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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3년 05월 11일 목요일 맑음 (술주정)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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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꽤 전문적인 것이고,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상당히 드문 일이라는 걸 자신한다.

대한민국으로 한정했을 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백 명이라고 가정하고 근무 능력을 평가한다면 나는 상위 10% 안에 들 자신이 있다. 내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AH 77I 들 중 월급 도둑놈이 많기 때문이다.

2018년에 승진 1순위였는데 승진 발표를 4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휴직을 했고, 1년 6개월 동안 쉬고 와서 복직했다. 바로 승진이 될 줄 알았지만 만 3년이 넘도록 승진을 못하고 있다. 동기들 중에는 이미 한 단계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이 두 명이나 되고, 후배들한테 밟힌 지 오래다. 나를 밟고 승진한 후배들 중 일부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일부는 정치질에 몰두해 딸랑거리느라 정신없는 7H AH 77I 라 생각한다.

지금 담당하고 있는 일은 20년 가까이 하고 있다. 하면 할수록 공부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치는 분야라서 포기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구하는 즐거움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오히려 복직 후 새로 접한 일이 훨씬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다.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지만 때려치우기 전에 마지막 승진이 될 게 분명하다는 걸 떠올리면 그럭저럭 참을만 하다. 다만, 월급 도둑질이 극에 달한 쪼다 AH 77I 들도 나보다 높은 계급에 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도 승진이 안 되니까, 인사과에서 작정하고 패널티를 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인사과의 모 개념없는 ㄴ은 유학 중에 보낸 카카오 톡을 한 달 넘게 읽지 않았고, 참다 못한 내가 상급 기관에 민원을 넣자 바로 전화를 했더랬다. 보낸 서류를 잃어버려 다시 보내 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고, 후임자 역시 같은 개소리를 짖어댔다. 저 둘은 지금 나보다 두 계급 위에 자리하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이 정말 중요한 일이고, 컴퓨터를 얼마나 활용하느냐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하는 곳인데, 나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휴직을 해서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컴퓨터와 관련된 자격증이 열 장을 넘어가지만 승진에서 밀리고 있다. 정작 일 못한다고 모두에게 까이는 인사과의 ㄴㄴ들은 따박따박 승진한다. 윈도 설치조차 못하는 쪼다들도 전산 담당이랍시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꼬박꼬박 승진한다.

더럽고 아니꼬우니 침이라도 뱉어놓고 그만두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수 없다.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직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나이만 먹어 이직하는 건 불가능하다. 길바닥에서 버려진 음식이나 주워먹을 능력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한심한 쓰레기들이 조직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니 자신을 낮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올 여름에 여기를 떠날 것이다. 휴가 중에 연락해서, 휴가 중에 교육 들어올 것을 강요하기에 따를 수 없다고 했더니 앙심을 품고 근무 평가를 형편없이 준 7H AH 77I 가 여전히 중간 관리자 자리에 앉아 있다. 그 위에 있는 최고 관리자는 바지 사장 정도 밖에 안 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지만, 나는 저 똥 덩어리에게 어떻게든 복수할 것이다.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아줄 것을 다짐한다.

근무 시간에 회사 행사라며 무료 연극을 보러 간 것들이 교대 시간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올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해봐야 이용 당할 뿐이다.

이 동네에 남은 미련도 없고, 정 따위도 없다. 떠날 때 아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에 불 지를 궁리만 하게 될 거다.

 

 

아버지는 나를 서른둘에 낳았다. 어머니는 스물여섯이었다. 아버지는 일흔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고모가 형제, 자매들에게 욕 먹으며 받아낸 돈으로 산 땅은 동생이 가져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땅이 꺼지라 울고, 술에 취한 나를 비난하며 저런 게 장남이냐며 뒤에서 욕하던 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딱 한 번 아버지 묘를 찾았다. 사실은 더 갔는데 티가 안 났을 뿐이라는 거짓말을 했고.

나는 저 ㄴ과 절연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결혼을 하네 마네 하는 소식이 들렸지만 당연히 가지 않았다. 뒈지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어머니와는 2018년에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절했다. 통장 잔고를 증명하는 데 필요해서 1,000만 원을 빌렸고 잔고 증명 후 치아 치료에 사용했다. 두, 세 달 후 휴직 처리가 완료되면 전세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 했는데 자기 돈을 맘대로 썼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빌린 돈 1,000만 원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들어간 돈이 2,000만 원이니 3,000만 원을 내놓으라 했다.

전세 보증금을 빼서 ○○에 있는 어머니 댁에 찾아간 뒤 3,000만 원을 이체하고 그 뒤로 단. 한. 번. 도.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이 온 적도 없고. 그 와중에 의료보험은 내 앞으로 되어 있어 유학을 마친 후 밀린 보험료를 내느라 1년 가까이 고생해야 했다. 아직도 나는 어머니의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다.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그만 내고 싶다. 생물학적 어머니지만, 내가 자라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나는 버려졌던 시간 이상으로 예의를 갖췄고, 이제는 철저히 남이다.

 

 

부쩍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하루, 하루 즐겁게 살고 싶다는 게 큰 욕심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자꾸 산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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