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라서 회사에 안 갔다. 내일까지다. 원래는 인천에 가려고 했다. 김상진 선수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기아의 팬이라면 모를 수 있겠지만, 해태의 팬이라면 모를 수 없다. 1997년 한국 시리즈 5차전에 올라가서 완투하며 승리를 따내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2년 후인 1999년 6월 10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타이거즈 유니폼이 세 벌인데 두 벌에 김상진이 마킹되어 있다. 한동안 야구장에 가지 않아서 조금 쫄리긴 했는데 원정 팬들이 워낙 많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 7일 열한 시부터 표를 살 수 있다기에 열두 시 땡~ 하자마자 나가서 앱을 켰는데, 세상에나~ 원했던 테이블이 있는 자리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행이 있었다면 일반석이라도 갔을텐데 혼자 가니까 일반석에 가는 게 꺼려지더라고. 그래서 포기했다.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니 할 게 없다. 일단 바이크 엔진 오일을 갈아야 했기에 그것부터 해치우기로 했다. 지난 번에 블랙 박스랑 손전화 거치대를 장착했던 업체에서 앱으로 바이크 출장 정비를 해주는 플랫폼을 만들었기에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열 시에 오기로 했는데 열 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얘기했던 열 시는 그 쪽에서 출발하는 시간이었던 모양. 작업은 30분 정도 걸렸다. 굳이 사람이 없어도 된다고 하니 다음에는 출근할 때 놓고 가면서 신청해도 될 것 같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어디라도 다녀와야겠다 마음 먹었고, 마침 강원도에서 라벤더 축제가 있다고 해서 거기로 정했다. 바이크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고속도로로 갈 수 없으니 네 시간 가까이 걸리더라. 장비도 없어서 힘들 것 같아 결국 포기하고 차에 여행용 짐을 실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마저 싣고 출발. 숙소 쓰레기장에 가서 상자와 페트 병 따위를 버린 뒤 강원도로 가려고 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이 변해서 귀찮아졌다. 세 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도착하면 땡볕에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할 것 같으니 가고 싶지 않아지는 거지.
운전하고 가면서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니 또 나가고 싶어지더라고. 대체 무슨 놈의 심보인지. 그래서 바이크를 타고 출발했다. 목적지는 청풍 문화재 단지. 차로 가면 한 시간 반인데 바이크로 가니 조금 더 걸리더라. 똑같이 국도 타고 가는데 왜 그런가 싶었는데, 거의 도착할 무렵 자동차 전용 도로로 빠지더만. 그 쪽으로 가지 못하고 시골 길을 달려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는 거였다.
바이크를 사고 나서 처음으로 100㎞ 넘게 달리는 건데 여러 가지로 배운 게 많다. 일단 엔진 오일을 교환한 효과는 체감할 정도가 된다는 것. 소음과 진동이 확실히 줄었다. 훨씬 부드럽다. 카랑카랑한 소리가 덜 난다.
바이크 장갑은 빨리 사야겠더라. 오랜 시간을 타니까 손바닥이 아프더라고. 판매 중인 바이크 장갑은 딱히 맘에 들지 않아서 골키퍼 장갑을 대신 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둔해질 것 같아 걱정이고. 그래서 망설이느라 아직 못 샀는데 빨리 사야할 것 같다. 그리고, 또... 아, 물 티슈. 벌레 때문에 물 티슈는 꼭 챙겨야 할 것 같다. 헬맷에 엄청나게 붙는다.
자동차보다 연비가 좋다고, 돈을 아낄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게, 엔진 오일 교환하는 데 10만 8천 원 줬거든. 800㎞ 타고 갈았단 말이지. 처음이니까 그렇다 쳐도, 다음은 4,000㎞ 주행하고 나서라 한다. 확실히 차보다 교환 시기가 빠르다. 게다가 헬맷도 어느 정도 쓰다가 바꿔줘야 할 것 같다. 이래저래 장비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아무튼. 청풍 문화재 단지에 도착해서 드론을 날렸는데 신호가 금방 약해져서 원하는대로 마구 날리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10분도 안 되어 다시 내렸다. 이제, 할 일이, 없다.
관광 안내 센터에 들어가 물 티슈 한 장만 얻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마지막 한 장 남았다며 주시더라. 감사했습니다. ㅋ
헬맷 앞에 붙은 벌레 사체들을 닦아내고 다시 출발. 100㎞ 넘게 달릴 때에는 바람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바짝 웅크려야겠더만. 그래도 차가 많지 않아서 신나게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너덜너덜. 세탁기부터 돌리고 그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졸음이 쏟아진다. 중국과의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한 시간 반만 자고 일어나 축구 보면 되겠다 싶어 잤는데... 눈 떴더니 23시가 넘었다.
축구 결과를 보니 한 골 밖에 안 터졌네. 이긴 건 다행이지만 박살내버리길 바랐건만. 그 와중에 태국은 한 골 주고 이겨서 결국 중국이 꾸역꾸역 최종 예선에 올라갔다. 하아... 아예 떨어져버렸어야 했는데. 뭐, 결과를 보니 못 본 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더라.
일찌감치 잔 덕분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오늘은, 일단 근처 동전 빨래방에 가서 겨울 이불을 세탁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서 폴딩 박스에 마구 쑤셔 박아놓은 잡동사니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점심 무렵이 지나면 근처에 있다는 메타세쿼이어 길에 다녀올까 싶다. 왕복 50㎞가 안 되니까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다녀올까 했는데 풍산개 테마 파크를 삽살개 테마 파크로 착각해서 못 갔다. 내비게이션에 삽살개로 검색했더니 경산이 나오더라고. 경산은 ㅇㅈㅂ 7H AH 77I 때문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여행은 떠나지 못했지만 할 일이 많으니 하나, 하나 해치우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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