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드는 게 보통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22시가 되면 자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몸이라는 걸 아니까 새벽에 깨는 시간을 감안해서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 거다.
그런데 최근에는 늦게 자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오늘도 마찬가지. 눈꺼풀은 점점 내려앉고 하품 하느라 입이 쩍쩍 벌어지는데도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고, 여전히 새벽에 몇 차례 깼으며, 아침 일찍 눈이 떠지자 그대로 일어나버렸다. 쉬는 날이니까 언제든 잘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그게 가능해진다.
《 자기 전에 알람이 울려 봤더니 서울에서 누가 로그인을 시도했단다. 허... 》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네 개의 주차 공간이 있는데 한 개가 무용지물이라 실질적으로는 세 대가 한계다. 개념없는 ㄴ이 모는 제네시스가 한 대, 최근 보이기 시작한 구형 아반떼가 한 대, 그리고 내 차, 이렇게 세 대인데 가~ 끔 구형 소나타 한 대가 나타난다.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봤는데 여기 살고 있는 여자 집에 들락거리는 남자가 끌고 다니는 차인 모양. 어제는 퇴근하고 오니까 주차장이 꽉 찼기에 근처 도로에 차를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내려가보니 소나타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차만 안으로 들여놓기가 좀 그렇다. 차에서 세차 용품을 꺼내서 자전거를 좀 닦았다. 공기 주입기도 들고 내려갔기에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도 넣고. 타이어에 넣을 수 있는 공기는 50~70 psi인데 20~22psi로 나오더라. 반도 안 들어있는 타이어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닌 거다. 타이어 특성 상 손으로 눌러봐도 움푹 들어가거나 하지 않으니까 바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깨~ 끗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추워서 손가락이 굽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바람 넣고 대충 보이는 곳만 닦은 뒤 제 자리에 돌려놨다.
차로 돌아가서 근처 세차장으로 향했다. 고압수만 뿌려 더러운 걸 씻어낸 뒤 세차 용품을 이용해 여기저기 닦아줬다. 자전거를 닦을 때만 해도 추워서 달달달 떨었었는데 햇볕 아래에서 몸을 움직이니 열이 올라온다. 그 와중에 바지가 질질 내려가서 불편했다.
《 세차 마치고 오는데 뒤에서 앞으로 끼어들더니 횡단보도 위에 당당히 정차. 정작 신호 바뀌니 느릿느릿. 》
세차를 마치고 와 빈 자리에 차를 넣고 집으로 올라와 세탁기를 돌렸다. 세차하면서 쓴 수건만 넣고 뜨거운 물로 세탁.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샤워를 마치고 나와 대충 입고 열심히 일하는 세탁기를 그대로 둔 채 집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아 버스에 오른 게 정오에서 4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네일베 지도에서 목적지까지 45분 걸린다고 나왔는데 실제로 그 정도 걸렸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나 가봤지, 이 동네 와서 교보문고는 처음 가봤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그냥, 조금 규모가 있는 지방 서점이더라. 뭔가 교보문고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촌스럽다는 느낌? 여행과 관련된 책은 2층에 있다기에 폭이 좁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수컷 세 마리가 요란하게 떠들고 있다. 책과 관련된 공간이라 조용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괜히 덤볐다가 처맞을까 싶어 참았다. 이 동네는 개념 없고 예의 없는 걸 남자다움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편하다. 사고 싶은 책은 두 권이었는데 다 사는 건 부담스러워서 한 권만 샀다. 계산대로 향하는데 직원 붙잡고 개인사 털어놓는 영감을 보게 됐다. 별에 별...
어슬렁거리며 좀 돌아다녔음 싶었지만 딱히 목적없이 그러기도 애매하다. 예전에는 어렵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 와중에 날씨가 따뜻해져서인지 과감한 차림이 종종 보인다. 시선 강간 타령하니까 일부러라도 눈을 피하게 된다. 땅 보고 걷다가 과자 전문점에 가서 과자 조금 사고, 바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 종점을 세 개 정도 남기고 열차 안에 텅 비었다. 나만 덩그러니 남아 손전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
집 근처의 KFC에서 들러 햄버거와 닭을 샀더니 20,000원이 훌쩍 넘어간다. 무서울 정도다, 이 놈에 물가. 편의점에 들러 술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평소에는 맥주만 샀는데 이번에는 앱솔루트 보드카를 한 번 사봤다. 나는 도수 센 술에 쥐약이라 평소에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는데 크랜베리 주스와 섞어 먹어볼까 싶어 토닉 워터랑 같이 사본 거.
《 얼마 가지도 못할 앱을 계속 만들어내고, 없애고, 진짜 돈지랄도... 》
세탁기 안에서 수건을 꺼내 건조기로 옮겼다. 그리고 옷을 다시 세탁기에 넣어 빨래 시작. 그리고 나서 침대에 드러누워 한동안 쓰지 않았던 손전화 앱을 정리했다. PDA 시절부터 쓰던 앱도 있는 마당에 저런 것들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서비스 종료 운운하며 없어진다. 저런 거 만드는 것도 다 돈일 거 아냐. 애먼 데 돈 쓰고 자빠졌다. 저 질알 염병할 돈 있음 내 대출 금리나 좀 내려줄 것이지. 쯧.
통영에서 찍은 드론 영상을 간단하게 편집하고 블로그에 올린 글도 손을 좀 볼 생각이었는데 귀찮아서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냥 뒀다. 하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해봐야 구리기 짝이 없는 결과물이 나올 게 분명하니까.
《 갤럭시 S20+는 SD 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서 내부 저장 용량을 덜 쓸 수 있다. 나는 73GB 정도 쓰고 있더라. 》
자정으로 넘어가면 갤럭시 S23 시리즈의 사전 예약이 시작된다. 제품의 스펙이나 외형 등이 알려지기 전부터 어지간히 구리지 않으면 바꿀 생각이었고 그럭저럭 사도 되겠다 싶어 지를 예정. 다만 S23 시리즈는 SD 카드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용량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나는 512GB면 충분할 것 같다.
돈과 시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젊었을 때에는 망설임 없이 시간을 선택했더랬다. 남는 게 시간이었고 없는 건 돈이었으니까. 그게 나이 먹으면서 점점 돈으로 옮겨 가는 것 같다. 예전에 몇 시간을 발품 팔아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아둥바둥했다면, 지금은 더 싼 곳이 있더라도 귀찮고 번거로우면 그냥 조금 더 주고 사버린다.캄보디아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싸게 가려면 저가로 풀어지는 방콕 행 항공권을 산 뒤 환승해서 가면 될 거다. 하지만 불편하다. 직항이 편하다. 비싸더라도. 몇 년 전에 제주에 갔었는데 태풍 올라온다고 해서 부랴부랴 예약을 취소하고 이틀 일찍 올라온 적이 있다. 공항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 그 때 돌아오지 않았다면 제주에 며칠 발이 묶일 뻔 했다. 그 때 예정을 바꾸면서 싸게 다녀오겠다고 아둥바둥한 게 바보 짓이 되어버렸다. 그 기억이 자꾸 난다.
2월은 3일 일하고 이틀 쉬는 근무가 세 번이나 반복되니 시간이 잘 가지 않을까 싶다. 멀리 가기는 번거롭고, 당일치기로 근처에 바람 쐬러 다녀오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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