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도 많고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이번 여행은 일행에게 오카야마를 소개해준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거니까, 유명한 곳을 위주로 다녔다. 오카야마駅에서 간사이 와이드 에어리어 패스를 이용해도 되는지 확인을 받은 후 전철을 타고 구라시키까지 갔다.
오랜만에 갔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육교를 걸어 내려간 뒤 길따라 계속 걸으면 되지만 아케이드 시장 쪽을 구경하려고 일부러 그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적당히 가다가 다시 큰 길로 나갔어야 했는데 수다 떨며 걷느라 너무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꽤 돌아나와야 했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면서 걸었다.
서울 종로 구경한다고 치면 오카야마 성이 경복궁, 구라시키 미관지구가 북촌 한옥 마을 정도일까? 흔히 볼 수 없는 몇 백 년 전의 창고 형태를 보면서 구경을 했다. 배도 타볼까 했는데 일행이 그닥 끌리지 않아 하는 것 같아 패~ 쓰~
근처에 〈나혼자 산다〉에 나와 유명해진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소개한 뒤 그 쪽으로 향했다. 유린안도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가게 밖까지 잔뜩 줄 서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웨이팅이 있어서 잠시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아 입장.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보고 미리 주문을 했는데 마치고 나서 게스트하우스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카페만 영업 중이라고 한다. 역시 코로나 때문인 모양이다. 3년 전에 묵었던 적이 있다고 했더니 환히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해주신다. 유린안의 숙박은 편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유있게 미관지구의 낮과 밤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으로 그려 같은 얼굴의 푸딩이 단 하나도 없다. 모든 푸딩은 저렇게 웃는 얼굴이고. 이게 유명세를 타게 되어 지금은 오카야마 역에서도 살 수가 있게 되었다. 오카야마 역 중앙 출구에 가면 세븐 일레븐 편의점이 보이는데 그 한 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판매대를 놓고 시아와세 푸딩을 팔고 있다. 라이센스에 민감한 일본이다 보니 허락없이 흉내내어 파는 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유린안 사진도 걸어놓고 했더라. 정식으로 판매하는 거라 생각한다.
저렇게 푸딩과 주스를 시키면 1,000円이 넘어간다. 푸딩과 주스 한 잔에 10,000원. 요즘 우리나라에서 커피 한 잔에 5,000원이 넘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좀 과하다. 식사가 아니라 디저트에 10,000원을 쓴다는 건 물가 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내 기준에 있어 선을 넘는 거다.
다홍색과 주황색이 이리저리 휘돌아나가는 비젠 야키는 예~ 전부터 굉장히 유명했다. 유명한 만큼 가격도 비싸서 보통 사람은 컵 하나 살 때에도 손을 부들부들 떨어야 한다. 그래서 비젠(오카야마 인근의 지명)의 공방에서는 1년에 한 번 할인 행사를 한다. 이 때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든다. 코로나 때문에 시들했을텐데 내년에는 다시 큰 규모로 행사를 열지 않을까?
마사미 님이 보내주신 컵이 하나 있는데 아낀다고 모셔뒀다. 비젠 야키에 음료를 따르면 희한하리만치 식지 않는다. 냉장된 음료라면 오래오래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거다. 음료는 시원한데 겉에는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것도 장점. 유린안의 저 맥주 컵이 마음에 들어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 매장에서 비슷하게 생긴 녀석의 가격을 봤는데 바로 내려놨다. 여행 중에는 약간 정신줄 놓고 지갑 열어대는 나라는 인간도 귀싸대기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가격이었다. 다음 생에 아랍 왕자 수준의 부자로 태어난다면 싱크대를 비젠 야키로 도배하겠다는 말 같잖은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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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에 유린안에서 묵었던 여행
푸딩과 음료를 다 먹은 후 계산하러 갔다. 젊은 처자가 계산을 해줬는데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발음이 너무나도 정확해서 한국 학생이 유학하는 줄 알았다.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드라마가 좋아서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단다. 혼자 공부한 것 치고는 발음이 굉장히 유창하다.
일본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문제는, 내가 드라마를 안 보는 사람인지라 대화를 이어가는 게 어렵다는 거다. 드라마에 정통한 관계자(?)였다면 최근에는 무슨 드라마가 인기였다, 봤느냐, 무슨 드라마에 출연한 뭐시기 배우는 최근 영화를 찍고 있다 따위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텐데, 내가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는 〈대장금〉인지라...
유린안 게스트하우스의 카운터 뒤에는 빨간 색의 천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서 일레븐 빌리지의 로고를 봤다. 2018년에 후키야 후루사토무라에 갔을 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다. 같이 쓰여진 이름이나 로고들도 오카야마 지역의 업소들이 아닐까 싶더라. 반가운 마음에 혹시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판매하는 건 아니라더라. 아쉬웠다.
https://pohangsteelers.tistory.com/1700
유린안에서 나와 아치 신사에도 다녀오고, 근처를 구경했다.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이 걸리더라. 아, 그리고... 그렇게 미관지구에 갔으면서도 오하라 미술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 가보려 했다. ……… 휴관일이었다. 😑 오하라 미술관과 교토 박물관은 나와 상성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걸 정~ 말 싫어하는데, 이건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진짜, 존맛이다. 개존맛이다. 핵꿀맛이다. 눈이 뒤집힌다. 바삭하게 튀겨진 빵과 일본 카레 맛이 동시에 느껴지니 입 안에서 혀가 춤을 춘다. 미쳐 날뛴다. 대여섯 개 더 사서, 질려서 못 먹겠다 할 때까지 먹고 싶더라. 하지만 아쉬울 때 그만둬야 더 엄청난 맛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 미관지구에 가는 이유가 카레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개만 먹고 말았다. 실은 하나 더 살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간신히 참았다.
카레빵을 파는 가게 뒤쪽이 꽤 규모 있는 기념품 상점이었기에 거기에 들어가서 대충 둘러봤다. 딱히 뭔가 살 생각은 아니었는데 괴나리 봇짐 같이 생긴, 훌~ 떡 둘러메는 스타일의 슬링백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던 점원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안심하는 게 느껴진다. ㅋ
전시된 것 말고 새 것 없냐니까 저 것 뿐이란다. 빨래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빠는 게 아니란다. 더러워지면 그 부분만 빨리 닦아내야 한단다. 어찌 되었든 마음에 들었으니까 냉큼 질렀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슬슬 돌아가야겠다 싶어 오카야마駅으로 돌아갔다. 어제에 이어 다시 이온몰에 가서, 어제 웨이팅이 있어 건너 뛰었던 텐동 가게에 갔다. 일행은 배가 부르니까 밥이 없는 걸 주문하겠다고 했는데 배달 전용이라더라. 그래서 그냥 밥이랑 같이 나오는 걸로 주문했다. 음식은 깔~ 끔했고 맛있었다. 굉장한 맛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가게다보니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1층에서 뭔가 분주하다. 커다란 장비를 설치하는 건지, 설치했다가 치우는 건지. 체크인을 하고 일단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커버를 씌운 뒤 가방을 풀어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샤워를 마치고, 일행이 있는 동안 부지런히 편의점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편의점까지 거리가 꽤 있는 편인데 일부러 패밀리 마트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는 오징어 안주는 없었다. 오뎅도 사려고 했는데 오뎅도 없더라. 과자랑 아이스크림만 집어들고 계산하러 갔는데 일하는 사람이 없다. 나보다 먼저 온 아줌마가 담배 사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계산하는 사람이 없으니 쳐다만 보고 있더라. 희한한 건 안쪽에서 남자 애 하나가 나와 기다리는 걸 봤음에도 불구하고 매장을 한 바퀴 돌더니 그냥 들어가버리더라는 것. 잠시 후 여자 애가 와서 계산을 했고 그 사이에 아까 그 남자 애가 나와 그 쪽에서 계산을 마쳤다. 한국스러운 불친절함을 장착한 편의점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로손이 있어서 일부러 들렀다. 하지만 거기에도 내가 찾는 안주는 없었다. 얼음 컵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마사미 님이 주신 선물에는 오카야마의 지역 사케 두 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 고이 모셔와서 아껴 먹고 싶었지만 캐리어가 없었던지라 백팩에 넣고 다녀야했다. 어깨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결국 아깝지만 먹어서 없애기로 했다. 이 날 한 병을 까서 얼음 컵에 따라 마셨다. 일행과 함께 회사와 상사 뒷담화를 부지런히 까다가 잠이 들었다.
날씨가 딱 좋아서 이불을 덮지 않고 잤는데 새벽에 쌀쌀해서 결국 이불을 끌어올렸다.
▶◀ 이태원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몸과 마음을 다친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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