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건 13일이지만 바로 호텔에 들어가 퍼질러 잤으니 실질적인 여행 첫 날. 케플라비크 공항을 벗어나 블루 라군으로 향하면서 도로 좌우를 보니 그저 와~ 와~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어떻게 이러냐, 진짜.
지금까지 살면서 본 풍경은 한국과 일본의 그것 뿐. 40년 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열몇 시간을 날아와 이 먼 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착한 사람들이 모두 이 앞에서 인증 샷을 찍은 뒤 안 쪽으로 이동. ㅋ
이 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바로 옆은 물이 꽝꽝 얼어 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모양인지 얼었나 확인한답시고 던진 돌이 보이더라. ㅋ
들어가기 전의 경치가 정말 끝내준다. 이 쪽은 안에서 놀다 나와 구경하기로 하고 일단 들어간다.
도착해서 주차를 한 뒤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카운터 쪽에 아무도 없다. 직원들이 너댓 명 몰려 있긴 한데 아침 회의라도 하는 건지 카운터 옆 쪽에 따로 모여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열 시에 간다고 예약했었는데 이미 열 시 반이 되었기에 조금 조바심이 나는 상태였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그 때 옆에서 남자 직원 한 명이 손님을 상대로 티켓에 대해 설명을 하기에 '저 사람이 표를 사거나 하면 그 다음에 가서 예약했다고 말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걸 봤는지 여자 직원 한 명이 카운터 쪽으로 온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고 하니까 "뭐라고?" 가 돌아온다. 나름 굴린다고 굴렸는데 영어 발음이 형편 없었던 모양. 다시 말해도 못 알아듣기에 인쇄해 간 바우처를 보여줬다. 그러니까 "아, 체크 인?" 하더니 수건이랑 키를 가져다 준다. 요 근래 친절한 사람들만 봤기 때문에 이렇게 퉁명스러운 대응은 무척 오랜만. 관광 업계 종사하면서 참으로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뭐라 뭐라 떠드는데 네가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관계없고, 나는 규정 상 떠들어야 할 걸 떠들 뿐이다라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반에 반도 못 알아들었다. 그냥 미란다 원칙 읊어대지 그러냐. ㅽ
대충 알았다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받은 키를 센서에 갖다 댄 뒤 옛날 지하철 게이트의 쇠 봉 같은 걸 밀고 들어가면 된다.
플라스틱으로 된 키는 손목에 찰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낡아서 덜렁덜렁 하더라. 손목에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더라고. 실제로 물 속에서 몇 번 풀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탈의실. 입구 쪽을 건너뛰고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사람 심리가 다 똑같은 건지 안 쪽은 바글바글하다. 다시 입구 쪽으로 나와 라커를 보니 파란 불빛이 보인다. '저기에 키를 찍으면 되는 건가?' 싶어 천천히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마침 나처럼 헤매는 사람 한 명이 옆에서 기웃기웃하더라.
옆 쪽으로 가보니 문이 열려 있는 라커가 보인다. 오호~ 저거다!
열려 있는 라커에 옷을 넣은 뒤 문을 닫으면 파란 색 불빛 옆의 〈 표시가 서서히 줄어든다. 그 표시가 다 줄어들어 없어지기 전에 키를 찍으면 라커 번호가 표시되면서 문이 잠긴다. 열 때에는 그저 키를 찍으면 되고.
샤워를 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죄다 수건으로 감싸고 다닌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꼬추 덜렁거리며 다니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인이지만 단 한 명도 나체로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수건을 둘러야 하나 망설여진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한껏 인상을 구긴 가드가 계속 쳐다 보고 있다. 신경이 쓰인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도 없을 때 잽싸게 빤쓰까지 벗은 뒤 가지고 간 수영복을 입었다. 말이 수영복이지, 속 팬티 붙어 있는 나이키 반바지였기 때문에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신경도 안 쓴다. ㅋ
그렇게 반바지를 입은 채 샤워하러 갔다. 그랬더니 가드가 잡는다. 수건 어쨌냐고. 라커에 넣었다고 하니까 수건을 가지고 샤워실에 들어가서 자기 번호에 해당하는 곳에 수건을 넣으란다. 그래서 다시 라커를 열고 수건을 꺼낸 뒤 안 쪽으로 가니까 철제 프레임 같은 곳에 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 여기에 수건을 두면 되는고만.
샤워하는 곳은 문이 달린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남들 하는 걸 보니 문 닫고 바지 내린 채 샤워하더라고. 비어있는 문 달린 샤워실이 없어서 그냥 뚫려 있는 곳에서 바지 입은 채 샤워를 했다. 벽에 붙은 동그란 쇠 같은 걸 누르니까 곧바로 따뜻한 물이 쏴아~ 쏟아진다. 누른다고 했지만 뭔가 눌리는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쇠에 손 갖다 대는 기분. 아무튼 물이 따뜻해서 계속 샤워만 하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바로 옆이 여자 샤워실인데 까딱 실수로 잘못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더라. 남자든, 여자든. 아무튼... 안으로 가니 수증기 때문에 앞이 전혀 안 보인다. 반바지만 입고 있으니 무척 춥게 느껴져서 빨리 들어가고 싶은데 잘 안 보이니까 뮝기적거리게 된다. 물이 갑자기 깊어지는 건지, 서서히 깊어지는 건지에 대한 정보도 없고. 그 때 바람이 불면서 수증기가 훅~ 걷혔는데 물 색깔이... 와아~ 진짜... 와아~
일단 구석에 앉아 대충 분위기 파악하고 있는데 손전화를 들고 있자니 뭔가 도촬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엑스페리아 XZP는 방수가 되기 때문에 방수 팩 같은 거 없이 그냥 쌩 폰을 그대로 들고 들어갔거든.
가드들이 와서 스윽~ 둘러보고 가는 육각형의 데크가 있는데 거기가 물 나오는 곳인 모양이더라. 근처에 앉아 있으면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이 느껴지더라고. 그 근처에 앉아 있다가 데크 위에 손전화를 올려뒀는데... 뒀는데...
어찌 할 틈도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물 속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블루 라군에 대해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1121&cid=42866&categoryId=42866 ←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 휴양지 1001 중 한 곳이란다. 죽기 전에 1001개의 휴양지에 다 갈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꼬. 중동의 석유 부자가 내 통장에 100억 정도만 꽂아주면 나도 가능할 것 같은데.
블루 라군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 https://www.bluelagoon.com/
예약하려면 곧장 여기 → https://booking.bluelagoon.com/guests
만 14세 이상이면 어른이다. 어른 몇 명인지, 어린이는 몇 명인지부터 선택한다. 그 다음은 날짜. 방문 희망 날짜를 고르면 된다. 날짜를 고르고 나면 시간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겨울의 경우에는 08:00 ~ 21:00 선택이 가능. 가장 저렴한 게 컴포트인데 입장료와 수건 한 장, 음료 한 잔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컴포트 같은 경우 $97인데, 2019년 12월 28일 현재 환율 기준으로 112,568.50원이다. 11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엄청난 금액. 거기에다 렌터 카를 이용하지 않고 셔틀 버스를 타게 되면 왕복 $44가 추가 된다. 돈질알이 풍년이다.
공식 사이트에서 직접 예약하지 않고 여행사나 관광 상품을 파는 곳을 통해 입장권을 구입하게 되면 더 비싸다. 왕복 셔틀 버스 비용이나 기타 서비스 비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열 시부터 오픈하는 걸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여덟 시부터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미 예약했으니 별 수 없지, 뭐. 다행히도 열 시 무렵은 그럭저럭 한적했다. 하지만 두 시간 후... 들은대로 중국인의 습격(?)이 시작됐다. 갑자기 동양인들이 늘기 시작하더니 시끄러워지더라. 조용히 경치도 즐기고 온천도 하고 머드 팩도 하면서 여유롭게 블루 라군을 즐기고자 한다면 아침 일찍 가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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