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2월 12일이 됐다. 비행기 표를 예매할 때에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참...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13시가 넘어서야 씻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코난(미래소년이나 명탐정은 아니고, D.I.Y. 용품이나 원예 용품 등을 위주로 온갖 제품 다 파는 대형 체인점 이름)에 가서 여행용 칫솔 세트를 하나 사고, 향수를 나눠 담을 자그마한 스프레이 용기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분명히 있을텐데, 안 팔지는 않을텐데, 있을만한 곳에 가봐도 당최 보이지 않네. 똑같은 장소를 수도 없이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 포기했다. 계산하러 가다가 니베아 크림을 튜브 용기에 넣어 파는(가장 흔한 니베아는 동그랗고 납작한 남색 캔 안에 든 녀석이지만, 고추장 튜브 같이 생긴 녀석도 팔고 있었더랬다.) 게 있기에 하나 집어들고.
일본 컵라면도 몇 개 사들고 갈까 했는데 오아시스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 포기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컵라면은 굳이 오아시스에 가지 않아도 코난에서 살 수 있었네. 인류는 진화하는데 내 머리는 왜 퇴화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장을 보고 와서도 시간이 남아 마저(?) 빈둥거렸다. 그러고 있다가 슬슬 짐을 싸야겠다 싶어 캐리어를 꺼낸 뒤 옷가지들을 던져 넣고 이것저것 챙겨 넣다가 차량용 스마트 폰 거치대가 망가진 것을 발견!
저 거치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일본에 오기 얼마 전에 지른 최첨단(?) 제품 되시겠다. 마이크로 5핀 케이블로 전원을 연결한 뒤 스마트 폰을 가까이 가져다 대면 양 쪽 날개가 자동으로 벌어지고, 스마트 폰을 가져다대면 벌어졌던 날개를 닫으면서 딱! 고정을 한다. 게다가 무선 충전(이것은 나중에 하게 될 이야기의 떡밥!)까지 지원.
처음 일본에 올 때에는 바이크를 살 예정(개뿔도 모를 때에는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 훗!)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바이크에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들고 온 거였다. 뭐,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서도. 아무튼, 한 쪽 날개가 부러져서 덜렁덜렁하고 있더라고.
순간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고 나니 굳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싶어 뭔가 효율적으로 빈둥거릴 게 없을까 하다가 스타 크래프트나 한 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_ㅡ;;; '만물의 영장에게 인공 지능 여섯 상대하는 것 정도야 우습지, 훗!' 하고 자신있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서 나갈 시간을 넘겨버렸다. 부랴부랴 아무거나 주워 입고 출발.
집에서 텐노지駅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면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 본다. 대체 왜? 근처에 에어비앤비 돌리는 게 분명해 보이는 건물(캐리어를 끈 서양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걸 여러 번 봤음)도 있고 해서 관광객이 드문 동네가 아닌데 어찌 그리들 곁눈질을 하는 건지. 어쨌든 구글 지도를 보고 곧장 15번 플랫폼으로 가긴 했는데 공항으로 가는 전철이 앞 쪽인지 뒷 쪽인지 기억이 안 난다.
텐노지駅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전철은 한와線인데, 여덟 량의 열차가 히네노駅에서 반으로 나뉘어진다(나머지 반은 와카야마 행.). 그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앞 쪽인지 뒷 쪽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블로그에 끄적거렸던 기억이 나서 검색해보지만 당최 못 찾겠네(얼마 전 티스토리 앱이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검색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일단 앞 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몇 걸음 안 걸었는데 기둥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1~4호 열차는 간사이 공항으로 가고, 5~8호 열차는 와카야마로 간다고.
집에서 뮝기적거린 탓에 좀 늦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간사이 공항 쯤이야 내 집 안방처럼 익숙한 곳인 양 혼자만의 허세를 부리면서 촥~ 촥~ 걸어서 진에어 부스에 도착했다. 미리 웹 체크 인을 했기 때문에 수하물만 맡기면 됐는데 진에어 부스가 잔뜩 쪼그라들어 있더라. 예전에는 꽤나 규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달랑 셋. 그나마도 웹 체크 인 후 수하물만 맡기는 곳을 포함한 거다. 이것이 바로 불매 운동 파워! 직원들도 노가리 까고 있다가 내가 가니까 화들짝 놀라 급 일하는 척. ㅋㅋㅋ
여권만 보여주면 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웹 체크인 한 모바일 티켓을 보여달라고 해서 찾느라 한참 걸렸다. 꼭 미리 준비 안 하고 있을 때에만 보여달라고 하더라고. -ㅅ-
안으로 들어갔더니 몸에 쇠붙이가 있는지 훑는 기계가 이상한 걸로 바뀌어 있었다. 기존에는 그냥 ∏ ← 이렇게 생긴 곳을 통과하면 끝이었는데 바뀐 기계는 입구와 출구가 있는 원통형이더라. 크라이오테라피라 그러나? 초저온 어쩌고 하면서 한동안 방송에서 엄청 소개했던 거. 그거 비스무리하게 생겼더만. 간사이 공항 여기저기 공사 중이던데 도쿄 올림픽 때문인가봉가.
아무튼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갔는데 짐을 담는 트레이가 안 보이는 거다. 그래서 멍 때리고 있으니까 뭐라 뭐라 하는데 진짜 1도 못 알아듣겠다. 에? 에? 세 번이나 들었는데 못 알아들으니 손짓으로 알려주더라. 밑에서 꺼내라고. 하아~ 진짜... 어디 가서 일본어 1년 배웠다는 말 절대 못 하겠다. 아오, 쪽 팔려.
그렇게 트레이에 짐을 담은 뒤 검색 받으러 들어가려니까 신발도 벗으란다. 어그 부츠처럼 길게 올라오는 신발 정도만 벗겨 가면서 검사하는 것 같던데 나는 왜? 법 없이도 모범 시민 표창 받을 정도로 착하게 사는 사람을 몰라보고.
이렇게 보안 검색이 강화되고 있는 일본인데 그 와중에 닛산 자동차의 前 회장이었던 카를로스 곤은 도망가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간사이 공항을 통해서. 허... 허허... 어이가 없네. -ㅅ-
(2020.01.08.)
셔틀을 타고 37번 탑승구 쪽으로 이동.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젊은 한국인 커플이 잰 걸음으로 종종종종 가다가 갑자기 휙! 뒤돌아 서더니 다급한 표정을 하고서 셔틀로 돌아간다. 캐리어 두고 왔다고 하는 것 같더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몇 초 후 멋쩍게 다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더니 부지런히 걸어 내려간다. 위탁 수하물로 캐리어 맡겨 놓고는 두고 왔다 착각한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이, 참. ㅋㅋㅋ
자판기에서 캔 커피 하나를 뽑아서 홀짝거리며 탑승구 앞에서 기다렸다.
분명히 39번 좌석 이후부터 타라고 방송이 나왔는데도 꾸역꾸역 올라타는 것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이냐? 한국어로도 나오고 일본어로도 나왔는데 두 나라의 말을 다 못 알아듣는 다른 나라 사람인가봉가. 분명 한국 아저씨 같아 보였는데. 아무튼 내 자리가 45번이라서 안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밖에 안 되는 자리에 이미 궁둥이 붙이고 있는 아저씨도 있더만. 청각 장애가 있는 냥반이었나보다. 모두를 위해서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이런저런 룰을 만든 것일텐데 저 편하겠다고 꼴리는대로 사는 것들 보면 참... 저러면서 나이 처먹은 거 대접 받고 싶어 하겠지.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 뒤에 앉은 젊은 처자가 자꾸 발로 의자를 밀어댄다. 자신이 하고 있는 짓거리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거지? 맘 같아서는 그 ㄴ 뒷 자리(가 비어 있었음.)로 가서 똑같이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짜증은 났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 기대했던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마음이 좀 더 말랑말랑해진 기분이다.
오른쪽의 옆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인천 공항에 착륙하니 옆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애가 내 옆으로 착! 옮겨 앉더니 열심히 바깥을 살핀다. 인천 공항에 처음 와봤나보다. ㅋ
느긋~ 하게 앉아 있다가 사람들 다 빠지고 나서 천천히 내렸다. × 마려운 강아지가 전봇대 찾듯이 정신없이 내리지 말자고, 여유롭게 다니자고 마음 먹었다. 그 와중에 뒤에 앉았던 ㄴ 봤는데 키도 쥐알만 해서 다리로 의자 밀 이유가 전혀 없던데. ㅽ
내리자마자 고모께 전화 드려서 한참을 수다 떨고, 바로 캡슐 호텔로 향했다. 인천 공항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도 들고, 빈 방이 없을 때도 많아서 이용한 적은 없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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