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고 차에 올라 엔진이 예열되는 동안 손전화를 봤더니 친척 누나한테 카카오 톡이 와 있었다. 아들이 전역하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내 짐이 차지하고 있는 방을 써야 할 것 같다고, 짐을 빼던가 상자에 넣어 베란다로 옮겨 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물 한 방울 없이 고구마를 쑤셔 넣은 기분이었다.
백령도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내 짐은 i30에 다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상륙한 후 ㅇㅌ의 반 지하 방에 들어가면서부터 살림이 늘기 시작, ㄱㅈ ㅇㅍ로 옮길 무렵에는 1톤 트럭에 짐을 실어야 했다. 2년 조금 넘게 산 뒤 ㅍㅌ으로 이사 갈 때에는 3.5톤인가? 아무튼 상당히 큰 트럭이 필요했다. 거기서 ㅍㅎ의 고모 댁으로 짐을 옮길 때에도 큰 트럭을 이용했고. 그 때 이삿짐을 나르는 젊은 사람이 혼자 살면서 이렇게 짐 많은 건 처음 본다고 했더랬다.
그 많은 짐 중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ㅍㅎ에 방치해놨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허름한 방이라서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고모께서 ㄱㅇ으로 이사갈 때 내 짐들도 같이 옮겨졌다. 꽤 많이 버려졌고.
고모께서 내 짐을 둘 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방 세 개짜리를 고집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방을 비워달라고 한다. 친척 누나의 딸이 방 하나를 쓰는 중이고 아들이 나머지 방 하나를 쓸 예정이란다. 따지고 보면 내 짐으로 그 방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뭔가 굉장히 언짢다. 손해 보는 기분이고.
몇백 만원 주고 산 컴퓨터도, 모니터도, 친척 누나네 주고 갔었는데. 같이 여행 다니면서 돈 안 쓰게 하려고 될 수 있으면 내가 내려 했고 숙소처럼 돈 많이 드는 것도 내가 예약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되는고나 싶어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기분이야 그렇다 해도 짐을 치워달라고 하면 냉큼 치우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창고를 알아봤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근처에 월세가 굉장히 싼 집을 알아봐서 거기에 넣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럴 거면 차라리 그 돈을 지금 내는 월세에 더해 좀 더 큰 집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더라.
맘에 드는 집은 몇 군데 보이는데 주차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니 당최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부동산에 가보자는 생각이었는데, 회사에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럴거면 회사 숙소에 들어오라고 한다. 마침 봄에 방을 빼는 한~ 참 선배가 있어서 그 방에 들어가는 걸로 하면 될 것 같다고.
그 쪽이 돈도 덜 들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금요일에 출근해서 담당자한테 숙소에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그 전에 짐 빼달라고 하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물건을 버리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요즘은 부쩍 심해진 것 같다. 망가져서 못 쓰게 되지 않는 이상 버릴 수가 없는 거다.
속옷은 1년 6개월 입고 버려야 한다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뭐는 어느 정도, 뭐는 또 어느 정도, 수명이 있어서 그게 지나면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단다. 하지만 멀쩡한 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못 버리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이든 어른들에게 제발 좀 버리라고 잔소리하면 아직 멀쩡하다며 꾸역꾸역 숨기던 모습이 생각났다. 이렇게 나이 먹은 티를 내면서 사는고나.
그러고보면 비싸게 줬다는 이유로 본전 생각이 나 꾸역꾸역 가지고 있는 나이키 에어 모어 업템포도 두 켤레 모두 수명이 다했다. 새 걸 하나 가지고 있지만 당최 못 버리겠더라. 내일은... 과감하게 버려야겠... 다라고 말하지만 못 버릴 것 같다.
사흘 일하고 이틀 쉬고 있다. 이 황금 같은 근무조가 세 번 연속 반복되는데 그 중 두 번째. 항상 이렇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물론 그 때가 되면 이틀 일하고 사흘 쉬기를 바라게 되겠지. 뭐, 아무튼. 내일은 시내에 나가서 손전화 껍데기 있는지 좀 보고 올 생각이다. 아, 가는 길에 엄청 큰 도서관이 있던데 거기에 들러볼까? 캄보디아 여행과 관련된 책이 분명 있을텐데.
시내 나갔다 와서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야 하고, 오후에는 운동을 좀 할까 싶은데 계획대로 될지 모르겠다. 더운 나라로 가서 많이 걸어야 하니 체력을 키워놔야 한다. 겨울 내내 먹고 자기만 했으니 체력이 바닥이다.
최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장거리 도보 여행에 도전하는 걸 봤다. 몇 백 ㎞를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기세 좋게 오카야마까지 걸어가겠다고 길을 나섰던 게 벌써 4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그렇게 됐다는 게, 참...
기회가 된다면 더 늙기 전에 300㎞ 정도는 걸어서 여행하고 싶은데, 한국은 이래저래 위험하니 일본에서 했음 싶은데, 가능할랑가 모르겠다. 시간이 주어질지...
퇴근하고 배 고파서 라면 먹고 빈둥거리다보니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간다. 일찌감치... 는 아니지만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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