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토요일 비
금요일에 비가 오락가락 하더라니... 토요일 아침 일찍 눈 떴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이사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다며? 난 이사할 때마다 비가 오는데? -_ㅡ;;;
여덟 시 조금 넘어 이삿짐 센터에서 사람이 왔다. 견적 내러 온 아저씨가 올 줄 알았더니 한참 더 젊어 보이는 아저씨가 와서 '술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 궁시렁. 성격은 좋아보이는데 껄렁껄렁해 보인다. 같이 온 아저씨는 집이 포항이란다. 나이가 더 많은지 껄렁이가 형이라 부르긴 하는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막 부려먹는다.
짐 옮기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막 쏟아진다. 젠장!
미리 짐을 싸놓은 덕분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구석 구석에 먼지가 쌓여 좀 더럽긴 한데... 빌라 통틀어서 가장 깨끗한 집일 거라고 50,000% 자부한다. 이사 올 때처럼 휑~ 한 집을 보니 뭔가 짠~ 하다. 수요일과 일요일마다 근처 교회에 오는 ㄱㅅㄲ들 때문에 짜증나고 새벽 두 시에도 뒤꿈치로 쿵쿵거리고 걷는 미친 ㄴ 사는 윗 집 때문에 스트레스 받긴 했지만 40년 평생 산 집 중 가장 좋은 집이었다. 이젠 더 볼 일 없겠지.
이삿짐 센터 아저씨에게 이사갈 집의 주소를 주고, 나는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미리 예약한 렌터 카 받으러 가야 한다. 옆으로 메는 가방에, 노트북 백팩에, 신발까지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전기 요금 낼 생각에 계량기 사진 찍고... 택시 탔다. 타자마자 나는 쿰쿰한 냄새. 어눌해 보이는 기사 아저씨가 좌회전 하냐고 길을 물어본다. 나도 모르는데. -ㅅ-
내비게이션 따라 잘 가는가 싶더니 여기서 내리면 안 되냐는 식으로 말한다. 내비게이션 보니 조금 더 가야 되는고만은. 비도 오고 그래서 좌회전 해달라고 했더니 '아니, 더 가도 되긴 하는데...' 하면서 말을 뭉개기에 짜증스러워서 그냥 세워달라고 했다. 그 와중에 100원 더 받으려고 미친 듯 비빈다.
내려서 렌터 카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가려는데... 건물 뒤 편이라 들어가는 문이 안 보인다. 궁시렁거리면서 건물 앞 쪽으로 가서 앨리베이터를 탔다. 평소 같으면 2층이니까 걸어올라갈텐데 짐이 너무 무거웠다.
사무실 도착하니 한 명 뿐인 직원이 통화 중. 통화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기다려달라고 입 모양으로 얘기한다. 괜찮다고 손짓하며 잠시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았다.
차는 짙은 회색의 아반떼. 원래는 SUV를 빌리고 싶었는데 빌릴 수 있는 차가 없더라. 아반떼는 모델 명을 희한하게 붙여대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존에 타던 푸조 308이 워낙 특이했던 녀석이라... 간만에 현대 차 타니까 적응이 안 된다.
일단 스티어링 휠. 흔히 핸들이라 잘못 부르는 방향 조작하는 동그란 거. 푸조 차들은 스티어링 휠이 엄청 작다. 보다 스포티한 제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F1 머신의 스티어링 휠은 진짜 뭣만 하다고. -ㅅ- 아무튼... 그 작은 스티어링 휠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아반떼의 그것은 엄청 크게 느껴졌다.
그 다음은 와이퍼와 방향 지시등 조작 막대기. 내가 타던 308은 그 뒤에 크루즈 컨트롤하는 막대기도 있고 패들 시프트 레버도 있어서 뭔가 복잡한데 아반떼는 달랑 막대기 하나씩만 달려 있더라. 뭔가 허전한 느낌.
속도 표시계도 다른데, 308은 왼쪽의 속도 표시하는 녀석이 오른쪽의 RPM 표시하는 녀석과 대칭이다. 속도 표시하는 건 왼쪽이 0이고 시계 방향으로 바늘이 돌아간다. RPM 표시하는 건 오른쪽이 0이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아반떼는 둘 다 왼쪽이 0이고 시계 방향으로 돌고. 이건, 뭐... 푸조 차량이 특이한 경우다.
속도 표시하는 아날로그 바늘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가운데 표시창에 디지털로 속도를 띄워서 자주 봤는데... 아반떼는 그게 안 된다. 설정에 따라 미니 내비게이션도 나오고 라디오나 음악 정보도 나오는 등 표시하는 게 더 다양하긴 한데 디지털로 속도를 안 띄워준다. 답답했다.
스탑 앤 고? 스탑 앤 스타트? 오토 스탑? 메이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긴 한데, 정차 시 자동으로 시동 꺼지고 출발하면 바로 켜지는 거. 이건 진짜 푸조 차 못 따라가는 것 같다. 푸조 차는 브레이크에서 발 떼려 하면 바로 부르르~ 떨면서 시동이 걸린다. 마치 내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거라는 걸 알았다는 듯이. 이게 어떤 경험과 비슷하냐면, 하드 디스크 쓰다가 SSD로 바꾼 뒤 구글 크롬 실행했더니 내가 너 클릭할 줄 알았다! 라는 듯이 바로 창 띄워버리던,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아반떼는... 둔하다. SSD 쓰다가 하드 디스크로 돌아간 기분.
오토 라이트도 마찬가지. 308은 터널 진입하자마자 라이트가 켜졌다. 빠져 나오면 잠시 후 꺼졌고. 터널이 잇달아 나오는 구간에서는 꺼졌다 켜졌다 난리겠고만~ 이라는 내 예상을 가볍게 무시하며 켠 상태를 유지했다. 대체 센서가 어디 붙어 있기에 저렇게 귀신 같이 켜지고 꺼지는 거지? 라 생각했는데... 아반떼는 둔하다, 확실히. 터널 사이 간격이 짧은 구간에서는 내부 조명을 어둡게 했다가 터널 빠져나가면서 다시 밝아지는데 그 때에는 이미 다음 터널 진입한 상태인 적도 있었다.
308은 앞 좌석 뿐만 아니라 뒷좌석도 모두 원 터치로 끝까지 창문을 올리고 내릴 수 있었다. 운전석 뿐만 아니라 각 좌석에서도 마찬가지. 그런데 아반떼는 운전석에서 내리는 것만 원 터치. 물론 이건 옵션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만... 불편하긴 했다.
아반떼는 근처로 가니까 접혔던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펴지더라.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건 좀 편했다. 별로 쓰잘데기 없더라도.
3일 동안 아반떼 빌려 타면서 절실히 느꼈다. 내가 타던 푸조 308이 얼마나 좋은 차인지. 유학 다녀와서 디젤 푸대접 안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푸조 차 살 거다.
안성 IC가 코 앞인데 장호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보통은 내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지만 워낙 확실한 길이기에 내 생각대로 갔다. 그런데 경부 고속도로 올라간 뒤에도 바로 빠지라고 안내한다. 이상하다 싶어 망향 휴게소인가 어디인가,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설정을 보니... 무료 도로 우선으로 되어 있다. -ㅅ- 설정 바꾸니 제대로 안내하기 시작.
중간에 휴게소 들러 화장실만 냉큼 다녀온 뒤 한 번을 안 쉬었는데... 이삿짐 실은 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니, 내가 렌터 카 받으러 가서 시간 까먹고 어쩌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5톤 짜리 그 큰 차가... ㄷㄷㄷ
일단 이사짐 죄~ 다 내려 빈 방에 투척. 방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짐 다 내린 후 선금 제외한 이사 비용을 지불하고... 나는 난장판이 된 방으로 가서 정리를 하기 시작. 한참을 땀 뻘뻘 흘려가며 정리해서 그나마 좀 나아졌다. 그러고 있는데 친척 누나랑 매형 와서 같이 밥 먹고, 소주 일 잔 하고 잤다.
16일 일요일 비 오다 갬
자다 일어나서 먹는 둥 마는 둥 밥 먹고... 똥 싸지르고... 빈둥거리다가 슬슬 출발했다. 영천 휴게소 들러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동 먹고... 엄마한테 문자 메시지 보냈다. 돈 갚으러 간다고.
한참을 달려 ○○ 도착. 빈 상자 들고 올라갔다. 문 두드리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안 나 그냥 번호 누르고 문 열었더니 엄마가 나오고 있네. 엄마나 나나 서로 어색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계좌 번호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가 가지고 갈 짐을 챙기기 시작. 일단 포항 사인 볼, 포항 유니폼 챙기고... 은하영웅전설 책도 챙기고... 가지고 가야 할 것은 엄청 많은데... 그러기에는 상자가 너무 작다. 하긴... 저기도 몇 년의 내 흔적이 고스란히 있으니까...
결국 DVD도 다 포기하고 수많은 책도 거의 못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이 짐 싸고 엄마가 준 계좌로 돈 부쳤다. 그리고 간다~ 하고 나왔다. 그걸로 끝.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의지로 엄마를 만날 일이 있을까 싶다. 뭐, 그렇게 모질게 마음 먹게 만든 것도 엄마고, 그런 마음 물려준 것도 엄마니까. 난 적어도 동생처럼 엄마 돈 뜯어먹고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으니 좀 덜 욕하겠지.
다음은 광주. 살아있는 엄마와 의절하고 돌아가신 아빠 만나러 간다. 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베베 꼬였을까? 뭐, 온전히 내 탓은 아니라고 우겨 본다.
아빠 살아 계실 때에도 '다시는 안 본다' 하고 실제로 안 봤다. '돌아가시고나 볼까' 라 하고 실제로 그랬다. 엄마도 그럴 거다. 살아보니... 가족이고 나발이고 다 짐이다. 나한테 힘이 되는 가족 같은 건 없다. 다 짐이다.
아무튼... 광주 도착하니 17시다. 원래는 빛 바랜 조화 뽑아낸 뒤 새 조화 꽂아놓고, 숙소에 차 세워둔 뒤 택시 타고 다시 가서 아빠랑 소주 한 병씩 나눠 마시고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어쩔 수 없이 조화 사면서 소주 한 병 샀다. 나는 차 있으니 못 마시고 아빠만 따라 드려야지.
지난 번에 갔을 때 꽂아둔 무궁화 조화는 빛이 제법 바랬다. 그래도 뽑아낼 정도는 아니어서 그대로 뒀다. 다른 조화는 다들 하얗게 변해서... 뽑아냈다. 동생이라는 년이 아빠 돌아가시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와서 감기 걸리지 말라는 개소리 적어놓은 꽃 바구니는 삭을대로 삭았다. 미련없이 버렸다. 새로 산 조화를 적당히 꽂고, 무성한 잡초와 잔디를 뽑아냈다. 그리고 나서 소주를 조금씩 나누어 따라 부었다.
돌아가신 지 2년이나 지났고, 몇 번 다녀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과자랑 콜라 올려놓고 나니 갑자기 울컥! 해서 나도 모르게 질질 짰다. 안 울려고 했는데 울어지더라.
일본 다녀온다고 인사 드렸다. 경기도 광주 살면서도 1년에 두 번씩은 갔는데, 전라도 광주 살면서 돌아가시고 달랑 한 번 온 동생이라는 ㅆㅂㄴ이 와봐야 얼마나 더 오겠나 싶어 슬펐다. 아빠 맞은 편 자리도, 왼쪽 자리도, 오른쪽 자리도, 잡초만 무성하고 조화도 하~ 얗게 변해 방치된 듯 보이는 게 참 없어 보였는데... 주변에 그런 자리가 많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내가 6개월에 한 번이라도 못 오면 어쩌누 싶어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살아 계실 때 잘 하지, 돌아가시고 무슨 궁상이냐고? 100개의 가정에는 100개의 사정이 있는 거외다.
그렇게 살아있는 엄마와 의절하고, 돌아가신 아빠께 인사 드리고, 숙소로 향했다. 모텔 방 체크인 한 후 식당 찾으러 가는데... 광주 역 부근 상권이 얼마나 죽었는지 죄다 문 닫은 가게다. 숙소에서 조금 멀리 가니까 풍남옥이라는 가게 보여서 콩나물 국밥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랑 안주 사들고 숙소 들어와서 씻고... 텔레비전 보면서 한 잔 마시고... 빈둥거리다가 에어컨 빵빵하게 켜놓고 잤다.
- 아침부터 청소비 부쳤냐는 메시지가 와 있다. 전에 살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쯧...
- 일어난 김에 가스 회사 전화하니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요금 알려준단다. 관리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전달.
- 전기 요금은 내가 계량기를 사진으로 찍어놔서 요금 내는 게 수월했다. 바로 납부하고 끝.
- 청소비 부치고 끝. 내일 가스 비용 알려주면 그거 보내는 걸로 깔끔하게 끝난다.
-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청소비 보냈냔다. 보냈다고 하니까 계좌 번호를 알려 달란다. 계좌 번호는 왜요? 라고 물어보니 보증금 돌려 받아야 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_ㅡ;;; 얘들은 뭔 일을 이 따위로 하는 거지? 집 주인한테 받았다고 하니까 알겠다 하고 끊는다. 허...
- 빈둥거리다가 짐 정리해서 체크 아웃.
- 별로 서두를 이유가 없는데 희한하게 밟게 된다. 중간에 과속 카메라 못 봐서 110㎞/H 정도로 통과했는데 찍혔을랑가? ㅠ_ㅠ
- ○○에 도착해서 차 세워두고 은행으로 갔다. 환전한 돈 찾고... 대출한 상환한다고 해서 다 갚았다.
- 한 10년 바짝 모아야 될 돈인데 이렇게 쉽게 왔다갔다 하나? 싶어서 이상한 기분.
- 생각해보니 전입 신고도 안 했다 싶어서... 주민 센터까지 걸어갔다. 꽤 멀다. 전입 신고 마치고... 예비군 중대까지 들러 방금 전입 신고했는데 추가로 할 거 있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예비군 중대장으로 추정되는 냥반은 동네 아저씨 같은 복장으로 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쓴채 통화하기 바쁘고, 누가 봐도 현역 못 가게 생긴 것들 쪼로록~ 앉아서 시큰둥하게 대꾸하고... 저런 것들에 비하면 부대에서 일하는 애들은 진짜 고생하는 거지. ㅆㅂ 나중에 귀찮게 하기만 해봐라. -ㅅ-
-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렀다. 은행 가기 전에 전화로 미리 물어봤을 때 17시 20분 전에 접수하면 그 날 바로 보낸단다. 그 후 접수는 우체국에서 보관하다가 다음 날 보낸다 하고. 렌터 카 반납이 17시라서 16시 30분쯤 짐 가지고 올 건데 다음 날 보낼 수 있냐고 물어보니 된다고 한다. 걸어서 집에 왔다가 차에 짐 싣고 출발.
- 우체국에서 무게 달아보니 11㎏ / 19㎏ / 22㎏ 나왔다. 그 와중에 상자 하나에 향수 들어있어서 빼야 했다. 저렇게 세 개 다 해서 26만원 조금 안 들었다. ㄷㄷㄷ
- 렌터 카 회사 가서 차 반납하고 택시 타고 복귀.
- 빈둥거리다가 밥 먹으러 가서 밥 먹고... 걸어서 집에 왔다.
- 내일은 딱히 계획이 없지만 집에만 있기도 심심하니까... PC방에나 가서 게임이나 좀 하다 올까 싶다. 그렇게 내일 하루 빈둥거리면서 보내고... 저녁에 짐 싸고... 모레 출발이다.
- 아빠 빚 600만원도 갚았고... 전세 자금 대출 받은 거 5,000만원도 상환했고... ○○○ ○○ ○○ ○○에서 생활 자금으로 빌린 1,000만원도 갚았고... 엄마한테 갖다 쓴 3,000만원도 갚았다. 이제 빚 하나도 없다. 얼마 안 되는 벌어놓은 돈은 일본 가서 다 까먹고 오겠지.
- 아무렴 어떠냐. 곧 새로운 시작이다. 후아!
'『 포장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04월 01일 수요일 흐림 (아직은 적응 중) (0) | 2020.04.01 |
---|---|
2020년 03월 31일 화요일 맑음 (메인 블로그에 일기 쓰는 건 오랜만이고만!) (0) | 2020.03.31 |
2018년 08월 26일 일요일 비 (0) | 2018.08.26 |
2018년 08월 10일 금요일 맑음 (0) | 2018.08.10 |
2018년 08월 02일 목요일 맑음 (2) | 2018.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