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쪽 보고는 오줌도 안 눈다고 큰소리 치며 그만두고 나간 것도 있고, 휴직한 기간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2000년 이후 같은 조직에 몸 담고 일하는 중이다. 여기는 그렇잖아도 폐쇄적인 한국의 조직 문화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다 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라서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다.
초짜일 때에는 그저 눈치 보고 설설 기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손해를 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꼬박 야근하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부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작살나게 깨진 뒤 방금 전까지 이 ㅺ 저 ㅺ 했던 사람의 아들내미 결혼 청첩장을 부치러 우체국으로 퇴근하기도 했다.
그런 조직이라서 행정 업무 같은 것도 그냥 대충, 해주는대로 넘어가곤 했었다. 그러다가 휴직하고 복직해서 모처럼 주간 근무를 해보니, 와~ 이건 신세계다. 날마다 운동하라고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그렇고, 주말마다 꼬박꼬박 쉬는 것도 그렇고, 빨간 날 다 쉬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꼰대가 없는 곳이라서 휴가 가면서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여러 모로 바람직하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조직의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사 비용을 받는다던가, 교육비를 지원 받는다던가.
교육비를 얘기해보자.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공부하는 거니까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다. 한 달에 50만원 씩 내는 학원에 다니겠다며 그 돈을 받아놓고 학원도 안 간 채 꿀꺽! 하면 안 되잖아. 과거에는 그 따위로 해처먹은 ㅺ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뭐, 여전히 그 따위 짓거리를 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지만서도. 아무튼. 그렇다보니 여러 가지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게 과거에는 굉장히 복잡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간소화되었다고 하는고만. 하지만 처음 겪는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복잡하다.
다행히 사무실에 틈만 나면 행정망 쳐다보는 냥반이 있어서 그 냥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날마다 행정망만 쳐다 보고 있기에 주는 것 없이 밉상이다 싶었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얄밉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조금 후회됐다.
교육비 입금이 안 되었다고 메시지가 왔기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는 제대로 처리했는데 연관 부서에서 아직 처리가 안 된 것 같다고 한다. 목소리만 들어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젊은 분 같은데 싹싹하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해서 완전 호감이다. 인사, 행정 쪽에는 쓰레기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아닌 분이라 생각한다. 아, 그러고보니 다음 주에는 출근하자마자 보험료 가지고 전화해서 따져야 하는고만. 피곤하네.
뭐, 말이 길어졌는데... 3일 동안 재택 교육이 끝났다. 교육 받은 소감? 음... 돈지랄이다. 왜냐고?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제도 몇 자 적긴 했는데, 관심없는 사람들이 봐서는 뭔 소리인지 모를테니까 요리와 비교해서 얘기해보자.
내가 돈 내지 않고, 회사 돈으로 교육을 해준다고 해서 봤다. 이탈리아 요리 기초 강습이란다. 난이도를 보니 '해당 교육과정에 관심이 있는 자' 라 되어 있고, 교육 내용을 보니 그닥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요리의 특징이라거나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 따위를 언급할 줄 알았다. 그리고 나서 하나, 하나 가르쳐줄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이 칼 한 번 잡지 않은 초보자였으니까.
그런데... 이탈리아 요리가 왜 인기 있는지 간단히 설명을 하더니 칼로 다다다다 재료를 다지기 시작한다.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저 보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어슷썰기를 해보란다. 부랴부랴 보이는대로 따라했다. 뭔가 잘 안 되서 질문을 했더니 구글링하면 다 나오니까 그걸 참고하란다. 어?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PPT나 PDF 파일로 교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예습은 고사하고 복습도 못하는 상태. 그런데 갑자기 알아듣지도 못할 얘기를 막 한다. 뭔 뜻인지 모를 단어가 난무한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구글 검색해서 사진 보여주면서 이게 이탈리아 요리라고 하더니, 똑같이 만들어보란다. 멘탈이 무너진다.
게다가 교육 중에 출석 체크가 한 번도 없었다. 최대 50명까지 들을 수 있는 강의인데 50%도 안 되는 사람이 신청했다. 그 50%도 안 되는 사람 중에 채팅 창에 한 마디라도 쓴 사람은 열 명이나 될까?
수료 여부는 과제 제출로 증명이 되는데, 마지막 날 수업만 들으면 대충 제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과제 제출 후에도 두 시간 정도 수업이 남게 되었는데 당연히 안 듣게 되지.
교육 목적은 실무자를 대상으로, 실무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수업 준비도 부실하고, 수업 자료도 부실하고, 교육생 수준에 대한 파악도 부실했다. 완전 초보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수준의 강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네 발로 기고 있는 아이 붙잡고 갑자기 허들 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뭐, 어찌 되었든 과제는 제출했다. 재택 교육은 끝. 수료증 발급 받아서 월요일에 제출하면 된다. 보험료 관련해서 전화 몇 번 해야 하고. 그리고... 아, 곧 24시간 근무 다가오는고나. 그렇게 24시간 근무 두 번 하고나면 2020년이 끝난다. 코로나 19도 그렇고, 유학이 생각보다 6개월 빨리 끝난 것도 그렇고, 참으로 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로또 1등 되서 당첨금 받으면 시골 깡촌에 창고 지어서 물품 보관 서비스 같은 거 하면서 빈둥거리고 살았음 좋겠다. 코로나 문제 해결되면 1년의 절반 정도는 일본에서 살고. 음... 20억 정도 받는 걸로는 어림도 없으려나? 아무튼, 요즘은 그런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남들은 내 나이 정도 되면 집도 하나 장만하고, 애들 학교도 보내면서 산다는데. 나는 집은 커녕 빚만 잔뜩이고, 애는 고사하고 마누라도 없다. 남들 기준으로 보면 평균에서 한~ 참 뒤쳐진 사람이지만, 스스로 행복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장 지금의 환경에 더할 나위없이 만족. 회사에 커피 머신이 있어서 따로 돈 안 써도 커피 마실 수 있지, 주간 근무 하니까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 수 있지, 회사에서 숙소 주니까 따로 월세 안 내고 살 수 있지. 그 외에도 장점이 잔뜩이다. 이런 환경이니까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를 차 값으로 갖다 바치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거다. 물론 다른 사람과 같이 집을 쓴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만 약간의 불편을 참아낸다면 한 달에 30만원 이상이 굳는다. 개꿀이지.
금요일 다 지나갔고, 이번 주부터는 사무실에 돈 벌러 안 나가도 되니까 주말 내내 뒹굴거려도 된다. 뭐하고 놀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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