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가까워진 고모께서 신안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시간이 좀처럼 맞지 않아 다닐 수 없었다. 이번에 다행히도 친척 누나와 쉬는 날을 맞출 수 있어서 같이 여행을 떠난 것. 광주 송정역에서 만나 차를 타고 신안으로 이동했다.
검색을 해보니 어디로 가라고 딱! 알 수 있게끔 쓴 글이 없더라고. 요즘은 내비게이션 앱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신안 퍼플섬으로 검색해도 제대로 안내를 해주는데 조금 불안하다면 안좌도 선착장을 찍고 가면 된다. 광주에서 출발하는 걸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일단 무안공항 쪽으로 달린다. 운남면까지는 육지이고 김대중 대교를 건너면 압해도. 압해도에서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천사 대교로 가는 길이라고 안내가 나온다. 천사 대교는 2019년 4월에 개통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다리(참고로 1위는 인천 대교, 2위는 광안 대교, 3위는 서해 대교). 국도만 놓고 따지면 가장 긴 다리다. 통행료를 내지 않는 다리 중 가장 길다는 얘기 되시겠다.
건너면서도 감탄했다. 이 정도 다리인데 공짜라고? 일본의 세토 대교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세토 대교 같은 경우 그 얼마 안 되는 짧은 거리를 달리는 댓가가 2만 원인가 3만 원 가까이 한다.
《 영상은 다음 날인 10월 8일에 퍼플섬에서 목포 쪽으로 나가면서 블랙박스에 촬영된 것을 이어붙인 것 》
천사 대교를 건너면 암태도다. 암태도에서 북쪽으로 달려 은암 대교를 건너면 자은도가 나오지만 퍼플섬으로 가려면 자은도 쪽으로 가지 않는다. 남쪽으로 가서 중앙 대교를 건너 팔금도를 찍고 계속 남하해서 신안1교를 건너면 안좌도에 도착하게 된다.
안좌도에서 805번 지방도를 벗어나 소곡리 쪽으로 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퍼플섬이라 일컬어지는 박지도와 반월도는 다리로 이동할 수가 있는데 길이가 꽤 길고(반월도에서 박지도까지는 915m) 걷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보행 약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저 집에 사는 분들을 그린 거라는데 나무와 함께 절묘하게 어우러져 멋진 장소가 되었다. 우회전하자마자 승용차 두 대 정도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평일은 괜찮겠지만 휴일에 사람이 몰리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우회전 후 아주 조금만 더 가면 공터가 있던데 거기 차를 잠깐 세워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한데...
대형 주차장도 있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주차장 옆에 자갈이 깔린 커~ 다란 공간이 있어서 차 세우는 건 어렵지 않다. 그 곳을 그냥 지나쳐서 길을 따라 계속 달리면 보다 규모가 작은 주차장이 하나 더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 반월도를 구경하고 다리를 건너 박지도에 도착, 구경을 마치면 역시나 다리를 건너 안좌도로 돌아가게 된다. 이 때 도착하는 곳에서 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조금 걸어야 한다. 운전하는 사람이 희생해서 부지런히 뛰어가 차를 끌고 데리러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랬다. 😑
사전에 드론 촬영 허가를 받았지만 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괜찮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일단 띄우긴 했는데 호버링하지 못하고 바람을 버티지 못해 한쪽으로 질~ 질~ 흘러간다. 고모와 친척 누나가 생각보다 자그마한 드론을 보고 귀엽다며 너무 열렬히 반응해줘서, 어떻게든 사진을 건저야겠다 싶어 조금 무리해서 띄웠다. 덩치가 큰 녀석이라면 모를까 Mini처럼 자그마한 드론은 추락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바람이었다. ㄷㄷㄷ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하는데 입장료는 2022년 10월 기준, 성인이 5,000원이다. 경기 고양, 경북 경산 등 자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표를 사면 5,000원 짜리 상품권 같은 걸 주는데 그걸로 섬 안에서 뭔가 사먹거나 할 수 있다. 장애인과 유공자는 입장료가 면제된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보라색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있으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에서 보라색 모자 같은 걸 팔고 있더라.
미리 검색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친척 누나한테 보라색 옷을 입고 오게 했다. 고모는 자매 도시 혜택을 받으려고 했는데 옷깃(카라)에 있는 보라색 줄을 보더니 통과란다. 아예 보라색이 아니어도 되는 모양이다. 하긴, 여기 보라색 있지 않냐고 우겨대는 사람들이 오죽 많았을까. ㅋ
다리를 건너면 자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거기에서 전기 차를 탈 수 있는데 한 사람이 3,000원씩 내야 한다. 이건 면제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다 내야 한다. 따로 표를 사는 건 아니고 전기 차에서 내릴 때 운전 기사에게 3,000원을 주면 된다.
내가 소형 전기 차에 올라탔을 때 기사가 아줌마 떼(?)에게 뭔가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일행이 여덟 명인가 그랬는데 차에는 여섯 명 밖에 탈 수 없으니 두 명은 이 쪽 차를 타고 나머지 분들이 차 한 대에 올라타라고 얘기하는 중이었다. 일행이 갈라지고 싶지 않은 아줌마들은 알아서 가겠다며 차에 타기를 거부했고.
좋게 알려주는데 저런다면서 기사가 툴툴거리던데 나는 일행이 모두 같이 다니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되니까, 그리고 기사의 말투가 그닥 친절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투라서,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 바다라서 언제 가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경치가 천차만별이다. 물이 쫘~ 악 빠졌을 때 가면 기대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915m니까 만만치 않은 거리다. 게다가 바람이 말도 못하게 불어 걷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온통 보라색이니까 신기하긴 하더라. 일본의 오카야마에 가면 고지마라는 동네가 있다. 청바지로 유명한 동네다. 역에서 나오면 지붕에 청바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쓰레기통도 청바지 모양이다. 어디를 봐도 온통 청바지 색깔과 모양. 잠시 후 택시가 지나가는데 택시도 그렇게 꾸며놨더라.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도 관광 상품화하려면 이렇게 해야 싶더라. 쪽 팔린다고 어중간하게 하면, 하다 말면 안 하느니 못하다. 독하다 싶을 정도로 한 우물을 파야 관광 상품이 된다. 퍼플섬이 그러한 것이고.
박지도에 도착하면 간단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게가 있고 그 옆에 화장실이 있다. 위 사진의 박지도 모형 근처에는 전기 차를 빌려주는 곳이 있고. 반월도에서는 기사가 운전하는 전기 차에 타야 하고, 반월도에서는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 비용은 30분에 20,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다리가 불편한 고모가 섬을 걸어서 둘러볼 수 없으니까 당연히 전기 차를 빌렸다. 면허증은 확인하지 않았고 이름과 전화 번호 정도만 쓰고 돈을 건넸다.
마을 하나가 온통 파란색 지붕인 곳도 있었는데 색깔 선택에 실패했다고 본다. 그냥 시골에 있는 집의 느낌 말고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빨간색은 눈에 띄기라도 하지. 전남 어디에는 노란색으로 도배를 해놨다던데, 색깔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섬이니까 여기를 봐도 바다, 저기를 봐도 바다, 그게 전부다. 그 외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과 다리 뿐. 하지만 같은 색깔로 통일했다는 것 때문에 구경갈 가치가 생겨버렸다. 머리를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힘들긴 했지만, 잔잔하게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가족과 가도, 연인과 가도, 혼자 가도, 만족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혼자 간다면, 혹은 친구와 둘이서 간다면, 오전에 여기 보고 오후에 다른 곳 가서 구경을 하네 마네 하지 말고, 느~ 긋~ 하게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BTS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한 장소가 되어버린 덕분에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있는데도 외국인들이 종종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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