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모처럼 좋은 음식 먹었는데 그 날 저녁에 죄다 하수구로 흘려 보내야 했다. 속에서 적응을 못한 탓인지 꾸륵꾸륵 하더니 전부 밀어내더라고. 다행스럽게도 괄약근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함은 아니었다. 아침에 다슬기 순두부를 먹고, 숙소로 돌아온 뒤 포장해 온 다슬기 무침을 안주로 해서 일 잔 마셨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배가 아파서 깼다. 화장실에 두 번 들락거린 뒤 다시 잠이 들었고, 얼마 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서 씻고 출근.
씻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명치 께가 뻐~ 근하게 아픈 것이, 체한 기분이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려니 했는데, 귀와 목덜미에 열이 오르는 걸 보니 정말 안 좋긴 안 좋은 모양. 결국 분리 수거장 청소를 마친 후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샀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할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저녁 밥만 먹고 나서 퇴근했다. 체했다면서 저녁 밥은 꾸역꾸역. 아무튼. 퇴근하고 나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누웠다.
그 때부터 자기 시작했는데 평소처럼 두 시간 정도 자다 깨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깨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와중에 꿈을 꾸는데 당최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는 거라. 엑셀에 뭔가 기록을 하긴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더라. 그냥 키보드를 마구 때려 아무 말이나 입력하는 기분. 희한한 건 자다 깬 후 다시 잠들면 그 꿈이 이어진다는 거다.
그렇게 잠을 설치는 와중에도 뱃 속은 여전히 불편. 아직도 뭔가 잔뜩 걸려있는 기분이다. 식은 땀은 또 얼마나 흘렸는지. 티셔츠가 다 젖었다.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그저 또 한 번의 눈 떠짐이 있은 후 시계를 보니 네 시.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의 꿈이 이어졌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저지른 거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우연히 내가 있었고, 그 사고를 말도 안 되게 수습했다. 수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엑셀로 작성된 수많은 다른 사례들이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마구 입력했던 내용이, 사실은 사고가 터졌을 때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경험이었던 것. 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해서 본능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일을 키우지 않고 수습한 거다. 그동안의 꿈이 단편 드라마나 미니 시리즈였다면 이번 꿈은 대하 드라마였다고나 할까? 깨고 나서 한동안 멍~ 했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꼬박꼬박 챙겨 먹은 소화제 덕분인지, 칠성 사이다 스트롱 덕분인지, 땀을 잔뜩 흘리면서 푹 잔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분명 괜찮아졌다. 다만, 어제까지는 명치 께가 불편했는데 오늘은 불편한 위치가 조금 내려간 기분?
하필 여행을 다녀온 후 아프기에 혹시나 코로나에 걸린 건가 싶어서 잔뜩 쫄았었다. 열도 나고 그러니까 더 불안하더라. 주말에도 계속 아프면 검사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증상은 전혀 없고 뱃 속이 불편한 것도 나아지는 것 같으니 일단 통과. 하지만 심각한 전염병이니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무증상 감염일 수도 있잖아? 나 때문에 회사 동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도 엄청 아파서 5분 자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무지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일기를 훑어 봤더니 지난 해 1월 18일이었다. 3개월 후면 2년 전 얘기가 되는 거네. 시간이... 말도 못하게 빠르다.
맘 같아서는 계속 누워서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통장에 꽂힌 돈을 보니 그럴 수가 없다. 남들 놀 때 부지런히 벌어야 쌓인 빚을 털어내지. 대충 씻고 돈 벌러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환호한다. 에?
알고 보니 뭔 일이 생겼는데, 내가 그걸 기똥차게 해결한다고 과대 평가 받고 있어서였다. 일단 문제 해결에 동참. 그러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문제는 해결이 안 되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까 퇴근. ㅋ
이마트에 갔더니 주차장이 꽉 찼다. 5층에 올라가니 널널. 기를 쓰고 3, 4층에 주차하려는 모지리들 덕분에 여유있게 주차한 뒤 마트에 입성. 가장 먼저 귤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 있을 때 무척이나 간절했던 만 원 조금 넘는 귤. 3㎏ 짜리 귤 한 상자를 만 원 언저리에 구입한다니,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냉큼 집어든 뒤 필요한 것들만 호다닥 챙겨 마트를 빠져 나왔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 후 숙소로 돌아왔다.
라면을 끓여 사들고 온 순대와 같이 뱃 속에 밀어넣고 나니 벌써 17시. 일단 피곤하니까 영월 여행 후기는 내일로 미룬다. ㅋ
아직은 뱃 속이 편안하지 않으니 오늘은 좀 더 요양하는 걸로.
거금을 주고 고친 NUGU 스피커가 또 말썽이다. '팅커벨' 이라는 세상 남사스러운 이름으로 호출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다. 마이크 바로 앞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소리를 질러야 인식을 한다. 갤럭시 미니는 거실에서 '하이 빅스비'를 외쳐도 곧바로 대답하는데. 결국 본전 생각이 나서 태블릿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물려놨다. 그렇게라도 써먹어야겠다. 날마다 무드등 켜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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