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진다. 이틀 전에는 옆 방에 있는 ××가 한참동안 시끄럽게 통화하더니, 어제는 쓰레기 차가 그 야밤에 요란을 떨었다. 그렇잖아도 더워서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인데 이런저런 태클이 다양하게 들어와 스트레스를 준다.
적잖이 잠을 설쳤고, 아홉 시에 침대에서 벗어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몽골에서 비를 보는 게 두 번째냐, 세 번째냐. 이 시기에 비가 자주 오는 건가? 내가 날씨 복이 없는 건가?
아무튼. 3박 4일의 투어가 끝나면 공항으로 가기 때문에 UB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 마구 풀어놨던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 가방을 쌌다.
기념품으로 주려고 챙겼던 트래블 메이트의 병따개 두 개를 바비에게 건넸다. 임금과 왕비, 신랑과 신부를 귀여운 모습으로 만든 병따개인데 왕비와 신부만 남아 있더라고. 그걸 받아본 바비가 연지곤지를 가리키며 몽골에도 같은 문화가 있다고 알려준다. 아, 참. 그렇지. 연지곤지는 몽골 문화였지.
《 우리가 타고 갈 푸르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 딱히 아늑하다 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떠나려니 아쉬웠던 UB 게스트하우스 》
《 A1004면 2017년에 나온 제품이니 8년째 활약하고 계시는고만 》
《 게스트하우스 이용과 관련된 안내가 잔뜩 붙어 있다 》
《 한국의 누군가가 영어를 번역해서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은 한글 안내문 》
《 프리우스가 빠져 나가고 푸르공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웠다 》
어제 도착한 쇼 상은 미처 심 카드를 구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테더링 걸어 사용하고 있던 내 와이파이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용량이 부족할 것 같지도 않고, 혹시나 불안해지면 심 카드를 또 사면 되니까.
배가 잔~ 뜩 나온 아저씨들이 게스트하우스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전부 푸르공 기사님들이다. 바비의 지휘에 따라 다양한 투어에 참가하는 분들인데 저런 분들이 엄~ 청 많다고 했다. 별에 별 사람이 다 있을테니 바비의 카리스마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은 결국 나와 쇼 상, 두 명 뿐이었다. 다른 기사님들은 시내에 내려야 해서 줄줄이 푸르공에 올라탔다. 일단 먹거리와 심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국영 백화점으로 향했다.
《 라면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물건들은 죄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국 물건들이 많았다. 음료수와 과자, 라면은 물론이고 화장품이나 가전 제품도 온통 한국의 것들이었다. 물가가 좀 더 낮았더라면, 은퇴하고 나서 몽골에 살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딱히 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다이제스티브를 샀다. 아이슬란드에서 식비 아끼겠답시고 차에서 궁상 맞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레쓰비도 하나 사고, 게르에 가면 물이 안 나온다 하니 마시기도 하고 씻을 때도 써야겠다 싶어 2ℓ 짜리 생수도 하나 샀다. 입맛이 없으면 생으로 먹으려고 봉지 라면도 두 개 사고.
적당히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으니 쇼 상이 나왔다. 나와 다른 기사님들은 다시 차에 올랐고 바비와는 백화점에서 헤어졌다. 잠시 달리는가 싶더니 길 한복판에서 다른 기사님들이 내렸다.
엄청난 교통 체증을 뚫고 달리다가 조금 한적해졌다 싶을 무렵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입구에서 번호판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 같더라. 내가 몽골을 너무 무시했다 싶어 반성하려는 찰라 등장하는 과속 방지턱. 응? 고속도로에서 과속 방지턱?
출발 전에 바비가 말하길, 오늘은 일곱 시간을 이동해야 하니까 다른 건 못하고 도착 지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면 끝이라고 했다. 푸르공의 엄청난 승차감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많이 됐는데 구글 지도를 찍어보니 다섯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나오더라. 하지만 이건 달리는 시간만 표시한 거다. 중간에 쉬면서 밥 먹고 사진 찍고 어쩌고 했더니 정말로 일곱 시간이 걸렸다.
《 한국 같쥬? ㅋㅋㅋ 》
《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것 같은데 배수가 좋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물바다였다 》
《 몽골의 기름 값 》
《 어느 회사의 무슨 타이어인지 알 수가 없다 》
《 진~ 짜 튼튼해보이는데도 여기저기 까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
과거 우리네 호남 고속도로처럼 중앙 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로 도로였다. 추월하다 사고나면 100% 사망한다는 그 도로. 지금은 광주-대구 고속도로로 이름도 바뀌었고 왕복 4차로가 되어 많이 쾌적해졌지만 중학생 때 아버지가 모는 소나타 2 안에서 정면 충돌할 뻔한 기억이 있기에 조금 쫄렸다.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데도 푸르공은 들었던대로 엄청나게 흔들렸다. 신기한 건, 그렇게 흔들리는데도 잠이 오더라. 한 30분 정도 졸다가 깨서 옆을 봤더니 쇼 상도 목이 부러질 듯 흔들리는 가운데 푹 자고 있더라. ㅋㅋㅋ
오래 달리면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그럴싸한 풍경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종종 쉬곤 했다. 50대의 가니 씨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적당히 통했다. 나와 쇼 상이 감탄하며 주위 풍경을 손전화에 담는 동안 가니 씨는 담배를 피웠고, 휠 볼트를 다시 조였다.
가니 씨가 졸려하는 것 같았기에 번역기를 돌려 졸리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프로페셔널한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애송이를 보는 눈빛이다. ㅋ
그래도 심심했는지 둘 중 한 명이 앞에 타라고 한다. 내가 사양하니까 쇼 상이 앞에 앉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나도 나중에 앞에 앉아서 삼각대 세워놓고 달리는 걸 영상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귀찮다고 미루다가 결국 못 찍었다.
100㎞ 넘게 달리다가 깨끗해보이는,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밥을 먹자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점심이라고 하면 열두 시를 떠올리는데, 몽골에서는 14시인 경우가 많았다. 휴게소에 멈춘 것도 딱 14시가 되었을 때였다.
《 안으로 들어가니 시스템 에어컨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
구글 번역기가 있긴 하지만 몽골에서는 그닥 힘을 쓰지 못한다. 일단 한국어나 영어를 몽골어로 번역한 뒤 현지인에게 들려주고 싶어도 음성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커흑~ 타흑~ 하고 목에 걸리는 듯한 소리가 많은 몽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냥 번역한 텍스트를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한글 → 몽골어도, 몽골어 → 한글도, 한 번에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번역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뭔가 의역이 된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일본어는 더 심한지 쇼 상은 번역기를 돌린 화면을 보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자주 있었고.
메뉴에 사진이 있긴 했지만 혹시나 하고 이미지 번역을 해봤는데 역시나 주문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사진만 보고 대충 주문을 했다.
《 가니 씨와 쇼 상이 주문한 음식은 뭔가 설렁탕 비스무리했다 》
《 색깔이 커피처럼 나왔는데, 티백 홍차다. 몽골은 커피보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
가장 많이 마시는 건 우유인지, 양 젖인지, 아무튼 동물의 젖으로 보이는 허여멀건한 뭔가였다. 그냥 밍밍한 맛도 있었고, 소금 간을 했는지 내 입에는 짠 우유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물론 울란바토르에서는 커피 파는 가게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고, 립톤 티백도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니 커피는 아예 없었고 그나마 티 정도를 볼 수 있었다.
《 내가 주문한 음식은 쇼 상이 반 정도를 먹고 난 후에 나왔다 》
사진으로 보면 맛있는 불고기 같지만, 실제로는 많이 짰고, 많이 질겼다. 그나마 밥이 있을 때에는 짠 맛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지만 밥을 다 먹고 나니 조금 먹고 차를 마셔야 할 정도로 짰다. 남들보다 짜게 먹는 편인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평소 음식을 심심하게 드시는 분이라면 소금통을 쏟아부은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게다.
밥을 먹고 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출발. 아이슬란드는 날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뭐 이런 곳이 다 있냐?', '지구 맞아?' 라는 느낌이었다면, 몽골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어디 깡촌에 가면, 산이 없는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감탄이 나온다. 그 광활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엄청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몽골 사람들의 시력이 8.0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고나 싶었다.
한국에서 쓰던 손전화(갤럭시 S23 울트라)에는 물리 심 카드가 하나, e 심이 하나 들어가 있다. 둘 다 SKT이고. 그런데 로밍되는 현지 통신사가 다르더라. 이렇게 될 수도 있나 싶어 신기했다.
가니 씨는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기름을 넣었다. 연료 통이 그 정도로 작지는 않을텐데, 희한하게 자주 주유하더라.
달리면서 보는 풍경은 제주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다. 다만, 제주는 사람 사는 흔적이 쉬이 보이지만 몽골에서는 당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도로 바로 옆에 말, 소, 양, 염소, 야크 무리가 잔뜩이었다. 처음에야 신기했지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되더라.
갤럭시 카메라의 HDR 자동 보정이 조금 들어가긴 했겠지만, 진짜 이렇게 파래도 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쨍~ 한 파랑이었다. 시리도록 파랗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겠더라고.
《 한참을 달리다보니 저 멀리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 》
《 아마도 저 쪽에만 비가 내리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마치 물을 빨아올리는 구름처럼 보였다 》
《 신기해서 찍고 있으니까 가니 씨가 편하게 촬영하라고 차를 세워주었다 》
《 거의 다 왔다! 》
《 도~ 착! 》
《 폐 건물 같아 보이는 곳 옆이 숙소였는데 게스트하우스라더니, 호텔이었다 》
밖에서 보는 모습은 조금 허름해보였는데 정작 건물 내부는 무척 깔끔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오더니 영어로 이것저것 안내해주고 마지막에 방으로 데려다줬다. 침대 두 개가 놓인 방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방에 짐을 두고 잠시 쉬고 있으니 밥 먹으러 오라고 한다. 1층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음식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 빨간 국물인데 매운 맛은 1도 없었고 만두가 들어있어 만둣국 같은 느낌이었다 》
《 이게 몽골 사람들이 자주 먹는 쇼호르. 고기 만두 같은 건데 만두 피가 딱딱하다. 》
《 음식이 느끼한 편이어서 맥주를 주문했다. 몽골이니까 몽골 맥주를 먹자고 생각해서 샀는데... 》
《 어?! 》
왜 한글이 쓰여 있는 거지? ㅋㅋㅋ 몽골 맥주가 맞긴 한데, 한국에서 수입을 한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그걸 몽골에서 다시 가지고 온 모양이다. 한국에서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세계 맥주 전문점 같은 곳에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몽골에 다시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은데... 희한하더라.
술을 마시지 않는 가니 씨에게는 콜라를 건넸다. 그렇게 밥을 먹다가 식사를 마친 뒤 가니 씨는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다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둑어둑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기에 왕복 네 시간 거리라면 그냥 숙소에서 잘 것 같은데, 집으로 가더라. 숙소를 제공해주지 않아서인지, 두 시간 정도는 별 거 아니라 생각해서 집으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땅 덩어리가 워낙 넓어 우리가 생각하는 두 시간과 몽골 사람이 생각하는 두 시간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쇼 상과 나누었다.
맥주를 조금 더 마신 뒤 방에 들러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서 샤워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오더라.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는데 갑자기 전기가 죄~ 다 나가버린다. 얼마 안 있어 켜지긴 했는데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호텔 와이파이가 먹통이다. 결국 테더링을 걸어 데이터를 소모해가면서 유튜브 영상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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