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포장일기 』

2021년 05월 29일 토요일 맑음 (승진 탈락/간만에 장거리)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1. 5. 29.
반응형

휴직 전에도 1년에 승진 심사를 두 번 했던가? 그 때에는 한 번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1년에 한 번이었던 승진 심사가 두 번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두 배로 승진 시키는 건 아니고, 반씩 쪼개는 꼴이니까 다를 게 없다. 다만, 승진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1년에 한 번만 느끼면 되었던 좌절감, 패배감 따위를 두 번 느끼게 되었다. 뭣 같다.

27일 오후에 심사를 하고 발표한다고 하더라. 그런가보다 했다. 퇴근 무렵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개새끼들. 저들도 승진 심사를 앞두고 기대 반, 긴장 반으로 두근거렸던 과거가 분명 있을텐데 왜 시간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고 저 따위로 하는 건지.

20시가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승진이 되었다면 누가 되었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거다. 떨어졌고나. 이번에도 물 먹었고나. 혼자 있을 때에는 그래도 괜찮다. 애써 서운한 척, 실망한 척, 패배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맥주 세 캔을 마시고 잤다.

금요일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잠에서 깼다. 요란한 천둥 소리가 들린다. 예보대로 제법 쏟아지는 모양이다. 룸 메이트가 여섯 시 반 쯤 씻으러 들어갔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알람을 한 차례 연기한 끝에 일곱 시 반이 되기 전에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진작에 나갔을 룸 메이트인데, 나가지 않고 뮝기적거리더라. 비가 많이 내리니까 나를 태우고 갈 생각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니까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지만 가만히 기다렸다가 걸어가려는 나를 보고는 타고 가라고 한다. 지금까지 몇 번 그랬다. 나보다 한참 어린데 배려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옷을 입고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비도 거의 안 내리는 것 같더라. '먼저 가나보다.' 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어제 승진 심사에 대한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오전 중에 난다더라. 그래서 연락이 오지 않은 건가? 다시 한 번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개새끼들.

출근해서 수다를 떨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지만 마음이 콩 밭에 가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쪽이 시끌벅적해진다. 발표가 났단다. 누구라도 됐다면 바로 축하한다며 설치는 사람이 있을텐데 그런 사람이 없다. 그렇다. 이번에도 전멸이다. 나를 포함한 승진 대상자 모두, 물 먹었다.

지난 해에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복직하자마자 승진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솔직히 조금 기대를 했다. 휴직 전에 승진 후보 1순위였으니까. 내가 휴직하는 바람에 내 바로 아래에 있던 사람이 승진했으니까. 이제 1년이 지났으니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던 모양이다. 같이 입사한 사람 중에 나보다 두 계급이나 위로 올라간 사람도 있다. 후배들한테 밟힌 지는 얼추 2년이 넘었다. 그럴 수 있다. 나보다 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거지. 하지만, 정말 거지 발싸개 같은 것들이 승진을 한다. 기분이 더럽다.

소장님이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모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본사 사람만 승진이 되고 지사 사람은 탈락한다 거나, 학연이나 지연에 의해 승진을 결정하는 게 아니냐라는 의심 따위, 전혀 아니라고 했다.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서 점수화한 뒤 그걸로 승진을 결정한다고 하더라.
믿지 않는다. 열 명한테 물어보면 열 명이 모두 자기는 근무 잘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정말 일 못하는 머저리 같은 것들이 승진하는 걸 숫하게 보아 왔다. 물론 승진 대상자보다 빈 자리가 많아서, 그런 운이 좋은 시기여서 승진을 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치열하게 경쟁할 때에도 돌대가리들이 승진하는 꼴은 여러 번 봤다. 정말 일 잘 하는 사람이 승진하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도 많이 봤고.

그 사람이 일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누군가가 소장님에게 질문을 했더니 그게 다 보인다고 하더라. 질문을 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냐고 물어보더라. 맞다. 나도 보인다. 솔직히 보이잖아? 열심히 일 하고 부지런히 일 하는 사람은 티가 난다. 빈둥거리고 월급 도둑질하는 ㅄ도 당연히 티가 난다.
면담이 끝나고 나니 찌질이 ㅺ가 다른 사람한테 그게 보이냐고, 자기는 안 보인다고 하더라. ㅄ ㅺ, 너 말하는 거다, 너! 일 못하고, 말 많고, 헛된 소문 퍼뜨리고 다니기 좋아하고. 전형적인 월급 도둑놈 주제에 자기가 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머저리 쪼다 새끼, 너 말이다, 너! 쯧.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날.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대충 짐을 챙긴 뒤 차로 옮겼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출발. 안내대로 민자 고속도로에 올라섰는데 막힌다. 정안 휴게소까지 막히고 차령 터널인가를 지나니까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왕눈이 눈깔만한 빗방울이 떨어져서 긴장하며 운전했다.
○○에 왔다갔다 할 때에는 수도 없이 다니던 길인데, 정말 오랜만이다. 어색하다.

휴게소에 들러 우동과 김밥을 먹느라 20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어두워져서 손전화의 플래시를 켜고 아버지 자리를 찾았는데 안 보인다. 당최 못 찾겠다. 게다가, 관리를 안 한지 몇 달이나 지난 건지 잡초 투성이였다. 50년 동안은 관리한다더니, 정말 개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오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관리를 아예 안 하는 걸까?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일단 차로 돌아갔다. 뒷좌석 시트를 눕히고 토퍼를 깐 뒤 잘 준비를 했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간 740㎖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모토조노 선생님이 주신 보온병을 처음 써봤는데 출발할 때 담았던 뜨거운 물이 그럭저럭 양호하게 보온되어 있었다. 막 끓였을 때처럼 엄청 뜨거운 건 아니지만 라면이 익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뭐.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이마에 땀이 맺힌다. 덥다. 선풍기를 깜빡 잊은 걸 후회했다.

 

 

LTE 밖에 안 잡히는 ○○과는 달리 5G가 제대로 잡힌다. 속도 측정을 해봤더니 엄청나다. 테더링을 걸고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다가 잘 준비를 했다.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추워서 깬 뒤 시계를 보니 한 시 반이다. 구석에 팽개쳐놨던 침낭을 끄집어올려 덮었다. 이불이나 침낭을 덮어도 춥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 좋았다. 30분 쯤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숙소에서도 제대로 못 자는데, 좁디 좁은 차에서 제대로 잘 수 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허리 부근도 불편하다.

 

넓디 넓은 주차장에 아무도 없다. 나 밖에 없었다.

 

적당히 자다가 여섯 시가 넘어 일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아버지한테 갔다. 잡초를 뽑아내고, 주변 정리를 한 뒤 가지고 간 콜라와 과자, 조화 화분을 올려뒀다. 동생이라는 년은 5년 동안 달랑 한 번 다녀갔다. 저 염병할 년이 사는 곳과 가깝다는 이유로 광주에 모신 건데, 그냥 경기도 어디쯤 모시는 게 나을 뻔 했다. 멀어서 1년에 두 번 밖에 못 가는 나인데, 저 썩어뒈질 년은 5년 동안 한 번 다녀갔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그렇게 울더니, 술에 취해 뻗은 나를 보며 저런 게 장남이냐고 욕해대더니, 조의금 몰래 빼돌리다 고모한테 걸려서 한 소리 들어먹더라니.
뭐, 나보다 더 험한 환경에서 더 오래 생활했으니 인성이 개판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년에게 가족은 돈 주머니일 뿐이겠지. 어느 정도 했더라면 눈탱이 맞는 거 알면서도 적당히 퍼줬을텐데. 저 년은 사람이 아니다. 상종 못할 쓰레기다. 아버지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나에게는 결국 짐이다. 나에게 좋은 가족은 죽은 가족 뿐인 것 같다. 그냥 고아라 생각하고, 혼자 재미있게 살자.

 

관리를 안 해서 잡초가 엄청나게 자라 있었고, 꽂아놓았던 조화도 여기저기 뽑혀 나가 있었다. 관리를 아예 안 하는 것 같더라.

 

무궁화 조화를 비롯해 전부 색이 많이 옅어졌지만 그대로 뒀다. 사들고 간 조화 화분을 놓고 콜라와 과자를 올려놨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코딱지만한 돌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보고 있자니 승진이고 나발이고 뭐가 중요하냐 싶더라. 내가 죽어서 눈 감을 때 대리로 죽냐, 과장으로 죽냐 따위를 생각할까 싶더라. 물론 승진하면 월급도 오르고 이래저래 좋아지겠지만 지금도 먹고 살만큼은 번다. 욕심내지 말고, 분수에 맞춰 살자. 승진은 때 되면 하겠지. 몸 담고 있는 조직이 결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투명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아니까, 승진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냥 그러려니 하자.

대충 정리를 마친 뒤 차로 돌아와 시트를 다시 펼치고 짐을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하고 머리를 밀었다. 벌써 토요일 오후. 오늘은 마사미 님에게 메시지만 보내고 전화는 내일 드려야겠다. 낮술이나 마시고 게임이나 해야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