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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1년 02월 08일 월요일 맑음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바삐 보낸 하루)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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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 내용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음... 매일 매일 딸기 맛 아이스크림만 만드는 게 아니라 딸기 맛, 바닐라 맛, 바나나 맛, 멜론 맛, 온갖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주말에 침대에 널부러진 채 시간을 보내다가 출근하면서,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만들겠지?' 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하려고 하니까 오늘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마카롱을 만들라는 거다. 만들 줄 모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지라 부랴부랴 레시피 알아보고, 재료 준비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 돈 벌고 있다.

  • 예상했던 일이 아닌지라 '대체 왜 이런 걸 하라고 하는 거야!' 하고 짜증스런 마음도 있었지만 짜증낸다고 할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하라는 걸 했다. 그 과정에서 준비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나눠서 썼고.

  • 여기에서 인성이 딱 드러나는 게, 고맙다면서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간식거리라도 줘야 한다면서 서랍을 뒤지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고맙다 소리는 고사하고 기역도 입에 담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고맙다 소리 듣고 공치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만든 자료는 아니지만 역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싫어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 뭔 얘기를 하다가 예전 이야기가 나왔다. 휴직하기 전이었는데, 본사에서 관례랍시고 수 년, 수십 년 이어져온 걸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매 년 그런 지시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관례대로 해왔던지라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뭔가 낌새가 안 좋더라. 이건 아닌데 싶더라. 그러던 중 다들 한 자리에 모여 어떻게 할지 정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는 사람이 분위기를 주도해서 관례대로 하자는 쪽으로 몰고 갔다. 딱히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들은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끌려갔고. 모두 관례대로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됐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나는 반대한다고 했다. 하지 말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나보다 어린 직원 한 명도 반대 표를 던졌다. 열몇 명이 의견을 냈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나와 나보다 어린 직원, 이렇게 두 명 뿐이었다.

  • 만장일치가 아니면 관례대로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결국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하지 않고 본사의 지시대로 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그 뒤로 저들끼리 모여 건방지다느니, 싸가지가 없다느니, 뒤에서 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뭐, 그런 소리를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니고, '까거나 말거나 내가 죄지은 게 없으니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 얼마 후. 다른 지점에서 관례대로 하다가 본사의 감사에 걸려 불이익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동료들 죄다 모아놓고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라 하고 싶었다. 뒤에서 깠다는 꼰대 ㅺ들 불러다가 사과하라고 쪼아대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고.

  • 오늘, 나 좋자고 만든 자료가 여기저기 퍼져 나가는 걸 보면서 저 일이 생각났다. 누구나, 물론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이 참 많고나 싶더라. 적어도 성인이라면, 좀 전까지 제 입으로 이거 진짜 달아, 얼른 삼켜! 라고 해놓고는 누가 그거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는 짓거리는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내가 달고 맛있으니까 먹으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오물오물 먹고 있는데 어? 그거 뭐예요? 저도 하나만... 해놓고, 다른 데 가서 달고 맛있다고 저 혼자 떠들어놓고 말이다.

  •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국 일이라는 건 익숙해지면 어영부영 괜찮아지기 마련이다. 힘들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인 거지.

  • 아무튼, 저녁에는 공부 좀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일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그냥 퇴근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게임 켜고 빈둥거리다가 냉장고에 남아있는 맥주 꺼내와서 마시면서 일기 쓰는 중.

  • 내일과 모레, 이틀이면 이번 주는 끝난다. 포항에 갈 수 없으니 고모께 전화 드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네. 수요일에는 칼퇴해서 맥주나 마시면서 빈둥거릴까 싶다. 방에서 번데기 탕이나 끓여서 소주나 한 잔 할까 싶기도 하고.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연휴도 끝나겠고만. 그러고 나면 2월도 다 끝날 거고. 40대에도 시간이 이리 빨리 가는데, 50대, 60대가 되면 얼마나 빨리 간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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