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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가 열한 번째 우승을 해냈다. 2017 시즌 4월 14일에 단독 1위로 올라선 뒤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고 꾸준히 성적을 냈고, 막판에 추격을 허용하며 간당간당하게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두산과의 한국 시리즈에서 1패 뒤 내리 4승을 거두며 또 하나의 홈 잠실에서 우승 셀러브레이션을 했다.
프로 야구를 알게 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아버지께서 보물섬이라는 만화 잡지를 가끔 사주셨는데 거기에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 선수 캐리커처가 있었다. 오리 궁둥이 운운하면서. 알아보니 가장 강한 팀이라고 해서 그 때부터 타이거즈 팬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것 같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타이거즈 책받침은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어찌 어찌 해서 사들고 다닌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너는 포항 사람이 왜 전라도 팀 응원하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당시에 한 반에 60명이 넘었는데 죄다 삼성 응원하고 나랑 다른 친구 한 명(은 술 좋아하는 아버지 둔 덕에 OB 팬)만 타 팀 팬이었다. 뭐, 애들이 야구고 뭐고 아나. 그냥 포항은 삼성이래, 우리 아빠가 삼성 응원하래, 이러니까 줄줄이 따라 간 거지. 아무튼.
그렇게 타이거즈 팬입네 떠들고 다녔지만 정작 야구장에 가 본 적은 없었다. 야구보다는 축구인 인생이었으니까. 그러다가... PDA 동호회에서 만난 처자와 잠실로 야구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타이거즈 올라올 때면 상대가 LG든, 두산이든, 가리지 않고 갔다. 뭐, 꼬박꼬박 다 간 건 아니고. 아무튼 그 때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면서 술 처먹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이후 김상진 선수 마킹해서 유니폼도 지르고. 한동안 야구 보러 잘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들해졌다. 아마도 포항이 잘 나가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축구 보는 게 너무 재밌었으니까.
지난 시즌 말에 김선빈과 안치홍 돌아오면서 이번 시즌은 할만 하겠다 생각했고. 예상대로 잘 나갔다. 그리고 결국 우승.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데 20승 투수가 두 명이나 나왔고 다른 투수들도 제각각 몫을 해줬으니 성적이 안 나오면 이상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센터 라인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 트레이드로 데리고 온 포수 김민식은 엄청난 도루 저지 능력을 보이면서 타이거즈 팬들의 답답한 구석을 제대로 긁어줬고. 양현종과 헥터로 대변되는 투수들도 훌륭했다. 거기에 김선빈과 안치홍의 키스톤 콤비. 그리고 중견수 버나디나. 이렇게 탄탄한 센터 라인이라니. ㄷㄷㄷ
1차전에서 지는 바람에 조금 불안하긴 했는데... 2차전에서 양현종의 엄청난 호투 보고 이번 시리즈는 무조건 잡겠고나 싶었다. 분위기 타서 내리 4연승하고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5차전의 경우는 쉽게 갈 수 있는 경기였다. 내가 볼 때에는 헥터를 6회까지만 던지게 하고 바꿨어야 했다. 괜히 7회에도 올려가지고 위기 자초한 거 아닌가. 그 전에도 헥터의 공이 계속 맞아나갔는데... 불펜 투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 5차전에 끝낸다는 각오였으니 타자 한 명 막고 내려오는 식으로 운용하더라도 불펜 투수 다 올렸어야지. 7 : 0 일 때에는 시리즈 끝낼 생각 없었던 게 아닐까? 라는 의문 가지는 사람도 있던데, 말도 안 된다. 한 점 차로 쫓기니까 6차전 선발 내정된 투수 올릴 지경인데. 크게 앞설 때 오늘 끝내버리자! 하는 게 정상이지.
아무튼. 올 시즌 내내 투수 교체 타이밍 한 박자씩 늦게 가져가서 피 보더니, 결국 점수 주고. 기어코 한 점 차까지 따라잡히는 꼴 보고 속 터져 숨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양현종이 깔끔하게 마무리.
김기태 감독이 투수 교체 타이밍만 조금 더 빨리 가져갔으면 편하게 이길 경기 아니었나 싶지만. 투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좀 더 긴 이닝 끌고 가게 한 게 아닐까 싶다. 그 염병할 믿음 때문에 타이거즈가 우승한 거고. 성질 급해서 성적 안 나온다고 내쫓거나 바꿔버렸다면 시즌 초 1할 치던 김주찬이나 아무 것도 못하는 버나디나가 이렇게 주목 받았을 리 없었을 거다. 속 터진다고 씹어대긴 했지만 김기태의 기다림이 만든 우승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역대급 먹튀로 인정받는 윤석민이 제대로 부활하고. 한기주도 공 같은 공 던지고. 재계약 대상들 재계약하고. 외국인 선수들도 다 데리고 간다면. 내년 시즌에도 즐거운 야구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깜빡하고 지나갈 뻔 했는데... 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 대박이었다. 노수광 보낸 게 안타깝긴 한데... 이명기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김세현도 훌륭했다.
올 시즌 광복절 에디션 유니폼 사놓고 야구장 한 번을 못 갔는데... 우승 패치 나오면 사서 붙이고 내년에는 야구장 좀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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