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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0년 12월 11일 금요일 흐림 (재택 교육 끝)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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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쪽 보고는 오줌도 안 눈다고 큰소리 치며 그만두고 나간 것도 있고, 휴직한 기간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2000년 이후 같은 조직에 몸 담고 일하는 중이다. 여기는 그렇잖아도 폐쇄적인 한국의 조직 문화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다 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라서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다.

  • 초짜일 때에는 그저 눈치 보고 설설 기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손해를 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꼬박 야근하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부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작살나게 깨진 뒤 방금 전까지 이 ㅺ 저 ㅺ 했던 사람의 아들내미 결혼 청첩장을 부치러 우체국으로 퇴근하기도 했다.

  • 그런 조직이라서 행정 업무 같은 것도 그냥 대충, 해주는대로 넘어가곤 했었다. 그러다가 휴직하고 복직해서 모처럼 주간 근무를 해보니, 와~ 이건 신세계다. 날마다 운동하라고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그렇고, 주말마다 꼬박꼬박 쉬는 것도 그렇고, 빨간 날 다 쉬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꼰대가 없는 곳이라서 휴가 가면서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여러 모로 바람직하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조직의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사 비용을 받는다던가, 교육비를 지원 받는다던가.

  • 교육비를 얘기해보자.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공부하는 거니까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다. 한 달에 50만원 씩 내는 학원에 다니겠다며 그 돈을 받아놓고 학원도 안 간 채 꿀꺽! 하면 안 되잖아. 과거에는 그 따위로 해처먹은 ㅺ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뭐, 여전히 그 따위 짓거리를 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지만서도. 아무튼. 그렇다보니 여러 가지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게 과거에는 굉장히 복잡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간소화되었다고 하는고만. 하지만 처음 겪는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복잡하다.

  • 다행히 사무실에 틈만 나면 행정망 쳐다보는 냥반이 있어서 그 냥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날마다 행정망만 쳐다 보고 있기에 주는 것 없이 밉상이다 싶었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얄밉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조금 후회됐다.

  • 교육비 입금이 안 되었다고 메시지가 왔기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는 제대로 처리했는데 연관 부서에서 아직 처리가 안 된 것 같다고 한다. 목소리만 들어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젊은 분 같은데 싹싹하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해서 완전 호감이다. 인사, 행정 쪽에는 쓰레기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아닌 분이라 생각한다. 아, 그러고보니 다음 주에는 출근하자마자 보험료 가지고 전화해서 따져야 하는고만. 피곤하네.

  • 뭐, 말이 길어졌는데... 3일 동안 재택 교육이 끝났다. 교육 받은 소감? 음... 돈지랄이다. 왜냐고?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 어제도 몇 자 적긴 했는데, 관심없는 사람들이 봐서는 뭔 소리인지 모를테니까 요리와 비교해서 얘기해보자.

    • 내가 돈 내지 않고, 회사 돈으로 교육을 해준다고 해서 봤다. 이탈리아 요리 기초 강습이란다. 난이도를 보니 '해당 교육과정에 관심이 있는 자' 라 되어 있고, 교육 내용을 보니 그닥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요리의 특징이라거나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 따위를 언급할 줄 알았다. 그리고 나서 하나, 하나 가르쳐줄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이 칼 한 번 잡지 않은 초보자였으니까.

    • 그런데... 이탈리아 요리가 왜 인기 있는지 간단히 설명을 하더니 칼로 다다다다 재료를 다지기 시작한다.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저 보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어슷썰기를 해보란다. 부랴부랴 보이는대로 따라했다. 뭔가 잘 안 되서 질문을 했더니 구글링하면 다 나오니까 그걸 참고하란다. 어?

    •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PPT나 PDF 파일로 교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예습은 고사하고 복습도 못하는 상태. 그런데 갑자기 알아듣지도 못할 얘기를 막 한다. 뭔 뜻인지 모를 단어가 난무한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구글 검색해서 사진 보여주면서 이게 이탈리아 요리라고 하더니, 똑같이 만들어보란다. 멘탈이 무너진다.

    • 게다가 교육 중에 출석 체크가 한 번도 없었다. 최대 50명까지 들을 수 있는 강의인데 50%도 안 되는 사람이 신청했다. 그 50%도 안 되는 사람 중에 채팅 창에 한 마디라도 쓴 사람은 열 명이나 될까?

    • 수료 여부는 과제 제출로 증명이 되는데, 마지막 날 수업만 들으면 대충 제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과제 제출 후에도 두 시간 정도 수업이 남게 되었는데 당연히 안 듣게 되지.

    • 교육 목적은 실무자를 대상으로, 실무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수업 준비도 부실하고, 수업 자료도 부실하고, 교육생 수준에 대한 파악도 부실했다. 완전 초보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수준의 강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네 발로 기고 있는 아이 붙잡고 갑자기 허들 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 뭐, 어찌 되었든 과제는 제출했다. 재택 교육은 끝. 수료증 발급 받아서 월요일에 제출하면 된다. 보험료 관련해서 전화 몇 번 해야 하고. 그리고... 아, 곧 24시간 근무 다가오는고나. 그렇게 24시간 근무 두 번 하고나면 2020년이 끝난다. 코로나 19도 그렇고, 유학이 생각보다 6개월 빨리 끝난 것도 그렇고, 참으로 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 로또 1등 되서 당첨금 받으면 시골 깡촌에 창고 지어서 물품 보관 서비스 같은 거 하면서 빈둥거리고 살았음 좋겠다. 코로나 문제 해결되면 1년의 절반 정도는 일본에서 살고. 음... 20억 정도 받는 걸로는 어림도 없으려나? 아무튼, 요즘은 그런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 남들은 내 나이 정도 되면 집도 하나 장만하고, 애들 학교도 보내면서 산다는데. 나는 집은 커녕 빚만 잔뜩이고, 애는 고사하고 마누라도 없다. 남들 기준으로 보면 평균에서 한~ 참 뒤쳐진 사람이지만, 스스로 행복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장 지금의 환경에 더할 나위없이 만족. 회사에 커피 머신이 있어서 따로 돈 안 써도 커피 마실 수 있지, 주간 근무 하니까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 수 있지, 회사에서 숙소 주니까 따로 월세 안 내고 살 수 있지. 그 외에도 장점이 잔뜩이다. 이런 환경이니까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를 차 값으로 갖다 바치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거다. 물론 다른 사람과 같이 집을 쓴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만 약간의 불편을 참아낸다면 한 달에 30만원 이상이 굳는다. 개꿀이지.

  • 금요일 다 지나갔고, 이번 주부터는 사무실에 돈 벌러 안 나가도 되니까 주말 내내 뒹굴거려도 된다. 뭐하고 놀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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