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경로 - 실제 경로
티켓팅할 때 보통은 창가와 복도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물어보기 마련인데 이 날은 조금 달랐던 게, 일행인 선배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 한다. 그나마 둘이 같이 앉으려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는 자리 밖에 없다 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날아가는 동안 손 꼭 잡고 있을 것도 아닌데 통로 끼고 앉으면 어때. -ㅅ-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비상구” 쪽인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허... 로또 맞았네.
저가 항공사에서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잉 737의 경우 한 명이라도 더 태우겠답시고 좌석을 초기 KTX 급으로 배치해놔서 앞, 뒤 간격이 엄청나게 좁다. 170㎝가 안 되는 신장이지만 다리가 긴 나 같은 사람도 불편할진데(왜! 뭐! -_ㅡ;;;) 180㎝ 넘는 거인들에게는 고문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비행기에서 그나마 다리 쭉 뻗을 수 있는 자리가 비상구 옆 좌석이다. 비상구는 비행기에서 긴급하게 탈출해야 할 경우 사용하는 문이다 보니 좌석의 앞, 뒤 간격이 다른 곳보다 넓은 것이다. 거기 앉아서 가게 됐는데... 그랬는데...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고 나서 옆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20대 초반의 처자 둘. 시종일관 재잘재잘, 엄청 떠든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의도치 않은 뜀박질 덕분에 더워서 헤드폰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선배 쪽에는 누가 앉았나 싶어 봤더니... 선배 옆 자리 앉은 어르신이 시트에 물을 쏟아 승무원에게 티슈 달라 하고 있더라. ㅋㅋㅋ
출발 전에 두꺼운 패딩을 가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드랬다. 두꺼운 옷을 입어 몸이 부왁~ 부푼 것처럼 되는 걸 엄청 싫어하는 터라 적당히 입고 추우면 위에 또 입고 그래도 추우면 옷 사서 또 껴입자라 생각하고 패딩은 캐리어에 넣지 않았다. 얇은 폴라 스웨터에 약간의 보온이 되는 후드 겹쳐 입었기에 시베리아보다 춥다는 한국에서는 추위를 느끼기 충분한 차림이었지만 아침부터 뛰어서 비행기 탄 덕분에 땀이 뻘뻘 났다. 후드 티셔츠를 벗은 후에도 한동안 더위를 느꼈다.
옆 자리 처자들은 쉬지 않고 종알거렸다. 소음과 더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헤드폰을 뒤집어 쓰려는 찰라, 밥 나눠 주더라. -ㅅ- 기내식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삼각 김밥 하나, 바나나 하나, 요거트 하나, 베리 들어있는 초컬릿 한 봉지, 그 정도였다. 전 날 저녁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그나마 요기가 됐다. 예전에는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도 저런 식으로 바나나 포함된 간단한 먹거리를 줬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안 주더라.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버리고 나니 입국 심사 때 필요한 서류 작성하라고 나눠준다. 다른 건 괜찮은데... 숙소 주소가 문제다. “입국 심사 때 곱게 통과하려면 숙소 주소와 전화 번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비행기 뜨고 나서도 보고 적을 수 있도록 손전화로 사진 찍어두던가 어디 적어둬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한글 문서로 작성한 여행 계획 문서를 다운로드 받아 손전화에 저장해둔 뒤 그걸 보고 적는데... 이번에는 그걸 안 해놓은 거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하긴, 미리 해도 되는데 이번 여행은 좀 엄벙덤벙했지. 그래도 직업란에 예전에는 Employee(고용인. 보통 회사원 정도로 이해하면 됨.)라 썼었는데 이번에는 일본어 공부했답시고 かいしゃいん(카이샤인 - 회사원)이라고 썼다. ㅋㅋㅋ
음... 지금 글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일본어로 쓰는 거였으면 히라가나로 かいしゃいん이라 쓰는 게 아니라 한자로 会社員이라 쓰는 게 맞는데... 결국 바보 짓 한 거였나? -_ㅡ;;;
세관 신고서도 작성해야 했는데 일행은 하나만 써도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일행이라고 한 장만 쓰는 게 아니라 가족일 경우에만 한 장으로 퉁 쳐도 되는 거였다. 선배와 나는 일행이지만 가족은 아니니 따로 썼다. 뭐, 세관에 신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서류 다 쓰고 나니 할 게 없다. 자리가 불편해서 잠도 안 오고. 손전화에 저장된 만화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간사이까지는 제주도 가는 거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느낌인데 도쿄 가는 건 확실히 '어라? 그래도 좀 간다?' 하는 느낌. 두 시간을 날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장으로 가는 길에 포켓 와이파이를 꺼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클라우드에 저장해둔 여행 계획 문서를 다운 받아야 주소란을 마저 채워넣을 수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벨트 쌕에 있던 동전이 우수수 떨어졌고... 종알거린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옆 자리 젊은 처자 중 한 명이 열심히 주워주었다. T^T 아까 시끄럽다고 속으로 미워해서 미안해요.
우리나라에서 나올 때, 그러니까 출국 수속을 할 때에도 그렇지만 일본으로 들어갈 때에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여권의 사진 있는 면을 스캔하고” → “양 손 검지 손가락의 지문을 스캔한 뒤” → “얼굴 나오도록 사진 찍고” → “직원을 통해 여권에 도장 쾅!”이 그것이다. 간사이 공항에서는 여권을 들고 직원 앞으로 가면 직접 여권을 스캔하고 기계에 손가락 올리라 하고, 사진 찍을테니 모자 벗으라 하고, 뭐 그랬는데... 나리타는 들어오는 사람이 간사이보다 훨씬 많아서 그런가 조금은 달랐다.
열 대의 기기가 놓여 있는데 차례로 그 기계 앞에 가서 여권 스캔, 손가락 스캔, 사진 촬영을 하는 거다.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 있어서 어렵지는 않지만 뭔가 셀프로 처리하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서 여권을 들고 직원에게 가면 도장 찍어주는 식이었다. 아마도 입국하는 사람이 많을 경우 일일이 다 직접 하려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머리를 쓴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따로 뭔가 물어보는 건 없었다. 선배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그레이션 끝난 사람에게 여기 서 있으면 안 된다고, 나가라고 손짓 하기에 스윽~ 나가서 수화물 찾는 곳으로 갔다. 내 캐리어는 금방 발견했지만 선배의 캐리어는 한 번 열었다 닫은 덕분(전의 글을 참조)에 내 캐리어와 따로 나왔다. 세관 직원에게 신고서 들이미니 몇 명이냐고 물어서 두 명이라 대답했다. 예전 같으면 투! 하고 말았을 건데 공부했답시고 후타리데스~ 하고 나서 혼자 막 뿌듯해했다. 초등학교 수준도 안 되는 단어 조금 안다고 이렇게 뭔가 더 아는 기분인데 더듬더듬이라도 듣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질지.
나리타 공항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았다. 히로시마 공항보다는 당연히 컸지만 간사이 공항보다는 작은 느낌. 선배는 날아오는 두 시간 동안 참은 담배를 피우겠다며 흡연 구역을 찾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힘들게 느껴졌던 흡연 구역 찾기의 시작”이다. -_ㅡ;;;
공항 밖에서 담배 피우는 곳을 찾았고 선배가 담배 피우는 동안 옆에 있는 벤치에서 멍 때리고 있었다.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이동. 한 층 내려가면 교통 카드를 살 수 있다는 걸 미리 알아놓은 덕분이다.
내려가니 바로 “게이세이” 안내 부스가 보인다. 바로 옆에 자판기들이 있는데 낯익은 핑크 색의 “PASMO” 로고가 있는 걸 보니 저기에서 구입하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SUICA” 카드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JR” 로고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JR 로고가 보이기에 그리로 향했다. 자판기가 있긴 한데... 있긴 한데... SUICA 구입과 관련된 메뉴가 보이지 않는다. 한글을 지원하는 기기였는데 일본어, 영어로 바꿔봐도 안 보인다. 이 기계는 안 되는 건가? 싶어 옆에 있는 기계, 그 옆에 있는 기계, 몇 대를 더 봤지만 같은 구성의 메뉴.
결국 옆에 있는 부스로 가서 줄을 섰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금방 빠졌고... 이번 여행에서는 최대한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리라 다짐한 나는 "스이카 카도 카우 도꼬데스까?" 라고 엉터리 일본어로 질문을 했다.
스이카 카드를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 スイカカードを買うところはどこですか?(스이카 카도 오 카우 토꼬로와 도꼬데스까?) 가 맞습니다.
다행히 알아들은 직원이 여기서 사면 된다 했고. “보증금 ¥500을 제외한 금액이 충전된다”, “카드 반환 시 수수료 ¥220 떼고 남은 돈과 보증금 돌려준다”라는 내용을 일본어로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 중간 들리는 금액 부분과 쉬운 단어 몇 개 만으로도 대강 알아들었다. 하이~ 하이~ 하면서 알아들었다고 고개 까딱, 까딱 하고. 얼마 충전하겠느냐고 물어봐서 ¥10,000 해달라 하고 돈을 건넸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0만원이니까 교통비 비싼 일본에서도 5일 동안 쓸 거 치고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충전하는 셈이었는데 스이카 카드는 교통 시설 이용 뿐만 아니라 자판기 등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니까 일단 넉넉하게 하자고 생각했다. 선배도 옆에서 보고 있다가 손으로 나와 자신을 가리키며 "쌔임~" 한 마디 해서 카드 구입했다. ㅋ
카드를 사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어찌나 화창한지...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이 날 최저 기온이 0도로 예보되어 있었는데 시베리아보다 춥다는 한국에 있다 와서 그런가 1도 춥지 않았다. 따뜻~ 하니 딱 좋더라.
선배가 음료수 마시고 싶다기에 근처에 보이는 “자판기로 가서 스이카 카드로 음료수 뽑았다”. 스이카 첫 개시다. 동전으로 뽑을 때에는 동전을 먼저 넣고 먹고 싶은 음료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스이카의 경우는 버튼을 먼저 누른 후 카드를 갖다대는 식이다. 나는 일본 가면 늘 “칼피스(우리나라 밀키스나 크리미 같은 음료)”를 뽑아 마시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유자 향이 나는 따뜻한 음료를 마셨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먹을 거나 마실 거 종류는 일본이 확실히 다양하다.
“31번 승차장 앞에서 버스 타야 한다”고 들었는데 1번, 2번, 이런 식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기에 '대체 얼마나 큰 거야!' 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확~ 건너뛰고 바로 30번대로 가더라. 낚였다.
승차장 쪽으로 향하니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직원이 표 있냐고 물어 본다. 없다고 손을 저으니 알겠다며 뒤쪽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선배와 차례로 화장실 다녀와서 잠시 빈둥거리고 있자니 버스 도착. 나리타 액세스 타는 줄 알고 있었는데 JR 어쩌고 하는 버스였다. 뭐, 긴자까지 가기만 하면 되니까. ㅋ
여행 가기 전에 검색해보니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사람들 열에 아홉이 NEX, 넥스라 불리는 기차 타기에 당연히 그거 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버스도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고속도로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되긴 하지만 한 시간 정도면 도쿄 역이나 긴자 역까지 갈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도 다양해서 편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할인 행사를 해서 왕복 40,000원인 넥스에 비해 딱 절반 가격이라는 게 큰 장점입니다. 숙소가 도쿄 역이나 긴자 역에서 멀지 않다면 버스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게이세이 버스, 나리타 액세스, JR 버스 등이 운행 중인데 가격은 같고 시간만 다릅니다. 사전에 예약 안 하고 공항에서 31번 승차장 찾아 가면 바로 탈 수 있습니다.
여러 호텔의 셔틀 버스가 수시로 지나다닌다. 염병할 APA 호텔은 여행 기간 내내 너무 자주 보여서 기분 나빴다. -_ㅡ;;;
버스에는 110V 콘센트가 있어서 휴대 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 나리타 액세스 같은 경우는 버스 맨 뒤에 화장실도 있더라.
차가 다니는 방향이 다를 뿐, 고속도로의 풍경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듯. 버스 전용 차선 같은 건 없는가보더라.
그래도 일본 가서 몇 번 이용해봤다는 이유로 ANA 호텔 보면 괜히 반갑고 그러더라. ㅋ
저 멀리 도쿄 스카이 트리가 보여 잽싸게 찍어봤다. RX10의 600㎜ 줌은 분명 대단하지만 흔들리면 말짱 꽝이다. -_ㅡ;;;
뭔가 보여서 그냥 찍어봤는데 역광이라 시커멓게 찍혀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ㅅ-
공항에서 켠 포켓 와이파이로 인터넷 접속하는 걸 알려주었기 때문에 선배는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야스쿠니 차일드를 켰다. 여행 내내 스마트 폰을 손에서 내려놓을 줄 모르던 선배였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게 야스쿠니 차일드. -_ㅡ;;; 내 기준에서는 바깥 풍경 보고 가는 게 당연한 건데 선배는 그런 건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듯 했다. 뭐, 사람마다 스타일은 다를 수 있으니까.
같이 여행 간 선배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일들을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갔다. 선배는 야스쿠니 차일드 했다며? 뭐, 적당히 눌러주면 알아서 되는 모양이더라. -ㅅ- 고속도로를 100㎞/H 정도의 속도로 꾸준히 달리더니 이내 시내에 들어섰고 도쿄 역에 잠시 섰다가 긴자 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캐리어 받아들고 당당하게 방황하기 시작했다. -_ㅡ;;; 도쿄도 처음이고 긴자도 처음이다. 어디로 가야하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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