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놨더니 이불 덮고 자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깼고, 날이 밝았다 싶어 일어났을 때가 일곱 시. 기~ 똥찬,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따로 각색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영화化 하면 무조건 1,000만 관객 넘어갈, 엄청난 꿈을 꿨다. 텍사스 소떼처럼 감동이 밀려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잔상이 진해서 따로 기억할 생각도 안 했다. 나중에 조금씩 손 보며 글로 옮겨서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데 내면 데뷔작이 초대박 날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30분도 안 되어 다 까먹었다. ㅽ
1층으로 내려가니 프런트에 아무도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 카드 키를 두는 방식으로 체크 아웃을 하는 곳이기에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카드를 두고 나왔다. 로비 옆 빈 공간에 짐을 두는 곳이 있기에 가방을 올려두고 어슬렁~ 어슬렁~ 밖으로 향했다.
오카야마 성은 이미 여러 번 다녀 갔더랬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보수 공사에 들어가 11월 3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바뀐 내부 구성이 궁금하기도 하고, 일행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다.
오카야마 성 주변에 집이 여러 채 있었는데 그 중 한 채가 부동산의 관리 하에 있었다. 그 얘기인 즉슨, 빈 집이라는 얘기다. 마사미 님은 오카야마를 시골이라 하지만 오카야마 역 근처에서는 시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금 벗어나면 바로 한적해지긴 하지만. 아무튼, 오카야마 성 근처는 나름 핫 플레이스인데 빈 집이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돈만 있으면 저 집을 사서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두 집 살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카야마 성은 하얀 외관으로 백로의 성이라 불리는 히메지 성과 반대로, 검은 외관을 갖추고 있어 까마귀 성이라고도 불린다. 대대로 가나미쓰 가문이 이 지역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우키타 나오이에가 반란을 일으켜 성을 빼앗는다. 우키타 나오이에는 가족, 친척을 주변의 유력자들에게 시집 보내 방심하게 만든 후 뒤통수를 치는 짓을 자주 한 탓에 인기가 없다. 뭐, 아무튼. 아들인 우키타 히데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라인에 서며 세력을 키웠고,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은 후 이 지역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차지하게 된다(우키타 히데이에는 서군에 붙었기 때문에 전투가 끝난 후 하치조지마 섬으로 유배되었다.). 맞다. 세키가하라에서 눈치 보다가 배신해서 전투의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친 그 인물이다.
고대 유물이나 역사적인 일보다는 비교적 근대에 집중하는 모습이고, 배신자 내지는 우유부단함의 아이콘으로 여겨져 그닥 인기가 없는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덜 까는 분위기다. 뭐, 좋든 싫든 이 동네의 영주였으니까 아무래도 까기가 좀 그렇겠지.
한글 안내는 없지만 QR 코드를 읽으면 번역된 내용을 볼 수 있다. 증강 현실 기술이 도입되어 3D로 구현된 내부를 이동하며 설명을 볼 수 있지만 조금 불편하긴 하다. 1층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관람하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이용이 가능하다.
입구에서 오카야마 성 단독 입장권만 구입할 수 있고, 고라쿠엔 입장권과 세트로 구성된 것도 살 수 있다.
오카야마 성을 보고 나오자 아저씨 한 분이 "코랴~ 코랴~"라고 하기에 뭔 소리인가 했다. 내가 입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 유니폼을 보고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는지 Korea라고 하는 거였다. 발음이 이상하긴 했는데 어찌 되었든 저렇게 먼저 뭐라고 해주면 무시하기 어렵지.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웃었더니 어설픈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한국어 잘 한다는 입에 발린 칭찬을 하고 자리를 떴는데 코라쿠엔으로 가는 길에 그 아저씨를 또 만났다. 아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혼자였다. 걷는 속도를 높여 따라온 모양이다.
유창한 일본어로 말을 걸기에 대충 대답해주고 있었는데 양복 입은 일본 아저씨가 지나가자 손전화를 건네며 같이 사진 찍자고 그러더라. 딱히 나쁜 의도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오지랖 넓은 아저씨라 생각해서 사진 몇 장 찍었다. 대화로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 사는 중국인이었다.
어슬렁거리며 걸어 고라쿠엔도 보고 나왔다. 고라쿠엔은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인지라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은데, 솔직히 말하면 히메지의 코코엔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시기의 고라쿠엔은 활짝 핀 꽃도 없고 그럴싸한 경치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지라 추천하기가 어렵다. 그러고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고라쿠엔은 항상 푸릇푸릇한 모습이지, 꽃이나 단풍으로 알록달록했던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전 날 숙소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동안 일행은 근처를 산책했다고 한다. 그 때 봤던 가게에 가보고 싶단다. 밖에서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식당이다. 혼자였다면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입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갔더니 전형적인 일본의 식당이다. 나무로 된 긴~ 테이블이 있고 그 안쪽에 할머니가 서 계셨다. 주방일테지. 그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는 손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마도 어머니와 자식 관계가 아닐까 싶다.
개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한다. 한 마리 정도는 키우고 싶은데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으니 책임감 없이 덜컥 키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디 갔다가 개나 고양이를 만나면 나름(?)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여기 새끼 고양이들은 특히 귀여웠다. 하지만 정작 이 가게를 선택한 일행은 고양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ㅋㅋㅋ
뭔가 특별한 맛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실내에서의 흡연이 자연스러운, 현지인이 종종 찾을 것 같은 식당에서 가볍게 한 끼를 해결. 혼자 다니면 안 갔을텐데 일행이 있어서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한다. 밥을 먹고 나와 시로시타駅으로 걸어가는데 일행이 멈춰 선다. 다른 가게 앞이다. 그 가게가 더 맘에 든다는 거다. 방금 밥 먹고 나오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갈 기세다. ㅋㅋㅋ
시로시타에서 노면 전차를 타고 오카야마駅에서 내렸다. 오늘 묵을 숙소에 짐을 맡겨야 했기에 기억을 더듬어, 구글 지도를 보면서 숙소를 찾아갔다. 로비에 가서 예약했음을 알리고 짐을 맡기고 싶다니까 가방에 묶으라며 작은 끈을 준다. 입구 근처에 적당히 가방을 내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구라시키에 간다.
▶◀ 이태원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몸과 마음을 다친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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