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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흐림 (피로가 텍사스 소 떼처럼 몰려온다)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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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물네 시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한 시간 반을 자고 일어났다. 일하면서 의자를 눕혀 잠깐 잔 게 40분 정도니까 두 시간 조금 넘게 잔 셈. 더 자야 한다는 생각이 있긴 한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네.

  • 6개월 동안 24시간 근무를 하면서 한 번도 스페셜한 상황을 겪지 않았는데 이번에 터졌다. 다행인 건, 미리 준비를 해서 나름대로 잘 대처했다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대처할 자신이 없어서 내가 근무할 때 스페셜한 상황이 터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더랬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쉬고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한결 마음이 놓인다. 24시간 근무를 들어가는 날이면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은근히 쫄아 있었는데 이번 근무부터는 조금 더 편하게 돈 벌러 갈 수 있게 되었다.

  • 일본어 단어를 조금 외우고 책을 두 권 읽었다. 여덟 시간이 금방 간다. 남은 열여섯 시간이 잘 안 간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퇴근은 하게 되니까. ㅋ

  • 오늘 같이 긴 근무를 하는 사람은 경력이 일천한, 직장 생활 경험만 놓고 보면 한~ 참 후배.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제 겪어보니 기본이 안 된 ㅺ였다. 내가 먼저 밥을 먹고 교대를 해줘야 쟤가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호다닥~ 먹어치우고 자리를 바꿔줬다. 밥 먹고 쟤가 앉아 있는 사무실까지 가는 데 20분도 안 걸렸다. 그런데 점심 먹고 오는 데까지 50분 넘게 걸리더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하고 말았다.
    하지만. 저녁 때에도 저 질알 하더라. 저녁 식사 때에도 20분도 안 걸려 밥을 먹고 교대를 해줬다. 이번에는 한 시간 하고도 20분을 까먹은 뒤 나타났다. 역시나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었고. 해도 너무한다 싶어 속으로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준비를 했다.

  • 나는 식사 시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모른다, 내가 시간을 많이 까먹어서 밥 주는 시간을 넘겨버리면 당신은 꼼짝없이 굶어야 하지 않냐, 그래서 최대한 빨리 먹고 양치도 안 한 채 가글만 하고 교대를 한 거다, 그런데 당신은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나도 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거길 비워놓고 여기 앉아 있는 거다, 이게 당연한 거냐?

  • 당장 내뱉고 싶었지만... 겨우 겨우 참았다. 하지만 다음에 또 같이 근무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나한테 먼저 밥 먹고 오라 할텐데, 그 때에는 참지 않고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나부터 먹고 오라 한 뒤 한 시간 넘게 자리를 비우는데, 만약 내가 똑같이 한 시간을 식사한다면 당신은 밥을 굶어야 한다, 그래도 되느냐? 라고 물어볼 거다.

  • 이틀 전에, 사무실에서 뭔 일을 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런 것도 하냐며 감탄했더랬다. 누가 봐도 예의 상 비행기 태우려고 와~ 하는 거였다. 적당히 겸손을 떠는 것 같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결국 거기에 말을 보태며 눈치없이 나서더라. 예를 들어,
    '와~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이과 나오셨다면서요? 저는 문과라 이과 과목은 엄청 어렵던데...' 라고 말을 던지자,
    '에이~ 남들도 다 하는 건데요, 뭐. 그리고, 이과도 여러 분류도 나뉘잖아요? 제가 공부한 건 바이오 테크놀로지라는 건데 그 중에서도 모노클로날 항체 생산이라고 해서 단클론성항체영양학사전 단일 클론 즉, 단일세포에서 증식한 항체생산세포가 생산하는 항체. 세포융합에 의하여 항체생산세포를 골수종세포와 융합시켜서 클로닝하여, 목적으로 하는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 클론을 분리함으로써 단클론성 항체를 만드는 기술이거든요.' 뭐, 이런 식으로 대꾸하는 셈.

  • 이 때까지만 해도 그냥 눈치 없는 녀석이고나,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본적인 예의가 없거나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다행히 업무 상 맞딱뜨릴 일이 거의 없으니 다행이긴 한데, 사람이 확~ 싫어졌다.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말아야겠다.

  • 배가 고파서 라면이랑 누룽지로 허기를 채웠다. 세 시간 뒤에는 저녁 약속이 있다. 그러니 약 먹고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 적당히 빈둥거리다가 씻고 나가야겠다. 어린 여직원에게 농담 삼아 고기 사라고 몇 번 쪼아댔는데 정말로 산다고 나섰다. 한~ 참을 더 버는 입장에서 얻어 먹을 수 없으니 그냥 내가 사야지. 여직원에게는 커피나 사라고 해야겠다. ㅋ

  • 매트리스도 새로 사고 싶고, 운동량 측정하는 스마트 밴드도 사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꾹 눌러 참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게 멀쩡하면 사지 말자고 다짐하는 중이다. 망가져서 쓸 수 없게 되면 그 때 바꾸자고, 자신을 다독거리고 있다. 이번 달 카드 값이 상당한데 그래도 차 산답시고 까먹은 돈을 빼면 그냥저냥 선방했다. 남들처럼 재테크니 뭐니 하는 것도 아닌데, 덜 쓰면서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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