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 현저동에서 잠깐 살았었다. ○○에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살 곳이 있어야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보증금을 달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한대로 하이텔에서 동거인을 구했는데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쉽게 구해졌다. 본인이 이미 살고 있으니 월세만 나눠 내고 같이 살자는 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현저동에 있는 2층 집이었다. 건물 옆으로 가파른 경사의 철제 계단이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 집이었다. 살고 있던 사람은 키 190㎝ 이상의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였고 방은 하나였다. 어영부영 얹혀 살기 시작했는데 바닥에서 자니까 자꾸 침대로 올라오라 하더라. 친하지도 않은데 침대를 같이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계속 괜찮다고 거절하며 바닥에서 잤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눈에 띄게 까칠하게 굴었다. 그 때에는 왜 저러나 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게이였던 것 같다.
×꼬는 Output 전용이지 Input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은연 중에 위기를 느끼고 ×꼬를 지키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 못 이기는 척 침대로 올라갔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성적 취향을 갖고 살고 있을지도 모... 그만두자.
아무튼, 여러 가지로 불편해서 어지간하면 집에 안 들어갔다. 학교에서 대충 씻고 쭈그려 자면서 지내다가 동거인이 회사에 간 틈을 타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 그 때 갈 곳이 없어 방황하며 담배 피우던 곳이 독립문 공원이었다. 벤치에 누워 바닥에 GET2 꽁초를 잔뜩 쌓아가며 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20년도 더 된 일인지라, 오랜만에 갔더니 아~ 예 모르는 동네가 되어 있었다. 과학 고등학교가 있었던 것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전혀, 전~ 혀 모르겠다.
정문을 바라보고 있다는 가정 하에, 왼쪽으로 가면 무인 티켓 발급 기기가 있고 오른쪽의 문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직접 표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나는 입장료 면제 조건에 해당되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간 뒤 신분증을 보여줬다. 보통은 무료 입장이라 해도 표를 발급해주는데, 여기는 그런 것 없이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라.
일본의 문화도 좋아하고, 역사에도 흥미를 느끼며, 일본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게 무척 즐거운 사람이지만, 역사 교육 만큼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해를 끼친 것이 명백한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든다. 물론 우리도 베트남에서의 양민 학살이라던가, 부끄러운 부분을 일부러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에도 소수의 양심있는 지식인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일부의 사람들은 뻔뻔함으로 어두운 과거를 못본 척 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TDlWk_8QQY
위대한 이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단체로 온 학생들이 많이 보이더라. 대충 훑어 보면 30분 만에 다 볼 수 있겠지만 안내문을 읽고, 영상을 보고, 천천히 느끼고 있노라면 시간이 훌쩍 간다. 여유롭게 보려면 세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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