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한 번도 시차라는 걸 겪어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에 최적화된 몸뚱이. 현지 시각으로는 새벽이지만 한국 시각으로는 한창 뽈뽈거리고 돌아다닐 때가 되니 누워 있어도 잠이 안 온다. 어떻게든 아이슬란드 시각에 몸을 맞추려고 새벽에 기를 쓰고 자려 하다가 일곱 시가 되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
이 날 계획은 여덟 시에 일어나서 씻고, 여덟 시 반에 아침 밥 먹고, 아홉 시에 렌터 카 받아서 열 시까지 블루 라군에 도착하는 것. 하지만 일어나니 이미 여덟 시가 넘었네? 뭐, 늦으면 늦는대로. 훗! 이것이 바로 북유럽의 감성이시다. ㅋㅋㅋ
마음대로 살면 돼
대충 씻고 1층 식당으로 가니 직원 한 명 말고는 아무도 없다. 눈이 마주치니 시크하게 날아오는 굿모닝. 아... 그렇지. 아침 인사는 '굿모닝' 이지. 1년 넘게 '오하요~' 의 나라에서 살다보니 당최 영어에 적응이 안 된다. 씨익~ 쪼개며 굿모닝을 날려주니 방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한다. "쓰리, 제로, 투." 라고 알려준 뒤 빈 접시에 햄과 치즈, 빵을 담았다.
여행을 다녀보니 아이슬란드의 아침은 대부분 저 구성이다. 햄은 최소 두 종류, 많이 나오면 세 종류 정도가 나오는 것 같고 치즈도 노란 색 체다 치즈와 허여 멀건한 치즈까지 두 종류는 기본. 거기에 흔히 먹었던 식빵이랑 호밀로 만든 식빵도 나오고, 크로와상이 있는 곳도 있었다. 시리얼과 우유도 있었고, 마시는 건 오렌지 주스와 커피 정도? 스퀴르라고 해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발효 음료도 있는데 요거트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챙기면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구성이겠지만 원래 아침을 거의 안 먹는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지라 최대한 대충(?) 먹었다.
한 쪽 옆에 과일을 비롯해 또 뭔가 있기에 스윽~ 가서 봤더니 스크램블드 에그랑 베이컨. 적당히 들고 와서 손전화 보면서 천천히 먹었다.
마치 튀긴 것처럼 기름이 쫙! 빠져 바삭바삭해진 베이컨. 인생 베이컨이었다. 진짜 맛있었다.
방으로 돌아가 캐리어를 정리해서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한 다음 공항으로 갔다. 렌터 카 회사에서 공항으로 픽업 나온다고 쓰여 있었거든. 이건 미리 확인해야 한다. 렌터 카 업체마다 달라서 픽업을 나오는 곳도 있고, 버스를 타고 사무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가는 곳도 있으니까. 내가 이용한 Go Car Rentals 같은 경우는 바우처에 공항으로 픽업을 가니까 버스에 타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다른 분의 이용 후기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도 공항으로 픽업 나왔다고 쓰여 있었다(조금 불안했던 게, 공항으로 픽업 나온다고 해놓고 안 나왔다는 후기가 워낙 많았다. 하지만 다른 업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일단 믿었다.).
열 시부터 빌리는 걸로 했기 때문에 늦지 않도록 갔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 본다. 미친 × 같았겠지. ㅋㅋㅋ
공항에서 달리 할 것도 없어서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빈둥거리고 있자니 잠시 후 피켓을 든 젊은이가 등장했다. 다가가서 예약했다고 하니까 오른 손을 내민다. 아, 악수... 익숙하지 않다. ㅋ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타고 빌리기로 한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내려서 보니 호텔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주차장이다. 호텔이 증축을 하는 건지 공사 중이었는데 그 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 뒀더라. 스즈키 짐니가 주력 차량인 건지 여러 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중 한 대에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풀 보험이지만 문 꺾임과 타이어 파손은 보험 처리가 안 된다고 하더라. 그 외의 간단한 안내를 들었다.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내 영어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수준이니까 온전히 알아들었다고 하기 힘들지만 희한하게 대충 이해는 되더라고. 아, 그리고 신용 카드 달라고 하더라. 이게 무슨 용도인지 나중에 알아보니, 주차 비용이나 과속 과태료, 터널 통행료 등을 내지 않고 차량을 반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단다. 그 경우 그 카드로 결제를 요청한다는 거지. 문제는 단순히 납부하지 않은 비용만 청구하는 게 아니라 대행 수수료랍시고 원래 비용의 세 배 가량을 긁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여행 전에 주차 비용은 어떻게 내는지, 터널 통행료를 내는 방법은 뭔지, 꼭 알아보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오늘부터 열흘 간 내 발이 되어줄 녀석의 외관을 확인했다. 돌에 맞았는지 앞 범퍼 부분의 도색이 일부 벗겨져 있었고, 지붕에 붙어 있는 랙도 커버가 떨어져 나가고 없더라. 내가 유심히 보고 있으니 직원이 들고 있는 종이에 체크를 했다. 그 외에는 딱히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다시 악수하고 헤어졌다. 혹시 모르니까 차량 상태를 동영상으로 찍어두고 싶었는데 열 시가 넘었음에도 어두워서 제대로 안 보이기에 나중에 찍기로 하고 일단 호텔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갔다. 걸어서는 1분도 안 걸릴 정도로 바로 옆이지만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어서 큰 도로를 돌아 호텔 주차장으로 가야 했다(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차는 그대로 두고 호텔에서 짐 가지고 나와 싣는 쪽이 나을 뻔 했다. 그 조금 걷는 게 귀찮아서 호텔 정문 앞으로 차 옮긴답시고 조금 헤맸더랬다. -ㅅ-).
65,000㎞ 정도를 달린 차니까 렌터 카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뭐, 새 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맥주를 담은 봉투와 캐리어를 뒤 쪽에 싣고 호텔에서 체크 아웃. 운전석에 올라 시트 포지션을 조절하고, 사이드 미러의 위치도 조절했다. 가지고 간 손전화 거치대를 장착하고, 구글 지도에 목적지를 찍은 뒤 안내에 따라 블루 라군을 향해 이동!
깔끔했던 호텔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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