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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08월 06일 목요일 비옴 (말 / 나의 속 좁음)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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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한 시에 교육이 있었다. 그런데 교육 중에 누가 졸았던 모양이다. 소장님이 빙~ 빙~ 돌려가며 교육 잘 들으라고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말이 자꾸 늘어진다. 길어진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본인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 발언이 나 때는 말이야래. 우리 모두 꼰대가 되면 안 되겠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거의 이 수준이었다. ((( ;゚Д゚)))
    10분 넘게 말씀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30분 가까이를 잔뜩 쏟아내셨다. 원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 듣긴 했는데, 이건 좀. 아무튼, 역시 회사에서는 입 다물고 사는 게 상책이라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 말이라는 게 참 어려워서, 한 사람을 두고도 분위기 메이커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많고 시끄러운 ㅺ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짧은 시간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져 나가는지 수도 없이 보아왔다. 굴뚝도 없는 집에 연기가 나는 꼴을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입을 다물고 살려 한다. 간혹 삘 받아서 좀 떠든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 왜 그랬냐고 자책한다. 회사에서 많이 떠들어봐야 좋을 게 전혀 없다.

  •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다르게 참으로 줄기차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 주제도 다양하다. 온갖 것들에 대해 부지런히 떠든다. 그 와중에 말도 안 되는,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 마구 내뱉는 것들도 있다. 속으로 한심하다 생각하지만 끼어들어서 당신이 한 얘기는 틀렸다고 설쳐대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한심하다 생각하는 그들과 같아질 뿐이다.

  • 내가 찌질하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ㅺ는, 내가 저를 좋아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얼굴에 다 드러날테니까. 다행히도 며칠 전부터는 가까이 할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틈만 나면 옆 자리의 사수를 찾아와 되도 않는 소리나 찍찍하다가 사라지곤 했었는데 사수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아무도 없어서 좀 적적하긴 하지만 저 찌질이 ㅺ를 안 봐도 되니 그거 하나는 좋다. 하지만 좁은 사무실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봐야 하고, 다른 곳에서 신나게 떠드는 걸 원치 않게 들어야 한다. 그 때마다 욱! 욱! 한다. 꾹! 꾹! 눌러가며 참고 있다.

  • 사수가 있을 때에는 그나마 사수랑 쓰잘데기 없는 얘기하면서 좀 떠들긴 했지만 이제는 혼자인지라. 거의 하루종일 입 다물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좋다' 와 '옆 자리에 아무도 없다' 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랄까?

  • 일하던 분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다른 곳에 계시던 분들이 옮겨오는 시기인지라 이렇게 입 다물고 있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대개 '과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 보다는 '싸가지 없고 차가운 사람' 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딱히 떠드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 어떤 것이 공통의 주제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업무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게 없으니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괜히 무리해서 떠들고 후회하느니, 입 다물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

  • 21시 30분이 채 안 되어 전화가 왔다. 또 SG이 ㅺ가 술 처먹고 전화했다 싶어 발끈! 하면서 손전화를 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지난 해 1월, 일본에서 만나 뒤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내 온 ㅂㅇ 친구였다. 당시 다른 친구와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20년 넘게 만나오던 친구들과 손절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것도 당연히 알리지 않았다.

  • 하지만 희한하게, 자가 격리 중에 말다툼을 했던 친구의 부인에게 연락이 왔다(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일본은 코로나 괜찮냐고. 그 때 귀국했다고 했었는데 남편, 그러니까 친구에게 알린 모양이다. 둘이 술 마시다가 내 얘기가 나왔고, 한국 왔다고 하니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 오랜만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달리 할 얘기도 없어서 별 말 안 했다. 혀가 많이 꼬부라져 있기에 술 작작 먹고 맨 정신에 전화하라 했다.

  • 그리고 나서 몇 분 뒤, 말다툼을 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얘는 전혀 안 취한 것 같더라. 하긴, 술 쌔지, 이 ㅺ는. 저도 어색했는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욕을 남발하더라. 그런데, 난 딱히 할 말 없는 어색한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술 어지간히 마시라고, 잘테니 끊는다 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 그 친구 입장에서는 꽤나 큰 용기를 냈을텐데, 그걸 쳐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후회가 됐지만 그렇다고 할 말도 없는데 아무 말 없이 어색해서 죽을 것 같은 분위기를 참는 것도 싫었다. 따지고 보면 1년 6개월 전에 왜 싸웠는지도 애매하다. 나는 그 친구가 나를 자신보다 낮춰 보는 와중에 속 마음을 드러냈다고 생각해서 욱!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열등감에 괜히 화를 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40년 넘게 살다보니 나는 나보다 못하다 또는 달리 나을 게 없다고 판단한 사람이 나를 무시할 경우 굉장히 화를 내는 것 같다. 저 ㅂㅇ 친구에 대해서는 딱히 나보다 잘났다, 못났다 따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친구가 나를 자기보다 낮춰 보면서 업신 여겼다 생각하니 울컥했던 것 같다.

  • 아무튼, 20년 넘게, 몇 년만 더 지나면 30년을 채울 정도로 오래 만난 사이인데, 납득할 수 없는, 딱히 기억에 남지도 않는 이유로 틀어져서 연락을 안 하게 된 거다. 오롯이 내 책임인가 싶기도 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 술을 진탕 마셔서 필름이 끊어진 상태였다면 당연히 대화가 기억나지 않을테니 다시 연락이 오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 아마 다시 연락오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곤란하고.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편한 녀석들인데,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해서, 그런 녀석들을 밀어내버렸다. 그러고보면... 내 인간 관계가 형편 없는 건 결국 모두 내 탓인가 보다.

  • 이번 주는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금요일만 지나면 주말.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술 좀 사들고 와서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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