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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일기 』

2022년 03월 29일 화요일 맑음 (나쁜 행위?)

by ㅂ ㅓ ㅈ ㅓ ㅂ ㅣ ㅌ ㅓ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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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운동 마치고 들어오는데 나보다 먼저 현관 앞에 선 사람이 있었다.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보였는데 도어락을 풀기 전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던 명함 크기의 대출 광고를 줍고 있더라. '뉘 집 자식인지, 참 잘 배웠고나.' 싶었다. 저 딴 걸 길바닥에 마구 뿌리고 다니냐고, 싹 다 잡아서 씨를 말려야 한다고 궁시렁대기만 하는 아저씨와 다르게, 조용히 줍고 가는 거다. 그동안은 청소 업체에서 치운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전 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은 탓인지 엄청 피곤했다. 『 디아블로 2 』는 아~ 예 안 했다. 『 벰파이어 서바이버 』 때문이다. 도트 그래픽의 촌스러운 게임인데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긴 했는데 구입하지 않더라도 웹에서 실행하는 게 가능하더라. 한, 두 판 해보니 재미 있어서 몰입하게 됐다. 한 판 하면 20분이 기본인데 그걸 열 판 넘게 했으니 대체 몇 분을 까먹은 거야? 아무튼. 21시가 되니 졸음이 쏟아져서 바로 잤다.

 

자다가 새벽 세 시에 깼고, 늘 하던대로 태블릿을 붙잡고 당근에 올라온 글을 봤다. 이 동네가 참 희한한 게, 일기를 당근에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뭐, 나도 생판 모르는 남들 보라고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으니 관종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부류라 할 수 있겠지만 블로그는 내 꺼잖아? 당근은 여러 사람이 쓰는 거고. 남들 눈에는 고만고만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개 게시판에 일기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로남불인가?

어찌 되었든, 새벽에 올라온 글 중 포켓몬 빵을 비싸게 파는 게 왜 '나쁜 행위'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글이 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 잠결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달았다.

저 사람이 내 댓글 때문에 생각이 바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저 사람의 의견 때문에 생각이 바뀔 리 없다. 게다가 내 댓글에 반박하는 사람들이 예의 없게 글을 써대거나 말 같잖은 소리라도 싸질러 놓으면 짜증나서 나만 스트레스 받는다. 그걸 알지만 이건 아니다 싶더라.

 

나는 포켓몬 빵 세대가 아닌데다 우리 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국진이 빵이네 뭐네 하는 것도 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 어렸을 때 샀던 빵을 다시 출시한 모양이더라고. 거기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 있는데 이 스티커를 모으는 사람들 때문에 빵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차익을 노리고 빵을 선점해서 되파는 짓을 하고 있는 거고.

이건 누가 봐도 잘못된 짓이고 나쁜 행위인 거지. 이게 왜 나쁜 행위인지 모르겠다니, 대체 얼마나 자본주의의 늪에 빠져 있는 걸까? 자기 자식에게도 이건 나쁜 짓이 아니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대한민국의 모든 쌀을 다 사들인 뒤 열 배의 가격에 판다면 어떻게 될까? 요즘 세상이야 먹을 게 워낙 많으니 쌀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크게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쌀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은 나를 통해 열 배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겠지. 이게 정당하다고?
이 경우 쌀을 싹 사들이는 걸 매점매석이라고 한다. 사재기라 하기도 하고. 물건의 적정가를 조작해서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거다. 내가 쌀을 비싸게 팔아 번 돈으로 매점매석의 대상을 확장해서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같은 가전 제품도 싹 긁어들이고 자동차나 아파트도 전부 내가 팔게 만들어버린다면, 그게 제대로 된 세상일까?

 

글을 올린 사람이 미국의 야구 카드 예를 들었던데, 미국에서 행해지는 일이라는 이유로 우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후진국의 마인드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네 어쩌네 하는 마당에, 미국이 되니까 우리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지나친 사대주의다. 미국에서 야구 카드가 비싸게 사고 팔리는 게 옳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우표와 화폐 거래는 것도 예로 들었던데, 우표와 화폐는 통용되던 시절에는 모두가 같은 값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희소 가치가 생기게 되면서 그 희소 가치를 돈으로 사게 된 거지. 10년 전에 나와서 다시는 나오지 않는 제품인데 그걸 갖고 싶다 해서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그 10년을 돈으로 산다고 보면 되는 거다. 만약 포켓몬 스티커가 10년이 지나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는 거지. 저런 걸 비싼 돈 주고 수집하는 사람도 있고나 하고. 하지만 500원에 팔리는 빵을 5,000원에 팔고 있다면 그건 사기인 거다.

 

빨간 불인데 횡단보도도 없는 길을 마구잡이로 건너는 건 불법이기도 하고,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이다. 누가 봐도 나쁜 짓인 거지. 그런데 불법 횡단을 한 사람의 아내가 출산이 임박한 상황이라면? 부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면? 나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게 된다. 그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니까.

만약 포켓몬 빵을 열 배의 가격으로 파는 학생이 있는데 기초 생활 수급자에 부모도 없이 사는 소년 가장이다라고 한다면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거다. 도우면 도왔지. 그게 아니라 그저 손쉽게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 비싸게 되팔고 있으니까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거다.

 

어렵게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칠 수 있느냐를 따져보면 되는 거다. '친한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과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과자를 사서 가지고 간 뒤 비싼 장난감이랑 바꾸자고 해라.' ← 이 따위로 가르칠 수 있는가?

 

바른 생활 시간에 배운대로만, 도덕 시간에 배운대로만 산다면 공권력은 최소의 존재로도 충분할 거다. 그게 아니라 다들 더 갖고 덜 내주면서 살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만 그러한 욕구는 일반적이니까 어느 정도는 납득하는 거고.

 

 

나는 집을 살 생각이 전혀 없다. 집을 산 뒤 값이 올라 차익을 노리고 다시 판다는 짓거리가 몹시 한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산을 물려줄 가족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가족이 생기게 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 아무튼, 투기의 수단으로 집을 이용하는 건 내 기준에 나쁜 짓이고, 한심한 짓이다. 다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사니까 드러내놓고 비난하지 않는 것 뿐이지.

 

베푸는 삶은 못 살아도, 빼앗는 삶은 살지 말자고 생각하는데 그런 내가 위선자 소리를 듣고 착한 척 한다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팍팍한 세상이 됐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에 가까운 지위를 갖게 되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뭐, 나도 만날 돈돈거리고 있으니 이런 글 쓰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서도.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느라 글이 길어졌다. 슬슬 도서관에 다녀와야지. 자전거 타고 싶지만 운동할 겸 걸어가야겠다. 다녀오면 정오가 지날테니, 씻고 바로 출근해야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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