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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04월 02일 목요일 맑음 (당최 이해가 안 돼)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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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일에 약국 가면서 대형 마트에 들러 카누인가 뭔가 하는 인스턴트 커피를 사들고 왔는데 확실히 1회용 드립 커피보다 맛이 없다. 가격으로 따지면 일본에서 먹던 UCC 1회용 드립 커피 쪽이 훨~ 씬 싼데, 나는 저걸 순하게 내려 먹는 쪽이 몇 배는 나은 것 같다.

  • 처음에는 10일까지 격리를 한 뒤 주말 쉬고 13일에 출근하라고 하더니, 어제는 10일에 출근하라고 한다. 지방에 있으니까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별 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지? 28일에 입국했으니까 2주일이면 28일을 포함한다고 해도 10일까지는 격리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네. 그렇다고는 해도 ㅇㅇ의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꽤 친절하게 느껴진다. 큰 집에서 행정을 담당했던 ○○○ 씨 등이 워낙 ×× 같았으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 여덟 시 조금 넘어 한 번 전화하고, 여섯 시간 있다가 또 전화하고. 번거롭긴 한데 그래도 체온계 구하기 힘들어서 체온을 잴 수 없는 상황이라 하니까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어떻게든 구해서 꾸역꾸역 재야 한다고 했음 정말 피곤할 뻔 했다.

  • 집 근처에 약국이 많은데 대부분 마스크를 1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걸로 나온다. 마스크 5부제에 따르면 나는 오늘 구입이 가능하고만. 오후에 전화해서 약국 다녀오겠다 하고 마스크 사와야겠다. 세탁소에도 들러야 하는데 이건 일단 보고하고 나서 다녀와야지.

  • 나라에서 돈 준다는데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 돈 잘 벌어서 못 받는 건 아니고, 직업 때문에. 그 돈 없다고 밥 굶고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다. 더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이 받아가길 바란다.

  • 맞은 편 집이 대공사 중이다. 다 때려 부수고 난리도 아닌데 오늘은 아침부터 땅을 후드려 까고 난리도 아니더라. 시끄러워서 깼다.

  • 하루에 저녁 한 끼 먹는 사람인데 고모가 자꾸 밥 먹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원래 밥 잘 안 먹는다고 몇 끼 건너 뛰었더니 친척 누나한테 전화가 왔네. 네가 안 먹으면 고모도 안 먹으니까 같이 먹으라고. -ㅅ-   졸지에 하루 두 끼씩 챙겨 먹고 있다. 시켜 먹고 싶은 배달 음식이 잔뜩인데, 에휴.

  • 일본에서 배 타다가 캐리어 끌어 안고 쓰러질 뻔한 상황에서 잔뜩 힘을 줬더니 허리에 담이 왔다.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데, 방금 기지개 켜다가 왼쪽 어깨에 또 담이 왔다. 너무 아프다. 마음은 아직 20대인데, 대가리도 까지고 몸뚱이 여기저기에 하자가 생긴다. 하아...

  • 어제 두 군데의 렌터 카 회사에 장기 렌트 문의를 했는데 한 군데에서만 전화가 왔다. 거긴 신차 장기 렌트만 하는 곳이란다. 그래서 통과. 다른 한 곳은 전화가 안 왔다. 이번 주까지는 좀 여유를 부려도 되는데 당장 다음 주에는 확실하게 차를 잡아놔야 한다. 그러고보니 ㅇㅇ에서는 정작 집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지를 않네. 안 된다고 하면 미리 집이라도 알아볼텐데 말이다.

  • 오래 쉬었겠다, 하던 일도 아니겠다, 일 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발전이고 나발이고 전혀 없는 동네라서 꽉 막힌 냥반들이 수두룩 할 거고 꼰대들이 바글바글할텐데 말이다. 적응하고 살아야 하니 짜증이나 불만은 고이 접어 넣어둬야겠지. 어찌 되었든 일주일 후에는 슬슬 올라갈 준비를 끝내놔야 한다.

  • 열한 시가 채 안 되어 마사미 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언제든 전화하라고. 이따 오후에 약국에 가면서 전화를 드려야겠다.




  • 14시가 되니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회사 쪽에서 하기도 하는 모양이지? 아무튼. 몸 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걸 말하고, ○○일에 출근하려면 전 날 올라가야 하는데 격리 기간 중에 움직여도 되냐고 물어봤다. 확인해서 알려준단다. 그나저나... 첫 날 통화했을 때와 지금이 좀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이 좀 더 냉랭하달까? 음... '역시 행정 일하는 사람들은...' 하는 생각도 들고, '괜한 오해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일단 적대적으로 나대지 말자고 생각했다.

  • 고모가 세탁기를 청소할 리 만무하니 통 살균 모드로 돌려놓고, 샤워를 한 뒤 대충 주워 입고 근처 세탁소로 갔다. 아저씨 한 분이 서 있었는데 인사를 했는데도 아무 대꾸 없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쳐다보고 있었더니 뭐하냐고, 옷 달라고 한다. 이런 손님 접대는 정말 오랜만이다. 손님이 "안녕하세요~ 드라이 좀 맡기려고요." 라고 했는데 '어서오세요' 는 고사하고 대꾸조차 안 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업주라니. 게다가 내가 꺼낸 양복 바지를 보고 물에 빨아서 이렇게 쭈글쭈글하면 어떻게 하냐고 잔소리를 한다. 이게 '한국의 정이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짢았다.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살기 전에도 가식적일지언정 친절한 쪽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튼, 양복 겉 옷 네 벌에 바지 여덟 벌을 맡겼다. 연락처를 묻기에 017 번호를 알려주니까 요즘도 이런 번호 쓰냐면서 혼잣말을 하더라. 언제 된다는 말도 없고, 다 되면 문자 주겠단다. 촌동네 세탁소답다.

  • 약국에 가니 오늘 들어온 건 KF80 마스크란다. 괜찮다 하고 주민등록증 보여준 뒤 두 장 샀다. 미리 검색해 본 것처럼 한 장에 1,500원. 근처 약국의 마스크 재고를 보니 일주일에 두 장씩 사는 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태라면 곧 넉넉하게 풀리지 않을까 싶더라.

  • 오는 길에 편의점이 있어서 맥주 사러 들어갔는데 라무네가 있네? 세상에. 라무네 한 병 샀다. 그리고 마사미 님과 통화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30분 넘게 떠드는데 갑자기 안 들리기 시작해서 그냥 끊어졌다. 그래서 다시 전화했고 또 30분 넘게 통화했다.

  • 마사미 님과 통화하면서 느끼는 건 내 일본어는 정말 형편 없다는 거. 문법이 틀리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동사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




  • 처음 일본에 갔을 때의 여러 가지 일들이 기억나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건 후각. 간사이 공항에서 난바로 들어가는 전철을 탔는데 전철 안에서 뭔가 좋은 향기가 나는 거다. 달달한 느낌도 있고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향기. 이게 참 인상적이어서 그 뒤로는 일본에 갈 때마다 은근히 저 향기를 맡을 생각에 기대를 하곤 했다. 이게 일본에서만 판매하는 섬유 유연제의 향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대체 그 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 FLAIR 제품을 종류 별로 다 사서 써봤지만 그 향이 아니었고, 잘 나간다는 다른 회사의 제품을 써봐도 역시나 그 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그렇게 찾던 향이 내 옷에서 난다. 아! 이게 FLAIR의 섬유 유연제 향이었고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 향이 나는고만!
    방에 들어가니 그 향이 나서 깜딱!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입던 옷에 다우니 향을 입히고 있는데, 일본의 향이 사라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오랜만의 다우니 향이 반갑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집도 구하게 될 거고, 차도 가지게 될 거고, 냉장고나 세탁기도 장만해서 써먹고 그러겠지. 마음 같아서는 방 두 개까지 월세 방 얻어서 하나는 에어비앤비로 내놓으면 좋겠다 싶기도 한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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