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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24, 몽골

2024, 몽골 자유 여행 ⑦ 울란바토르에서 빈둥빈둥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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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더워서 깼다. 도저히 잘 수 없을 정도로 덥다. 그렇잖아도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인지라 남들이 춥다고 할 정도나 되어야 시원해서 딱 좋다고 느끼는, 용광로를 품고 사는 사람인데, 벽에 붙은 히터에서 미친 듯 열을 뿜어대고 있으니 환장하겠다. 침대에 누워 몇 번 숨을 쉬고 나면 등이 뜨끈뜨끈하다. 들썩~ 들썩~ 하면서 조금 옆으로 옮겨 간다. 금방 등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그러면 또 들썩~ 들썩~ 그 짓을 반복하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지나 깨고 나면 또 펌핑...

 

 

 

몽골의 5월은 다섯 시 언저리부터 밝아지고, 아홉 시가 되어야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밝은 곳에서는 또 못 자는지라, 밤새 더워서 뒤척거리며 힘겨워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빛이 들어오니 다시 잠들 수가 없다. 결국 다섯 시 무렵 눈이 떠진 후 그대로 깨고 말았다. 태블릿을 붙잡고 10분 정도 게임을 하다가, 카카오 웹툰을 보고, 엑스(구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스포츠 뉴스를 본다. 그러다 유튜브를 켜서 영상을 보는 둥 하는 둥. 그러고 있음 시간이 훌~ 쩍 간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외국에 나가서 그러고 있냐고?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제주에 놀러갔을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고 꼴갑 떤다 생각했고, 아침 일찍 나서지 않고 늦게까지 자는 사람을 보며 저럴 거면 집에 있지 왜 나왔나 싶었다. 그러다가 여행한답시고 무조건 뽈뽈거리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딱히 계기랄 것까지는 없는데,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까 책은 고사하고 전자 책도 안 보지만 밖에 나가면 할 게 없으니까 보게 된다랄까? 그러고보면 아침에 카페 가서 브런치 먹고 커피 마시는 것도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이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지 않더라도, 그냥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는 것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여행한 이야기는 어디로 가고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냐면... 이 날과 다음 날, 내리 이틀 동안 할 게 없다. (°ー°〃)

고비 사막을 포함한 투어를 알아봤더니 7박 8일로 계획한 게 대부분이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여행 기간을 8박 9일로 잡은 거였다. 도착한 날은 좀 쉬고 다음 날 바로 출발하는 거지. 그런데... 출발하는 날짜가 맞지 않아 고비 사막 투어는 불가능했다. 5박 6일 짜리라도 다녀왔음 싶었지만 그마저도 하루나 이틀 차이로 불가능.

그래서 도착한 날은 숙소에서 빈둥거렸고, 다음 날은 울란바토르 여기저기를 10㎞ 넘게 걸으며 구경했더랬다. 셋째 날에 칭기스 칸 마상 동상과 테를지 국립 공원의 거북 바위를 봤고,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아~ 무 계획이 없다.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마냥 숙소에서 빈둥거리다가 낮술이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빈둥거리고 있는데 날이 밝아서인지 난방이 좀 약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히터 쪽으로 가니 확실히 열이 덜 난다. 이 때다 싶어 팔로 눈을 가린 채 다시 잠을 청했다. 몇 줄 위에서 밝으면 못 잔다고 써놓고, 금방 잠들어버렸다. ㅋㅋㅋ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열한 시가 넘어 잇었다. 아무 일정도 없었지만 구글 지도에서 3.5㎞ 떨어진 곳에 Lake at the Hill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기에, 사진을 봤더니 그럴싸 하기에, 다녀와보기로 했다.

샤워하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져서 물티슈로 닦았다. 게르에 가면 물이 안 나와서 씻을 수 없다기에 샤워용으로 나온 물티슈를 일부러 여러 개 챙겨 갔는데 아끼고 있다가 이 날 처음 사용했다. 대충 선블록을 찍어 바른 뒤 밖으로 나갔다. 구글 지도를 보며 걷기 시작. 지금까지 다녔던 방향과 반대 쪽으로 안내를 하기에 조금 기뻤다. 항상 보던 길만 봤었는데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으니까.

 

 

《 그렇게 아파트가 많은데도 여기저기에서 고층 건물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

 

《 나무 판자로 세운 벽과 낡디 낡은 집 뒤로 보이는 아파트 공사 현장 》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운드 어바웃(흔히 '로타리'라 부르는)이 나왔다.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마구 들이미는 차들을 피해 길을 건넜더니 갑자기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흙 먼지가 풀풀 날리는, 어중간하게 도시화가 진행 중인 우리네 시골의 풍경이었다. 내려앉은 보도 블럭과 흙이 드러난 인도. 녹슨 철로 세운 벽과 여기저기 박혀 있는 거대한 돌.

 

하필 정오 무렵에 출발했던지라 그늘도 없고, 오질라게 더웠다. 띄엄띄엄 CU 편의점이 눈에 띄었지만 희한하게도 걷는 방향의 반대 쪽에만 있었다. 길을 건너면 그만이지만 귀찮아서 목마름을 참고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점점 산동네로 향해 간다. 여기가 맞나 싶다. 일단은 구글을 믿고 계속 걸었다. 그 와중에도 소매치기 당할까봐 걱정이 되어 오른 손을 계속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며칠 안 있었지만 울란바토르는 치안이 상당히 안정된 나라라고 느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돈에 눈 먼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렇게 한~ 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자전거 여러 대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을 보니 저기가 맞고나 싶더라.

 

 

위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공터 쪽에 털이 복실복실한, 제법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발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엄청 사납게 짖어댔다. 진짜,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다. 개가 이 쪽으로 덤벼들려 하기에 잽싸게 줄에 묶여 있나 확인부터 했더랬다. 다행히 묶여 있었다. 자유가 확보된 개였다면, 쟤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는 죽었을 거다. 큰 확률로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땡볕을 걸어 힘겹게 도착한 언덕 위의 호수는, 구글이 워터 파크로 분류한 그 곳은...

 

《 이런 모습이었다. (#°Д°) 》

 

《 구글에 사진 올린 ×× 누구냐! 사진 빨에 속아서... 크윽... 》

 

고작 이게 다라고? 너무 실망스러웠다. 드론 띄우려고 챙겨 왔는데, 이건 뭐... 드론을 띄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 물이나 맑으면 위로가 되었을텐데 쓰레기가 떠 있었다.

한 쪽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한숨 돌렸다. 음료라도 사먹고 싶었는데 매점은 보이지도 않는다. 

 

 

본 조비 어쩌고라 쓰여진 티셔츠를 훌렁 벗어버린 남자와, 빤쓰가 보일 듯 말 듯 짧은 치마가 인상적인 처자가 눈에 띄었고, 그 외에는 가족 단위로 온 듯한 이들이 한 팀. 그리고 실망한 나. 한참을 걸어 도착했는데 더 이상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 삐걱거리는 길을 따라 반대 쪽으로 가봤다.

 

 

 

 

 

 

 

《 반대 쪽에서 봐도 감흥이 달라지지 않았다 》

 

 

반대 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입구가 시끌시끌하더니, 한 무리의 가족이 더 왔다. 아기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어른들만 신이 났다. ㅋ

 

《 정황(?) 상 화장실이 아닐까 싶었던 건물 》

 

 

드론도 띄우고,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10분 만에 다 봐버려서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도저히 다시 걸어서는 못 가겠다. 그래, 버스를 타자!

 


 

 

 

왔던 길을 되돌아 가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목이 말랐지만, 콜라나 환타 대신 시원한 맥주를 꿀떡꿀떡 마셔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나이를 먹어 귀차니즘이 심해지긴 했지만 나는 원래 J의 정점을 찍은 사나이. 번역기를 돌려 '버스 요금이 얼마입니까?'를 몽골어로 띄웠다. 그리고 계산기를 실행했다. 얼마인지 찍어달라고 할 셈이었으니까.

버스 정류장 한 쪽 그늘에 길다란 손톱이 인상적인 처자가 보이기에, "Excuse Me~" 하고 다가가서 번역기를 돌린 화면을 보여줬다. 읽어보더니 자기 손전화로 찍어주려 하기에 잽싸게 앱을 전환해서 계산기를 띄운 뒤 들이 밀었다. 500을 찍어주었다. "Thank you~" 하고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무뚝뚝한 표정에, 아무 반응이 없다. 신이 됐든, 램프의 요정이 됐든, 소원 하나만 들어준다고 하면 평생을 박보검이나 차은우의 얼굴로 살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두 대의 버스를 보낸 후 구글 지도에서 타라고 안내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정류장에 안 서고 그냥 지나가버려서 당황했는데 조금 앞에서 멈춘다. 버스 요금을 알려준 처자가 내 앞에서 버스에 올랐다.

마침 지갑에 50 투그릭 지폐가 많았기에 열 장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버스에 타니 돈을 넣는 통이 없다. 카드를 찍는 기기 밖에 안 보인다. 당황해서 도로 내릴 각오를 하고 기사님에게 "Card Only?"하고 물어봤더니 손짓을 한다. 누가 봐도 돈 넣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Here?" 하니까 끄덕끄덕한다. 그래서 거기에 반으로 접은 지폐 뭉치(?)를 넣었다. 그리고 맨~ 뒤로 가서 앉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 아주머니 한 분이 양 손 가득 묵직한 비닐 봉투를 들고 탔다. 창문을 닫더니 뭐라 뭐라 한다.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이겠냐 싶어 무시했는데 나를 툭툭 치며 먼지가 잔~ 뜩 묻은 손을 보여주면서 또 뭐라고 한다. 아마도 지독한 매연을 보여주시는 게 아닌가 싶더라. 몽골 말을 못한다고 했더니 앞에 있는 다른 아줌마한테 말을 걸며 의자를 구석구석 닦았다. 곧 내려야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왜 몽골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현지인으로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 고찰했다. (⊙_⊙;)

 

어떻게 내리는지 궁금해서 벨을 찾아 봤는데 하차 벨이 없었다. 정류장마다 다 멈추고, 문 앞에 서 있으면 알아서 열어주는 시스템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동안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던 곳이었다. 내일 모레면 반 백 살인데, 혼자 버스 타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뿌듯해했다.

 


 

땀도 많이 흘렸겠다, 숙소에 가서 샤워하고 잘까 하다가 낮술 마시고 들어가기로 했다. 갔던 곳은 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서울의 거리 쪽으로 가다가, 공연장이 보여 티켓을 알아봤는데 14시부터 14시 30분까지가 점심 시간이란다. 사람이 없다. 근처에 아이리쉬 펍이 있기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 왼쪽이 칭기스 맥주, 오른쪽이 칭기스 흑맥주 》

 

《 안주는 매운 닭튀김을 골랐는데 생긴 것도, 맛도, 용가리 치킨이었다 》

 

맥주 두 잔을 순식간에 다 비우고 하나 더 주문했더니 일하는 처자가 능숙한 영어로 흑맥주가 그냥 맥주보다 맛있냐고 물어본다. "아, 고레요리 고레가 못토... 아, 쏘리~ 디스, 어~ 디스 비어,... 어~ 이스 굿!"

2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3개국어 이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은 천재임에 틀림없다.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에도 그랬는데, 초등학교 수준도 안 되는 영어 대신 일본어가 자꾸 튀어나와 당황할 때가 많았다. 몽골에서도 몇 번 그랬다.

 

맥주를 마시며 블로그에 올릴 글의 초안을 대충 끄적거리고 나니 15시였다. 계산해달라고 하니 90,000 투그릭 가까이 나왔다. 우리 돈으로 따져도 36,000원 정도니까 혼자 마신 것 치고 싼 편은 아니다. 그래도, 밖에서 낮술 마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집에 있었더라면 컴퓨터 앞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마른 안주를 뜯고 있었을테니까.

 

공연장으로 가서 몇 시에 쇼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17시라고 한다.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표를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 할 일도 없으니 광장을 거쳐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

 

 

 

 

 

 

여러 개의 게르에서 다양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아는 게 있어야 뭐가 보여도 보일텐데 머리에 든 게 없으니 그저 신기해서 스윽~ 보고 나오는 게 전부.

 

《 동물 뼈인데 저걸 주사위처럼 활용한다. 점을 치는 데에도 쓰는 것 같다. 》

 

 

 

《 게르 미니어처는 하나 정도 사고 싶었는데 가지고 오는 게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 》

 

 

 

사람들이 흥겨운 음악에 춤 추고 있기에 신기해서 보다가 영상도 찍고... ← 영상은 대충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대로 링크하겠습니다. 하루에 여행기 한 편 쓰기도 힘든지라 당장은 좀...

드론으로 찍으면 좋겠다 싶어 일부러 경찰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노가리 까며 희희낙락하고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몽골인(?) 때문에 놀랐다. ㅋㅋㅋ   드론을 띄워도 되겠냐고 번역기를 돌린 화면을 보여줬더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줬다. "노!!!" (⊙_⊙;)

 


 

숙소로 돌아가 대충 땀만 씻어내고, 올 때 입었던 바지와 래시 가드로 비루한 몸뚱이를 가린 뒤 나머지는 전부 세탁을 맡겼다. 얼마 뒤에 찾으러 오면 되겠냐고 물어봤더니 두 시간 뒤에 오라고 한다. 16시 40분에 맡겼으니 18시 40분이면 되겠고만.

밖으로 나가 어제 들렀던,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펍에 가서 맥주와 떡볶이를 주문했다. 참치 김치 찌개에 도전해볼까 했는데 배가 불러서 포기했다.

 

《 깔끔하고 나름 괜찮은 분위기의 펍에서 참치 김치 찌개가 팔리고 있는 모습 》

 

 

《 안주로 나온 떡볶이와 닭강정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같은 맛이었다 》

 

《 첫 날 편의점에서 산 뒤 안 먹고 있던 김치찌개 맛 양파링 》

 

하루종일 뭐하고 놀지 걱정이었는데 어영부영 하루가 갔다. 이렇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는 빈둥거리며 보낸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게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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