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이번 여행의 목적은 유학할 때 살던 동네에 가보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그치기에는 시간이 많았다. 무려 8박 9일의 여행이었으니까. 어디 한 군데라도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망설임 없이 바로 '여기다!' 했던 곳이 세키가하라였다. 세키가하라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얘기했지만, 고정적으로 방문하거나 글을 전부 읽는 사람보다는 검색으로 들어오는 분들이 많으니 했던 얘기를 또 하지 않을 수가 없네. 😝
① 지금의 나고야 근처를 기반으로 해서 급격하게 세를 불려나가던 '오다 노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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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부하(아케치 미츠히데)의 배신으로 갑자기 죽는다.
└ 시체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카더라가 엄청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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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잽싸게 전장에서 돌아와 주군의 복수를 한다며 권력을 차지하고 일본을 통일(1590년).
└ 신발을 품어 모시는 주인이 따뜻하게 신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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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말년에 치매 의심 받다가, 어린 아들(도요토미 히데요리)을 남겨둔 채 죽는다(15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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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히데요시 밑에서 2인자 역할을 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일어선다. 얘네들은 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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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이시다 미츠나리'는 히데요리를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가려 한다. 얘네들이 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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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동군과 서군이 통일된 일본을 차지하기 위해 단판 싸움을 벌인 곳이 세키가하라 되시겠다(1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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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동군이 승리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는다.
서양의 군사 전문가도 서군의 우위를 점쳤고 실제로 초반에는 서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통일된 지휘 체계가 없었던데다 각자의 머리 속이 다 달랐던지라 전장에 진을 치긴 했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관망 세력에, 어디가 유리한지 간을 보다가 아군을 치는 배신 세력까지 나오면서 서군이 무너져버렸다. 이 때 서군이 이겼다면 지금과 다른 일본이 되어 있었겠지. 그만큼 중요한 전투이기에 일본에서는 관련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 숫하게 나왔다. 저 당시(16세기)의 일본을 전국시대(戰國時代: 센고쿠 지다이)라고 부른다.
전국시대의 3대 영웅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는다. 그, 왜,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 있잖아.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이 저 셋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른 다이묘(지방 영주)들 잔뜩 부른 회식 자리에서 난간에 선 채 바지 내리고 오줌 쌌다는 이야기 등으로 똘끼 내지는 남자다움으로 대표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평민 출신에서 하급 무사를 거쳐 일본 통일까지 해버린 자수성가의 입지전적 인물로 인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의 원흉이라 싫어하는 일본인 TOP 3에 꼬박꼬박 끼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의 대명사로 그려졌는데 최근에는 능글맞은 너구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
일본사에 있어 꽤 중요한 전쟁이 벌어진 장소인지라 인기있는 관광지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50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그저 촌동네 of 촌동네. 30분에 전철 한 대 오는 깡 시골이다.
마흔네 번째 맞이하는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로 손전화 화면을 갈무리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
08:04에 출발하는 열차가 일찌감치 들어왔기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출근/등교 시간이라 붐빌 줄 알았는데 내부가 휑~ 하더라. 생각해보니 11월 3일은 일본의 공휴일이다. 내가 태어난 걸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로 지... 죄송합니다. 문화의 날이라 쉬는 겁니다.
열차가 → 이렇게 들어왔기에 당연히 → 이쪽을 보고 앉았는데 막상 출발하니 ← 이렇게 간다. 졸지에 역방향으로 앉은 꼴이 됐다. 맞은 편이 비어있었지만 옮겨 앉기가 뻘쭘해서 그냥 그대로 앉아 창 밖을 보며 세키가하라로 향했다.
세키가하라 역 근처
우리나라는 티머니 카드 한 장이면 전국 어디에서든 버스와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대부분의 신용 카드에 교통 카드 기능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하지만 일본은 지역마다 사용되는 교통 카드가 다르다. 초창기에는 호환이 안 됐지만 지금은 호환이 된다. 그래서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지만, 마이바라처럼 사용되는 카드가 달라지는 곳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키가하라(TOICA가 사용되는 역)에서 열차를 탄 뒤 아즈치(ICOCA가 사용되는 역)에서 내리면 게이트에서 오류가 발생한다(이번 여행에서 실제로 겪었다. 나중에 쓰겠다. 😢).
마이바라 기준, 동쪽으로 움직이면 TOICA 구간인지라 ICOCA로 괜찮을지 걱정이 됐다. 호환이 되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고, 아무 문제없이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오카야마에 다녀온 한국인은 많지만 대부분 기비쓰 신사나 기비쓰히코 신사, 오카야마 성과 고라쿠엔 정도일 게다. 나처럼 고지마, 고토히라, 기노 성, 비젠 도자기 마을, 비젠 오사후네 도검 박물관, 빗추 타카마츠 성터, 사이조 이나리 신사, 시즈타니 학교, 와슈잔 전망대, RSK 장미원, 후키야 후루사토 무라, 라이큐지 등을 두루 다 본 사람이 있을까? 마사미 님 덕분에 한국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에도 다녀올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러다 일본 소도시 여행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닐까 망상을 펼쳤었는데 그 소도시에 세키가하라가 추가되었다. ㅋ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법 중 단어의 시작에는 된소리가 올 수 없다는 게 있답니다. 그래서 일본어로 읽고 쓸 때에는 코지마라고 하지만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고지마로 써야 합니다. 지명 뿐만 아니라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기비쓰(키비쓰), 기비쓰히코(키비쓰히코), 고지마(코지마), 고토히라(코토히라) 등이 그런 경우이고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도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로 쓰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을 지킨 것이 됩니다. |
과거에는 아케치 미츠히데(반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부하 장수)나 이시다 미츠나리를 패배자로 취급해 못생긴 얼굴로 그리거나 못난 성격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미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세키가하라에서도 이시다 미츠나리에 대한 호의가 느껴졌다.
오타니 요시쓰구는 젊은 시절에 엄청난 미모를 자랑했지만 나병에 걸려 살이 뭉개지면서 얼굴을 붕대로 감고 지냈다 한다. 이시다 미츠나리와는 친구로 지내며 동성애 소문이 돌 정도로 우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전쟁을 말렸으나 이시다 미츠나리가 끝내 거병하자 실명한 상태에서도 서군으로 참전하였고 적진에 고립되어 결국 자결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서군으로 참전하여 관망하고 있다가 갑자기 배신, 동군에 붙어 싸웠다.)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은 후 2년 만에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급사했는데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나병 전에 엄청난 미남이었다, 우정을 중시해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친구 편에 섰다, 불리한 와중에도 용기있게 싸웠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히메지 성에서 태어났다. 히메지는 모리 데루모토와 오다 노부나가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 같은 위치였기에 둘 중 어느 쪽에 붙어야 했고, 구로다 나가마사의 아버지는 오다 노부나가 쪽에 붙기로 한다. 이에 구로다 나가마사는 오다 노부나가의 진영에 포로로 보내지는데 그를 맡아 키운 것이 기노시타 도키치로다. 기노시타 도키치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하급 무사 시절 이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 되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 반도에 처들어왔었더랬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때에는 서군(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앞세운 세력이다.)에 가담하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동군) 밑으로 들어갔다.
동군(도쿠가와 이에야스 편)과 서군(도요토미 히데요리 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서군을 잔뜩 추켜세우며 서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산 위에 15,000명의 대병력을 펼쳐둔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동군과 서군은 서로 자기 편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왜 저러고 있냐고, 빨리 싸움에 나서라고 닥달했다. 급기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산을 향해 공포탄을 쐈고 더 이상 뮝기적거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산에서 달려내려가 싸움에 참가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배신자에 우유부단함까지 더해진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닥 인기가 없는 다이묘다. 어찌 되었든 세키가하라 전쟁이 끝난 후 공을 인정받아 지금의 오카야마 지역을 하사 받았고, 기어 오르는 중신들을 숙청한 뒤 지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하지만 스물 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급사했다.
나는 100% 한국 사람이지만 혹시라도 일본에서 고향으로 삼을 만한 동네가 있다면 오카야마라 생각하는지라, 세키가하라 이전에 해당 지역 영주였던 우키타 히데이에나 위에서 언급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에 대한 관심이 많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와 관련된 전장만 보는 코스도 있긴 했는데 지도를 보는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냥 발걸음 닿는대로 보자는 생각이 들어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녀야 할 곳이 엄청 넓다고 하니까, 신고 간 신발이 오래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녀석이 아니니까, 자전거를 빌리려 했다. 하지만 바구니에 담겨있는 헬맷을 보자마자 포기했다. 안전을 위해 당연히 써야 하겠지만 뭔가 남사스럽더라. 그래서 자전거 빌리는 걸 포기했다.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니까 유니폼을 입은 할아버지가 다가오셔서 말을 건다. 당연히 일본 사람이라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대한민국 유니폼 입고 있었는데. ㅋ
지도 없냐니까 한 장을 뽑아서 주신다. 한국어 지도는 없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나를 다시 한 번 보고는 아! 하시더니 없다 하신다. 발음이 이상한 일본 사람이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ㅋㅋㅋ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시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일본에 오래 살았냐고 물어보셨다. 어제 왔다고 했더니 크게 놀라시면서 일본어를 엄청 잘한다고 칭찬해주신다. 차마 일본에서 1년 6개월 살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1년 6개월 산 수준으로 떠들지 못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 스스로의 일본어가 형편 없어졌다는 걸 뼈 저리게 느꼈다.
세키가하라 전장기념관
전장기념관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이 된다. 만약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현장에서 등록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아홉 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10:40에 입장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간이 적혀 있는 플라스틱 쪼가리를 받아들고 어슬렁거렸다. 2층과 5층의 전망대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 아홉 시 반부터라고 한다. 빈둥거리고 있자니 스태프가 2층에 올라가도 된다고 하더라.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스태프에게 '번역을 위해 스마트 폰을 써도 되겠냐'고 물어봤더니 음성 해설을 들으려면 이어폰을 껴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했다. 번역 수준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거슬리는 표현이 꽤 있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분로쿠 게이초의 역이라 부른다. 분로쿠와 게이초는 일본의 연호를 말하는 거고 역이 전쟁의 의미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난, 말 그대로 난리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전쟁이라는 거지. 하지만 전장기념관에서는 조선 출병이라 써놨더라. 이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표현을 그대로 갖다 쓴 거다. 얘네들은 명나라 정벌을 위해 조선 땅을 밟았다고 말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노량에서 이순신을 물리쳤다고 써놓은 것도 있었다. 우리에게 이순신은 불패의 명장이고, 노량에서 적탄에 순직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전쟁이 끝난 후 질투에 눈이 먼 선조에게 괴롭힘 당할까 걱정해서 일부러 맞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전장기념관에서는 노량 해전을 일본이 이긴 전쟁이라 써놨다. 저 부분은 QR이 없어서 한국어 번역을 볼 수 없었기에 파파고의 실시간 번역으로 봤다. 한국인 방문객이 많지 않으니까 눈치 보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써놓은 게 아닐까 싶더라. 오사카 성 같은 한국인 방문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지만, 세키가하라까지 찾아가는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일테니까.
시간이 되어 입장. 원래의 내 스타일대로였다면 기다리는 게 싫어서 안 보고 그냥 갔을텐데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고 그저 하이, 하이, 하다 보니 10:40 표를 받아들게 된 거다. 뭐,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다시 세키가하라를 방문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
10분이 채 안 되는 영상을 두 편 보여주는데 한 편은 천장의 빔 프로젝터가 바닥에 영상을 쏴주는 시스템이었고, 다른 한 편은 약간의 4D 시스템이 가미된 영상이었다. 바닥에서 보여지는 영상은 그냥저냥 볼만 하다 수준이었고, 4D 영상은 꽤 재미있었다. 소리가 엄청 큰데다 진동도 느껴졌다.
돌진해서 창을 찔러넣는, 다소 잔인하다 싶은 장면도 있었는데 애들 데리고 들어온 사람도 있어서 '괜찮으려나?'하는 걱정을 했다. 바닥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보고 나서 '아, 무서웠어.'라고 말한 여자 아이가 있었거든. 4D 영상은 상영 전에 의료 보조 기기를 착용하고 있는 분 있냐고 확인도 했었다.
두 편의 영상을 보고 나면 2층으로 안내를 한다. 난 이미 봤으니까 그냥 밖으로 빠져 나왔다. 기다리면서까지 저 영상을 봐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영상에서 하는 말이나 전시물의 안내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넘겨짚는 게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일본어가 능숙하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배운 걸 홀랑 다 까먹어서 아쉬웠다.
세키가하라 유적지
고니시 유키나가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끼쳤던 다이묘 중 한 명이다. 세키가하라에서는 서군에 속해 싸웠고 패배한 뒤 도망 갔다가 사로잡혔다. 천주교 신자였기에 할복해서 자결하지 않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의해 참수됐다.
이 날 11.73㎞를 걸었다. 운동량은 핏빗의 차지 5를 통해 측정한 걸 신뢰하는 편인데 하필 고장이 났다. 구입한 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결국 얼마나 걸었는지는 삼성 헬스 앱을 통해 확인했다.
한~ 참을 걷고 또 걸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진지와 전장을 구경했다. 자전거로 다녔더라면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겠지만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근처에 갈만한 식당이 있나 찾아봤는데 팔고 있는 메뉴를 보니 여기다 싶은 곳이 없었다. 다시 전장기념관으로 돌아갔다. 새우튀김 카레를 먹고 싶었지만 품절인지라 다른 걸 주문했다.
배가 부르다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뭘 좀 집어넣고나니 살 것 같다.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14시 밖에 안 되었기에 근처에 더 볼만 한 게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딱히 내키는 곳이 없다. 기후 성에 다녀올까 했는데 교통비가 2,000円이 넘는다고 나와 바로 포기했다. 마이바라 쪽에는 볼 게 없나 싶어 검색해봤지만 관광 안내소도 안 나온다. 일단 마이바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심심해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인터넷 뉴스 중 테일러 스위프트가 빌보드 차트를 싹쓸이했다는 내용이 있기에 아마존 뮤직에서 찾아봤다. 'Anti Hero'는 듣자마자 와! 싶더라. 乃木坂46의 'バンドエイド剥がすような別れ方'와 함께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놓고 두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마이바라 역에 도착해서 ICOCA를 찍었더니 에러가 난다. 위에서 언급했던, TOICA 구간에서 ICOCA를 썼기 때문인 것 같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옆으로 가라고 한다. 카드를 찍지 않고 그냥 나가는 문 쪽으로 가라는 줄 알고 그 쪽으로 향했더니 거기 말고 그 옆 게이트로 나오라고 한다. 응? 방금 IC 카드 찍었을 때 에러 났었는데?
의아해하며 다시 카드를 찍었더니 문제없이 찍힌다. IC 카드를 찍는 게이트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오류, 하나는 통과였다. 뭔가 다른 걸까?
동쪽 출구로 나갔더니 자전거 대여점과 수리점이 역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서 자전거를 빌린 뒤 비와호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았다. 무려 200㎞. 예전 같으면 '아침 일찍이었다면 도전해봤을텐데...'라 생각했을텐데, 엄두도 나지 않더라.
관광 안내소 근처까지 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안내를 받더라도 어딘가에 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갔다. 빨래 거리를 들고 1층의 세탁실로 가서 세탁기 두 대를 다 차지했다. 흰 옷이 있어서 같이 돌리기가 불안했다. 태블릿으로 블로그에 쓸 글의 초안을 쓰면서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렸다.
건조기까지 돌려 빨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어제 갔던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올까 하다가, 그래도 생일이니까 조금 특별하게 먹자 싶어 근처의 이자카야를 검색해봤다. 평점이 3점대 인 곳을 거르고 4점 대인 곳을 찾아갔다.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긴 했는데 참치 전문점이라 쓰여 있어서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더라.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가보자 싶어 과감하게 문을 열었다.
예약했냐고 물어보기에 안 했다, 한 명이다 했더니 바 쪽 테이블로 안내를 해준다. 일단 맥주(とりあえずビール。: 토리아에즈 비~ 루)를 주문해서 홀짝거리며 메뉴를 봤다. 일부는 읽을 수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주문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문어나 새우로 만든 안주가 있냐니까 문어 튀김이 있단다. 그걸로 달라고 했다.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일본 술도 추천해달라고 했다.
기본으로 나온 안주가 말도 못하게 맛있어서 깨작거리며 먹고 있다가 문어 튀김이 나와 같이 먹었다. 문어는 쫄깃쫄깃했고 튀김 옷은 바삭바삭했다. 가게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그럭저럭 맘에 들었는데 문제는 옆자리에 있던 할저씨였다.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좀 젊어 보이고 아저씨라 하기에는 애매한, 거의 할아버지 쪽에 가까운 분이 옆에 옆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 문제는, 계~ 속 코를 훌쩍거리더니 급기야 재채기와 기침을 반복했다는 것.
여행이 끝나면 하루 쉬고 바로 출근해야 하는데 코로나에 걸리면 골치 아프다. 꼰대 ㅺ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빌미를 제공하는 거다. 엄~ 청 찝찝했다. 안 되겠다 싶어 사케 한 잔에서 딱 끊고 숙소로 돌아갔다. 에효...
숙소 근처에 스테이크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안을 보니 온~ 통 여자.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그냥 방으로 돌아가 퍼질러 잤다.
▶◀ 이태원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몸과 마음을 다친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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