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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행 』/『 해외여행 』 2024, 몽골

2024, 몽골 자유 여행 ⑩ 카라코룸 에르덴 조 사원 & 어르헝 폭포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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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UB 게스트하우스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방을 같이 쓰는 사람이 있어 신경이 쓰인다는 것 뿐. 몸이 많이 피곤하면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거나 글로 옮기기 힘든 비명을 짧게 지르고 거기에 놀라 깨곤 하는데 이 날도 그랬다. 두 번 정도 그랬던 것 같은데 쇼 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른 척 해주었다. 미안하더라.

 

《 묵었던 숙소. 외관은 좀 그런데 내부는 깔끔하고 무척 편했다. 》

 

《 주변 풍경. 바람이 강해서 드론을 오래 띄워놓을 수 없었다. 》

 

 

 

잠들기 전에는 조금 덥다고 느껴 창문을 열고 잤는데, 새벽이 되니 추워졌다. 창문을 닫은 뒤 마저 잤다. 자다가 눈을 떠 손전화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2.99GB 남았다는 내용이었다. 돌아가는 날에야 차 안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리다가 공항에서 와이파이를 쓰면 된다지만,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저걸로 될까 싶어 조금 걱정이 됐다. 유튜브 켜놓고 자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용의 댓가다.

 

 

처음 눈을 떠 창 밖을 봤을 때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었는데, 잠깐 눈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보니 구름이 제법 많다.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도 제법 부는 모양이다. 일단 화장실에 다녀왔고, 샤워하기가 귀찮아서 고양이 세수와 함께 면도만 했다. 물을 만날 수 없음을 떠올린다면 샤워를 해야 했지만, 아침의 귀찮음을 이겨낼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갔더니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짭조름하게 간이 된, 고기가 들어있는 죽 같은 게 메인이었고 빵과 잼, 버터도 같이 나왔다. 원래는 아침을 거의 안 먹는 사람이지만 여행을 다닐 때에만 챙겨 먹게 된다. 다 먹고 올라가다가 식사를 준비해준 호텔 직원을 만났는데 맛있냐고 물어보기에 아주 좋다고 대답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가족이 운영하는 게 아닐까 싶던데,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규모도 꽤 있어 부자일 거라 생각했다. ㅋ

 

가니 씨가 도착했기에 몽골어로 인사를 했더니 영어가 아니라 반가웠던 모양인지 무척 좋아한다. 네일베에서 검색했더니 '안녕하세요'는 '새응배노'로 알려주는 블로그가 많았는데, 실제로는 '샌배노' 정도였다. '고맙습니다'의 발음도 쉽지 않았는데 '바야를라' 정도로 했더니 알아들으시더라. 다른 나라에 갈 때면 그 나라 말을 짧게라도 연습해서 최대한 써보려고 노력하는데, 몽골은 발음 자체가 넘사벽이라 안부/감사 인사 말고는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 오늘 처음으로 갈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에르덴 조' 사원.

나는 이 동네 이름을 '카라코룸'이라 알고 있었는데 몽골어로는 '오보르항가이(Övörkhangai)'라 하고, 영어식으로 번역하면 에르덴 또는 에르데니 주가 된다고 한다. 아무튼, 거기에 위치한 티베트 불교 사원 되시겠다.

네일베 지식백과에 따르면, 1586년에 칸이 3대 달라이 라마를 만난 후 몽골의 국교를 불교로 선언하면서 세워졌다고 한다. 17세기에 많이 망가졌는데 18세기에 고쳐 지었던 것을 20세기에 공산당이 파괴해서 일부만 남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땅 덩어리에 비해 휑~ 한 느낌이긴 했다. 공산당이 모두 함께 잘 사는 걸 주장하는 놈들이 모인 집단인데, 주둥이만 나불거리지 하는 짓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념만 번드르르하지 현실 가능성이 없으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 사원 입구 뒤 쪽으로 신식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

 

숙소를 떠나자마자, 바로 옆의 주유소에서 스님 한 분을 태우기에 '설마 이 먼 곳에서도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 했다. 승복을 입고 있으니 당연히 사원의 스님이라 생각해서, 가는 길이니까 태워준 모양이다. 몽골에는 아직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 게 참 좋더라. 우리는 태워주려는 사람도, 얻어 타려는 사람도, 위험하다 생각해서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사원의 입장료도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직접 돈을 내거나 표를 산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투어 비용에 다 포함이 되어 있어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전부 가니 씨가 해결했다.

 

 

《 벽을 따라 세워진 탑이 사리를 봉안하는 사리 탑이라고 한다. 전부 108개라고. 》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쇼 상을 제외하면 영어로 대화하던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전부. 번역기 돌려가며 천천히 둘러봤다.

 

 

 

 

 

 

 

 

메인(?) 건물이 세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왼쪽부터 천천히 보며 오르쪽으로 옮겨갔다. 마지막 방에 들어가서 둘러보다가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말이 들려왔다. 소리나는 쪽을 봤더니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젊은이가 서 있다. 사진 찍지 말라는 안내문이나 경고가 없어서 무식하게 손전화를 들이댔는데, 뻘쭘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해설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아까 입구에서 가니 씨가 가이드가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는데 한~ 참을 기다려도 안 오기에 그냥 우리끼리 본 거였거든. 아마도 그 가이드인 모양이다. 혹시나 몽골어로 설명해주는 건가 싶어 영어로 해주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부탁한다고 했더니 다시 맨 왼쪽 방으로 데리고 갔다.

몽골에서 들어본 영어 중 가장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였다. 물론 게스트하우스의 바비도 영어가 줄줄줄 나왔지만, 나처럼 제대로 못 알아듣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 굴리지 않는 발음이었다. 그런데 이 가이드 양반은 미국 어디에서 유학이라도 한 모양인지, 아주 그냥 버터 바른 혀가 입 속을 사정없이 굴러다녔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나마 아까 번역기 돌려가며 설명을 좀 본 덕분에, 그리고 길고 긴 문장에서 단어 한, 두 개 알아들은 뒤 내용을 유추하는 게 남들보다 조금 빨라서, 얼추 알아듣긴 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는 쇼 상에게 일본어로 통역을 해주었더니 고맙다고 한다. 영어 잘할 것 같은데... 정말 못하는 건지, 못하는 척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더라. (일본인들 중에는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만 발음에 자신이 없어서 아예 영어를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인지 누워서 쉬고 있던 가니 씨가 뒤에 있는 상점도 보고 오라고 등을 떠민다. 똑~ 같이 생긴 상점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달랑 매 한 마리가 묶여 있기에 사진이나 찍을까 하다가, 틀림없이 돈 내라 할 것 같다 싶어 그냥 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에서 학생 같아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뛰쳐나오더니 호객을 하더라. 안 들어가고 싶었는데 쇼 상이 들어가기에 마지 못해 따라 들어갔다. 기념품은 뭐, 다 고만고만하다. 딱히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지갑에 남은 투그릭도 얼마 안 되었기에 아무 것도 안 사려다가, 그래도 뭔가 다녀왔다는 증거는 가지고 있어야겠다 싶어 카라코룸이라고 쓰여진 마그넷을 하나 샀다. (문제는, 분명히 사서 잘 가지고 왔는데, 여행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못 찾고 있다는 거... (っ °Д °;)っ   에휴~)

 


 

 

기념품 구경은 하는 둥 마는 둥 끝났다. 문을 연 가게는 둘 뿐이었는데 팔고 있는 물건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서 오래 걸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더라. 차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차를 세우고는 다녀오라고 한다. 가라고 하니까 가야지, 뭐. 길을 따라 가다보니 안내 표지가 나왔다. 페니스 스톤... 아, 남근석이고만?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문화이다 보니 그런가보다 했다. 아들을 빌거나 다산을 기원하는 건 우리와 같았지만 최초에는 그 목적이 아니었나보다. 근처의 지형이 여자의 성기와 비슷한 모양이라 음기가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도승들에게 음기가 전해지는 걸 막고자 남근석을 설치한 게 아닌가 싶다. 안내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지.

 

 

 

 

《 건전한 사상이 깃든 내 눈에는 윈도 XP 배경 화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

 

 

《 갈라진 부분이 여성의 성기로 보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음란 마귀가 끼었고만. 》

 

《 아무리 봐도 윈도 XP 배경 화면인데. ㅋㅋㅋ 》

 


 

그렇게 꼬추 돌까지 보고 나서야 어르헝 폭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포장된 도로를 달리면서도 엄청나게 덜컹거렸던 푸르공인지라, '서스펜션은 아예 안 달고 나오는 차인가?' 싶었더랬다. 지금까지는 양반이었다.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니 난리가 났다. 잠깐 방심하면 앉은 키가 크지 않은 나인데도 천장에 머리 부딪칠 일을 걱정할 정도로 차가 튀었다. 이러고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고 하니, 엉덩이에게 몹시 미안했다.

 

 

 

 

《 정말 화장실이 없었다. 오줌이 마려우면 아무데나 세우고 쌌다. 》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 가니 씨는 담배 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엄청나게 피워댔다. 볼 일 보려고 차 세웠다 하면 한 대씩 피우더라. 가니 씨가 담배 피우는 걸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그 때마다 주변 사진을 찍었다. 우리처럼 산이나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지 않으니까, 뻥~ 뚫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맑은 공기 덕분인지 하늘은 더 파랗게 느껴졌고.

 

 

열두 시가 되어 식당에 들어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자리잡고 앉으니 가니 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뜨뜨 미지근하면서 짭조름한 유사 우유(?)가 나왔다. 이걸 물 대신 먹는 게 몽골에서 무척 흔한 일인데 내 입에는 딱히 맞지 않아서 처음에 주는 한 잔 정도만 마시고 더 마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쇼 상은 식당에서 뿐만 아니라 게르에 가서도 몇 번이나 더 따라 마시더라.

각자 주문하는 방식이었기에 쇼 상과 함께 굴라쉬를 주문했다. 번역기를 돌린다 한들 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고기일 게 분명하다는 것 정도?

 

 

잠시 후 등장한 음식은, 역시나. 고기였다. 야크 고기라고 했던가? 아닌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엄청 질겼다는 것 정도?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턱이 아팠을 정도로, 몽골의 고기는 질겼다.

나는 나름 남의 문화에 쉽게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타입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몽골 여행을 통해 어림도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시골을 좋아한다고 떠들어대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도시에 익숙한 몸뚱이를 가진 사람이었던 거다. 게다가 가리는 음식도 많고 입도 짧아 오지 여행 같은 건 어림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쇼 상은 처음 보는 음식에도 서슴치 않고 도전하고 무엇이 나와도 맛있게 잘 먹어서, 조금 부끄러웠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쇼 상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애 같은 건지 쇼 상이 어른스러운 건지.

 

《 워낙 광활하다 보니 파노라마 샷으로 찍고 싶은 순간이 자주 있었다 》

 

 



 

 

《 3박 4일 동안 함께 다녔던 가니 씨와 쇼 상 》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험한 길을 달리는 푸르공. 그 안에서 미친 듯 엉덩이를 튕겨대는 나. 그 전쟁 같은 ㅅ... 아무튼. 한참을 달리다 차가 멈췄다.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경계에서 할아버지 쪽으로 몇 발짝 더 내딛은 듯한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젊은 남자 한 명이 게르를 짓고 있었다. 푸르공에서 내린 가니 씨가 갑자기 간섭을 하면서 게르 짓는 걸 도와준다.

 

 

 

 

 

https://youtu.be/lLFEbBv-yKI

 

 

이건 또 뭔 오지랖인가 싶어 멀뚱멀뚱 쳐다 보고만 있었다. 잠깐 하다 말 게 아니라고 느꼈는지 쇼 상도 게르에 붙어 짓는 걸 도왔다. 바로 가서 같이 일손을 거들자니 뭔가 따라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더라고. 그래서 일단 드론을 꺼내어 주변 풍경을 찍고, 그러고나서 티도 안 나게 살짝 거들었다. 뜬금없이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 게르를 만들고 계시던 분들이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를 제공하는 분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게르와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는 게르를 따로 갖고 계셨다.

게르 한 채를 순식간에 다 만들고 나서 차로 잠깐 이동하니 세 채의 게르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내가 갔던 게르 두 곳 모두 위성 안테나와 텔레비전을 갖추고 있었다 》

 

《 나와 쇼 상이 머물 게르 》

 

《 일단은 짐만 던져뒀다 》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발이 문 쪽으로 향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누워도 될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방문했던 게르에서 그렇게 누우면 안 된다고 하더라.

사진에 보이는 담요는 제법 두툼했는데, 하루 이용했다고 세탁할 리가 없으니 침낭은 반드시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 담요 아래에는 깨끗한 이불 세트가 따로 깔려 있었다. 담요가 조금 칙칙해보여서 찝찝했는데 추위보다 위생이 먼저라면 굳이 안 덮어도 되겠더라고.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난리였는데, 빈대(배드 버그)가 걱정되어 퇴치제를 일부러 들고 갔더랬다. 첫 날은 여기저기 뿌렸지만 둘째 날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뿌리지 않았는데 다행히 물리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외에 세운 숙소이다 보니 벌레는 만날 수밖에 없더라.

 

 

 

 

 

《 말을 몰 때 바이크를 이용하기도 하더라 》

 

 

《 태양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한 뒤 그걸로 스마트 폰이나 냉장고를 이용했다 》

 

《 앙상하게 뼈만 남은 푸르공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

 

 

 

 

 

 

《뒤 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다 》

 

《 저 멀리 작게 보이는 게 아까 도착해서 함께 만들었던 게르 》

 

 

《 똑같이 생긴 건물이 여러 채. 현지인들이 사는 것 같지는 않고, 관광객들을 위한 집이 아닐까 싶다. 》

 

《 저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멋진 경치에 감탄하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나니 만사 귀찮아졌다. 한 것도 없는데 힘이 쫙~ 빠져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널부러져 있다가 라면 하나를 꺼내어 생으로 먹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손전화를 붙잡고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다가 문득 데이터가 얼마나 남았나 싶어 확인해봤더니 이미 15GB 넘게 썼더라. 전용 앱에서는 사용한 용량 확인이 안 되어 손전화에서 확인했는데, 실제 사용한 데이터와 차이가 좀 있는 모양이다. 안 끊기고 계속 터졌으니까. 심지어 속도도 카라코룸보다 빨랐다.

지도를 보니 폭포까지 금방 걸어갈 수 있겠던데 안 가기에, 바람이나 쐴 겸 슬렁슬렁 다녀올까 했는데 알고 보니 말 타고 가는 거였다. 투어를 소개할 때 말도 타고 낙타도 탄다 하더라고. 마침 쇼 상이 말 타러 오라 했다기에 나는 안 타도 된다고, 안 가겠다고 했는데, 말을 타야 어르헝 폭포를 볼 수 있는 거였다.

 

 

 

능숙한 조교(?)가 고삐를 잡고 앞장섰다. 그저 말 위에 앉아 있을 뿐인데 엉덩이에 힘이 들어간다. 잔뜩 긴장했다. 익숙해질 무렵 폭포 앞에 도착. 여기저기 땅에 박힌 나무가 가끔 보였는데 그게 말 고삐를 묶는 기둥이라는 걸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관광객을 데리고 수도 없이 폭포에 왔을 청년은, 능숙하게 울타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다며, 들어오라고 손짓도 하고.

 

 

 

 

 

 

 

 

 

 

폭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박력이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던 물이 어찌 저렇게 되나 싶어 신기하더라. 푸르공을 타고 오는 길에 프리우스가 가끔 보이기에 대단하다 싶었는데, 폭포 앞에서 주차된 프리우스를 볼 수 있었다. 일반 타이어가 아니라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우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아저씨가 말들이 놀랄 수 있으니 드론을 띄우지 말라고 하더라. 알겠다 하고 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안 찍기가 아쉽더라고. 그래서 멀찌감~ 치, 말들로부터 한~ 참 떨어진 언덕에 올라가 거기에서 드론을 띄워 올렸다.

 

 

 

 

 

https://youtu.be/WV6NpDZYfAk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 몽골 청년이 내게 고삐를 넘겨준 후 쇼 상이 탈 말의 고삐를 풀고 있는데 내가 탄 말이 갑자기 걷기 시작한다. 움찔! 했지만 말은 탄 사람이 겁 먹는 걸 기똥차게 알아차린다고,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들었던지라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먼저 출발하는 걸 봤을텐데도 몽골 청년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일단 가만히 있었다. 앞장 서서 걷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는다. 일행들보다 먼저 출발해서 여유가 있으니 그대로 뒀다. 밥 먹는 걸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우그적~ 우그적~ 풀 뜯는 소리가 묵~ 직~ 하다. 저 이빨이라면 내 뼈도 금방 갈려나가겠다 싶더라. 일행들이 도착했는데도 여전히 식사 중이기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몽골 청년이 고삐를 당기면 된다는 시늉을 하더라. 고삐를 당겼더니 고개가 당겨진(?) 말이 식사를 멈추고 걷기 시작한다.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해서 익숙한 모양인지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잘 간다. ㅋㅋㅋ

 

이내 또 고개를 처박고 풀을 뜯는다. 바로 앞에 말똥이 널려 있는데 신경도 안 쓴다. 그러고보면 말도 그렇고, 붕어도 자기가 먹고 마시고 들이마시는 어항에서 똥 싸고 그러는데, 사람만 유난 떠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쓰레기는 거의 안 보이는데 여기저기 유리 파편이 눈에 띄었다. 보드카 병이더라고. 어디를 가나 나쁜 놈들으 있는 모양이다.

 


 

 

 

 

 

 

돌아와서 사진을 더 찍고, 개와 잠시 놀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죽 같아 보이는데 고기가 들어 있다. 야크 고기라고 하더라. 간이 잘 되어 있긴 했는데 고기에 지방이 많아서 그런지 느끼하긴 하더라. 아까 생으로 먹었던 라면의 스프가 남아 있어서 뿌려 먹었더니 한결 낫다. 쇼 상은 아무 것도 뿌리지 않은 채 그대로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한 그릇을 청해 다 먹었다. 대단하더라, 진짜. 어디를 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나 싶었다.

 

밥을 먹고 나서 침대에 누워 손전화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 15GB를 다 쓴 거다. 큰 일이다. 이 외딴 곳에서, 인터넷이 안 되면 할 게 없다. 이런 경우가 생길까봐 웨이브에 있는 『 십이국기 』를 다운로드 받아왔는데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전자 책도 마찬가지고. 이럴 줄 알았음 오디오 북이나 팟 캐스트를 저장해올 것을...

 

몽골의 5월 기온을 보니 아무래도 춥겠다 싶어 깔깔이와 침낭을 챙겨 갔는데, 입고 덮고 해도 쌀쌀하다. 새벽에는 정말 춥겠다 싶어 걱정을 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들어오시더니 난로에 불을 지펴주셨다. 순식간에 온기가 돌더니 이내 덥다 싶을 정도로 따뜻해졌다.

 

어두워지고 별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21시가 됐는데도 밝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22시가 되니 그나마 어두워졌고, 삼각대에 손전화를 올려두고 10분이 걸리는 사진을 찍었다. 문제는, 북두칠성을 제외하고는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별 때문에 몽골 여행을 결심한 건데,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갈수록 별이 점점 많이 보이긴 했다.

한 시간 넘게 들락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잠에서 깼고, 밖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큰 일이다 싶었는데, 하늘이 온통 별이었다.

 

몽골에 별 보러 간다고 하도 떠들어놔서, 돌아가면 직장 동료들이 어땠냐고 물어볼 게 분명한데... 별이 거의 없다고 하면 왜 갔냐고 놀려댈텐데... 그냥 엄청나게 많았다고 거짓말할까?

불과 몇 시간 전에 저런 고민을 했었는데, 말 그대로 하늘이 온통 별이다. 수만, 수억 광년 전의 빛이 하늘에 가득했다. 고개를 잔뜩 꺾어 한~ 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더니, 태어날 때 한 번, 몽골에서 별 본 첫 날에 한 번, 몽골에서 별 본 둘째 낫에 한 번인 모양이다. (°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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