전에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흐렸고 운전해서 가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해가 쨍쨍하면 쨍쨍한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평일 낮 시간의 지방도는 무척이나 한적했고 달리기 좋았다. 과속하기 딱 좋은 상황이더라. 크루즈 기능을 사용해서 여유 있게 달려 도착했다.
얼마 전 죽은 아베 때문에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본 여행을 가는 것이 범죄처럼 여겨지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나라가 일본이었다. 유독 일본에서 인생 샷을 건진 경우가 많다기에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구름이 낮게 떠서 배경이 기똥차다는 것이 내가 찾은 이유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구름이 낮게 깔리는 걸 자주 볼 수 있어서 풍경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에는 아주 맑은 날보다는 구름이 적당히 있는 날이 낫다.
지방으로 갈수록 수탈과 학대가 더 심했다고 들었다. 이 작은 동네에 저렇게 많은 선정비가 세워질 정도였다면 조선이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테지. 뒤통수에 구멍 난 사체로 발견될 것을 두려워 한 마을 수령들이 90% 이상이었을 게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니 저렇게 전시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과연 선정비를 세울만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조사를 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탐관오리라는 내용이 쓰여질 것을 알게 되면 후손들이라는 것들이 들고 일어나서 질알 발광을 하겠지만.
은근히 어울리는 이유를 알았다. 성벽이 과거의 그것이 아니었다. 예~ 전 사진을 보니 그저 야트막한 돌담이었다. 최초 축성은 고려 시대였고 조선 시대에 보수하긴 했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 놈들이 들어와서 죄다 부수고 간 거다. 나처럼 170㎝도 안 되는 사람의 허리 만큼도 안 오는 돌담만 남아있었는데 그걸 요즘의 돈과 기술로 다시 쌓은 거다. 그런 건 전혀 설명해놓지 않았고.
깔끔하게 잘 되어 있기에 유지 보수를 굉장히 잘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부지런히 다시 쌓았던 거다.
원래부터 있었던 건지, 다시 만들면서 조선 시대 성곽을 참고해서 일부러 만든 건지 알 수 없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음 좋았을텐데. 뭐,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다 해도 이후 보수하는 과정에서 치가 만들어졌을(치는 조선 시대 성곽의 특징이라 알고 있다.) 수도 있으니까.
처음에는 '사실 상 20세기 or 21세기 관광지 아닌가?'라는 생각에 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그마한 지방 소도시에 이렇게 볼거리를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싶더라. 관리만 잘 된다면 지역 주민들의 공원 겸 산책로로 기능해도 되고.
평일이라 상당히 넉넉했다. 처음 보이는 주차장은 무인 판매점도 있고 주차선도 제대로 안 그어져 있어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서문 주차장은 제대로 되어 있더라. 처음 보이는 주차장은 석빙고/향교가 있는 쪽과 서문 쪽이 갈라지는 중간 지점에 있어서 어디로 가든 동선이 간결해지지만 서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조금 더 걷게 될 수도 있다. 뭐, 따지고보면 얼마 차이 안 나겠지만.
아무튼 평일 낮 or 비수기에는 처음 보이는 주차장에 세우는 편이 낫다. 자리가 없으면 여기까지 올라와야 할테고.
서문이 있는 쪽을 다 보고 나서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갔다.
방금 스윽~ 둘러보고 온 서문 쪽의 반대 방향으로 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냥 안 보고 가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정표에 석빙고가 있다는 걸 보고 호다닥 걸음을 옮겼다. 그저 성벽만 있는 줄 알고 안 보고 왔음 후회할 뻔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석빙고에 도착했다. (성벽 위로 올라 걸으면 내려와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니까 그냥 아스팔트 포장된 길로 걷는 게 낫다. 성벽 위 쪽의 길은 얼마 가지 않아 공사 중이라며 막혀 있기도 하고.)
석빙고와 향교가 있는 동문 쪽은 공사 중이었다. 무슨 공사인가 싶어 봤더니 성벽을 쌓고 있더라. 이런 날씨에 참 고생한다 싶더라.
다시 주차장 쪽으로 돌아와 짐을 차에 던져두고 드론만 챙겨 서문 쪽으로 다시 갔다.
동문과 서문을 모두 보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릴까? 곤장 맞는 장면이 재현된 감옥도 보고, 정자에 앉아 바람도 쐬고 빈둥거리며 구경하면 두 시간 정도 필요할 거다.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요즘은 사람 많고 요란한 곳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곳이 좋다. 모처럼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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